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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anii33.gif보시고자 하는 제목을 누르시면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빛이시라(1장)

2.빛과 사랑(2장)

3.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라(3장)

4.하나님은 사랑이시라(4장)

5.세상을 이긴 자가 누구냐?(5장)

 

 

       1. 하나님은 빛이시라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1-10)

우리 나라의 어두운 정치 일면을 보여주는 어느 일간지에 실린 유머 하나 소개합니다.

『국회의원을 실은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절벽 아래 논두렁으로 추락했습니다. 때마침 폭우를 걱정하던 농부가 논을 살피러 나왔다가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농부는 땅을 파고 국회의원들을 모두 정성껏 묻어주었습니다. 며칠 뒤 파출소장이 지나가다가 부서진 버스를 보았습니다. 국회 소속 버스임을 알고는 농부를 찾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파출소장에게 국회의원을 전부 묻어주었노라고 말했습니다. 파출소장 왈, "아니 그러면 국회의원들이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겁니까?" 농부 왈, "뭐 몇 사람 살아있다고 외쳤지만 그 사람들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우리 나라 정치인들을 풍자한 어두운 유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온 인류에게 생명과 평화의 빛을 비추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자 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폭력으로 막아보고자 베드로는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폭력에 상처입은 자를 치료하시고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는 지금 미국 테러 대참사로 인해 충격과 슬픔과 분노에 빠져있습니다. 테러란 폭력 수단을 행사하여 적을 위협, 살해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테러를 일삼는 자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데 폭력 혁명주의자를 가리킵니다. 수 만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 테러 대참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은 세계 최고의 테러리스트로 알려졌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44)은 막대한 자본력과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앞세워 지하드(성전)란 이름으로 세계 30여개국 이상에서 광범위한 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그는 세계를 이슬람과 반이슬람으로 양분하고 이슬람을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반이슬람 세력을 없애는데 모든 폭력을 불사하는 세계적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상속받은 10억달러 상당의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고 있고, 자신의 은신처에 컴퓨터는 물론 위성전화와 모뎀·팩스 등을 갖춰놓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직원들에게 단추 하나로 테러 지시를 내린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유명 음란 사이트 게시판에 사진을 띄워 놓고 그 속에 공격명령이나 지시를 암호화해 넣는 방법으로 조직원들과 연락을 취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미국 테러 대참사 사건도 그가 5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수께서 세계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한 길은 십자가의 길, 즉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서 수많은 남의 생명까지도 희생시키는 가미가제식 죽음을 택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폭력이라도 받아들이며 그 폭력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방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12명의 제자들은 폭력으로 세상을 혁명하라고 세운 테러 조직이 아니라 세상의 어떠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한 생명과 평화의 사도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답시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미움이 동일한 사람 속에 공존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종교를 존중하며 자신의 신을 숭배한다면서 인간을 증오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사실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을 파괴하는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라 거짓된 종교에 불과합니다. 인간을 증오하며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신은 그 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며 자신의 종교에 책임을 돌리거나 자신의 종교에 영웅적인 행위 운운하는 것은 역시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엄청난 비극을 당하고 크게 자존심 상한 미국은 테러 집단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다짐하고 최첨단 무기로 전쟁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혹자는 이번 전쟁을 서양문명과 비서양 문명인 이슬람 문명과의 종말론적인 대충돌로 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슬람 문명이란 이슬람 종교 국가들을 뜻하고 서양 문명이란 기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보복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용서하고 섬기는 종교입니다. 미국은 테러 집단에 대해 응징이나 보복 전쟁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차라리 날뛰는 살인 강도 하나 잡아들이겠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지도자의 정책이나 이념, 문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용서, 진실과 정의는 빛입니다. 그러나 증오와 보복, 거짓과 불의, 폭력은 어두움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는 사람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건립자이며 남북 전쟁 당시에 유명한 장군이었던 하버드 장군의 일화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가 미국의 서해안 지역을 방문하려 했을 때, 그와 절친한 친구들은 하버드를 놀라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 몰래 환영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미국 서해안 지역의 유명 인사들도 초청해 놓는 등 계획대로 그 파티를 위해 준비해갔습니다. 이윽고 파티 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친구들은 하버드 장군에게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들의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버드 장군은 자초지종을 듣더니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맙네만 수요일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 목요일로 연기해줄 수 없겠나?" 그러자 친구들은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장군, 이번에는 미국의 유명 인사들을 대거 초청했고 또 대통령께서도 이 파티를 위한 축전을 보내왔단 말입니다. 장군이 그 약속을 취하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하버드 장군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다시피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를 구속해주신 그분께 나는 굳게 약속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 기도회에는 반드시 참석해서 주님과 교제하겠다고 말입니다. 미안하지만 난 주님과의 약속을 깨뜨릴 수가 없으니 다음날로 연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 초청 파티는 목요일 저녁으로 연기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미국의 역사책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지는 사람이 어찌 미국 역사책에만 기록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도 확실히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의 사귐을 분명히 하고 그 진실된 믿음과 생활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기독교 문명을 대표하는 미국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될 만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나라, 빛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만 인류 문명사에 지금까지 어두움이 빛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 무대에서 한번도 진리와 정의, 진실과 사랑이 거짓과 불의, 미움과 증오에 진 적이 없습니다. 속성상 어두움이 빛을 대적해오고 있지만 누구든지 빛 가운데 거하면 자연히 어두움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미국도 이점을 간과하지 말고 빛이 되시는 하나님 편에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사는 방법, 무지한 어두움의 인생이 되지 않고 빛의 아들이 되는 방법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4-46) 그래서 바울도 예수 믿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빛에 거하지 아니하고 어두움에 빠져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모든 생물이 빛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빛이 없는 어두움은 인생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어두움의 일을 열매없는 것으로 말하며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열매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과 성숙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맺는 사람과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빛되시는 예수 앞에 나와야만 합니다. 예수 앞에 나와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런던에서 강도짓을 일삼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양품점에 들어가 현금과 금품을 빼앗고 그 손님들까지 다 죽이고는 도망을 쳤습니다. 경찰에서는 혼미한 수사 끝에 결국 진범이 아닌 사람을 체포하여 구속시켰고 끝내 사형까지 집행하였습니다. 그 진범은 멀리 미국으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20년을 살다가 '이제는 영국으로 돌아가도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겠지' 하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름도 바꾸었고 외모도 많이 변해 그를 알아보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런던의 호화로운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호각 소리와 함께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도둑이야! 저놈 잡아라!" 순간 그 진범의 발은 땅에 얼어붙고 온 몸이 덜덜 떨려 도무지 움직여지질 않았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결국 경찰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은연중에 죄가 그의 마음을 온통 억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20년 도피생활은 어두움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수하여 죄를 자백하고 나니 몸은 비록 자유스럽지 않았지만 마음은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죄의 자백을 통해 20년만에 빛을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죄가 우리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고백할 때 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그분은 우리를 온전히 용서하시고 받아주실 것입니다.

미국 테러 대참사로 인해 국제적인 테러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테러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면 전 세계 주요국가들이 이념을 초월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테러로 115명을 희생시킨 사건의 배후 인물로 밝혀진 북한의 김정일이 만일 서울을 방문할 경우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체포해야 할 것인가? KAL기 테러범인 김현희는 김정일의 친필지령에 따라 범행을 저질렀다고 고백했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항공테러범이 자국의 영토 내에 있을 경우 어떠한 예외도 없이 반드시 체포해야만 하는 의무를 규정한 「민간항공 안전에 대한 몬트리올 협약」에 가입해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김정일을 반드시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몬트리올 협약」에는 소위 말하는 「외교적 면책」에 관한 규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리적으로 말한다면, 김정일이 「사실상의 국가원수」이든 혹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를 받은 사실상의 국빈이든 상관없이, 우리 정부는 이 몬트리올 협약에 의해 반드시 김정일을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테러 교사범으로 체포, 재판에 회부해야 하는 국제적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도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북한 공작원의 소행임이 밝혀짐에 따라 이를 근거로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했습니다. 미국은 이 사건 이후 14년째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시켜놓고 있습니다. 미국은 1979년,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반테러법」을 제정하고, 매년 「테러지원국」 명단을 발표하면서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서는 소위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이름을 붙여 강력한 무역·경제제재 조치를 취해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하자 반테러법 및 무기수출통제법에 의거, 다음해인 1988년 1월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불량 국가로 지정하였습니다. 미국은 이후 지난 4월30일 발표한 연례 세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을 비롯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 7개국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북한에 대해서는 1988년 1월 이후 14년째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지금까지도 부시 정부는 북한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보고, 김정일을 믿을 수 없는 깡패로까지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이 미국 테러 대참사를 놓고 처음에는 전혀 반응이 없다가 러시아와 중국이 일제히 미국의 테러 응징에 대해 지원과 협조를 들고나오니까 그제서야 테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왔습니다. 미국 테러 대참사에 대해서는 애도를 표한다 하면서 KAL기 폭파테러에 희생당한 115명 남한의 유족들에게는 한 마디 없습니다. 팔레스틴 PLO지도자 아라파트도 국제 여론을 의식해서 미국 테러 대참사에 애도를 표하며 헌혈하는 제스춰를 보여주었지만 내심은 자국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환호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진정 이들이 세계 평화를 위하는 지도자와 나라들이라면 지난 날 자신들의 모든 테러 행위를 솔직히 고백하고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은 조금이나마 빛 가운데 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나 나라가 빛 가운데 행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두움의 근본이 되는 죄를 회개하고 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빛 가운데 살고자 할지라도 죄의 유혹, 어두움의 유혹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한 죄의 유혹을 물리치거나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앞에 나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앞에 나올 때에만 하나님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빛을 받았습니다. 그 빛은 너무 밝아 순간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버렸고, 그와 동시에 사울은 하나님의 빛 앞에 엎드러져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행 9:1-9). 이처럼 하나님의 빛을 받으면 먼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캄캄한 밤에는 잘 볼 수 없으나, 밝은 낮에는 분명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세상의 어두운 죄악 가운데 있을 때에는 죄를 올바로 깨달을 수 없지만 의와 진리의 빛되신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의 광명한 빛이 우리를 비추어 우리 자신이 매우 중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빛을 받아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철저히 회개할 때 빛 가운데 거하여 생명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빛이 밝아 보기에 좋은 것처럼 사람과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은 오직 빛밖에 없습니다.

빛이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시므로 여러분 인생에 아름다운 열매와 빛의 승리를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두움에 빠지거나 어두움에 일에 동참하게 되면 결국 패배와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테러 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적극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은 22년간의 전쟁과 내전으로 나라 경제가 극도로 황폐화되어 극심한 생활고로 이미 세계 최대의 난민 발생국이라고 합니다. 탈레반이 전 국토의 90% 이상을 장악했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6년부터 4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어져 100만명이 극심한 굶주림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인의 평균 수명은 남성이 42살, 여성이 4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숨진 여성들이 수도 카불의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고, 말라비틀어진 남자들은 당나귀를 빌려쓰는 값에도 못 미치는 품삯을 받으며 짐마차를 끌고, 지뢰에 다친 어린이들이 폐허가 된 빈터에서 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유엔은 99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구실로 아프가니스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월드팩트북 2000'도 아프가니스탄을 "광범위한 빈곤과 망가진 사회기반시설, 널리 퍼져 있는 지뢰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로 적고 있습니다. 미 <뉴욕타임스>는 13일 "석기시대로 돌려버릴 것도 없다"며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라덴의 막대한 자금력의 지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탈레반도 성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더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우리한테는 단 한발의 미사일 값에 버금갈 만한 공장 하나도 없다"고 미국의 공격 자제를 호소한바 있습니다.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의 미국 인도를 거부하며 미국에 대해 결사항전을 선포하고 있지만, 빈대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 한 채 다 태우고자 하는 미국 앞에 빈대 한 마리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세계가 비난하고 나선 극악무도한 테러 분자 빈 라덴을 그와의 친분 의리를 내세워 옹호하고 보호하고자 결사항전에 나선 것은 뒷골목 깡패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멸망의 어두움에 기어 들어가는 꼴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빛과 어두움, 알곡과 가라지가 최후의 심판 때까지 함께 공존하는 곳입니다. 세상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주관자 사탄은 지구 최후의 대참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 앞에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진실 앞에 거짓이 조만간 모두 드러날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분별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구별될 것입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앞에 나와 빛 가운데 사는 생활로 여러분의 삶에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고 여러분의 인생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시며 생명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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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빛과 사랑

(7) 사랑하는 자들아 !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12) 자녀들아 !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 아이들아 !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7-17)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해 입사시험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필기시험 문제 중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 그러나 지금 당신 차에는 단 한 명만을 태울 좌석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하시고, 그 이유를 설명하십시오." 이것은 아마도 성격 테스트의 일종일 것입니다.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죽어 가는 할머니를 태워 그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의사를 태워 그의 은혜를 갚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가능한데 반해,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응시자 중 20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죠. 할머니를 태우고 병원으로 모시고 가도록 간절히 부탁드릴 겁니다.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가끔 우리는 자신의 것을 포기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제가 이번 미국 가족 방문 길에 어느 목사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9월 미국 테러 대참사 사건은 5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엄청난 비극적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 속에 드러나고 있는 수많은 얘기가운데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가 있습니다. 그 일화의 주인공은 뉴욕 퀸즈 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있는 한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세계 무역 센타> 건물 34층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납치 여객기 충돌로 이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붕괴 직전에 놓이게 되었고 빌딩 엘리베이터는 작동되지 않아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비상 계단을 질주하다시피 했습니다. 이 청년도 사무실에서 나와 비상 계단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건장했던 청년은 사력을 다해 발을 떼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한 발자국도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청년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점점 불안을 느낀 청년은 그 와중에 선 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살기 위해 계단을 질주하는 사람마다 이 청년을 귀찮다는 듯이 비껴갔을 뿐 어느 누구하나 그 청년을 돕질 않았습니다. 원망 섞인 듯한 눈으로 계단 위를 돌아봤을 때 사람들에 밀려 겨우 겨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이 청년은 자신보다 그 할머니를 살려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고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할머니를 살려낼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을 때 떨어지지 않았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법 체중이 나가는 미국 할머니를 등에 업고 계단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청년의 말대로 혼자 뛰는 사람보다 배나 더 빨리 무려 34층이나 되는 계단을 내리달아 순식간에 붕괴직전의 빌딩 밖으로 나왔습니다. 빌딩을 빠져 나와서도 쉴 사이 없이 할머니를 등에 업고 100여 미터를 달렸을 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무너지지 않으리라 장담했던 <세계 무역 센타> 빌딩이 그만 붕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110층 빌딩은 폭발음을 내며 검은 연기와 더불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빌딩을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던 5천여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최고층 건물 폭발과 붕괴로 말미암아 검은 연기와 건물 잔해로 캄캄해진 뉴욕의 중심 맨하턴 거리에서 이 청년은 하나님의 빛과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무려 30여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 내려와 100여 미터를 더 달릴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청년은 어둠 속에 한 줄기 구원의 빛을 경험했습니다. 그 청년은 그 빛을 이웃을 사랑하는데서 경험했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아니며,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죄인을 정죄하는데 있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하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그 여인을 어둠에서 생명의 빛으로 인도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그 여인을 잡아 끌고왔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처럼 그 여인을 정죄하고 용서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 죄많은 여인은 돌에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미움과 증오, 복수는 지혜가 아니라 어두움이며, 용서와 사랑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며 빛입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미움과 증오 등의 죄악입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회복하게 만드는 것은 용서와 사랑 등 하나님의 빛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어느 한쪽의 죄악입니다. 살다보면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예상치 못한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 남편이나 아내의 실수와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다면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될 수 있지만 그 죄를 칼같이 단도질하여 정죄하고 미움과 증오로 치닫는다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걷잡을 수없이 파괴되고 결국 가정은 파탄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어떠한 죄일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가정을 파괴로부터 지키고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정죄와 미움, 증오는 가정을 어둡게 하는 것이지만, 용서와 사랑은 그 가정을 항상 빛으로 인도하여 온 가족을 밝게 만듭니다. 남편(아내)이 자기 아내(남편)를 안다면서 그 아내(남편)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기 아내(남편)를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빛과 사랑가운데 거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시킨 것이 바로 인간의 죄악입니다. 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파괴된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며 인간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면서 이웃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자요 하나님의 빛과 사랑가운데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C.H. 다드 교수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며 그 사랑을 보답하는 일은 그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웃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웃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웃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십자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은 예수처럼 사는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우리가 처음 들은 것이 아니라 옛부터 주어진 계명인데 다시 새 계명을 쓴다"는 말씀(7,8절)은 예수 십자가를 통해 사랑에 대한 새로운 표준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는 범위가 인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죄인에게까지 넓혀진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인들이란 하나님께서 멸시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이번 미국 테러 대참사를 일으킨 이슬람 과격원리주의자들이 "미국인들과 유대인들을 하나라도 더 세상에서 없애는 것이 알라신의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죄인이 한 사람이라도 죽어 없어지면 하늘에는 기쁨이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예수 십자가 앞에 유대인과 아랍인은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은 유대인이나 아랍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 아랍 사람들보다 믿는 신이 같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더 친밀하게 느끼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이시며 죄인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큰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예수의 사랑은 빈부를 따라 차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은 인종과 문화, 종교를 따라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십자가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을 벗어날 자가 하나도 없을 만큼 예수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의 범위가 끝없이 넓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이러한 의미에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새 계명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시므로 새 계명의 표준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마5:45)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의인과 죄인, 유대인과 아랍인,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똑같이 미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빛입니다. 그러나 미움은 어둠입니다. 어두움 가운데서는 물체의 유무와 진위를 분별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자요, 그 신앙은 허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용서와 사랑은 인격적 관계를 성숙하게 만들지만 미움은 인간의 성장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파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미움과 쓴 뿌리, 쓰라린 기억과 원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 등을 그냥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인격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적 생활에 성장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용서와 사랑만이 인간관계를 밝게 하며 인격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장을 이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 앞에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게되면 자연히 어두움은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빛이 어두움보다 강하며 인류 역사에 어두움이 빛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진리가 거짓보다 강하며 인류 역사에 거짓이 진리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며 미움이 사랑을 이긴 적이 없습니다. 예수를 증오한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십자가 예수의 사랑이 그 미움을 이기고 그들을 하나님의 품에 안았습니다. 빛과 사랑이 되시는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38-48)

빛이 되시는 예수께서 어둠으로 일컬어지는 세상을 적대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알곡이 잘 자라도록 가라지를 뽑아버리자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옛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20)

미국 테러 대참사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러 책들 중 미국 메사추세츠(MIT)공대의 석좌교수로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며 정치 사회비평가인 노암 촘스키가 쓴 <숙명의 트라이 앵글Ⅰ>에 보면, 미국의 테러 대참사는 미국 외교정책이 빚은 당연한 결과라면서 다음과 같은 통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테러 대참사를 당한 『미국이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로 성숙되기 이전인 1967년 전부터 이스라엘을 지원한 경제적 원조는 GNP로 볼 때 어느 나라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최근의 원조는 이스라엘 시민 1인당 1000달러에 해당하는 정도의 액수에 이르고, 놀랍게도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1978년부터 1982년 회계연도 동안 이스라엘은 미국이 전세계에 제공한 군사원조의 48%와 경제 원조의 35%를 받았습니다. 1983년 회계연도의 경우 레이건 정부는 전체 원조예산 81억 달러 중에서 거의 25억달러를 이스라엘에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 가운데 5억 달러는 조건없는 원조금이고 12억 달러는 저금리 융자였습니다. 게다가 특별히 값싼 가격에 무기를 제공하는 등 유독 이스라엘에게만 "자비로운 기부금"을 제공했습니다. 미국의 이같은 편협과 편견 속에 이스라엘에 쏟아 부은 외교적,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지원이 미국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인 간의 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장애물로서 이런 대화가 없다면 어렵고 뒤얽힌 평화 프로세스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 미국의 유대인들, 자유주의자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정부의 행동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이곳의 파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미국이 국제사회에 정의와 공평을 부르짖으면서 어느 한 나라에 편중된 외교 경제 정책을 계속해서 펴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위협과 어쩌면 세계 전쟁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숙명의 트라이앵글Ⅰ)

빛과 사랑은 공평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에게만 태양을 비추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나라에게만 비를 내리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태양을 비추이시고,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우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자기에게 기분 좋은 사람만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참된 빛과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이 땅위에 진정한 평화를 위해 모든 인류를 똑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항상 충만한 성도의 생활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과의 모든 관계가 더욱 더 성숙되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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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라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 3:1-10)

김구 선생은 외모가 못생긴 것과, 자기에게 성공할 요소가 하나도 없는 것을 늘 탄식했는데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좋은 마음 갖기에 힘씀으로 나라에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용모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화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썩지 않는 장식 곧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으로 속마음을 단정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

그런데 요즈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외모를 보고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체마다 사원을 채용할 때 외모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화장은 물론 성형수술까지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겉모양은 돈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속마음은 물질로 가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기 때문입니다(시 19:7,8).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단장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것은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 사람, 즉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용모에 콤플렉스나 불만을 가지고 그 불만스런 부분을 뜯어고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 관심이 없으시고 그 사람의 중심, 곧 그 성품과 인격에 관심을 두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용모보다 자신의 성격이나 인격면에 불만을 가지고 그것을 고쳐볼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우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놓을지언정 뒤끝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그런 성격을 괜찮게 여기지만, 이는 상대방이 받을 마음의 상처는 생각지 아니하는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할 때에도 쉽사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성격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그 상한 감정이 노출되지 않았을 뿐 이미 인간관계에는 금이 가 있는 상태입니다. 불같은 성질이 좋은 때도 있지만 일을 그르칠 때도 없지 않습니다. 성질이 곰 같아서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편안하게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페르소나(가면, persona)를 쓰고 살아서도 안됩니다. 페르소나는 원래 연극배우가 썼던 가면을 의미합니다. 연극 배우는 페르소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성격과는 전혀 달리 가면에 나타난 인격과 성품대로 연극을 합니다.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이 페르소나를 가지고 인간의 성격을 설명했습니다. 본래 걸죽한 농담도 잘하고 까불기도 잘하던 사람이 고위 관리가 된 후에 말과 행동을 아주 점잖게 합니다. 그는 윗사람은 품위와 권위가 있어야 된다는 평범한 상식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참모습과는 다르게 점잖고 품위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자기의 본성과는 다른 새로운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페르소나입니다. 앞서 말한 사람의 경우 농담 잘하고 활달한 성격이 자신의 본성이며, 점잖고 품위있게 보이는 성격은 가면, 페르소나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자신의 성격대로 살지않고 이렇게 페르소나, 가면을 쓰고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살아야 사회에서 좋은 이미지를 받게 되고 남에게도 좋게 보이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자신이 목적한 이익과 업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페르소나에 잘 적응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에 쉽게 성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본성과 갈등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자주 긴장하게 되고 결국 열등감이나 자책감을 느껴 사회생활에 실패하여 도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칼 융은 자신의 환자의 상당수가 페르소나의 희생자들이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때때로 큰 업적을 쌓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갑자기 인생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고백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분석을 통해 그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자신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기분이나 관심에 대해 위선적이었으며, 사실은 아무 흥미도 없는 일에 흥미가 있는 체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페르소나에 의해 지배받는 생활과, 본성이 욕구들을 채우고자 하는 이중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기만이나 위선적인 성품과 인격의 가면을 쓰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연극이 끝나면 배우는 그 가면, 페르소나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처럼 인간은 언젠가는 페르소나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아주 거룩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같이 보였지만, 속에는 회칠한 무덤같이 온갖 탐욕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성품과 인격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제 자신에게 아주 감격적이고 흥분되는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실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그 때 우리가 하나님과 같은 성품과 인격을 이루어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영광가운데 다시 오실 때 예수 믿는 우리가 홀연히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데 이는 겉모양만이 아니라 불완전한 우리 속 사람, 곧 성품과 인격까지도 홀연히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인 것입니다. 불완전한 자신의 성품과 인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으며 그들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주었는가를 생각하면 그 날에 대한 소망이 더욱 간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최대 목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고, 또한 우리 마음이 깨끗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이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이 때때로 성전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는데 그때마다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리는 모습을 하고는 있었지만 입을 열어 소리내어 기도 드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 사람에게 왜 기도하는 것 같은데 기도는 하지 않고 무릎만 꿇고 앉아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소박한 사람은 아주 간단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분을 보고 있으며 그 분도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며 그것이 바로 가장 소박한 영혼으로도 경험할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십자가 예수의 참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 예수를 바라보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한 맺힌 사연 때문입니까? 어떤 기적이라도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까? 십자가 예수를 바라보면 볼수록 무엇보다 예수를 닮아 가는 흔적이 나타나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 재림을 소망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악인에 대한 심판입니까? 가난에 대한 보상입니까? 질병 없는 세상입니까? 물론 이 같은 것들이 예수 재림으로 모두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재림에 대한 소망의 목적은 하나님을 보는 것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봄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데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가장 영광스러운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고 있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인생의 최종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입니다. 죄란 무법, 또는 불법인데 이는 인생의 사는 법이 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루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처럼 살겠다는 것이 곧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예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역행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남을 사랑으로 섬기기보다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자신의 욕망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즉 성령의 소욕대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의 좇아 행하게 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진정한 예수의 사람, 즉 예수를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속 사람이 예수를 닮아갈 수 있게 역사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죄악을 정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어린양으로 희생당하시므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휘장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은 성도는 예수 안에 거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지만 이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탄은 여러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돌을 떡덩이 되게 하라든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든가, 사탄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 권세를 주겠다든가 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이는 우리도 죄를 정복하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씨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그 말씀의 힘과 능력이 죄를 짓지않도록 항상 인도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19:7-14)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생활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뜻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순결하여 여러분의 눈을 밝게 하며 자기 허물을 깨닫고 그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며 죄가 여러분을 주장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주일 성수, 십일조 생활, 전도 봉사 등입니까? 물론 이런 생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거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바로 예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처럼 사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입니다. 그 길만이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랑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소망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생활을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씨, 곧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이야말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죄를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처럼 하나님 뜻대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어 모두 온전히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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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7) 사랑하는 자들아 !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7-19)

오늘 성경본문 7절의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는 말씀은 사랑은 본래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이며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또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랑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같이 거룩한 사랑의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롬5: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마틴 루터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을 "축소된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말이 "만일 성경이 전부 갑자기 없어지고 요한복음 3장 16절만 남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복음의 본질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 문학가로 잘 알려진 최효섭 목사는 이 짧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는 최고(greatest)들만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애인이다.(greatest lover) <참조:최고의 사랑의 주체가 되신다는 의미.>

"세상을"...최고의 숫자이다.(greatest number) 시대와 인종을 초월한 모든 악인, 모든 선인을 포함하여 사랑하신다.

"이처럼 사랑하사"...사랑의 최고 수준이다.(greatest degree) 불가능한 상대를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랑하신 그 깊이와 그 넓이가 한량없는 수준이다. <참조: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대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시는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와 넓이을 말한다.>

"독생자를"...최고의 선물이다.(greatest gift)<참조:인류에게 내리신 최대 최고의 선물이다.>

"주셨으니"...최고의 행위이다.(greatest act) 하나님이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놓수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가장 위대한 행위이다.

"누구든지"...최고의 초청이다.(greatest invitation) 아무리 악하고 더러운 죄인도 이 하나님 사랑의 초청에 포함된다.

"저를 믿는 자마다"...최고의 단순함이다.(greatest simplicity) 믿는다는 것처럼 단순한 것이 없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믿는 것처럼 하면 된다. <참조:이같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을 얻는데는 단순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

"멸망하지 않고"...최고의 해방이다.(greatest deliverance) 죽어야 할 죄수가 석방되는 것 같다. <참조:하나님의 사랑은 사형수일지라도 용서하시고 해방하신다.>

"영생을 얻으리라"...최고의 소유이다.(greatest possession) 그 이상의 재산, 그 이상의 소유는 없다. <참조: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죄의 용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주신다.>이 위대한 성구, 요한복음 3장 16절에 표시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최효섭,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숱한 죄를 짓고 사는 인생들에게, 땅에서 난 썩어질 사랑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원한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를 두고 오늘 본문 성경 10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죄에 대한 용서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그냥 내버려두고서는 사랑이 그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것처럼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지은 죄가 어떻하든 영원히 용서함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누구의 방해를 받거나 그래서 중단되거나 하지 않는, 그 누구,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룩하며 영원한 사랑을 체험하며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1-39)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장군 동무와 타냐와의 대화 장면입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느냐고 질문합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타냐는 "혁명의 와중이고 거리는 불이 나고 복잡해서 그저 도망치는 중에....."라고 말을 얼버무립니다. 그때 장군이 "헤어진 정말 이유는 무엇이지?" 하고 다그치자 타냐는 입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실토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 버렸어요." 이 때 장군은 타냐에게 말합니다. "내가 사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도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았을거야."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짜 아버지는 결코 딸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진짜 하나님과 가짜 하나님의 차이도 여기에 있습니다. 참된 사랑과 거짓된 사랑이 차이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육신의 어미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사랑하는 자녀를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것처럼 자식이 아버지가 싫어 손을 놓아버릴지언정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식일지라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이같은 사랑을 예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그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겠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도 그 받은 바 사랑이 자신의 삶을 통해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다 기독교인 아닙니다.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더글라스 메도 목사의 말대로 "교회에 등록된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아니고, 피아노가 집에 있다고 해서 피아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집에 바이올린이 있다고 해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지 않습니다. 집에 피아노가 있든, 바이올린이 있든 있는 그 악기를 가지고 목적한 음악을 소리를 통해 나타낼 수 있어야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음악가로 불리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생활을 통해 나타나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 형제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안에 거하는 생활, 다시 말해 사랑을 나타내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구든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져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던 것 처럼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나타내시는 사랑을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람을 볼 수 없지만 바람이 하는 일을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전기를 볼 수는 없지만 그 전기가 어떤 힘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나타내시고 계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들어오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완전하고 참된 사랑을 예수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참된 성도의 모습,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한다해도 그것은 거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선 요한 1서 3장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6-18)

일본의 정신박약아 시설인 시요학원들은 후꾸이 목사가 창설하고 약 30명의 직원 전원이 크리스천으로 구성된 시설이라고 합니다. 어느 목사가 이 학원을 방문하여 한 여선생에게 어떤 일이 가장 힘드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힘들어 처음에는 사표를 낼까 하였으나 "저 아이들이 예수님이다."고 격려하시는 후꾸이 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1년을 견디었더니 이제는 정말 그 고된 일이 즐겁고 가볍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 다."(마 25:46)고 말씀하심으로서 이웃 사랑이 곧 진정한 예수 믿는 사람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전국 교도소에 문서선교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도소 수감자가 문서선교지 <숲속의 사과나무>를 보고 저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70가까운 노모가 장생포에 살고 계시는데 누가 돌볼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탄원서를 법무부 장관과 교도소장앞으로 제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편을 살펴보기 위해 여러분께서 매주 마다 내주시는 <사랑의 성미>와 여선교회원들의 성금을 모아 가지고 장생포 주소를 들고 찾아가보았습니다. 편지 내용대로 장생포 골짜기 달동네같은 지역에서 전기세, 수도세 등을 내지 않아서 단전, 단수되어 저녁이 되면 촛불을 켜놓고 지내는 형편이었습니다. 만나뵙고자 했던 할머니는 안계시고 방문은 열쇠로 잠궈져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이웃에 계시는가 해서 이웃을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아랫 집에 어느 젊은 아주머니 하나가, 우리가 할머니를 도우러 교회에서 온 줄을 어떻게 알고 투덜투덜거리며 우릴 보고 미쳤냐고 소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처음 생각에는 이 집 아들이 동네에서 아주 몹쓸 짓을 하다가 교도소에 가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기를 작은 아들이 아무리 동네에서 몹쓸짓을 하다가 교도소에 갔다해도 큰 아들은 가출한지 6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돌보던 아들마저 교도소에 갇혀 있으니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단전 단수마저 되어 생계가 그토록 힘든데 7순 노인에 대한 동네 인심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여선교회원들이 다시 찾아가 할머니를 만났는데 방에 들어가보니 듣던대로 생활이 형편없고 아들들을 위해 윗방에 천신(天神)숭배단을 만들어놓고 지성을 드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편견을 가지거나 하지 말고, 이웃 집에서 무슨 욕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말고 내 어머니처럼 여기고 월동에 필요한 것을 정성껏 마련해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애타게 어머니 걱정하며 지내는 0 0 0 형제에게 걱정하지 말고 빨리 출소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건강하게 지내도록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죄질이 나쁜 죄수라해서, 할머니가 우상숭배한다해서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우리 속에 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죄일지라도 용서하시고 인생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마땅히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미쳤다고 하는 사람에게도, 우상숭배하는 사람에게도,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에게도 이웃 형제에 대한 사랑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의 질을 구별하여 차별된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널리 증거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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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을 이긴 자가 누구냐?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1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두고 예수께서 세상에서 실패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당국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 부활하심으로 그들의 패배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복음을 전하다 로마까지가서 참수형을 당한 사도 바울을 두고 그 인생이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로마에 전한 복음이 오늘의 세계 정치, 경제, 사상을 주도하는 서양문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며,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믿는 믿음이 세상에 대한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을 뜻합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은, 특히 8절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이가 물과 피와 성령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로써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는 뜻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물로써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요한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여늬 사람들과 똑같이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례를 마치셨을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물로써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스스로 증거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으로 그를 증거하신 것입니다. 두번째 <피>로써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는 것은 십자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비웃으며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 27:43)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처럼 하늘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증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 대신에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습니다.(마 27:51-53) 이때 그 되는 일들을 목격한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목격자, 사람의 입을 통해 증거한 것입니다. 세 번째 <성령>으로써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가 약속하신대로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사역 중 하나는 믿는 자에게 진리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성령이 증거하는 진리란 바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지금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마음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그를 증거하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10절)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복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해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함께 복음을 전했던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갔다고 했습니다.(딤후4:10) 복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을 버리고 세상으로 갔다는 것은 예수 믿는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이 그 가운데 머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 곧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약4:4)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이유는 세상의 특성에 있습니다. 세상이란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된 곳입니다.(롬5:12) 그러므로 세상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의 죄를 없애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많은 독일병사들이 연합군측의 병원으로 이송되자 이제는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 유독 한 병사는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침울해하며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심한 부상을 당해 수혈을 해야 살 수 있었는데 의사가 수혈을 하려고 하자 "그 피가 영국인의 피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그렇소. 건강한 영국인의 피요 당신은 수혈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오"라고 말했습니다.그 독일병사는 더욱 굳은 표정으로 "나는 차라리 죽겠소"라고 하며 수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인이 적병에게 베푸는 사랑을 감사할 줄 모르고 죽어갔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육적인 생명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생명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하여 그의 십자가 피, 보혈을 모든 인류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이 십자가 피를 거절하는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모한 독일병사처럼 우리의 고집, 교만, 명예를 내세워 수혈을 거부한다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다니 피홀림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고 하였습니다.(참조 엡1:7) 거듭말씀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죄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바로 세상을 죄악을 따라 심판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죄가 지배하는 세상은 죄를 없애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미워한다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우리는 이제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속하지않고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사람이 천하를 얻는다해도 죄사함을 얻지 못하면 영원한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얻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이기지 못한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천하를 잃는다해도 죄의 가리움을 받고 사함을 받은 자는 생명에 이르기 때문에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을 이긴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야말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소식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직 죄사함을 얻어야만 합니다. 인간의 죄를 사해줄 권세는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뱀에 대해서는 전문가이며 동물원 원장이었던 제랄드 드 배리는 뱀을 다루는 데 상당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뱀을 매우 잘 다루므로 솔트레이크 시의 호글 동물원은 뱀우리 청소하는 일을 그에게 맡겼고 그는 자기의 명성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그 일을 매우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뱀의 종류라면 무엇이나 마음대로 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 남아프리카산 독사로 성이 나면 몸이 부풀어 오르는 독사 우리에 일을 보러 갔는데 살기가 등등한 그 우리 문을 열자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그 독사는 독을 품고 있었고 그가 쓰러지자 독이빨로 그의 팔을 물어 버렸습니다. 다 죽게된 그는 경비원에게 어서 속히 뱀에 물렸을 때 쓰는 혈청 주사약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비상이 걸린 동물원 직원들이 당황한 나머지 냉장고에 있는 그 약을 찾지 못해 그는 32시간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뱀과 같은 죄를 다루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내 믿음만 믿고 죄를 무시한다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수들이 왜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죄를 이기지 못해서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여러번 교도소 전도 집회에 가면서 제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예전보다 예수 믿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악을 이겨낼 힘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죄와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들이 예수를 믿었어도 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힌 것은 예수처럼 시험과 죄의 유혹이 왔을 때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치지 못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죄 사이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있어야 하며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독사의 독같은 죄를 이겨내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십자가에 피를 흘리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사망에서 생명에 이르게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세상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서간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은 바로 복음만이 세상을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으로 승리한 믿음의 선조들의 승리한 모습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3-40)

세상은 힘과 기술, 경제력과 권력 등으로 세상을 정복하려하고 있고 또한 정복한다해도 궁극적으로 죄악을 이기지 못하면 그들의 승리는 허무한 것이 되고 말것입니다. 이를 증거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나이 어린 다윗과 불레셋 장군 골리앗과의 전쟁 사건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 칼과 창과 단창 등의 최고의 무기와 최고의 전술을 단 한 개의 돌멩이로 물리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삼상17:41-49)

세상은 힘으로 정복되는 곳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그 정체를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인류를 죄악으로 미혹하는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은 인간의 힘으로 정복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길은 오직 예수 십자가의 피, 복음밖에는 없습니다. 세상 죄와 사망과의 싸움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세상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지만,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있습니다. 골리앗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만큼 온갖 죄악이 난무하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죄를 물리치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 예수의 피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의 몸속에는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종말을 예언하고 있는 요한 계시록에는 세상 끝에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세력을 상징하는 여러 험악한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들이 싸워 이기고자 하는 것은 어린양 한 마리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최후의 이들을 멸망시키고 승리한 것은 어린양이었습니다. 이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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