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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되라---

anii33.gif  보시고자 하는 제목을 누르시면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차  례 =

1.하나되라(1장)
2.그는 우리의 화평(2장)
3.그리스도의 비밀(3장)
4.하나됨을 위하여(4장)
5.하나님을 본 받으라(5장)
6.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장)


 1.하나 되라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15-23)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며, 삶의 가치가 영원한 사람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셨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다 한들 거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목적이 없겠습니까?(마 10:29-3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제자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예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9:1-3) 자신이 흑인으로 태어났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든, 신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든, 태어나 부모의 버림을 받아 고아로 자랐든, 엄청난 병고 끝에 의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든,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일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자신이 죄에서 깨끗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신체 건강한 자이든 신체 장애자이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거룩하고 흠없는 하나가 될 것임을 믿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거룩하고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장차 기업으로 들어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계 21:1-4) 그리스도 안에서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고 흠없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깨끗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지위가 높든 낮든 깨끗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인류가 깨끗함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지 더러움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길게 살든 짧게 살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게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도와주십니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므로 여러분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룩하고 흠없는 삶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인간의 마음의 눈을 밝게 하여 주십니다. 돈이 많아도 마음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돈이 별로 없어도 마음 눈이 밝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병들었어도 마음 눈이 밝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마음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많이 배웠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모두가 다 마음 눈이 밝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때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뜻을 깨닫고 그 뜻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소망을 알게 될 때 마음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미국이 낳은 위인 부커 워싱턴은 어려서 노예로 있을 때 낡은 오막살의 청소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주인은 더 잘 하라고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부커는 세 번 퇴짜를 맞은 후에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주인을 오막살이로 데려왔습니다. 주인은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렀습니다. "창문은 왜 닦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있으면서도 그 오막살이에 창문이 있는 것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부커는 나면서부터 유리 창문이 있는 집에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창문에 너무 먼지가 많이 앉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커는 부지런히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그 순간 찬란한 석양빛이 오막살이의 어둠침침한 방안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이 경험이 부커 워싱턴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창문을 닦읍시다. 창문을 닦읍시다. '미래'라고 하는 창문을 닦읍시다. 양심의 창문, 신앙의 창문 거기에 먼지가 앉으면 암담할 뿐입니다. 미래도 보이고 현재도 밝아지도록 빛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창문을 닦읍시다." 마음의 눈을 항상 밝게 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시므로 자신의 삶을 밝게 할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마음도 밝게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은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소망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세상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약속과 축복의 땅인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킨 목적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고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과 축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갈 가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소망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목적, 자신을 왕으로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또한 주위 이방 국가들과 싸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시 18:1-6). 이처럼 성도는 영적인 눈을 통해 부르심의 소망을 잃지 않을 때 어떤 고난이나 대적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현재 당하는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소망을 확실히 하여 어떠한 고난과 역경 중에도 그 소망을 성취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롬 8:18).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인류가 각자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소망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군 중 10명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자신들을 가나안 민족들에 비해 메뚜기같이 매우 미약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그들은 우리 밥이다'(민 14:9)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고백은 인간적인 만용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난관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성도는 일이 잘 풀려 나가면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고난이 오면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살펴보아 지금까지 그런 신앙 생활을 해왔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두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성경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믿으시고,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성도 여러분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충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하며,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 나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그리고 그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여 하나 되게 하는 곳입니다.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소위 <벤처 기업>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기업의 승부를 걸어 회사를 세우고, '정신없는 돈들'이 떼로 몰려드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여 하루 아침에 수 천억 원을 거머쥔 20대 초반 <벤처 사장>들이 이름하여 <뜨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벤처 거리로 알려진 서울 테헤란로 일대의 술집에서 하루 저녁 술값으로 현금으로만 1천만 원을 거침없이 던진다고 하니 어찌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튀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느 분야에서건 <뜰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과 부러움을 샀던 의사나 검사라도 튀지 않으면 뒷전에 밀리고 맙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서 교회도 <벤처 목회>를 해야한다는 기사를 보고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도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목회에 승부를 걸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다른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튀는 이벤트>로 목회에 승부수를 띄워야 '정신없이'(?)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벤처 목회>로 성공하여 교회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벤처 교회>를 팔아 먹을 일이 있습니까? 교인들이 무슨 주주(株主)들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2000년전 예수께서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시킨 교회입니까?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창으로 옆구리가 찔리고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십자가 죽으시는 행동이 튀는 <벤처>입니까? 예수는 이름도 빛도 없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로부터 싫어버린바 되었습니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것이 튀는 행동이었고 튀는 아이디어였습니까? 십자가가 무슨 벤처인줄 아십니까?
<벤처 기업>에 성공하면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멀리 미국 나스닥 증권 시장에까지 상장되어 가히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기업의 세계화, 경제의 세계화가 인류가 꿈꾸고 있는 경제의 분배 정의를 통한 함께 사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서로간에 괴리감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벤처목회>로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곳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능력자 무능력자, 건강한 자 병든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젊은 자와 늙은 자, 백인과 유색인종, 남자와 여자 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나라의 여러 선각자 중 <씨알의 소리>로 널리 알려진 함석헌 선생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시대가 새로워지는 것은 결국 기적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결국 종교 문제입니다. 유럽이 새로워진 것은 종교개혁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동양의 한국에서 종교는 어떠하였느냐 하면 불교에서도 유교에서도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유교나 불교 모두 지배 계층인 특권층과 함께 썩었으므로 도저히 나라 민족을 새롭게 할 힘이 없었습니다. 두 종교가 다 특권층에 붙음으로 씨알의 양심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의 형식으로 굳어진 유교 교리나 고루한 선비의 유교 사상을 가지고는 아무리 뒤집고 고쳐 보아도 씨알을 흔드는 새 것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 공기가 밖으로부터 들어와 온 집안 사람을 다 불러 일으켜 새 날의 활동을 시작시키듯이 어디서 새 종교가 와야 했습니다. 단군조선을 일으킨 단군 종교나 기자조선을 일으킨 유교나 삼국시대 문화를 풍미했던 불교 등 이모든 종교가 다 썩어 버렸습니다. 씨알을 건질 새 종교는 그럼 어디서 오겠습니까? 사실 이때에 새 종교가 올 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일찍이 위대한 바울은 기원 초에 있어서 서양문화의 샘 구멍인 아테네의 아레오바로에서 역사적 대 웅변을 한 일이 있습니다.
"각 나라 백성을 한 혈맥으로 지으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하는 지경을 한정 하셨으니 하나님을 찾을 때라..."
수많은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는데 그 뜻과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상입니다. 이때까지 우주와 인생의 뜻을 가르치는 깊고 넓은 철학이나 종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 인류와 모든 시대를 종합하는 통일적인 역사철학을 분명히 말하여 준 것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선언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있은 이래 오랫동안 각 민족은 제각기 살고, 생활하여 왔습니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내 민족은 내 민족, 네 민족은 네 민족이라 하여 아무 근본적인 연락이나 통일 없이 제각기 독립된 문화권 속에서 살아왔으며 역사는 꼭 같은 바퀴를 돌아 되풀이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동양과 서양,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이 모든 것들을 통합하여 새롭게 하나되는 능력이 기독교에 있음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기독교야말로 동양과 서양,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 그 모든 것들을 통합하여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에서 생긴 일입니다. 미국 군인 세 명이 형제와 같이 지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전사했습니다. 남은 두 친구가 일선에 있는 교회당을 찾아가 죽은 친구를 교회 묘지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신부는 "교회법에 의하여 기독교인을 천주교 묘지에 묻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울타리 바깥 편에 묻게 했습니다. 3년 뒤 친구가 전사한 날, 두 사람은 친구의 무덤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성당 묘지에 온 그들은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 울타리 바로 바깥에 있었던 친구의 무덤이 없어진 것입니다. 흥분한 미국 청년들에게 신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무덤은 저 안쪽에 있습니다. 울타리를 넓혔기 때문에 그 무덤도 울타리 속으로 들어왔는데 기독교인을 것을 알았지만 슬쩍 넘어갔습니다." 예수는 교회 울타리를 어디까지 넓히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모든 울타리를 철거하라는 것입니다. 성문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성문밖에 참된 신앙이 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 갇힌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울타리를 제거하고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으로 여러분 마음의 눈이 밝아져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아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사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을 확실히 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체험하여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믿음을 간직하여 약속의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시며 온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0년 3월 12일. 이동희 목사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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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는 우리의 화평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5-23)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룻 베네딕트는 그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문화를 '수치의 문화'로 표현하고 서구의 문화를 '죄의 문화'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서양 사람은 골방에 혼자 있어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자기의 죄를 생각하지만 유교의 영향을 받은 동양 사람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체면과 수치의 면에서 죄의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의 죄에 대한 관념은 나에 대한 남들의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소위 "남부끄러운 일만 안 하면 된다."는 죄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허물과 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말하는 <허물>(헬라어로 파라프토마)이란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잃거나 바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죄>(헬라어로 '하마르티아')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간 것, 화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이 삶의 표적을 잘못 두었거나 삶의 바른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죄란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삶이 되지 못한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자신은 죄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죄의 의미를 알면 자신이 죄와 무관하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남편 되시는 여러분은 어느 모로 보나 가장 훌륭하고 완벽한 남편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아내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습니까? 또 아내 되시는 여러분은 아내로서 부족한 점이 전혀 없다고 자신합니까? 남편을 진실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내조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부족함이 없는 아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부모 되시는 여러분은 자녀 양육과 교육에 완벽한 부모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녀들이 자랄수록 더욱 더 그들과 가까워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히려 그들과 대화조차도 곤란해지고 전혀 타인과 같이 될 정도로 단절된 상태가 되지는 않았습니까? 자녀 되시는 여러분은 나름대로 부모의 자랑스런 자녀들이 되고 있습니까?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해 본 일이 있습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없습니까? 직장에서 여러분은 나름대로 훌륭한 직장인이 되고 있습니까? 일할 때마다 가장 열심히 그리고 가장 양심적으로 일했으며 해 놓은 일마다 최선을 다해 그만한 결과를 얻고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모두가 다 죄인들입니다. 도둑이나 살인자, 사기꾼, 깡패 같은 사람들을 죄인들이라고 쉽게 말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데는 쉽게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이란 말을 듣게 되면 분개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상 살인하는 죄나 소매치기한 죄나, <마땅히 되어져야 할 남편이 되지 못한 죄>나 그 죄의 삯은 다 사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1절)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가로막혀 단절된 상태를 죽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은 죄를 십자가로 소멸하시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그 중간에 막힌 담을 십자가의 피로 허무시므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지 않고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사망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볼 때 살았으나 죽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아무 것도 할 것 없이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시키므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율법에 대한 범죄라기 보다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운전하다 운전 부주의로 어린아이를 치어 죽게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는 과실치사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상당 기간 동안 옥살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선고된 벌금과 형기를 다 마치고 나면 더 이상 법률은 그 사람에게 죄를 따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법적인 문제에서는 모든 사건이 끝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벌금을 물고 형기를 다 치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어머니에게 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또 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운전자가 범한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어머니 편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자유로운 용서의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한 것은 율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대해 범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만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막혔던 장벽이 무너지고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된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화평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마음에 큰 상처와 아픔이 있다 해도, 아니 십자가의 피를 흘리는 희생이 뒤따른다 해도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화목을 이루는 생활을 말합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고용주와 근로자와의 관계에 있어 허물과 죄로 가로막힌 것이 있습니까? 피차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화평을 이루고 하나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피차에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새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며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과 용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 가정과 교회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그리고 성숙되지 못한 가정과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과 우리 교회가 평안과 기쁨, 생명이 넘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되기 위하여 먼저 하나가 되시기 바랍니다. 과거 이방인과 유대인은 서로 원수처럼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넘지 못할 장벽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유대 총각이 이방인 처녀와 결혼하거나, 한 유대 처녀가 이방인 총각과 결혼하면 유대 총각이나 처녀의 장례식이 거행됩니다. 그만큼 유대인이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은 죽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세상에 오심으로 이같은 장벽은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장벽이 세워진 이유는 그들이 사는 세계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역사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행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있어 역사란 돌고 도는 물레방아같은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역사란 하나님께 가는 길이었지만, 이방인에게 있어 역사란 멸망으로 가는 길에 불과 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 그들을 다스리는 유일한 왕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소위 신정 정치였습니다. 기드온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백성들이 그에게 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기드온이 한 일을 보고 백성들은 기쁘게 그를 왕으로 모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
그러나 이방인들은 민주정치나 귀족정치, 왕이나 전제군주 혹은 원로원이나 의회에 의해 통치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었지만, 이방인들은 단지 한 국가 사회의 시민에 불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졌지만 이방인들은 단지 한 국가의 시민권에 불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이방인들은 약속이 없는 백성에 불과 했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그리스도밖에 멀리 있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중간에 막힌 담이 헐리고 멀리 있던 자들이 가까워져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이방인들도 언제나 하나님께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새로운 역사관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노예도 자유자도 없고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으며, 지식인도 야만인도 없으며, 계급과 인종 등의 장벽과 분리가 모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 화평을 이루게 된 것이 어떤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그의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도, 이방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다같이 사랑하십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예수를 다 같이 사랑하게 될 때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고 평화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떤 조약이나 외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을 하나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민족적, 국가적 문화와 문명 등의 특성을 말살하고 성취코자 하는 통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의 모든 민족이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입니다. 인류 전체를 한 국민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예수의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인류가 사랑과 용서를 통해 하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만나 하나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화평을 이루게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는 결코 성숙한 교회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로 가로막힌 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만 허물 수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십자가를 져야만 이루어집니다. 아니면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피 없이는 화평을 이룩할 수 없고 참된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더 하나 되어 화평을 이루고 성숙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며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생활을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이웃과의 화평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통과 손해를 볼 수도 있으며,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가 충만한 성도의 생활로 더욱 더 성숙된 여러분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이 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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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그리스도의 비밀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에베소서 3:1-21)

사도 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기록할 당시는 손목이 사슬로 묶인 채 밤낮으로 로마 병사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로마 정부의 죄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의 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를 만나는 체험이 있기까지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고 나서는 항상 복음에 대한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체포되어 로마에까지 오게 된 것은 로마 정부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비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깨닫게 된 <그리스도의 비밀>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이방인 가릴 것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비밀>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사명은 교회로 하여금 이 비밀을 알게 하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지극히 작은 성도보다 더 작은 자기에게 이 비밀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선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온 인류가 하나되게 하는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고 증거하는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았던 것입니다. 토스카니니(Toscanini)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요 음악 해설가였습니다. 어떤 때 베토벤의 교향곡 하나를 연주하기 위해 준비시키면서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사 여러분!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직 베토벤만이 전부입니다." 그의 의무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나 자기의 오케스트라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의 의무는 자기나 자기의 오케스트라는 자취를 감추고 베토벤만이 넘쳐흐르게 하여야 하는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봉사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자신이 드러나서는 잘못된 봉사입니다. 여러분의 열심있는 봉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증거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교회 안에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 있다해도 드러나고 증거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목사가 아무리 설교가 뛰어나고 능력이 많다해도 그리스도보다 목사가 드러난다고 하면 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교회 담임목사일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여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장차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언제 그런 결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어느 날 학교 채플(예배)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누가 설교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누가 설교했는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설교야말로 참다운 설교였습니다. 사람은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진정한 세계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주목하게 하거나 자신을 칭찬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목하고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사람입니다. 능력 많은 목사든, 충성하는 장로이든, 열심 있는 권사 집사이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교회야말로 <그리스도의 비밀>인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비극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위보다는 능력 많은 목사나 교인들의 영예와 권위가 그리스도의 영예와 권위보다 더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보다는 자기를 더 나타내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 인류를 그의 사랑 안으로 끌어들여 하나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예수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100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라면, 100명의 교인 모습 뒷 그림들을 모아 짜 맞추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하나이어야 합니다. 100개의 교회 뒷 그림들을 모아 짜 맞추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하나이어야 합니다. 온 인류의 뒷 그림들을 모아 짜 맞추어 앞에 나타나는 모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하나이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이요, 온 인류가 하나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곳입니다. 세계는 분열된 혼돈 속에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의 내적인 삶 속 등 도처에 분열과 분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모든 투쟁적이며 부조화되는 요소들을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는 인류를 하나로 모으게 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능력입니다. 교회는 인류를 하나로 모으게 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능력이 역사(役事)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되게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 충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 예수의 피로 둘을 하나로 만들어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을 이룩하게 하신 것처럼 교회는 예수의 피가 충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의 피가 넘쳐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해져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넓이"에 있어 전 세계 모든 인간에게 미칠만큼 그 사랑이 충만하며, 그 "길이"에 있어 모든 시대에 미칠만큼 그 사랑이 충만하며, "깊이"에 있어 모든 피조물이 측량할 수 없을만큼 그 사랑이 충만하며, 그 "높이"에 있어 원수가 해칠 수 미칠만큼 그 사랑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위밖에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시지 못할 장소는 한 곳도 없습니다.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시대에 흐르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 앞에 구원받지 못할 인간이 하나도 없습니다. 십자가 사랑은 그 누구도 <한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위임된 곳이며, 성령은 그 비밀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교회는 비록 겨자씨같이 작고 하찮아 보여도 세계를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시기 위해 유엔(UN)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는 세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참된 평화와 통일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하는 사명이 주어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교회는 땅 끝까지 열심히 복음의 주체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둘을 하나되게 하는 십자가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해야만 합니다.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힘이나 권력의 지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미움과 증오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기 위한 희생입니다. 십자가는 탐욕과 교만으로 얼룩진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로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모든 인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세계를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그리고 나라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하는 일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시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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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하나됨을 위하여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에베소서 4:1-16)

<하나되라>는 에베소서 1장 설교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는 온 인류가 하나되는 것임을, <그는 우리의 화평>이라는 2장 설교를 통해서는 인류를 하나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화목 제물이 되신 것을, 그리고 3장 설교 <그리스도의 비밀>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이 위임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4장 설교 <하나됨을 위하여>는 교회에 위임된 사명, 곧 온 인류가 하나됨을 위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인종과 인종, 남녀 성의 벽을 허물고,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벽을 허물고, 그 가운데 자리잡은 모든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그리스도 십자가 피로 해결하여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이야말로 온 인류가 안고 있는 갈등과 부조리, 부조화를 해결하고 하나되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세계 통일이 십자가의 거룩한 희생과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거룩한 통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땅 끝까지 증거하여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는 통일의 도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와 성도는 "거룩한 통일"을 위한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이 첫째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보다 못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 아닙니다. 예수께서 인간보다 못해서 사람의 모양으로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시지만 사람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낮추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당부하십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한 가정에서 누구나 섬김을 받고자 하면 그 가정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섬기려한다면 그 가정은 하나가 되어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아가 나라 백성이 하나되기 위해 먼저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프로 야구 기록 중 가장 에러(범실)를 많이 범한 기록은 1900년 시즌에서 120게임에 출전하여 무려 91번이나 에러를 낸 뉴욕 자이언츠 팀의 찰스 히크맨 선수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쁜 버릇은 다리를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땅볼을 번번히 놓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뻣뻣하게 서 있기 때문에 '피아노 다리 히크맨'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팀에나 에러가 많은 팀은 다른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빈번한 에러는 자칫 팀의 화목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에러를 적게 내려면, 그리고 삶의 승리를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조금 더 허리와 다리를 굽혀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되기 위해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라함은 성격이 온순해서 불편부당한 일에 대해 아무 소리 못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의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의분의 불꽃을 태우지마는 자기 자신이 당하는 불편부당한 대우나 모욕에 대해서는 노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것은 인간 스스로의 자제력을 능가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과 생각, 의지가 하나님의 통제,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삶은 자기 안에 자아는 죽고 오직 그 안에 예수만 살아서 예수의 마음과 생각으로 살며 그의 모든 삶이 하나님과 성령의 지배아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과 교회, 나라 백성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고 하나됨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만이 그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자신에 대해 불편부당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 결코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가슴마다 예수가 증거되고 체험될 때 온 인류는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나라 민족이 하나됨을 위하여 온유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됨을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만 합니다. 모욕적이고 부당하며 불의한 경우를 당하거나 불편부당한 처우로 손해를 입었다해도 괴로워하며 원망 불평하며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에 낙심하거나 단념하며 참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다리며 정중하게 그리고 불안 초조하지 않으며 평안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이러한 참음이 있을 때만 하나됨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멸시 천대하며 모욕하며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참을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록키>라는 유명한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록키(실베스터 스텔론)가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의 상대자로 선택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록키가 이길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록키 자신도 자신의 역부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챔피언 도전자로 링에 올라간 이상 마지막 15회전까지 끌고 간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끝까지 버티자(Go the distance)"를 거듭 다짐하며 한 회 한 회 싸워 나갑니다. 결국 끝까지 링 위에 머물러 싸운 록키가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기는 법입니다. 하나됨을 위해서는 그렇게 참을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입히고 도저히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보복은커녕 오히려 그가 자기보다 더 잘 되기를 위해 기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고 조롱하는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나보다는 우리의 모든 이웃이 더 잘 되기를 위하는 예수의 마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이 더 잘 되어도,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에 평안함을 누리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 되어야 할 이유와 근거는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한 소망과 한 믿음과 한 세례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됨을 위해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인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함과 평안으로 신앙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이신 성령께서 역사하는 교회와 성도는 당연히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등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헬라어로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는 "숨"(호흡)을 뜻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몸에 생명을 주는 숨은 바로 예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숨을 쉬지 않는 몸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숨과 같은 성령이 활동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란 사실상 성령이 떠난 것이어서 죽은 교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받은 바 은사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을지라도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 온 인류를 하나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욱 더 강하게 세워 나가기는커녕 문제를 야기시켜 분열과 분파가 생기게 한다면 그 교회와 성도는 결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하므로 하나됨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교회 직분을 받은 사람은 어떠한 은사를 받았다해도 그가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과 그 자신은 지체에 불과함을 명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믿고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신앙생활하므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룩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온 몸을 각 마디가 완전히 합쳐지고 연결을 가질 수 있을 때, 또 모든 관절이 제대로 연결하는 일을 할 때, 온 몸의 각 부분이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때 오직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되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마음에 어두움을 버려야 합니다. 어두운 마음과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어두우면 허망해지며 무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마음이 굳어져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지어도 체면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됩니다. 또한 어두운 마음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어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예수를 마음에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는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세상에 참 빛이십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그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질 때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마음은 결코 하나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가 없는 세계는 죄악으로 채워질 뿐이며, 그리고 분열과 분쟁을 일삼아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만일 지체가 되는 손과 발이 만져서 뜨거운 것인데도 머리에는 시원하고 괜찮은 것이라고 전해준다면 그 몸의 생명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몸의 각 부분이 진실한 정보를 머리에 전하고 다른 부분에도 전해주어야 우리 몸은 정상적으로 그리고 건강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실하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민족이 하나되기 위해 매사에 진실만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도 일종의 거짓에 불과합니다. 참된 것을 말하는 진실의 생활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현대의 로미오 군이 애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수잔, 그대의 눈동자를 보기 위해서는 태평양이라도 헤염쳐 건너가고, 그대의 손을 한번 잡아보기 위해서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겠소. 다음 토요일에 찾아갈 것이오. 물론 비가 오지 않으면 말이요." 사실 이 사랑의 편지는 진실과 거리가 먼 편지입니다. 진실되지 못한 사랑은 결코 하나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거짓되고 부정부패한 것에 대해 분노할 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과 민족은 그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거나 더욱 더 가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개인적 또는 집단적 이기주의에 기인하는 분노는 오히려 하나됨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른다면 결국 힘없는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말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분열되어 갈등만 증폭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리고 죄만을 증오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아는 사람 백 명을 달라. 그러면 나는 온 세계를 진동시키리라."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분노, 통제되지 못하는 분노는 죄만 가중할 뿐이며 하나가 되어 성숙된 사회가 되는데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끼칠뿐 입니다.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희생적인 봉사를 위해 훈련받은 분노, 전혀 순수하며 사심없는 분노는 세계를 하나되게 하며 윤택하게 하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높은 나무 위에 있는 코코넛을 딸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무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돌멩이질하여 원숭이의 화를 돋구는 것입니다. 성깔이 난 원숭이들은 코코넛을 따서 사람들에게 던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쉽게 목적 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공연한 성미를 부리게 되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 남 좋은 일만 만들어 줄뿐입니다. 참으로 분노에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됨을 위하여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더러운 일들이 많다 해서 거칠고 더러운 말을 마구 내밷는 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도 더러워지며 덕이 되지 못하여 하나되는 것을 파괴하게 됩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 기쁨과 은혜를 끼치는 말, 근심과 걱정을 덜어 주는 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은 바 상처를 싸매 주는 말로 교회와 성도의 덕을 세워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언행심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해하기를 거부하는 오래 된 원한을 가리켜 "악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욕과 손해와 멸시 천대를 마음에 품고 해가 지도록 분노하면서 풀지않으면 악독이 됩니다. 성도는 악독을 품지 않도록 자신이 받은 모든 모욕과 손해를 속히 잊어버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큰 소리 내는 사람이 이기는 줄로 착각하지 말고 목소리를 낮출 줄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자함으로 이웃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자함이란 이웃 사람의 일을 자기 일만큼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생각해주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갈등과 문제를 자기 자신의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인자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자한 사람은 항상 눈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돌리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가 서로 인자하게 행할 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의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모두가 하나되기 위해 예수처럼 우리의 이웃에 대해 인자함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류 문학가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자기가 일곱 살 때 해주신 어머니의 말씀이 자기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아마도 사순절 중 어느 주일이었을 것입니다. 플로렌스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예수 수난의 기사를 낭독했습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끌려 다니다가 드디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읽을 때 어린 플로렌스는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이상 눈으로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듯 이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플로렌스의 어머니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왜 그러니?" 하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이 때 플로렌스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철모르는 소녀의 흐느낌이 고요한 성전에 울려 퍼질 때 처음에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던 예배 참석자들이 모두 고개를 낮추고 여기저기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녀의 순진한 울음이 어른들의 습관적이며 불감증이 된 마음을 각성하게 하는 울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플로렌스 바클레이는 성인이 되고 사회의 저명인사가 된 뒤에도 어머니가 들려 주었던 자기의 어린 시절의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메마른 인간, 메마른 신앙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과 용서함을 베푸신 예수의 마음과 삶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사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되게 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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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을 본 받으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 때가 악하니라 !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保養)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15-33)

인간이 세워야 할 삶의 최고 수준과 표준을 말한다면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가장 현명한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되는 훈련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을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가장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이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말합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는 참된 사랑의 수준과 표준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희롱하고 희롱 당하는 성, 음란한 성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여성을 한 마디로 성적 노리개로 보았던 것입니다. 지조, 절개, 순결 등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음행을 일삼았던 풍조는 영지(Gnostic, 靈知)주의라는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지주의란 물질은 언제나 결함이 있고 악한 것이며,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오직 영적인 것만이 가치있고 물질은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에 따르면 육체적이며 성적인 죄는 육체 곧 물질에 속한 것이며 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가 범한 죄는 중요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육체가 아니고 오직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어떠한 죄를 범해도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몸과 마음 영혼 모두를 다 창조하셨으며, 따라서 그 모두가 다 중요하고 성결해야 하며 구원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몸(육체)을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거하시는 전(殿)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몸과 영혼, 전인(全人)적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육체와 영혼 전체의 구원을 말합니다. 고전학자 버럴(A.W.Verrall)은 고대 문명이 사멸한 중요한 병폐의 하나는 여성을 낮추어 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 조차도 여성을 매우 낮추어 보았었습니다. 유대의 법에서 여자는 인간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하여 여자는 아무런 법적인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여자는 전적으로 남편의 소유물이었으며 따라서 남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헬라에는 법적인 이혼 수속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가정 생활이나 가족 생활이 거의 소멸된 상태였습니다. 로마 역시 가정생활은 파괴되어 있었고, 부인들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해 이혼한다고 기록할만큼 결혼의 순결은 완전 파멸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순결이란 증대하는 사치 문명 속에서 하나의 조난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초기 당시에도 이같은 시대적 음란한 풍조가 밀려와 결혼제도가 심각한 위기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결혼제도가 위협받는 시대에 어떻게 참되고 향기나는 사랑을 기대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같은 시대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본 받으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참된 사랑의 표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인공 자궁>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병원 실험실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습니다. 엄마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고, 가끔씩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러 갑니다. 10개월이 되면 돈을 지불하고 아기를 찾아오면 됩니다. 윤리적 문제가 있지만 인공자궁 기술은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자궁내막에서 세포를 떼어내 몸 밖에다 자궁을 만들고, 여성호르몬을 주입하여 착상을 유도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동물의 몸안에 자궁을 만들 수도 있고, 병원 실험실에 수많은 인공자궁을 만들어 놓고 수정란을 주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엄마가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과 생식이 완전히 별개가 돼 사실상 자기 자식이라는 의미도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결혼제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일류라고 하는 미국 하버드 대학 대학생들이 자신의 정자를 매매하고 있고, 여성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들 정자 중에 자신의 취향에 따른 유전인자를 포함하고 있는 정자를 구입하여 실험실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성들만이 아니라 얼굴이 미인이며 건강한 여성들은 자신의 난자를 인터넷에 올려 난자 하나에 작게는 1만 달러에서 1만5천 달러에 팔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여성들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역시 자기 취향에 맞는 난자를 구입하여 인공 자궁을 만들어 놓고 남자들도 얼마든지 우수하고 예쁜 종자를 아들 딸 가려가며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머리는 지능과 사업에 뛰어난 벤처 기업가, 눈, 코, 입, 다리 등은 각기 부위에 따라 잘 생긴 배우나 탤런트 김현정 등으로 조합해서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인공 자궁이 성공하게 되면, 사랑과 생식이 완전히 별개가 되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라질 형편이 되고 있습니다. 남녀관계는 단지 육체적 쾌락이나 성적 만족을 위해 존재할 정도에 그치고 그나마 사이버 섹스가 등장해서 남녀관계에 성적 만족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되어 사실상 정상적인 남녀관계, 가정생활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21세기에는 남녀의 짝을 찾아 맺어 주는 소위 <사랑 산업>이 번창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짝짓기는 종족의 번식보다는 육체의 쾌락과 정신적 의존이 짝짓기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짝짓기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좋은 짝을 만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눈을 빌릴 필요가 생겼는데 이것이 곧 <사랑 산업>의 번성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중매업체협회(ABIA)가 결성될 정도고, 인터넷 보급 이후 매년 5000만 파운드(8000만 달러, 약 1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금 실제 인터넷을 통해 사랑의 대상을 자신이 직접 찾거나 이 일을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랑은 산업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찾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향기로운 사랑, 참된 사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가 먼저 찾아야 할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거룩하며, 거룩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사람을 끌어내리는 거짓된 사랑, 인격을 순화시키고 높여주는 대신에 거칠고 천박하게 만드는 사랑, 거짓을 말하게 하는 사랑, 도덕적인 기질을 약화시키는 사랑, 인간을 더 악한 인간으로 만드는 사랑 등은 사랑이 아닙니다. 향기나며 참된 사랑은 십자가 사랑으로 그 인격을 높이어 삶의 수준을 높여 주며 몸과 마음과 영혼의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입니다. 호세아가 보여준 사랑은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더러운 창녀 고멜을 깨끗한 아내로 변화시키는 거룩하게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 사랑은 돌봐주는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 하여야 합니다. 왜냐 하면 참 사랑은 항상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참 사랑은 봉사를 시키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위로나 받고자 하는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편의를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어내는 사랑이 아니라 쓴잔을 대신 마시는 사랑이 십자가의 참 사랑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편이 아내를 밥이나 짓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집안 청소하는 사람,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올바른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일종의 영원한 종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돌봐주어야 할 책임을 진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와같이 희생적인 사랑, 깨끗하게 하는 사랑, 돌봐주는 사랑을 아내에게 베풀게 될 때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여기며 존경하고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죽은 것을 살려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원수와 화목을 이루어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9)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얼마든지 세상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병중에서 핍박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항상 빛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사랑을 삶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을 빛의 자녀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어두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은 빛된 생활입니다. 빛된 생활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란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과 그렇지 못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의 삶은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 모든 거짓을 밝히 드러내는 사랑, 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병든 것을 치유하는 사랑,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사랑입니다. 어둠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모두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맺어지는 사랑이야말로 참되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빛입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살고 있는 집의 전등을 평소보다 10배 정도 밝게 해서 하루 다섯 시간씩 그 불빛 아래에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낮을 연장시키는 방법입니다. 겨울에 봄을 느끼게 하는 치료법입니다. 밝은 불빛이 곧 치료제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밝아집니다. 침울하고 음산한 사람은 사랑이 결여되는 있는 것입니다. 분이 날 때 어두워지고 질투할 때 더 어두워지고 미워할 때 아주 어두워집니다. 밤을 사는 사람과 낮을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차이는 결국 사랑에 있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며 서로 사랑을 약속하며 가정들을 이루지만 참된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피차에 어둠 가운데 사는 가정들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찾지 못하여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상처받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찾지 못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이 상처받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찢기고 상처받은 사랑을 치료해주며 하나님 사랑을 보여주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매맞는 여자들의 <작지만 큰 그늘>이 되어주는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 이명숙씨입니다. 그를 찾는 한국 여성들을 보면 심각한 가정생활의 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 열명중 아홉이 여자이며 대부분 못배우고 가진 것도 없는 서민들입니다. 남편에게 매맞다 도망쳐 나온 아내, 위자료 한푼 못받고 이혼당한 무일푼의 여자,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긴 엄마, 신혼초기의 기묘한 꿈으로 의처증에 걸린 남편이 손가락으로 두 눈을 찔러 실명 위기에 처한 여자, 혼수를 적게 해왔다는 이유로 불꽃 튀는 가스렌지에 젊은 아내의 얼굴을 들이미는 남편, 사촌오빠에게 강간당한 뒤 거리로 쫓겨난 여중생, 5살짜리 어린아이를 성폭행하는 유치원 원장 등등이었습니다. 이 변호사가 맡은 사건 중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35살의 어떤 여인은 줄기차게 바람을 피우는 한의사 남편을 간통으로 고소했다가 8개월된 딸아이가 마음에 걸려 다시 취소했습니다. 그 사이에 이혼을 당하고 아이마저 시댁에 강제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없어 아이를 되찾을 길 없었던 여자는 다시 학력고사를 치러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유치원과 피아노학원에서 일해 작은 승용차까지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겠다며 이 변호사를 찾아왔습니다. 지역유지인 남자의 집안에 맞서 대법원까지 올라간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4년간 떨어져 산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해 불리했지만 아이를 찾기 위한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동한 법정이 모성에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25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을 마친 이명숙씨는 검사 대신 변호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법의 냉혹함보다 따뜻함을 실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 소송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무료변론에 앞장서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의 작지만 큰 그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 십자가 사랑으로 먼저는 가정을 밝게 하고 나아가 세상을 밝게 하여 더러워진 사랑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며, 찢기고 상처받은 사랑들을 돌보고 치료하며, 끊어진 사랑을 화목하게 만들어 주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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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 자녀들아 !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5) 종들아 !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6:1-20)

"버지니아의 놀라운 가정 이야기"가 감리교 잡지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가정은 존 영이라는 농부의 가정입니다. 그는 결혼하고 은행으로부터 장기 대출을 받아 값싼 농토를 사서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갚아 나갔습니다. 존 부부는 열 네 명의 자녀를 거의 연년생으로 낳았습니다. 배우지 못한 존은 식사 기도 때마다 "하나님, 먹을 입이 많으니 농사를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떤 해는 열 네 명의 아이가 한꺼번에 홍역에 걸려 누웠을 때도 있었고, 어떤 해에는 농작물을 전혀 거두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집에 불이나 전소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곤경에 처할 때마다 온 동네가 그를 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바쁘고 고달픈 생활 중에도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에 철저했습니다. 그는 "이 집의 뿌리는 하나님이시다."는 가훈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아이들을 교육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가정의 모토로 삼은 것입니다. 그 결과 열 네 명의 자녀는 한 명도 죽지 않고 전체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한 명은 코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고, 간호사 한 명, 도서관 전문직 한 명, 다섯 명의 교사와 네 명의 건축 업자, 한 명의 음악가가 나왔고 한 명은 대를 이어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뿌리를 하나님께 둔 가정이 승리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린 가정과 가정 교육이 무너지지 않는 건강하고 튼튼한 가정과 가정교육이 되는 것과 그의 좋은 열매를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라"는 제목처럼 하나님 말씀에 뿌리 내리는 부모와 기업인, 근로자 여러분이 되시므로 좋은 결실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는 무엇보다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가정을 성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가정을 이루는 남자와 여자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남자는 "이쉬"(   )이고, 여자는 "이솨"(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인 여호와 (    )라는 이름이 남자인 "이쉬"에서 히브리어 알파벧의 <요드>( ) 라는 한 자, 그리고 여자인 "이솨"에서 <헤>( ) 라는 한 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미면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그 부부가 꾸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가정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시대 성전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至聖所)에 놓인 것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는 법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과 사회, 정치, 경제생활의 뿌리는 바로 이 법궤에 있습니다. 유대인의 학교교육을 보면, 그 교육의 중심에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학교는 등교하면 1시간 동안 기도책을 보며 기도한 후 오전 내내 종교교육만을 시킵니다. 우리나라처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교육과 학원교육을 받게 하지 않아도 수 많은 수재들을 배출하고 어느 민족보다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척박한 광야 땅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젖소 한 마리당 최고의 산유량(産乳量)을 자랑하고 있고, 농산물을 수출하므로 광야에서 젖과 꿀이 흐르게 하는 민족입니다. 그들의 부모 공경 역시 일반적인 도덕과 윤리적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그 공경(효)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를 대할 때에도 윤리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듯, 다시 말해 신앙적인 면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효와 자녀 교육에 있어서 그 중심이 부모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신본주의라는 것이며, 부모나 자녀가 효와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인본주의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업주와 근로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주나 근로자가 그 기업의 중심이 아니라 그 기업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신본주의 정신으로 기업주는 기업을 경영하고 근로자는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근로자(노동자)는 그가 처해 있는 직장 환경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몸담고 일하고 있는 직장을 자신이 노력해서 구한 일터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삶의 터전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직장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다 해서 도피하는 자세로 일하지 말고 그 환경을 극복하고 정복하는 자세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할 때 단순히 기업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일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일한다는 가치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맡은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훌륭한 것이 되도록 일해야만 합니다. 이는 근로, 직장이라는 노사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 보지말고 종교적인 문제로 풀어가라는 것입니다. 월급을 올려준다거나 노동조건을 개선해준다거나 복지시설을 갖추어준다든가 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근로자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거나 징계제도를 엄격히 하거나 때로는 강력한 협박을 한다고해서 좋은 노동자를 만드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러한 방법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한계가 있습니다. 좋은 기업인과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비결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님을 위해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서 일 할 때만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주는 그 기업에 대한 주인이지만 여전히 그 자신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날이 오면> 기업주나 노동자 모두 다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계급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다 인간일 따름입니다. 주인되는 기업주나, 종이 되는 근로자 모두가 다 주어진 기업과 직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노동과 생산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하나, 힘없는 근로자 하나를 결코 소흘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대할 때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 하듯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이었습니다. 오하이오 주의 대농인 테일러(Worthy Taylor) 씨 농장에 한 거지 소년이 찾아 들었습니다. 17세의 짐이었습니다. 일손이 얼마든지 필요한 집이기에 그를 하인으로 고용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 뒤 주인인 테일러씨는 짐이 자기의 외동딸과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장주 테일러씨는 몹시 노하여 짐을 때려서 빈손으로 내쫓았습니다. 그후 35년이 지난 어느 날 테일러는 낡은 창고를 헐다가 짐의 보따리를 발견하고 한 권의 책 속에 기록된 서명을 보고 짐의 본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임스 에이 가필드(James A. Garfield), 현직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짐은 히람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육군 소장을 거쳐 하원의원에 여덟 번 피선된 후 백악관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아이들과 소년 소녀를 보는 눈은 더 깊은 곳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엄청난 가능성을 볼 수 있을 때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눅 9:48)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심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힘없는 근로자 하나일지라도, 무력한 장애자 하나일지라도 예수를 영접하듯해야 할 것입니다. 농장주 테일러씨가 "하나님 말씀을 가졌더라면" 그렇게 엄청난 후회는 맛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기업인과 근로자, 정치인과 백성 그 모두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다 할 때 가장 아름답고 풍성하며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도브슨 박사가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한 학교에서 운동장 둘레의 울타리를 철거했습니다. 울타리가 아이들에게 정신적으로 구속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울타리 철거 후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울타리가 있을 때는 아이들이 운동장 전체에 흩어져서 놀았는데 울타리를 철거한 뒤에는 운동장 가운데에 모여 노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아이들에게 있어서 울타리는 구속감이 아니라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울타리가 없어지자 아이들은 오히려 운동장의 활동 범위를 좁혀 자기들끼리 모여 서로 의지한 것입니다. 도브슨 박사는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명제를 실험을 통하여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며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것은 좋은 교육이나 사랑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규율, 부모의 훈계와 징계, 사회 공중도덕 등의 울타리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채찍'이란 말은 교육학적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 그 인간의 삶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정과 사회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인간의 충분한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가정에서 효와 교육의 중심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가정과 사회 등 모든 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완벽하게 나타나 보여 준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단순히 사랑만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함께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자녀 사랑은 자식을 망치게 합니다. 공의가 없는 부모 사랑은 결국 부모를 슬프게 만들것입니다. 또한 사랑이 없는 공의는 자녀를 메마르게 할 것이며, 사랑이 없는 공의는 부모를 버리게 할 것입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기업을 부패하게 하여 그 기업을 망하게 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공의 역시 그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함께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므로 참된 가정 교육과 부모공경의 아름다운 열매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므로 여러분의 일터가 아름답고 풍성한 결실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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