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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ss01b.gif   요한 3서 설교   cross01b.gif

                        --사랑을 증거하라--

 

               사랑을 증거하라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9)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요한3서1:12)

초대 교회 시대 초기 <순회 복음전도자>는 오로지 복음 전파를 위해 아무런 보수도 없이, 또한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열정적으로 봉사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순회 복음전도자>들을 잘 이해했습니다. 자신도 역시 <순회 복음전도자>의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달리 그들을 이해하면서 따뜻하게 영접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후원하며 또 필요한 물품들을 공급해줌으로해서 그들에게 복음전도에 힘을 얻게 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에서는 오직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기쁨으로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심지어는 비방을 서슴지 않고 이들을 대접하려는 교인들까지 자신에게 집중하여 섬기지 아니한다해서 교회에서 내어쫓으려는 악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디오드레베가 바로 그같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교인 중 독선적인 지도력으로 자기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조리 쓸어버리려는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사도 요한의 권위까지도 무시하고 희롱하며 자신의 위치를 교회에서 가장 높은 데 두어 교권과 이권을 장악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하는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소위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교회를 지배하려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그같은 지도력을 따르는 세력이 있을지모르나 사도 요한이 볼 때는 디오드레베는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지도력, 카리스마는 사랑과 섬기는 겸손함에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고 해서 베드로나 가롯 유다를 가차없이 내몰아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들의 발을 씻어주시므로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어느 한 개인의 성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랑과 섬김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목회자의 목회 성공 운운하는 것은 교회를 잘못 이해하거나 교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어느 한 개인의 지도력에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초대교회의 카리스마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 자체에 있었던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지도력이나 인격에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카리스마는 사랑과 섬김의 표상인 십자가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나는 신앙과 지도력이 참된 신앙이며 참된 지도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자신의 교권과 이권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순수한 복음 사역자와 자기들편이 되지 아니하는 성도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려는 디오드레베같은 무리들은 없지않습니다. 복음과 진리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카리스마를 두지 않고 자신의 지도력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휘둘러 자신을 추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히 그 교회에 붙어있지 못하게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세습제를 반대한다해서 그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교회를 독차지하고 있는 한국 대형교회들의 모습들은 경계해야할 대상들입니다. 교회가 진리안에서 하나되기 보다는 이권다툼으로 분열되고, 교회가 사랑과 의로 하나되기 보다는 뜻을 달리한다해서 반목과 질시를 일삼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참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진리는 하나이며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자들을 경계하면서 교회 내부 질서를 파괴하고 교회를 혼란시키는 무질서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의 사랑하는 친구 가이오에게 본 편지를 보냈습니다. 가이오는 신약성경에 셋이나 등장할만큼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에베소의 난동 때에 사도 바울과 생사를 함께 있었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행20:4)가 있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연보를 전해주러 간 더베 교회의 대표 가이오(롬16:23)가 있으며, 사도 바울이 세례를 준 사람으로 나중에 데살로니가 초대 주교가 된 가이오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 복음을 위해 자신의 가정과 마음을 개방하고 복음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이오 역시 복음과 순회 복음 전도자를 위해 마음과 힘을 다해 봉사하고 희생을 아끼지 아니했던 인물로 사도 요한은 그 영혼과 마찬가지로 육체도 마음도 건강하고 하는 일들이 잘 되어 더욱 더 복음 전도에 쓰임받게 되기를 기원했던 것입니다. 똑같은 기독교인이라도 디오드레베는 순수하고 희생적인 복음 전도자들을 거부하고 이들을 영접하려는 교회 교인들까지 몰아낸 악행을 서슴지않은 인물이고, 데메드리오와 가이오는 복음 전도에 충성을 다 할 뿐만 아니라 순회 복음 전도자들을 정성껏 영접하고 그들의 복음전도에 필요한 물질을 아낌없이 제공했던 그야말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활로 증거하며 살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요한 당시에 순회 복음 전도자들은 복음 전도 사역에 종사하면서 아무런 삯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이용하여 부를 취하는 자라는 인상을 주지않기 위해서 그들이 전도하는 이방인들에게서 어떠한 물질적 도움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쓸 것은 틈틈히 자신이 벌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천막을 수리하는 일에 종사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순회 복음 전도자들에게 교회와 성도들의 물질적 후원은 그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복음 전도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여러분에게 엊그제 선교비 지원을 요청해온 편지 하나를 소개해드겠습니다.

《이동희 목사님께,

목사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저는 0 0 0 전도사입니다. 전화도 못 드리고 갑자기 불쑥 글을 올리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저는 지난 해 3월 중부연회 부평 동지방 소속으로 0 0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자그마한 개척교회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덕분에 저희 가정과 부모님 가정 이렇게 두 가정이 시작한 교회가 이제는 모두 22가정 31명의 장년 재적 성도들로 늘어났습니다. 거의 다 초신자들이라 주일 성수하는 것조차 힘들기는 하지만 주일 낮 예배 참석 인원도 이제는 20명이 안정적으로 넘어섰습니다. 지난 주 추수감사주일에는 모두 27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려 창립예배 이후로 가장 많은 인원이 하나님 앞에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학교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해 주셔서 160여명의 어린이들이 재적 인원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사인원의 절대 부족과 교사의 경험 부족 등으로 어린이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출석인원은 8,90명 선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열심히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느닷없이 편지를 올리게 된 것은 선교비 도움을 받고자 해서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의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지난 해 1200만원 결산을 했는데 올해는 3천만원에 가까운 결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정도에는 자립 교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문제는 저희 가정의 생활비입니다. 그 동안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둽던 돈을 교회 개척에 절반 정도 사용하고, 지난 1년 8개월 동안의 생활비로 사용하다 보니까 가진 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는 마음에 교회에서는 지난해에는 사례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고, 올해도 상징적으로 25만원만 받았습니다.(사택 관리비등은 전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정도의 결산이면 조금 더 받아도 가능한데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가진 돈이 없어 교회의 사례비를 조금 더 책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갑자기 많이 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아 월 70만원 선에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세 자녀를 키우는 생활비로는 많이 부족할 것 같아서 생각하다 못해 몇 몇 교회에 도움을 청하기로 하고 목사님께도 무례하지만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내년도 선교예산을 책정해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다면...무례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숲 속의 사과나무 사역 등 직접, 간접적으로 목사님께 배웠던 많은 가르침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힘쓰겠습니다. 평안하시고 건강하심시요. 샬롬!!

2001년 11월 26일

0 0 교회 0 0 0 전도사 올림 》

선교비 지원을 요청한 0 0 0 전도사는 편지내용처럼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가면서, 자신의 가정을 희생해가면서 지역 복음화를 위해 봉사하는 순수한 복음 사역자입니다. 요즈음같이 개척교회 복음 전도가 어려운 때에 개척한지 얼마되지않아 22가정, 어린이 160명 전도의 결실은 그 전도사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믿습니다. 이와같이 한 달 평균 50만원도 되지않는 생활비로 개척교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우리 감리교회에만 45%정도나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개척교회의 복음 전도를 지원하고 있는 남선교회와 청장년선교회에서 이 개척교회의 더 풍성한 영혼구원의 열매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요한처럼 되고 바울처럼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복음을 들고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들의 복음 전도를 위해 정성껏 대접하며 선교여비를 마련해주는 복음 전도를 위한 물질 봉사자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0-42)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에 마케도니아 같은 교회와 성도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복음 전도의 판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마케도니아 교회 성도들은 극한 가난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복음 전도하는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마케도니아 교회의 선교비 지원이 사도 바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선교에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선교비 지원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고린도 교회는 마케도니아 교회에 비하면 돈 많은 교인도 많았고, 각종 은사와 능력을 받은 교인들도 많았고, 성경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말많고 은사와 능력의 우열을 따지며 분쟁을 일삼으며 복음전도와 선교비지원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교회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쓰임받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15:12-13)

월간지 <기독교 교육>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같은 무대 위에 있게 된 어느 노인과 젊은이에대한 이야기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특별한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전체 순서의 한 부분에 이 두 사람이 시편 23편을 기억해서 낭송하는 것입니다. 먼저 젊은이가 낭송을 시작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최고의 웅변기술과 연기술을 훈련받은 자로 그는 고대의 웅변가가 장엄하게 말하는 언어로 시편의 구절들을 낭송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낭송이 끝나자 청중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그 놀라운 목소리로 시편 23편을 듣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때 지팡이에 무거운 몸을 의지하고 있던 노인이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같은 무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연약하고 고르지도 않은 목소리로 시편 23편을 낭송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이 노인이 낭송을 끝내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 까지 청중들로부터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청중들은 기도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 침묵 가운데서 젊은이가 일어나더니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청중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시편을 낭독하자 여러분이 다시 나와서 한 번 더 낭송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 노인께서 낭송을 하고 나서 자리에 앉자 여러분은 아주 고요했습니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요?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편 23편을 아는데, 저 노인께서는 그 안의 목자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고 그것을 유창하고 뛰어난 웅변술로 설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인기를 얻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목적은 사람들을 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앞에 인도하여 참 안식과 평안을 얻으며 참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목자잃은 양떼같은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인류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곳입니다. 병들고 가난하며 갇힌 자들과 삶에 지치고 피곤한 인생들에게 참된 평안과 영원한 안식을 주시는 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야말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무리들이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예수께서 보시니 여러 부자는 와서 많이 넣는데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과부가 구차한 중에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으므로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한 렙돈은 헬라 동전의 명칭으로 우리 돈으로 약 8원에 해당합니다. 두 렙돈이니 16원에 불과 합니다. 이것이 그녀의 생활비 전부이니 얼마나 구차한 생활이었겠습니까? 물론 그 때와 지금과의 구매력의 차이는 있으나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 16원을 2천년 동안 연 8%로 미국의 제일국민은행 예루살렘 지점에 예치시켰을 때 발생한 이자를 계산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자 수입만 $4,800,000,000,000,000,000,000이나 된다고 합니다. 참으로 천문학적인 돈입니다.이 땅의 은행들이 계산해도 그렇게 많을진대 좀과 동록이 없는 하늘나라에 쌓아 놓은 그의 보화는 얼마나 큰 보화가 되었겠습니까? 돈이나 금은 보화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주머니에 있를 때는 검은 색이지만 남의 유익을 위해서 또는 선을 위해서 내어준 바 되는 순간 희고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검은 돈은 무거운 납과 같아서 세상을 어둡게 할뿐만 아니라 소유한 자를 땅속으로 가라앉게 하지만 흰색의 돈은 찬란히 빛나는 흰색의 돈이 되어 세상을 밝게 하고 그 사람을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무엇으로 증거하시겠습니까?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희생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손과 발, 시간을 주님께 드려 민첩하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음성과 보화, 물질을 주님께 드려 복음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드려 십자가 예수의 삶, 사랑을 증거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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