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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ib05.gif 담임목사주일설교   anib05.gif 기도문  anib05.gif 담임목사저서
 

 

    제1호(1995.5)  

이 작은 책자는 읽는 이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이르게 하고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생활로 지금까지 보다 더 성숙되고 성장하는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거나 그에 응답해 보지못한 사람들을 위해 보다 더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지속적인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와 능력의 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 평강 교회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 가정과 사회 생활에 아픔을 가진 사람들, 물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등등 이 모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상담하는 목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신앙이 날로 새로와지고 영적 발전이 되는 일에 모든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평강교회 교우 일동>

1995.5(창간호)

차 례 -----------------------

* 말씀의 샘<생명의 양식-3>

* 신앙 간증<나의 신앙고백-14>

* 시와 휴식<아침의 기도-18>

* 오월의 단상<어머니의 초상-20>

* 건강 상식<속에서 솟아나는 샘물-22>

* 생각이 있는 글<선행의 씨앗-24>

* 광야의 소리<귀 없는 인간-26>

* 삶의 지혜<마음의 양약-28>

* 건강 진단<당신의 심장은?-38>

* 퍼즐<46>

만든 사람들:평강 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사과나무아래

만든 때:1995년 어린이 날

《말씀의 샘》

생명(生命)의양식(糧食)

"(요6: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요6: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요6: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요6: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어느 임금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임금은 나라를 가장 잘 다스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 적임자인지를 분별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세 아들을 불러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구해오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세 왕자는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하여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웃에 있는 큰 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기 때문에 그 나라는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큰 왕자는 보물을 하나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나뭇잎을 부치면 그 나뭇잎이 군인이 되는 신기한 부채였습니다. 큰 왕자는 그 부채로 많은 군사를 만들어 이웃 군대를 손쉽게 물리쳤습니다. 온 백성들은 신기한 부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고 환호했습니다. 왕위는 당연히 큰 왕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구가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식량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양식이 떨어져 굶주린 백성들은 금세라도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습니다. 그 때 둘째 왕자가 귀한 보물 하나를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그 보물은 돌리기만 하면 하염없이 쌀이 쏟아져 나오는 맷돌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둘째 왕자가 가지고 온 맷돌로 많은 쌀을 만들어 식량난을 깨끗이 해결했습니다. 백성들은 맷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왕위 계승은 당연히 둘째 왕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라 안에는 또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량난이 해결되니까 백성들은 게을러지고 방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남아도는 쌀로 술을 만들어 먹고는 취하여 서로 싸우고 음란과 향락을 일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가 혼란하고 생지옥같이 되었습니다. 그 때 셋째 왕자가 한 권의 책을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그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지혜를 주는 진리의 책이었습니다. 왕자는 그 책에 기록된 진리를 모든 백성들에게 보급하였습니다. 진리를 통하여 깨달은 백성들은 점차 바른 생활로 돌아왔고 근면하게 일하여 나라는 다시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왕은 셋째 왕자야말로 자신의 뒤를 이을 훌륭한 왕자라고 생각하고 그를 왕으로 계승시켰습니다. 이 이야기는 군사력이나 양식(경제력)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은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비유입니다. 고대(古代)는 현인(賢人)을 원했고, 중세(中世)는 성자(聖者)를 갈망했으나, 현재는 오직 부자(경제지상주의)만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를 더 흠모하는 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지성인들 중에는 깨끗한 양심보다는 한 장의 지폐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일찌기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를 통해 "현대인은 소유하고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배금주의 사상에 흠뻑 젖은 현대인들은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황금을 올려놓고, 메시야 대신에 기계를, 영혼의 구원 대신 성(性,sex)을 대체시킴으로써 스스로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는 풍요 속에서 방탕과 타락으로 인하여 혼란과 공포의 시대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에 물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야 물질도 힘도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시19:7) 여호와의 율법(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말씀)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19:8) 여호와의 교훈(말씀)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말씀)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시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19:11)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곧 "진리"입니다. 진리가 실종되니까 과학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도 인간을 행복하게 못하는 것입니다.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배고픔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음식이 만족시킬 수 있는 물질적인 배고픔과 물질적인 음식만으로는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영적인 배고픔이 있습니다. 주후 60년 이후의 로마 사회의 사치는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공작새의 골과 나이팅게일의 혓바닥 요리로 잔치를 베풀던 때가 바로 그 때였으며 계속해 나오는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구토제를 마신다든가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도 또 수천파운드의 비용이 드는 식사는 보통으로 되어 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된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란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어떤 깊은 불만족과 주림에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어떤 새로운 스릴과 새로운 맛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굶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튜 아놀드(Mathew Arnold)는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매의 눈초리로

써늘하게 넓은 방 안에

로마의 귀족은 누워 있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아피안의 대로를

마차를 타고 활주하였네.

축제를 열어 맹렬히

술을 들이키고 꽃으로 그 머리에

관을 썼으나

역겨운 시간은

더 나은 위안도

더 빠른 흐름도 없네."

만족할 줄 모르는 굶주림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이 인간의 모든 굶주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명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줄 수 있으며 그 생명을 더욱 더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에 대한 굶주림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끝날 줄 모르는 갈망과 인간의 심정과 영혼에 있어 안정할 수 없는 굶주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진리와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요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6: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요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생명이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참된 새로운 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없이 또는 그를 떠나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과의 그러한 새로운 관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존재는 될지언정 생명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요1:4) 그(하나님,예수 그리스도,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인간은 생명의 떡(양식)이신 예수를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의 살을 먹는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먹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몸은 떡(양식)으로 살며, 영은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이란 사랑이며, 사랑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랑하는 사랑의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속성은 사랑이고 그 본질적인 덕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생의 알파(alpha,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없으면 인생도 없고 사랑이 있어야 인생도 있습니다. 인생이 <살았다>는 말은 곧 <사랑한다>는 말과 통합니다. 독일말을 보면 사랑과 산다는 말의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사랑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의 사랑의 화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시고 영원히 배고프지 않은 생명의 양식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임금에게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딸은 불치의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유명하다는 의원에게 모두 보여 봤지만 한결같이 절망적인 반응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땅 어디엔가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자기 딸의 병을 고쳐 낫게 한 사람에게는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자신의 대를 이어 임금으로 삼겠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전국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때 마침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각자 진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세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법의 망원경을 가지고 있던 맏형이 자신의 망원경으로 그 포고령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주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맏형은 나머지 두 형제와 의논하여 공주의 병을 낫게 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 형제 중 둘째는 마법의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고 막내는 마법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사과는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이 사과를 먹으면 병이 낫게 되는 사과였습니다. 세 형제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공주가 있는 왕궁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왕궁에 도착하자 곧바로 공주에게 사과를 먹였습니다. 그러자 공주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던 공주의 병이 낫게 되자 모두가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큰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임금은 연회장에서 공주의 남편감이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사람을 발표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왜냐면 세 형제가 서로 자신이 공주를 구했으니 자신이야말로 공주의 신랑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맏형은 "내가 망원경으로 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사실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으며 둘째는 "마법의 양탄자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이렇게 먼 데까지 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지체되어 공주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하고 자신의 입장을 말했으며 셋째는 "만일 사과가 없었다면 병을 고칠 수가 없었을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공주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나라 임금은 매우 지혜로운 판단으로 자신의 후계자요 공주의 남편감이 될 사람을 셋째로 정했습니다.그 이유는 맏형과 둘째는 아직도 망원경과 양탄자를 가지고 있지만 셋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과를 공주가 먹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주를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무엇을 해줄 때에는 모든 것을 거기에 거는 자가 가장 존귀하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희생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생명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의 양식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양식은 '진리'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양식은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으시고 마음으로 영접하시므로 영원히 썩지아니할 생명의 양식으로 영육간의 모든 생활에 참 만족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이동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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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1>

어떤 부부가 지진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아들을 보다 안전지대인 아주머니댁으로 피난시켰는데 며칠 뒤 그들로부터 전보가 날아왔다.<토미를 되돌려 보낸다.차라리 지진을 보내 주기 바란다.>어떤 아이든 부모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이 귀여운 아이지만 남의 아이를 맡아 보살핀다는 것은 지진보다 더 지겨운 법이라는 말이다.그러나 과연 교회에서도 그럴까? 우리 교회 성도들은 아마도 지진보다 아이를 택할 것이리라!!!!!!!!!

《신앙간증》

나의 신앙고백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역사 하심을 내 작은 생각과 마음으로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은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삶 속에서 겪은 일들을 통해 나의 신앙을 반성하고 검토함으로 서로에게 은혜가 되며 성숙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었고 모태신앙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성령의 뜨거운 체험없는 그러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별다른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며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마음아파하고 도와준 적은 있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고 2때부터 교회 반주를 시작했고 뛰어나게 나서서 교회 일에 앞장서진 않았어도 교회에서 내가 맡은 일과 행사에는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2년 늦게 신학대학에 들어가면서의 결심은 내가 있는 곳에서 최고의 교사(교수)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임명된 교사는 많지만 참 사랑과 희생 정신을 가진 교사는 너무나 적다고 생각되었고 교회와 사회와 가정에 있어서 기독교 교육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대전이라는 지역에 익숙해지고 그곳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3년간 울산에서 봉사하라는 권고 때문에 매주일 평강교회에서 반주, 교사를 하며 힘들게 지내왔습니다. 쉬고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도 생활에 쫓기듯 살아온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많은 휴식을 주셨습니다. 재작년 93년 봄에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후 일어난 일들은 정말 다시 생각하고 싶지않은 악몽같은 일들 이었습니다. 내가 겪은 병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몸속의 염색체 형태의 이상현상으로 백혈구 수가 기준치 이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함으로 몸속의 면역기능이 상실되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수술실에 3번을 들어갔었는데 마취가 깰 때 쯤에 느껴지는 아픔을 통해 비로소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삶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 생활,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힘들다고 한 생각들이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약과 약물이 투여될지 또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부작용을 걱정하면서도 예수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한 나는 반드시 건강하게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1차 항암치료만을 받고도 지금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음은 나의 의지와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주위에서 저를 사랑하시는 분들(김옥순목사님과 우리 이동희 목사님,삼촌되시는 심무웅 목사님,그리고 선교회에 소속된 교회들과 학교 친구들)의 희생적인 눈물의 기도가나를 살리신 것으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애절한 기도로 다시 살아서 지금은 기독 음대 피아노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2년 만에 동강 병원에 피검사를 의뢰했는데 백혈병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져 있으니 안심하라는 내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 결과에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떨리는 가슴을 안고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기뻐 뛰었습니다. "사랑의 주님!" 채찍에 맞으심으로 이 죄인을 살리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사랑을 가지고 하는 기도가 모이면 하나님의 팔을 움직이게 되므로 능치 못할 일이 세상에는 없다고 믿습니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 전부를 주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사랑의 빚, 은혜의 빚진 자로서 내가 할 일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나도 남을 섬기고 나누며 베푸는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가 부유한 자가 아니라 많이 베푸는 자가 진정으로 부유한 자입니다. 남을 위해 주를 위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사회 구조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는 것이요 성령의 역사하심 밖에 없음을 이제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인간이 해야 하는 일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담대함과 지혜를 주셔서 어느 곳에 가서든지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성도님들께 진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도록 임마누엘로 늘 함께 하옵소서. <성가대 반주자. 심수아>

<병상의 간구>

자비로우신 주님!

연약한 인간인지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늘 곤경에 처하며 병과 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만물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사오니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는 세상의 모든 대적과 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치유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며 지친 몸과 상한 마음이 생기를 얻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와 휴식》

아침의 기도

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은

이 땅 어느 곳에나 비추이게 하소서.

손등에 햇살을 받으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병상의 아픔에도

젊은 이들의 터질듯한 벅찬 가슴과

외로운 노인의 얼굴에도

희망과 꿈이 되게 하소서.

또 다시 우리에게 허락되는

365일의 삶의 주머니 속에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결실로 가득 채워

한 해를 다시 보내는 날은

기쁨과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이 해는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이들을

건강한 사람들은 아픔의 사람들을

평안한 사람들은 외로운 가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손길이 되게 하소서.

이 새로운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빛으로

이 땅의 사람들의 영원을 향한 소망을 이루게 하시고

이 아침의 기도의 이 땅 사람들이

오천년을 가꾸어 온 사랑과 평화로 함께 하소서.

용혜원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은』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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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2>

---아버지와 아들---

파티에 나가려는 아들을 불러 세우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애야, 링컨은 네 나이 때는 매일 밤 공부했단다."

"그래요. 아빠, 그리고 아버지 나이 때 링컨은 대통령이 되었지요."

라고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5월의 단상》

어머니의 초상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역량과 어머니의 나이에는 거의 한계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30가지 이상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손을 갖고 계시며, 어머니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어머니는 새 옷과 음악을 좋아하시고, 깨끗한 집, 자녀들의 문안 인사말, 자동 세탁기, 그리고 아버지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병나는 것과 더러운 손, 발끈 화를 내는 것, 시끄럽게 떠드는 것, 점수가 나쁜 성적표는 좋아하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전기 휴즈를 갈아 끼우실 줄 아시며(아버지는 많이 놀라시겠지만), 일일 연속극을 좋아하시고, 배가 아플 때 문질러서 낫게 해주실 수 있다. 또한 맛있는 도너츠와 오징어튀김을 만드실 줄도 알지만 자녀들이 모든 음식을 골고루 먹는 걸 더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아무리 달래도 울기만 하는 아기를 순식간에 방긋방긋 웃게 만들 수 있으시며, 급료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하루 내내 일하신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너무 염려하신다. 그리고 자녀들이 나이를 얼마나 먹든지 간에 그들을 어린아기로 생각하기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가정의 수호천사, 여왕, 안식의 부드러운 손길이다. 어머니는 우리 누구나가 가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이다. 어머니는 사랑의 샘물이다. <작자미상>

<유머 3>

아가씨:"경찰관 아저씨, 이 남자가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경찰관:"허지만 그는 당신을 보지조차 않고 있는데요."

아가씨:"알아요, 그것이 아주 괴롭히는 거예요."

《건강상식》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이 말씀은 사마리아로 통행하시던 예수님이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성경 학자들은 심리학적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속에서 기쁨과 평화가 영원히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의학계에 의해서 이 말씀이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사람의 몸 속에 '엔돌핀'이 있다는 것이 1975년 의료진에 의하여 발견된 것입니다. 엔돌핀(Endolpin)이란 우리 몸 안에서 나오는 아편과 같은 호르몬입니다. 이 엔돌핀이 속에서 솟아나면 아편의 200배 300배의 힘이 솟아나므로 몸의 통증은 물론 마음의 불안증과 미움이나 모든 악한 생각까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의 상태가 회복되며, 자신이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주님의 복된 말씀을 듣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속에서 엔돌핀이 분비되어 인간의 심리적 상태와 건강 상태를 회복되게 하는 과정을 보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진리의 말씀을 듣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진리의 말씀을 듣고 확신하는 순간, 속에서는 엔돌핀이 솟아나게 됩니다.

3) 엔돌핀이 솟아나게 되면 마음은 평안해지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4) 또한 기쁨의 감정과 함께 온몸에는 건강 회복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를 들어도 자세히, 그리고 확실히 들으십시오. 그리고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속에서 생수가 강같이 솟아납니다. 그 생수가 바로 엔돌핀입니다. 할렐루야! <고달삼 목사의 '병원을 포기한 사람들' 중에서> --- 장옥순정리 ---

《생각이 있는 글》

선행의 씨앗

쟈니는 직업을 잃게 되자, 죽기보다 싫었던 구걸을 나서야 했다. 어느 겨울 날 식당 문간에 서 있다가 식당으로 들어가는 한 쌍의 남녀에게 구걸했다. "미안하오! 잔돈이 없소." 남자의 대답이었다. 이 때 함께 가던 여인이 나가서 "무슨 일이예요?" 하고 물었다. "음식값을 달래지 않아!" 남자의 대답이었다. 이 때 여인이 "떨고 있는 사람을 밖에 두고 우리가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겠어요, 여보?" 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이 한 둘이길래!" 남자의 대답이었다.

"내가 좀 주어도 괜찮죠?" 여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에는 쟈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돈 천원이 있습니다. 음식을 사 잡수세요. 용기를 잃지 마십시요. 어딘가 직업이 있을 겁니다. 직업을 찾도록 기도하겠어요." 쟈니는 이 때 "부인, 고맙소! 부인은 나에게 새 출발과 새 마음을 주었소, 내 잊지 않을거요."라고 말했다. 부인은 "당신은 예수의 떡을 먹는 겁니다 이 떡을 다른이에게도 주십시요." 라고 공손히 말했다. 돈 천원을 받은 쟈니는 5백원을 남기고 5백원으로 음식을 사서 먹고 있을 때였다. 바로 자기 앞에는 굶주린 늙은이가 있지 않은가? 나머지 5백원으로 음식을 사서 주었다. 그런데 이 늙은이는 먹던 음식을 종이에 싸고 있었다. "내일 먹으려고 싸갑니까?" 라고 쟈니는 물었다. "아니오, 저 길가에 꼬마 신문팔이 아이가 있소, 내 그놈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오!" 둘이는 빵조각을 싸가지고 아이에게로 갔다. 아이가 미친듯이 빵을 먹는 동안 길을 잃은 개가 가까이 왔다. 그 아이는 나머지 빵을 그 개에게 주었다. 예수의 떡이었다. 그 아이는 기쁨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가고 늙은이는 일감을 찾으러 나섰다. 쟈니는 길을 잃은 개의 목에서 주소를 찾았다 주소대로 주인에게 연락했더니 잃었던 개를 되찾은 주인은 너무 고마와 만원을 쟈니에게 주었다. 그리고 주인이 말했다. "나는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십시오." 우리 자신이 뿌린 씨의 열매를 내가 거둘 수도 있다. 또 그 열매를 다른 사람이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사랑과 선행의 열매들은 우리의 인생을 보다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편집부>

<광야의 소리>

귀 없는 인간

인류학자 마니(Marney)는 중국 황하(黃河)를 바라보며 이런 감상을 썼습니다. "3천 년 간에 황하의 범람은 1천 5백회 있었다.양자강은 연례적인 범람으로 수백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모스크바의 질병은 한 해에 2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일본의 지진은 단번에 1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지난 1년간(83년) 지구에서는 자연재해로 25만 명이 죽었다. 이렇게 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도 들을 귀가 없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의 세계에서 발생한 수 많은 사건 사고들---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 참변, 유럽의 대홍수,미국의 폭설, 아프리카지역의 10여 년 가까운 가뭄과 기근, 르완다의 8천 5백여 명의 대학살, 계속되는 보스니아의 인종말살 전쟁,일본의 고베 대지진 참사와 도쿄 지하철 사린 독가스 집단 학살,미국 오클라호마 대폭발사건,인도의 열차 탈선 대참사,동남아 지역의 콜레라및 폐스트 유행병 몰사. 한국의 문민정부들어서 발생한 사건----하늘에서의 항공기 추락 사고 참사(목포), 땅에서 열차 탈선 참사(부산), 바다에서 여객선 침몰 참사(서해안), 호수(강)에서 유람선 화재 폭발 참사(충주), 지하에서 도시가스 대폭발 대참사(대구), 등등...."(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사람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된다고 했는데 그 수 많은 사건 사고 속에 어찌 하나님의 이 시대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없겠습니까? 역사의 알파(시작)와 오메가(끝)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니라." <이동희 목사>

<유머 4>

---엄마와 아들의 대화---

아들:엄마,아빠는 왜 머리칼이 없어요?

엄마:아빠는 머리를 많이 쓰시기 때문이란다.

아들:엄마는 어째서 그렇게 머리칼이 많아요?

엄마:저리 나가!

<삶의 지혜>

마음의 양약(良藥)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최근 세계기독의사회가 건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건강이란 인간이 육체적으로,정신적으로,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靈的)으로 완전한 안녕이 유지된 상태이다." 오늘날과 같이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에 참된 건강을 위해서는 영적 생활이 그 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길은 오직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영혼과 육신의 기쁨은 "주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서 비롯된다는 말씀입니다. 옛말에 "일노일노(一怒一老)요,일소일소(一笑一小)라." 즉 한 번 노하면 한 번 늙어지고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소노(小怒)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체질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산성체질이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노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그러므로 건강을 위해서 산성식품을 삼가고 화나 신경질을 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통계상 성격이 명랑하고 항상 웃는 사람 중에는 우울증 같은 정신병, 불면증, 위장병, 신경성 고혈압, 심근경색증 등 현대 성인병 환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화를 내고 노하면 간이 나빠져 간병(肝病)이 걸리며, 또 간병에 걸린 사람은 절대로 웃지 않고 골을 잘 내고 짜증만 내게 됩니다. 너무 기뻐하고 좋아하면 심장병에 걸리며, 너무 깊이 생각하면 비장(脾臟,지라)에 병이 생기며, 너무 근심과 걱정을 하면 폐병에 걸리며, 너무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면 신장병에 걸리게 됩니다. 인간이 노(怒)하고 흥분할 때 두뇌의 가는 실핏줄(모세혈관)이 약 50-60만 본이나 터지고 혈액 속의 백혈구는 5-6만개가 파괴되어 독소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체내에는 일산화탄소(CO)가 발생하는데 이 일산화탄소의 축적이 암(癌)의 원인이며 만병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생활의 제1조는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약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내는 것, 화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이는 사람의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그러므로 성경은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 두뇌에서 계속 "엔돌핀"이라는 효소가 분비되는 것입니다(1977년 미국 의학자가 발견).엔돌핀은 활력소입니다. 환자에게서 엔돌핀이 나올 때 질병이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엔돌핀은 마음이 안정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때 나옵니다.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특히 여성은 더욱 예뻐지는데 이는 이 때에 엔돌핀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얻고 기쁨에 넘 치는 감사 생활에 들어갈 때에도 그 두뇌에서 엔돌핀이 왕성하게 나와 병은 물러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장기 중 가장 중요한 간을 보호하고 간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노하지 말고 자꾸 웃어야만 합니다.사람이 웃을 때에 많은 독기(毒氣)가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순간 밖으로 나가게 되고 이렇게 자주 웃게 되면 몸의 산성화를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웃음은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건강법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노래를 부를지라도 기쁜 노래,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이별의 아픔, 사랑의 아픔 등을 슬프게 노래하는 가요보다는 사랑의 기쁨, 소망 등 이 담겨진 복음 송가나 찬송가를 힘껏 불러보는 것이 우리 몸의 산성화를 막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생전에 노쇠방지와 건강증진을 위해 녹음보고(錄音報告),만담조(組)운영,18세 미만의 처녀의 피 수혈등 비방을 사용했다고 합니다.김일성에게 보고할 사항은 <아주 중요한 것>이거나 <기분 좋은 것>만 골라 녹음해 두었다가 시중드는 처녀가 산책시간에 눈치를 봐서 김일성이 기분 나쁘지 않을 때에 들려 주도록 했습니다.또 만담조(組)는 7명의 젊은 남녀로 구성,매일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항상 새로운 레퍼토리의 익살과 해학으로 김일성에게 웃음을 선사했다고 합니다.김일성의 장수비결중 만담조운영은 <웃음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건강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예방의학자들도 긍정적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건강한 웃음은 뇌에 자극을 주어 엔돌핀의 생성을 촉진시켜 스트레스 해소와 신진대사에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심장전문의는 어른과 어린이의 웃음을 비교 연구한 결과, 어린이는 하루에 평균 4백번 정도 웃는데 비해 어른은 고작 15번 정도 웃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린이가 어른처럼 잘 웃지 않으면 성장이 늦을 뿐 아니라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웃음의 효과에 대해 연구한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윌리엄 프라이 박사는 웃음은 심리적 조깅(jogging)이며 에어로빅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프라이박사는 20초동안 크게 소리내어 웃으면 5분간 에어로빅을 하며 몸을 뒤흔든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따라서 한번에 5초씩 하루 1백번 웃을 경우 보트의 노젓기를 10분동안 한것과 맞먹는 운동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크게 소리내 유쾌하게 웃으면 세포가 활성화하고 신체의 면역능력이 증진된다고 합니다. 실제 건강한 사람은 하루에 1백번 이상 웃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요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요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이 포도나무 비유 말씀(요 15:1-11) 가운데 참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농부는 하나님, 포도나무 가지는 인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과실(果實)을 맺을 수 없음같이 인간은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만 인생의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되는 것처럼 인간은 예수와 관계(connection)를 맺어야 과실을 맺는 인생의 기쁨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와 관계를 맺는 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또한 옛말에 "잠자는 아이는 자란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합니다."(시127: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야하는 것입니다. 이 창조질서를 거역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건강을 위해서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욕망은 있어야 합니다.만일 식욕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성욕이 전혀 없으면 자손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성공하려는 욕망이 없다면 발전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욕(過慾)은 가져서는 안됩니다. 과욕하게 되면 항상 불만족하여 불안정한 감정으로 신체의 컨디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므로 빨리 노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미국 신문에 욕심을 없이하는 것과 암방지 12항을 발표한 것이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편식을 하지 않고 균형있는 영양을 취한다.

2.같은 식품을 계속 반복 섭취하지 않는다.

3.과식하지 않는다.

4.과음하지 않는다.

5.금연한다.

6.적당량의 비타민 A, C, E와 같은 섬유질이 많은 채소를 먹는다.

7.짜고 매운 식사를 피하고 또 너무 뜨거운 것을 먹지 않는다.

8.탄 부분은 먹지 않는다.9.곰팡이 슨 것을 먹지 않는다.

10.과도하게 햇빛을 쬐지 않는다.

11.과로와 과욕을 피한다.

12.몸을 청결하게 한다.

우리는 날마다 생기는 일에서 불만의 요소를 발견하기 보다는 만족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것이,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한 부자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나의 전 재산을 가장 힘이 센 종 아빌에게 주겠다. 그리고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나의 전 재산 중에 단 한 가지만 선택하여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 장례식을 마친 아들은 아버지의 남긴 유언장을 다시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 보아도 자신에게 주겠다는 것은 한 가지 선택 밖에 없었습니다. 평소에 자신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으로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몹시 실망한 그는 며칠을 우울하게 아버지만을 원망하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평소에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시던 랍비가 그를 방문했습니다. "자네 얼굴이 몹시 상했군,자네 아버지가 자네의 그런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실망하시겠나?" "저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어째서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자네는 자네의 아버지가 져버렸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랍비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자네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셨다면 아마 힘세고 포악한 아빌이 자네를 다치게 하고 재산을 빼앗아 도망쳤을 걸세. 아버님은 그걸 염려하신 것일세." "아니 그렇다구 아빌에게 재산을 다 주어버린단 말입니까?" "이보게 좀 진정하게나, 자네는 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모르는구만. 잘 생각해 보게나 종은 누구의 소유인가? 종은 주인의 소유니 따라서 자연히 종이 가진 재산도 그 주인의 소유라네. 비록 아빌이 전 재산을 차지했지만 자네가 아빌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제서야 아들은 아버지의 깊으신 뜻을 알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에게 지금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모든 것(All in all)이 되시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는 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잠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수 없도다 (잠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잠28: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건강 장수는 돈이나, 지식, 기술로 유지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 첫째 조건이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동희 목사>

《건강진단》

당신의 심장은?

당신의 심장마비 가능성은 어떠합니까?

5분간의 테스트를 해보십시오. 아래의 12개 항목에 답하고 10년 안에 당신의 심장마비 가능성을 타진해 보십시오.이 테스트는 심장병의 위험에 대한 미국연구회 4곳의 데이터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 테스트는 이미 심장병이 걸린 사람들에게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테스트 후에 심장마비의 가능성에 대한 충고를 읽어보세요. 1 부터 9 까지의 항목에 '예'라고 답할때 보기대로 더하고 빼십시오.

1. 당신은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남성은 2점. 여성은 6점)

2. 신체지수(BMI)를 다음과 같이 계산하시오.

당신의 체중에 704를 곱하십시오. 그 곱한 것을 당신의 신장(키)으로 나누고, 다시 그 결과를 신장으로 나누십시오. (단위는 파운드와 인치입니다.)

<예> 몸무게 70k이면 70kg×2.2=154파운드,신장(키) 170cm이면 170×0.4=68인치가 됩니다.)

그러므로 154×704=108,416. 108,416÷68≒1,594. 1594÷68≒23이 됩니다.따라서 남자일 경우 0점,여자는 2점에 해당됩니다.

1). 신체지수(BMI)가 21에서 25이하일 경우

(남성은 0점. 여성은 2점)

2). 신체지수(BMI)가 25에서 29이하일 경우

(남성은 2점. 여성은 3점)

3). 신체지수(BMI)가 29이상일 경우

(남성은 4점. 여성은 6점)

3. 당뇨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까?

(남성은 8점. 여성은 11점)

4. 1).당신이 금연자라면, 지난 5년안에 끊었습니까? (남성은 1점. 여성은 4점)

2).당신은 담배를 하루에 15개피 이하로 피우십니까? (남성은 2점. 여성은 8점)

3). 하루에 15에서 24개피 정도 피우십니까?

(남성은 4점. 여성은 15점)

4). 하루에 24개피 이상 피우십니까?

(남성은 6점. 여성은 18점)

5. 부모님 중에서 60세 이전에 심장마비에 걸린 적이 있습니까? (남성은 9점. 여성은 9점)

6. 당신은 혈압을 조정하기 위해서 약을 복용한 적이 있습니까? (혈압이 올라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남성은 1점. 여성은 1점)

7. 1).당신이 폐경기 이 후 이라면, 현재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제)만을 복용하십니까?

(여성의 경우만 해당되면 5점을 빼시오.)

2).현재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황체 호르몬제)을 같이 복용하십니까?

(해당되면 3점을 빼시오)

3).에스트로겐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이 전에 복용한 적이 있습니까?(프로게스틴을 복용했는 지 여부는 상관없음)

(해당되면 2점을 빼시오.)

8. 당신은 매일 적은 양의 아스피린을 복용합니까? (적은 양이란 325mg짜리 1/4개에서 1개임)

(남성은 4점. 여성은 4점을 빼시오.)

9. 당신은 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합니까? (여기서 적당량이란 일주일에 약 14잔임)

(남성은 4점. 여성은 4점을 빼시오.)

<소계 점수: 남자???점, 여자???점>

지금부터 10에서 12항목에 대해 계산하시고 소수점 이하는 정수 처리하시오.

10. 최고 혈압에 남자는 0.14, 여자는 0.15를 곱하시오. (남자???점, 여자???점)

11. 당신의 나이에 남자는 0.51, 여자는 0.8을 곱하시오. (남자???점, 여자???점)

12. 1).총 콜레스트롤 수치(mg/dl*)에 남자 0.07, 여자는 0.06으로 곱하시오.

(남자???점, 여자???점)

2).HDL(mg/dl*)수치에 남자는 0.25, 여자늘 0.3으로 곱하시오.

(남자???점, 여자???점을 빼시오.)

만약 콜레스트롤 수치를 모르고, 그들의 평균치 측 정을 원치 않는 다면, 총 콜레스트롤 수치에 205 를 HDL에는 51 을 넣어 계산하시오. 즉, 1).의 경우 남자는 205×0.07≒14, 여자는 205×0.06≒12 을 더하시고, 2).의 경우 남자는 51×0.25≒13, 여자는 51×0.3≒15 을빼시면 됩니다.> 20세 이상의 성인은 매 5년마다 콜레스트롤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10 에서 12 항목의 점수를 계산하시오.

<소계 점수: 남자???점, 여자???점>

두 소계를 더하여 총계를 내시오.

<총계 점수:남자???점, 여자???점>

* mg/dl단위의 콜레스트롤 수치를 알기 위해서 당신의 mmol/L에 38.7을 곱하시오.

심장마비 가능성 표

남 자

점수

1년

5년

10년

0-35

0.1%이하

0.4%이하

1%이하

36-45

0.1%-0.2%

0.4%-1%

1%-3%

46-55

0.2%-0.6%

1%-3%

3%-7%

56-65

0.6%-2%

3%-8%

7%-17%

66-70

2%

8%-13%

17%-27%

71-75

2%-4%

13%-20%

7%-40%

76-80

4%-6%

20%-30%

40%-56%

여 자

점수

1년

5년

10년

0-60

0.1%이하

0.4%이하

1%이하

61-70

0.1%-0.2%

0.4%-1%

1%-3%

71-80

0.2%-0.5%

1%-3%

3%-7%

81-85

0.5%-1%

3%-5%

7%-12%

86-90

1%

5%-8%

12%-19%

91-95

1%-2%

8%-13%

19%-29%

96-100

2%-4%

13%-20%

29%-43%

어떻게 심장마비 가능성을 줄일 것인가?

혈압

심장발작을 줄이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고혈압의 일으키는 알코올을 제한하고, 소금의 섭취량을 주의하라. 고혈압 환자의 30-50%정도는 소금이 그 원인이다. 그리고 운동과 휴식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줄이라. 이러한 조치들이 효과가 없다면, 약물처리가 불가피하다. 일단 혈압이 낮아지면, 동맥에 대한 위험이 그 만큼 줄어들거나 멈춘다.

콜레스테롤수치

총 콜레스테롤 수치(TC)가 240mg/dl 이상은 심장 발작 위험 수준, 200에서 239은 경계 수치다.심장병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지(高脂)와 우유, 계란, 버터 등에서 발견되는 포화지방을 제한하라. 단일 포화지방인 올리브, 카놀라나 땅콩기름을 섭취하고 과일, 야채, 콩, 곡류를 많이 섭취하라.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약물이 필요할 수 도 있다.

운동

심장및 근육을 튼튼히 유지하기 위해선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을 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비만, 당뇨병 그리고 고혈압을 포함한 다른 위험요소들을 일으키게 한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무리한 운동보다 오히려 적당한 걷기 운동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적당한 페이스로 걷기 운동을 하면 상당량의 불필요한 칼로리를 소모시킬 수 있다.의사가 허락한다면 일주일에 45분간씩 4, 5번의 체력단련 계획을 세워 보라. 체력 단련은 불필요한 칼로리를 소모시킨다. 피의 응혈(凝血)을 억제하려면 적은 량의 아스피린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아스피린의 복용은 심장마비의 가능성을 줄이고 거의 모든 여성 병의 위험을 줄인다. 하지만 아스피린은 위장출혈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의사의 처방이 없이는 복용하지 마시오.

비만

체중 초과는 바람직하지 못한 콜레스테롤 수치와 고혈압 그리고 당뇨병의 가능성을 높인다. 비만에 대한 가장 편리한 기준은 신체지수(BMI)인데, 그 수치가 30이상이면 심장병 발병률이 높은 것을, 27이상 29미만이면 약간의 체중초과를 의미하고 약간의 심장발작 유발 가능성이 있다. 다이어트 때문에 생기는 빈번한 체중의 변동은 체중이 조금 초과되었을지라도 그것을 일정하게 지탱하는 것 보다 오히려 위험할 수가 있다. 체중을 안전하게 줄이고 영구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운동과 적절한 식습관이 중요하다. 지방을 제한하고 농산품과 곡물과 콩 등을 많이 섭취하라.

당뇨병

Type I과 II는 동맥을 손상시키고 고혈압과 위험한 콜레스트롤 수치를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다이어트와 같이 혈당치를 조절하고 체중을 줄이고 운동을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약물을 복용하라. 이같이 하면 Type I의 당뇨병에 대한 심장발작요소를 줄이고 Type II의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줄일 수 있다.

흡연

담배는 적어도 폐를 손상시키는 만큼 심장에도 해롭다. 흡연은 동맥을 상하게 하고 압축하며, 심장으로 가는 산소의 흐름을 차단시키고, 피의 응혈을 자극하고 HDL콜레스테롤의 보호효과를 무디게 한다. 흡연자로 인한 주변의 간접 흡연자의 심장발작률은 30%정도 이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담배를 적어도 5년 동안 끊었던 사람은 전혀 안 피웠던 사람과 같은 심장발작 정도를 지닌다. 완전히 끊으려고 노력하라. 만일 실패한다면, 의사에게 니코틴 껌이나 스킨 패치에 대해서 물어보라.

알코올

과다한 음주는 몸 전체를 파괴하며, 심장발작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그렇지만, 알코올은 HDL을 올리고, 혈액응혈을 방해한다. 적당히 마시는 사람, 하루에 2잔 정도를 마시는 남자, 그리고 한 잔 정도를 마시는 여자는 금주자보다 심장발작을 일으킬 확률이 25%-45도가 적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음주 습관을 자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술을 마시기를 시도해서는 안된다.

호르몬 요법

폐경기 이 후에 충분한 에스트로겐을 취하는면 심장발작정도를 1/3정도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에스트로겐은 자궁암을 발생시킬 위험도 크다.그래서 자궁을 제거하지 않은 여성은 위험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프로게스틴을 겸용해야 한다. 둘다 복합적으로 쓰는 것이 에스트로겐만 쓰는 것처럼 심장을 보호하는데 효과적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연구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의사에게 물어보면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리더스다이제스트 95.4월호에서>---- 울산대 영문과 김정희 번역----

《표제에 덧붙여》

숲속의 사과나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가서 2:3) 성서의 아가서(Song of songs)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숲속의 사과 나무"(an apple tree among the trees of the forest)에 비유합니다. "숲속의 사과 나무"는 조건을 가진 쉼(rest)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그늘에 앉아서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 놓고 안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열매는 나그네의 몹시도 타는 목을 축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는 이런 편안한 쉼이 있는 연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리고 특별히 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못한 병원의 환자들에게 지친 삶에서 벗어나 "숲속의 사과 나무" 그늘에 누워서 쉴 수 있는 평안을 주고 싶습니다.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이 조그마한 책자에서 휴식과 안식을 얻으시길 사랑과 정성을 담은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한은성 전도사>

<유머 5>

문:어린이가 한 동물을 보고서 그 동물을 치는 사람에게,"저것은 어떤 종류의 동물입니까?"하고 물었다.그 사육자는 짓궂게 말했다."어머니가 너희 아버지를 무어라고 부르지?그것이 저 동물 이름이야."어린이가 그 동물의 이름을 무엇이라 불렀다고 생각합니까?

답:아이는 놀래어 외쳤다."믿을 수 없지만,그것은,스컹크 이겠네요."

<사슴(deer) 사육자는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dear(여보)라고 부르리라고 생각하여,그렇게 말했다.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dear 나 darling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skunk(치사하고 비열한 놈)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남편의 지위가 이 지경이 되어서는 곤란하지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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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호(1995.6)

차 례 --------------------

▒ 말씀의 샘 <기독교인의 국가관-2>

▒ 생각하는 글 <샐러리맨과 소금-15>

▒ 건강 상식1 <피를 먹지 말라-17>

▒ 건강 상식2 <음악치료-22>

▒ 신앙 간증 <절망은 신의 출발-25>

▒ 유월의 여운 <십자가-32>

▒ 광야의 소리 <현대인은 목마르다-34>

▒ 삶의 지혜 <경제적 자유-36>

▒ 애플 퍼즐 <49>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아래

만든 때:1995년 현충일

<말씀의 샘>

기독교인의 국가관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롬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롬13: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롬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롬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기독교인은 두 가지의 통치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 통치(靈的 統治)로서 하나님의 통치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적 행동을 관할하는 육적 통치(肉的 統治)로서 곧 국가의 통치입니다. 본문은 기독교인이 사회 생활함에 있어서 취해야 할 국가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국가 권력과 사회 속에서 영육간(靈肉間)에 성결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국가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로 신앙의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본향으로 하는 시민이기 때문에 재림의 날을 대망하며 "고요하고 단정한 중에 평안한 생활을 하려"(딤전2:2)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확고한 종말론적인 신앙 때문에 바른 국가관을 가지므로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성결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교회에서 콘스탄틴 대제(大帝)가 기독교로써 정치를 포섭하려했으나 결국 교회가 세속화(世俗化)되고 말았습니다. 중세에는 교권(敎權)이 국권(國權)까지를 좌우하려고 하는 혼동에 빠져 결국 둘 다 부패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본문 1절은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독일 국민들에게 나치 정권의 살인마적 행위에 가담하는 구실을 주었고, 일제 시대에는 신사참배(神社參拜)가 국민 모두의 당연한 의무라는 변명의 구실을 준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가운데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2:1-2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디도서 3:1에서는 목회자에게 주는 충고로써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2:13-17에서는,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어디까지나 신본주의 윤리(神本主義 倫理)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곧, 국가 권력에 대한 순종의 이유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1절) 그렇게 때문에 본문1절 상반절에 "굴복하라"는 말씀은 무조건적 복종이나 절대적 복종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건적이며 상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위에 있는 권세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가 될 때에는 거기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29절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13장에 나타나는 적 그리스도적인 독재 정부에는 굴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이나 일제 군국주의자들이나 북괴 김일성은 바로 적 그리스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거기에 절대 굴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정부 형태라면 비록 그들이 소위 민주적이 아닐지라도 굴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최고의 정부 형태로 생각하나 성경은 그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주권재민, 主權在民)하나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본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의 상하 양원제는 사사시대(士師時代)의 형태를 모방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정부의 권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배하는 것이라면 굴복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양심을 거스리는 불의한 권력자들이나 그 권력자들의 시책에 대해서 무조건적이요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경우에 성도들은 마땅히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왕상18:1-46,단3:13-18). "(단3: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단3: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단3: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단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단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즉 우상 숭배와 같이 극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한 통치자들의 불의한 행위를 묵인하고 그대로 굴종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거스려 하나님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행위인 것입니다(잠15:9, 10,딤후3:7, 8).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뜻을 정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단1:8).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권력 행사를 허락하셨지만 권력을 남용하는 죄까지 허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한 시민으로써 통치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울러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한 통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자세로써 폭력적인 투쟁을 정당화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박해를 가하는 사악한 통치자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마5:44).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바울 당시 팔레스틴 특히 갈릴리 지역은 계속적으로 폭동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열심당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하나님밖에는 왕이 없다고 믿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조공을 바쳐서는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을 돕기 위한 폭력 행위를 시작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돕지 않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직업적으로 살인과 암살을 서약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여하한 정부의 존재도 불가능케하는 것입니다. 소위 광신적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폭력적인 유대주의로부터 기독교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올바른 국가관속에 선량한 시민 생활을 목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우리 국가를 폭군에게서 건져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국가 권력이 불의를 행할 때 성도는 야합하거나 굴종할 것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의의 회복에 앞장서서 불의의 세력을 개혁해야 할 것입니다(칼빈). 정당한 정의와 권위에 대한 순응이 성도의 덕목이듯이 불의에 대한 비판과 개혁 또한 성도의 의무인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의 본질적인 사명은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행1:8).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한 인간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습니다. 성도는 개인적으로 사회 참여를 할 수 있으나 이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각기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정치적인 견해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의 이름을 걸고 단체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이므로 변화 많은 세상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향해 거룩한 사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롭게 하고 더욱 더 나아가서는 그 나라를 견고히 세우는 심부름꾼으로서의 국가 권위(정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도의 의무를 등한시해서는 안됩니다.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기울어 가는 그의 조국을 위하여 극한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서도 눈물로써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렘20:7-18).

"(렘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렘20: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렘20: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하시는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렘20: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렘20: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렘20: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렘20: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렘20: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렘20: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렘20: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반면에 통치자들은 자신이 가진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시2:10,11) "(시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시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겔45:9). "(겔45: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울이 본장에서 천명하고 있는 국가관은 예수께서 주신 사명, 곧 복음의 선포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마28:19,20).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어떤 정부 또는 권세 아래있는 성도는 교회의 질서 못지않게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면 본질적으로 질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그 질서 보존속에서 성도의 보존과 복음이 전진적으로 선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악을 억제하고 선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의 빈곤이나 무질서를 퇴치시키는 일 등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잠16:12,29:4). "(잠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잠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교회가 내적인 일을 한다면 국가는 외적인 일을 합니다. 국가란 본래 서로 법령을 준수함으로써 어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결속하고 서약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국가가 없이는 그리고 이 법률과 이 법률을 준수하겠다는 상호 약속 없이는 악하고 이기적인 강자만이 최고가 될 것입니다. 약한 자들은 발붙일 데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정글의 법칙에 따라 지배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국가에 자기의 안전을 빚지고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국가에 대한 의무는 지키지 않으려 한다면 옳지 못한 것입니다. 국민이 국가의 보존과 유지를 위해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 전시(戰時)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 적(敵)을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십계명 중에 제6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은 사회의 안녕 질서를 위반하지 말라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살인을 금한 것입니다. 법적 재판에 의한 사형(死刑)을 금한 것은 아닙니다(출21:14-17). "(출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 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출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21: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 지니라 (출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기독교인이 전쟁이 나가는 것은 기쁜 일은 아니지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어거스틴). 기독교인으로서 전쟁때에 개인의 생명을 아껴 어디까지든지 기피할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은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무책임할 뿐 아니라 인류의 불행에 대하여 수수 방관하는 불의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혹 불행하게 침략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어 어떤 침략 전쟁에 군인으로 강제적 징발(徵發)을 당할 때, 그는 그의 양심의 자유로 할것이로되 혹시 거기에 응하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며, 그런 경우에도 그는 성경적인 근거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강도 행위를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로써 국가는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본문4절). 기독교인들은 권세 잡은 자를 존경하되 하나님을 위하여 할 것이며, 다스리는 자가 백성을 양선하게 다스리는 것도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권세를 존중히 여긴 다윗은 끝까지 형통하였으나, 다윗의 세력을 반대한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전쟁하다가 머리카락이 상수리 나무 가지에 걸려 그 원수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삼하18:9-15). "(삼하18:9)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 (삼하18: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삼하18:11)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삼하18: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삼하18:13) 아무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다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삼하18: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삼하18:15)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높일 자를 높히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합니다(롬13:7, 벧전2:13-18). "(벧전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벧전2: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벧전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벧전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벧전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하나님의 도구로써 국가 권력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에 따라 순종하여야 하며 또한 우리의 신앙 생활의 성결 보존을 기하고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 위해 우리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위정자들을 위해 사명적으로 열심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이 나라 민족을 통해 궁극적인 천국 복음(마24:14)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나라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사명자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동희 목사)

기도 제목:

1. 6.27 지자제 선거에 괴악하고 악독한 자들이 소멸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의한 자들이 일어서게 하소서.

2. 이 나라의 정치, 경제, 국방, 문화, 예술 등 각 부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하시고 사치, 방탕, 음란, 광패, 패역 속에서 회개하고 그곳에서 나와 예수 믿게 하소서.

3. 청소년들에게 사탄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 보호하시며 건전하고 건강한 기독교 청소년 문화가 창궐하게 하소서.

<생각이 있는 글>

샐러리맨과 소금

봉급, 즉 salary는 라틴어로 'salt'(소금)라는 말과 'arium'(나누어 주다)이라는 두 말이 합쳐져서 된 복합명사입니다. 그러니까 'salt arium'(소금을 분배함) 이라는 뜻인데 영어에 있어 '샐러리'로 변형이 되었습니다. 이 말의 기원은 고대 희랍이나 로마시대에 있어서 군인(병사)들에게 전쟁에 임할 때에 무기와 식량 이외에 가장 귀하던 소금을 나누어 주었던 고증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전쟁터에서는 소금이 절대로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 염분이 없으면 우리 몸의 건강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2, 3일간 소금을 섭취하지 않으면 온 몸이 부어오르거나 균형이 깨어집니다. 그러기에 모든 음식물에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소금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전쟁터의 군인들이 피 나는 싸움을 할 때나, 패잔병이 되어서 도망다닐 때에도 소금은 꼭 필요했던 까닭에 비상 음식으로 소금을 지급받았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어서 '봉급'(saltarium)의 어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소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만큼 봉급(돈)은 우리 생활을 꾸려나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물질이며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 중대한 요청은 기독교인이 절대적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환자의 식사를 빼놓고는 없습니다. 환자도 소금 비슷한 대용품을 먹어야 할 만큼 소금은 에너지의 원천인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며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므로 봉급이란 말이 소금을 배급받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이 땅의 샐러리맨들이여! 소금이 되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막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유모-1>

암탉과 돼지가 교회에 이르러서 써붙인 설교제목을 읽게 되었습니다. 무슨 방법으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을까? 암탉은 즉석에서 가난한 자에게 베이컨과 계란을 먹이자고 제안했습니다. 돼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난한 자들에게 베이컨과 계란을 먹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야. 너는 계란을 낳으면 되지만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해."

<건강 상식 1>

피를 먹지말라

성경은 고기를 먹되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라고 단호히 경고하고 있다.

과학자들 또한 동물의 피가 인간에게 유해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왜 동물의 피를 먹으면 안되는 것일까? 성경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귀기울여 보도록하자.

1. 성경이 말하는 동물의 피의 문제점

* 창세기 9:3-4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의 그 생명되는 피 채 먹지 말것이니라"

* 레위기 17:14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 신명기 12:23-25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같이 땅에 쏟으라 너는 피를 먹지말라 네가 이같이 여호와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면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 사도행전 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2. 과학적으로 증명된 피의 문제점들

(1) 사람이 죽은 후에도 백혈구는 일정 기간 살아 있다!

미국 부룩크린 병원의 '레오 브로만' 박사는 그의 저서 [혈액]에서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피 중의 백혈구 세포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함.

(2) 사람은 죽어도 상피세포는 일정기간 살아있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염과 머리털도 계속 자라나고 체온도 몇 시간 동안 따뜻하며 비록 심장은 정지되어 죽었지만, 상피세포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한 노폐물은 당연히 시체 내부와 핏 속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죽은 동물의 피는 대단히 불결하고 유독하다.

(3) 동물이 죽은 후에도 계속 유독한 노폐물이 발생된다!

동물이 죽을 때에 모든 몸체가 동시에 죽는 것이 아니고, 인체 중에서도 고급 부분 즉 뇌 신경계통이 가장 먼저 멈추고, 그 명령을 하달 받는 나머지 부분들이 서서히 멈추며, 상피 세포 등의 하급 부분은 즉시로 죽지 않고 서서히 멈추어 가면서 유독 물질의 생산이 계속 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노페물을 흡수, 중화하여 배설하는 간 또는 신장의 기능은 이미 정지되었으므로 유독한 노폐물은 시체내에 남아 있고, 맹독성의 '푸토마인'이라는 물질이 시체의 혈관 내의 피에 섞여 일정 기간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4) 피를 먹는 것은 유독 성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동물의 피 속에는 '단백질, 지방질, 당질'등이 포함되어 있고, 좋은 물질이지만, 동물의 시체의 피 속에는 유독 성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죽은 동물의 피를 먹는다는 것은 이 나쁜 유독 성분을 섭취하는 것이므로 몸에 아주 해롭다.

(5) 고기 속에는 노폐물이 쌓여 있다!

미국의 의사 '죠지 슈바르츠'는 그의 저서 [식품의 힘]이라는 책에서 "동물이 죽을 마지막 순간에 생기는 독과 노폐물은 그대로 그 조직 중에 축적되어 있다"고 증언함.

(6) 피를 먹으면 질병의 원인이 된다!

육식 동물의 내장이나 핏 속에는 영양분이 너무도 진해서 사람들의 신장을 자극하여 '위축신'의 원인이 되며, 또 핏 속에는 '출혈성 신염'의 원인이 되는 아미노산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산소 공급량을 상실한 시체 내의 효소는 급속하게 분해되어 버려 없으므로 생명력이 완전히 없어짐.

(7) 피를 먹는 것은 남의 생명을 먹는 것이다!

피를 먹는 것은 인간의 잔학성을 부채질하여 생명을 경시하게 되며, 남의 피를 먹는다는 것은 바로 남의 생명을 먹는 것이다.

(8) 피를 먹으면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된다!

동물의 근육 자체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소이지만, 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피를 즐겨 마시게 되면 사람의 성격이 냉혹하고, 잔인해져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자극을 받아 남의 생명을 없수이 여기는 맹수와 같은 비인간성을 가지게 된다.

(9) 피를 너무 많이 먹으면 성적 흥분 상태를 유발한다!

노폐물인 유독한 산류가 피 속에 쌓이게 되면, 성적인 신경을 자극하여 흥분 상태를 유발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강간 등 성범죄를 일으키게 만든다.

(10) 피의 산독화는 인간의 성격을 난폭하게 만든다!

육식을 주로 하는 사람의 피가 산독화 되면 차츰 그 성격이 맹수처럼 포악하게 되면서 남의 피 즉 생명을 경시하고, 살인을 예사롭게 하게 된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하여 동물의 피(사슴, 노루 피 등)를 산골의 사슴 농장에 까지 찾아다니며 한 컵에 5만원씩의 거금을 주고 마셔대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고, 뿐만아니라 두번째로는 정력제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거금을 주고 독소를 마셔대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먹걸이 또한 실로 다양해진 오늘날, 먹고 마시는 것을 잘 분별하여 건강을 지키고 삶의 진정한 풍요를 누릴수 있어야 하겠다. -조 현 목사의 바이블과 채식건강 중에서- (청년부 장옥순 정리)

<유머-2>

어느 날 아라비아의 억만장자가 세계의 주요 신문에 희귀한 광고를 냈습니다. "하늘색 무늬의 준마를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백만불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고를 본 독일 사람들은 재빨리 큰 도서관을 찾아가서 말류의 분포와 종류및 생태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영국 사람은 아프리카 대륙의 '사파리'에 사냥갈 준비를 했으며, 프랑스 사람은 그럴 듯한 말을 한 마리 구입해 가지고 전통적인 염색 기술을 발휘하여 하늘색으로 감쪽 같이 물들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본 사람은 많은 궁리를 한 끝에 자신의 정밀한 모방 솜씨를 가지고 하늘색 무늬의 나이론 털을 하나씩 심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본 한국 사람은 우선 이 광고를 몰래 오려서 감추어 두고 자신 있다고 생각하면서 친구들을 불러 놓고는 자랑하며 한잔씩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의 민족적인 기질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허풍과 허세로 가득찬, 그리고 내용이 없는 이 민족은 아닌지?

<건강 상식 2>

음 악 치 료

음악을 흔히들 <영혼의 소리>라고 한다. 그 '영혼의 소리'는 음악이라는 조화(harmony)를 통해 찢어지고 날카로와진 신경에 긴장을 풀어주고 궁극에 가서는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주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의사들의 음악요법은 더더욱 많은 효과를 거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그 전신을 달래는 방법으로 음악 특히 클래식이 현대인들의 정신적 질환치료뿐 아니라 모든 치료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아래에 도면화해서 소개되는 것은 일본 '다나까다몬'이라는 의학박사의 저서 『혼자 고칠수 있는 음악요법』, 동경예술대교수 '사쿠라바야시'의 『음악치료』를 정리한 것이다.

경 우

곡 목

마음이

침울해

있을때

쌩쌍 '죽음의 춤'

스메타나 '몰다우'

드보르작 '슬라브무곡 C장조'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3번'

마음이

지쳤을때

모짜르트 '디베르티멘트 B장조'

모짜르트 '미뉴엣과 트리오'

쇼팽 '콘드라 댄스'

불안이

심할때

쇼팽 '폴로네즈 1번'

쇼팽 '폴로네즈 5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슬프게

느껴질때

차이코프스키 '감상적인 왈츠'

슈베르트 '미완성교향곡 제2악장'

모짜르트 '교향곡 40번'

외롭고

쓸쓸할때

라모 '크라브생곡'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18번'

마음이

초조할때

브람스 '현악 6중주곡 1번'

드보르작 '현악 4중주 아메리카'

집중력이

없을때

하이든 '현악 4중주 제17번 세레나데'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2번'

마음이

흥분되어

있을때

모짜르트 '터키 행진곡'

슈베르트 '군대행진곡'

영화 '닥터 지바고'의 주제곡

'라라의 테마'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모짜르트 '파아노 협주곡 20번'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OP11'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마음의

긴장이

계속될때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2장'

베토벤 '전원 교향곡 1,2장'

모짜르트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

두통

거쉰 '파리의 아메리칸'

베토벤 '로망스'


히스테리

베토벤 '전원 교향곡'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노이로제

비제 '칼멘조곡'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변비

모짜르트 '미뉴엣'

쇼팽 '마주르카 조곡'

스트라우스 '비엔나 숲의 이야기'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정리: 청년부 심수아)

<유모-3>

한 사냥꾼이 자기의 엽총을 들어 커다란 곰을 향해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곰이 부드럽게 위로하는 목소리로 "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것이 낳지 않소? 무엇을 원하오? 우리 서로 그 문제를 타협해 봅시다." 사냥꾼은 그의 총을 내리면서 "털코트를 원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그것은 협상이 가능한 요청이오. 나는 단지 배만 부르면 되오. 자, 우리 서로 그 문제를 타협해 봅시다." 그 둘은 서로 앉아서 타협했습니다. 잠시 후 곰은 혼자 유유히 길을 떠났습니다. 협상은 성공적이었는데 곰은 배가 불렀고 사냥꾼은 털코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곰에게 잡혀 먹혔다는 뜻) 타협이란 것은 양당사자 모두를 같은 기준에서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간증>

절망은 신(神)의 출발

길가는 이에게 가장 많이 갖고 싶은게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돈"이라 할 것입니다. 누구나가 바라는 돈! 이 돈을 잘버는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중 한 명으로 박성수 사장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만의 독특한 기업정신을 가지고 있고 그 정신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돈버는 비결을 들어봅시다.(이 글은 국민일보사의『역경의 열매』에 실린 글을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하나님, 제 사업이 89년에는 5백억원, 90년에는 1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게 하옵소서"

80년 9월, 남에게 5백만원을 빌려 사업을 시작할 당시 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10년이 넘은 지금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갑절의 복을 주셨고 '<주>이랜드'가 86년 법인체로 등록한 이래 매년 200-300%의 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89년 총매출액은 1천 1백억원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매회사들도 여러개 탄생하는 성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때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십시오. 자신을 비우는 청지기적인 삶의 자세와 물질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시길 원하시나 우리가 받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모태신앙이었지만 교회에 습관적이었고 진정한 거듭남의 체험을 맛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1년 연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다시 재수를 하였습니다. 재수를 할 무렵 CCC활동을 하는 사촌누이로부터 중생하지 못한 성도들을 위한 글이 실린 전도지를 건네 받았는데 그때 명목뿐인 나의 신앙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당신을 제 삶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저를 인도하시고 제 삶을 주장해 주옵소서." 그때부터 신앙은 나의 삶에 의미를 주었고 생의 목표가 정해진 것입니다. 이듬해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 4학년때인 75년 나의 삶에 무서운 병마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연단과정이었음을 훨씬 뒤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근육무력증'이었습니다. 이 병은 근육이 점점 약화되어 힘을 못쓰다가 심해지면 전신마비가 되는데 특별한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은 병이었습니다. 움직이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에 하루의 절반은 누워있어야 했지만 나에게 유일한 기쁨은 대학부 활동을 계속하며 후배들을 신앙으로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공부 그룹의 지도자로 후배를 가르치는 일은 보람과 소명을 일깨워주는 일이었습니다. 누워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2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나는 다방면에 대해 공부하였고 여기서 나의 사업의 밑바탕이 되어준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위해 기다림 속에서 인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높은 건물은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 준비기간이 길다고 실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병에서 해방되기 위한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는 78년 2월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소개로 어떤 한의사를 만나 한약을 먹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고 건강을 찾은 것입니다. 그 한의사를 찾아 갔더니 그때의 처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병에서 고침을 받은후 나는 병상에서 계획했던 사업을 벌리기로 작정을 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사업의 길이 열리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제 삶은 이미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지 않았습니까.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겠습니다" 한 달간의 기도 끝에 5백만원이라는 사업자금이 응답되었습니다. 이화여대 앞에 2평짜리 옷가게를 5백만원으로 얻고 세부적인 계획에 따라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성경공부 리더들은 적은 돈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색상과 디자인을 골라 성경공부 리더들에게 옷을 선물한 것이 오히려 놀랄만큼 반응이 좋아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남대문, 평화시장을 누비며 시장성있는 옷만 골라 팔기 시작했습니다. 옷이 없어 못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상에 대해 연구하고 의류정보를 입수했으며 디자인 팀을 제일 먼저 구성했습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같이 가게를 열고 싶다, 같은 물건을 갖다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나는 그곳에 옷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그 대신 간판을 모두 이대가게의 상호인 '잉글랜드'로 변경하여 의류체인점 형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업이 계속 성장하면 할수록 서원한 것을 상기하며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라고 항상 생각하였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기에 앞서 늘 기도가 우선이었습니다. 이렇게 일하던 중 물건을 넘겨주는 위탁업이어서 정상적인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못하는게 늘 신앙의 양심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래서 86년 나는 결국 법인으로 전환하여 (주)이.랜드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회고하기를 "의류납품하는데만 만족하였다면 오늘의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또 세상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정직해지려고 노력하자 하나님께서는 더 큰 복을 내려주시기 시작한 것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후 놀라운 성장은 86년 66억원, 87년 1백 45억원, 88년 4백 65억원, 89년에는 1천 1백억원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언제나 나의 최우선순위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류업이 성장을 한것은 대리점 성장에 중점을 둔 경영방식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회사의 이익보다 대리점의 이익에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장사가 안되면 손해를 메꾸어 주고 장소가 나쁘면 대리점 위치를 변경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양보하지 않은 것은 바로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십계명의 실행이었습니다. 주일영업이 한번 발각되면 1주일간 물건납품을 중지하며 3번이상 발각되면 대리점계약을 취소하였습니다. 보통의 사업이 총 매출액중 30%가 주일판매에 의존하는 입장에서 이런 사업지침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어리석은 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계산일 뿐 주일성수를 했기에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이 이뤄진 것이라고 분명히 나는 믿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 쓸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입니다. 직원들의 신앙교육에도 중점을 두었습니다. 월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였고 매일 아침 전직원이 30분간 경건의 시간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건의 시간은 오히려 많은 지혜와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시간이 되었고 회사보다는 소비자우선의 운영은 재고율 40%의 일반업체에 비해 2%라는 재고율을 가져오게 한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업무는 정도(正道)를 걸었습니다. 불의한 돈은 절대로 쓰지 않아서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기는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며 바른길이 지름길이라는 신념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비난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회사의 이념과 정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랜드 이념을 잠시 소개하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 말씀중심의 삶 ?긍정적 사고방식 ?감사정신 ?늘 배우는 자세 ?팀웍중시 ?월드비전(세계선교) ?미래지향적. 타인중심적 사고 ?철저한 상인정신 ?근검절약정신 ?내실 ?재능보다 성실 모든 것을 다르게 생각하자 ?일보다 사람이 중심이다 ?돈보다 일중심이다 ?최고정신을 늘 가지자 등입니다.

이러던 중 86년 아내가 병을 얻어 반신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병이 악화되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내는 회복되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절망은 신의 출발이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치료해 주셔서 우리가 감사를 느끼기 보다는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게 되는 그 자체가 가장 큰 감사이다' 90년 총 매출액은 89년의 두배나 되는 2천 1백억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장가운데 나는 기독교사업가로서 몇가지 철칙을 구체화 시켰습니다. 첫째, 크리스천 실업인은 '내것'이라는 소유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 청지기 의식이 필요하다. 소유하기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지는 것이다. 넘치게 얻은 것은 선교와 사회사업, 소득재분배에 아낌없이 돌려야 한다. 둘째, 사업체는 생계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라는 철저한 사명감이 요청된다. 늘 배우는 자세로 어려움을 이기고 충성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성공의 목적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업자는 실패가 없다. 나는 이러한 기업정신에 방해도 많이 받고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우뚝 서서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정신으로 언제나 빛과 소금의 자리에 서자고 직원에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기업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하며 사회에 공헌하는지 모델로 간증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역경은 언제나 우리 삶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경 너머엔 하나님의 은총이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나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편집부)

<애플-하나>

힐튼 호텔 이야기 미국에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주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행상인이었기에 그도 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행상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자니 제일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잠자리가 제일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낮에 장사를 잘하고 저녁이 되면 편안한 잠자리에서 피곤한 몸을 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의 염려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잠잘 처소를 찾지 못해 밤을 지새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님의 생각이 간절했고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듣던 성경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리고 생각하기를 자기처럼 떠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찾아 들어가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호텔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호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그는 기도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믿음 하나만 가지고 노력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 오늘날의 힐튼 호텔인 것입니다. 오늘날 힐튼호텔 체인은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유월의 여운(餘韻)>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이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中에서

<시를 읽는 마음>

일제시대를 살아간 많은 문학가들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 위해 괴로와했던 문학가는 과연 몇명이나 있었던가? 시인 윤동주는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서정적인 성격이 그를 더 괴롭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1917년 만주국 간도성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그의 짧은 생애는 오로지 기울어가는 나라를 위해서 굽히지 않는 굳은 절개와 순결한 애국심으로 살다가 1945년 2월 16일 끝내 해방을 얼마두지 않고 이국(異國)의 감옥에서 일본인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주사쇼크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우리 말을 사용할수 없던 그 때에 그는 우리 말을 사랑하고 우리 말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며 일제에 말없이 저항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많은 시인들이 일제에 굴복하는가하면 자연으로 도피해 버리는 그런 시대에, 하늘과 겨례의 앞에 한점 부끄러움을 없기 위해서 스스로를 견책하며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유월의 하늘 아래 살아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윤동주의 시『십자가』는 참으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유월의 여운이 남아있는 오늘 한편의 시로 당신의 마음을 울려보지 않으시렵니까! - 편집부 -

<광야의 소리>

현대인들은 목이 마르다?

현대인들은 목이 마릅니다. 심한 가뭄으로 물이 없는가? 아닙다.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경악을 금치 못할 처참한 사건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옴 진리교 사건"옴 진리교 발생에 대해 어느 신문에서 이렇게 기재하였습니다."『첨단을 달리는 나라』일본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모순된 사회에서 '해탈' 하고 싶었다.....아사하라는 일본사회엔 모순이 많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그런 모순에서 좌절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보람을 주지 못하는 국가, 사회, 기업, 일류대를 나와 일류기업에 들어가도 기다리는 것은 치열한 경쟁과 허망함. 여기에 환경은 파괴되고 인류는 멸망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아사하라는 번민하던 일본 젊은이 앞에 84년 모습을 나타냈다......아사하라는 이들에게 절대자유, 절대행복, 절대환희가 기다리고 있다고 꼬드겼다." 그리고 아사하라는 각 분야에 걸맞는 교리로 일본의 엘리트들을 자신의 손아귀안에 넣었습니다. 이것이 허망한 진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16일 동경서부의 가미쿠이시키에 있는 옴교 시설물에서 아사하라는 체포되었습니다. 결국 갈증을 해소하려던 이들은 오히려 사막으로 내몰림을 당한 것입니다. 어디 일본뿐입니까? 1992년 한반도를 휩쓸고 간 다미선교회, 1994년 영생교의 조희성사건,.....삶에 지친 영혼들이 목을 축이기를 갈급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 전서 3:15)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상실한 이들과 소망에 관해 물어오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말입니다. 성경에 한 목마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 역시 목이 말랐다. 영혼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4:10)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3)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목마른 현대인이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샘물을 맛보지 않으시렵니까!!! (한은성 전도사)

<삶의 지혜>

경제적 자 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 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 또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말 3:7-8)경제적 자유의 축복을 얻으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잘 사용하려면, 당신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누구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당신의 재물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걱정하시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재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다음의 성구가 이를 증거합니다.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설령 주리신다 할지라도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당신의 축복된 경제 생활을 위해 당신의 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고 계신 것입니다. "(시50: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예수님의 비유 38가지 중 16가지가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성경은 기도와 믿음에 대해서 각각 500구절 정도에 걸쳐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재산에 관해서는 2,000구절이나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된 경제적 자유를 위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계십니다. 두번째로 당신의 재물에 관해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경제적으로 덫을 놓아 당신의 삶을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경제 보전(保全)원리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쳐 버리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셋째, 당신의 재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세번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연히 당신의 재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맡은 재물에 대해 충성되길 바라고 계십니다. 경제적 자유의 축복을 얻으려면, 첫째, 당신의 태만에 대해서 인정을 하십시오.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9)에서 "저주"는 경제적 속박(束縛)을 말합니다. 자신이 경제적 속박 속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마귀가 당신에게 경제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물음들이 아래에 있습니다.

1.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해서 매일의 지출에 대해서 부담을 가지고 계십니까?

2. 돈이 부족해서 지불할 계산서 결재를 미루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3. 세금, 보험, 집세 등에 고정된 지출을 지불하기 위해 돈을 빌리십니까?

4. 자신의 수입의 20%이상의 장기적인 부채(장기 어음)를 지고 있습니까?

5. 자신이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 잘 모르십니까?

6. 지불 기일을 넘긴 청구서에 대해서 채권을 가지고 있거나 수금원으로 부터 전화 또는 편지를 받습니까?

7. 현재의 지불해야하는 빚 때문에 저축을 빼내어 씁니까?

8. 대부한 것을 갚으려고 은행에서 새로이 대부를 합니까?

9. 배우자와 경제적 문제로 서로 다툽니까?

10. 당신은 돈에 대해서 정직하십니까?

11.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지닌 부(富)에서만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매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아 5:10)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재물 걱정으로 보낸다면 경제적인 굴레 속에서 빠져 나올수 없습니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잠 15:6) 바로 이것이 당신의 고민입니다. 재물이 당신의 우상인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은 경제적인 굴레 속에서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은행에는 보화가 많이 쌓여져 있으나 하늘 창고에는 비어있어서, 하나님이보시기에 당신은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마음속으로 깊이 새겨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5)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잘 사용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당신은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날까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하시고 계십니다. "그런즉 내게 돌아 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말 3:7) 경제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는 두번째 단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자유를 원한다면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시편 50편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당신의 소유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는 당신을 가까이 하실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드리지 않고서 재물을 드리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의 돈을 어떻게 빼어 낼까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자원하여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당신 자신을 먼저 드리십시오. 지금부터는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드렸는지를 살펴봅시다. 고린도후서 8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라고 말합니다. 드리기 전에 "주여, 당신은 만민의 주(主)이시며, 나와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主)이십니다" 말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전 12:14)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애쓰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여서 바른 관계를 찾지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하나님과 바르게 될 때 당신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23)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것을 당신의 생활에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필요를 먼저 채운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를 무너뜨리게 될 것 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 또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니라."(말라기 3장 8절) 오늘날의 사람들은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으므로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십일조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당신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둔하게 말하고 있습니까? 논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경을 펴서 스스로 하나님과 논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니라" (말라기 32장 8절) 은행을 터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총을 가지고 은행을 털수 없습니다만 나는 시도했던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은행에 들어가서 한 행원에게 "나는 지금부터 은행을 털려고 한다. 총을 갖고 있다. 가방에 모든 돈을 넣고 이리로 넘겨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행원은 그에게 쪽지를 보냈는데 "지금 당신의 사진을 찍고 있으니, 넥타이를 바르게 하길 바란다." 라고 적어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친구와 교회와 당신의 배우자까지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와 성령의 것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도둑질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십니까? 돈에 얽매여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경제적 속박("저주")을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마 22: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금을 내는 날에는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고 있습니다. 모두들 수입에 대한 세금을 충실하게 지불하고 있습니다. 오직 용감한 자들과 범죄자들만이 가이사의 것을 안 내려고 애씁니다. 당신은 하나님 보다 가이사를 더 두려워하십니까? 하나님 보다 가이사를 더욱 사랑하십니까?십일조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십일조는 수입의 십분의 일입니다.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 27:30) 율법이 기록되기 오래 전에 야곱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誓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십일조와 헌물을 그에게 드리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작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십일조는 하나님께 축복받는 경제적 자유의 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로이 하고나서 자신의 재산을 떼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내놓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하나님께서는 명령과 함께 축복을 약속하시었습니다. "십일조를 하늘 창고에 들여보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원하신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실천하십시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지정된 부분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이 쓰시는 것으로 떼어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머지 십분의 구에 대한 청지기이지만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가 율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에 기록되기 오래 전에 야곱이 하나님께 10분의 1을 드렸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모세가 율법을 기록하기 400년전에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상징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에는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율법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태복음 23:23) 십일조는 공의와 사랑과 믿음의 대용품이 아니며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기 원한다면 히브리서 5장과 7장을 읽으십시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믿는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율법 아래 놓여 있습니까? 사람은 그의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의 자녀들을 양육하지 않는다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체포될 것이 두려워서 자녀들을 양육하십니까? 당신은 자녀들을 사랑함으로서 양육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갈 수 없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 할 수 없다고 해도 율법은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생각나게 합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난 은혜로서 살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도 율법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은혜가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입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은혜 아래 있는 것보다 율법 아래 있도록 한다면 이는 은혜에 대한 모욕입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율법을 낮은 법으로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롬 3:31) 십일조는 구약 성경의 형식적인 율법이 존재하기 전에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율법의 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또 즐거운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림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면, 당신의 재산을 내어 드리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부분(십일조)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지정된 장소가 있습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말 3:10) 구약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성전이 이었고, 성전은 곧 하나님이 말하시는 창고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성전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고린도후서 6장 16절) 또 바울은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린도전서16장 2절)라고 말합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성일에 하나님의 전의 창고에 십일조를 가져와서 그의 뜻대로 일을 할 수 있게 하십시오. 십일조는 자선사업과 당신의 친지를 돕고, 외지의 목회와 그 밖의 것들에 쓰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전(殿)에서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해진 부분과 지정된 장소뿐 아니라 확고한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목적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지속(持續)하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교회 구성원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서 적힌 대로 행하면,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모르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도 전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번성하고, 그 받은 것의 십일조를 드린다면, 교회들의 수입이 지금의 수입보다 늘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포기하므로 교회들은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재물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속한 것을 실제로 돌리는 것이 됩니다. 풍성함은 십일조를 드림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수입을 늘어나게 하신 것을 확인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창고에 세 배나 축복해 주십니다. 이런 축복을 싫어하는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만국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말 3:10)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언제가 나는 한 부인이 성경의 이 약속을 발견한 후에 십일조를 드림으로 축복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그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더 큰 믿음을 가져야만 하는 지 모르겠어요? 기도할 때 왜 응답이 없는 거죠? 왜 성경을 이해할 수 없을까요?"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십시오. 그러면 해결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는가(눅16:10-11)"라고 말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것은 물질이며, 큰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당신이 재물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당신을 어떻게 신뢰하시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말 3:11) 당신이 농부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여전히 필요로 합니다. 음식, 돈, 작업, 이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십일조를 드릴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십일조를 드릴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십분의 십을 가지고 혼자서 하는 것 보다 십분의 구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십일조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일생에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를 원합니다. 부채에 시달릴 때에도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나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그 빚을 갚기 위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면 빚진 것을 더욱 쉽게 갚을 수가 있습니다."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 3:9-10) 하나님은 풍성함을 약속하셨고, 그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빚 걱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경제적 자유의 축복은 당신의 손에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태만을 인정하고 재물의 일부(십일조)를 떼어놓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함을 확인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하늘 문을 열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Adrian Rogers의 『Freedom From Financial Worry』를 번역한 것입니다.> (대학부 김정희:울산대 영문과)

<유머-4>

어느 날 병원으로 찾아온 한 유대인과 의사와의 대화입니다. 유대인 왈, "선생님, 제 아들이 1파운드의 화폐를 삼켰어요. 좀 빼어내 주세요." 의사 왈, "아드님의 돈을 빼어 내 드리겠는데 이틀은 입원시켜야 하겠습니다. 과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장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반가워서 "정말 확실합니까?" 의사 선생님이 "내일 모레 아침쯤 분명히 1파운드를 끄집어 내겠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답을 얻은 유대인 아버지 왈, "그러면 그걸 담보로 반 파운드만 지금 빌려 주십시요."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의사나 아버지나 속이고 속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짜 아들이 화폐를 삼켰는지? 그것을 이틀씩이나 입원시켜야 하는 것인지?

<유머21>

도둑이 따로 있나!

어떤 미국의 부자 노인이 노환으로 침대 신세를 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노인은 급히 그의 변호사와 의사를 불렀습니다. 변호사와 의사는 곧장 침대 곁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노인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내가 인생을 마칠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소......내가 이제 마지막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을 불렀으니 잘 명심하고 들어주기 바라오." 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의사와 변호사는 한 목소리가 되어서 "네(Yes, Sir!)!! 어서 분부를 내리십시오. 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실시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노트(note)와 챠트(chart)를 들고 한 발자욱 다가섰습니다. 변호사는 그 많은 재산이 누구에게 유산으로 물리게 될지..........그리고는 그 재산의 몇 %가 자기에게 돌아 올른지를 그리면서 노트와 펜을 준비하며 다가섰고, 의사는 사망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옴으로써 그의 권위와 식구들(유가족)과의 관계를 이해관계로 이용하려고 생각하며 '챠트'를 들고 다가섰습니다.그런데 부자 노인은, "아, 아니, 그저 노트와 챠트는 필요없고 자네들의 손을 각각 하나씩 나에게 좀 빌려 주게나.......!" 하면서 양손을 벌렸습니다. 두 사람은 의아해하면서, "어어........아니 왜 두 손을 달라 하십니까?" 하고 급히 묻자, 노인은 변호사의 손은 왼손으로 잡고, 의사의 손은 오른손으로 잡으면서 한숨을 몰아 쉬고는, "여보게들, 자네들 손으로 내 팔을 좀 높이 들어 주게나..........!"하면서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려 하였습니다. "아니, 웬일이십니까? 양팔을 우리가 들고 있으란 말씀이십니까?"하면서 의아해했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이 말하기를, "여보게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말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모습으로 나도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세. 왜 잘들 알지않나?! 예수님의 양쪽에 두 강도가 있었지......."하면서 임종을 맞이하였다는 것입니다. 부자 노인의 손을 양쪽에서 들고 있었던 변호사와 의사는 평생에 노인의 돈을 뜯어먹고 산 "강도"였음을 깊에 암시하는 우화 아닌 우화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모24>

AD 3세기의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365개의 금지 규정과 248개의 적극적 명령을 율법에서 주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15편에서 이것들을 15개로 줄였습니다. 이사야 33:14-15에서는 이것들을 6개로 줄였고, 미가 6:8은 이것을 3개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2:4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줄였습니다.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33: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사33:15)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시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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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호(1995.7)

차 례 --------------------

▒ 말씀의 샘 <사랑의 향유-2>

▒ 생각이 있는 글 <도둑이 따로 있나!-13>

▒ 건강 상식 <무좀 완치법-16>

▒ 신앙간증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18>

▒ 칠월의 시 <나의 목자-23>

▒ 광야의 소리 <"X"는 무엇?-25>

▒ 사랑의 힘 <청각장애 발레리나-27>

▒ 삶의 지혜 <안전한 성-31>

▒ 애플 퍼즐 <46>

제3호 칠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맥추감사절에

<말씀의 샘>

사랑의 향유(香油)

"(요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요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1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 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요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터어키의 반체제 영화감독인 일마즈 귀니가 옥중에서 원격 조종으로 제작했다는 <욜, YOL>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군사정권 하의 터어키 형무소에서 5명의 죄수가 5일간의 휴가를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특별히 관심을 끈 사람은 세이트(Seyit)라는 죄수였습니다. 그는 출옥할 때 까지 자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던 아내가 생활고 때문에 창녀가 되었다가 잡혀와서 쇠사슬에 매여 헛간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갑니다. 아내는 자신을 벌해 달라고 애걸하지만 세이트는 그녀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만큼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의 명예가 손상되었다는 터어키 사회의 통념 때문에 아내를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딸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세이트의 장인은 혹시 사위가 마음이 약해져서 딸을 용서할까 봐 "신이여! 저를 용서하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이트는 아내의 운명을 신에게 맡길 것을 다짐하고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 넣기 위해 얇은 옷만 걸치게 한 후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들짐승이 들끓는 산 속에 내버려 두어 동사(凍死)하도록 합니다. 8개월의 유폐생활로 쇠약해진 아내가 얼어붙어 마비가 된 다리를 끌며 "세이트! 나를 버리지 말아요"라고 절규하는 마지막 소리에 명예보다 사랑이 중요함을 깨닫고 그녀를 구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만 이미 아내는 죽은 후 였습니다. 서구 사회의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가부장(家父長)적인 질서가 엄격한 터어키 사회로서는 종교가 곧 국적이며 법률이고 동시에 생활규범인 것입니다. 종교를 위해서 인간이 죽어야 하는 종교는 종교의 주인인 인간이 소외된 종교입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이 생명력있게 살기 위한 것이지 종교를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삶을 생명력있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고, '생명' 그 자체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인간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노동자의 1년 임금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 한 병을 깨뜨려 예수께 부은 사건은 예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과 존경의 표시입니다. 마리아는 평소에 예수님의 교훈과 말씀에 항상 귀를 기울였으며(눅10:39),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훌륭한 스승으로 여겨왔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에게 부활 생명을 주신 기적과 축복을 인하여 자신이 소유한 최고의 것으로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과 존경을 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 이상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씻는 행위는 예수님께 대한 겸손과 헌신의 표현입니다. 엎드려 발을 씻는 행위는 자신을 최상으로 낮추는 표현입니다.

당시 손님의 발을 씻는 일은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일로 주인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예수께서 인간을 사랑하사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체적인 행위는 섬김으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요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요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요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마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참다운 사랑은 섬기기 위해 이처럼 자신을 대속물(代贖物),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 단편 소설의 거장 오 헨리(O.Henry)가 쓴 <현자(賢者)의 선물>이라고 하는 감동적인 한 편의 소설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델라와 짐이라고 하는 젊은 미국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가난하였지마는 서로가 깊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한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델라의 머리칼은 그녀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머리를 밑으로 내리면 그것은 마치 긴 드레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짐은 아버지께로부터 이어받은 금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전 날 델라는 짐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분명히 1달러 87센트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을 했습니다. 즉 그녀는 밖으로 나아가서 20달러로 그녀의 머리를 팔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그녀는 짐의 귀중한 시계를 위해서 백금 시계줄을 샀습니다. 짐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델라의 깍인 머리를 보고는 정신나간 사람마냥 멍청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든가 또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더욱 귀여웠던 것입니다. 짐은 천천히 자기의 선물을 그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의 선물은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를 위한 보석으로 가장자리를 수놓은 거북 껍질로 만든 값진 머리빗 한 세트였습니다. 그는 델라를 위하여 그 셋트를 사 주려고 자기의 금시계를 팔았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각기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것, 최상의 것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향기(香氣)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전13:5) 사랑은....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창18: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창18: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18: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창18: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위 역시 그 사자(使者)들에게서 무엇을 바랬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을 대접하고자 했던 그의 헌신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과 번성의 축복을 사자(使者)들을 통해 다시 확증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이익을 바라고 헌신하거나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아무런 사심없이 하나님께 헌신할 때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시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사랑과 헌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사랑과 헌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마음에 참 평안과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축복도 아울러 받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의 섬김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하시고 축복하시었습니다.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먹을 가롯 유다는,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면서 마리아의 사랑과 헌신을 돈으로 계산하며 비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본주의적(神本主義的) 사고 방식과 평가, 그리고 가롯 유다의 인본주의적인 사고 방식과 평가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 농가에 큰 마차가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대도시로 물건을 팔러 가던 중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 짐마차를 끄는 말 주위에는 그 마을의 모든 가축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대도시를 수없이 다닌 말에게서 여러 가지 진귀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었단다. 수 백 가지 종류의 꽃들로 장식된 정원, 수 많은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옷들...." 그 말(馬)은 그 궁전의 아름다움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듯 도취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후로 단 한번도 이 마을을 나가본 적이 없는 가축들로서는 도무지 그 아름다움이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그 궁전에 대해 서로 상상한 바를 토론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각한 바가 너무 달라서 도대체 궁전이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두고 며칠을 의논한 결과 그들 중의 하나가 직접 궁전을 보고 오기로 하였습니다. 그 임무는 젊고 힘이 있는 고양이에게 맡겨졌습니다. "궁전을 샅샅이 살펴보고 와야 해." 화창한 어느 날 주위 가축들의 격려와 충고를 뒤로 하고 고양이는 궁전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그 고양이는 궁전을 방문하고 의기양양하게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 마을의 모든 가축들은 환호로 그를 맞이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빙 둘러싼 채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그래, 궁전은 얼마나 아름답니?" "여왕은 만나봤어?" "..... " 쏟아지는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고양이는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다만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만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고양이는 그 아름다운 궁전에서 여왕이나 아름다운 물건을 보지 못하고 겨우 여왕의 의자 밑에 기어다니는 생쥐만을 보았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행위 속에서 참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겸손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가롯 유다는 바로 이 고양이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이익(생쥐)만을 탐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희생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쏟아 붓는 마리아의 사랑과 헌신 속에서 복음을 위한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복음을 위한 성도들의 희생과 봉사 속에서 참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목사>

<생각이 있는 글>

도둑이 따로 있나!

어떤 미국의 부자 노인이 노환으로 침대 신세를 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노인은 급히 그의 변호사와 의사를 불렀습니다. 변호사와 의사는 곧장 침대 곁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노인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두 사람을 불렀습니다. "내가 인생을 마칠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와 주어서 고맙소......내가 이제 마지막 부탁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을 불렀으니 잘 명심하고 들어주기 바라오." 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의사와 변호사는 한 목소리가 되어서, "네(Yes, Sir!)!! 어서 분부를 내리십시오. 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실시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노트(note)와 챠트(chart)를 들고 한 발자욱 다가섰습니다. 변호사는 그 많은 재산이 누구에게 유산으로 물리게 될지..........그리고는 그 재산의 몇 %가 자기에게 돌아 올른지를 그리면서 노트와 펜을 준비하며 다가섰고, 의사는 사망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옴으로써 그의 권위와 식구들(유가족)과의 관계를 이해관계로 이용하려고 생각하며 '챠트'를 들고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부자 노인은, "아, 아니, 그저 노트와 챠트는 필요없고 자네들의 손을 각각 하나씩 나에게 좀 빌려 주게나.......!" 하면서 양손을 벌렸습니다. 두 사람은 의아해하면서, "어어........아니 왜 두 손을 달라 하십니까?" 하고 급히 묻자, 노인은 변호사의 손은 왼손으로 잡고, 의사의 손은 오른손으로 잡으면서 한숨을 몰아 쉬고는, "여보게들, 자네들 손으로 내 팔을 좀 높이 들어 주게나..........!" 하면서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려 하였습니다. "아니, 웬일이십니까? 양팔을 우리가 들고 있으란 말씀이십니까?" 하면서 의아해했습니다. 그랬더니 노인이 말하기를, "여보게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말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모습으로 나도 죽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세. 왜 잘들 알지않나?! 예수님의 양쪽에 두 강도가 있었지......." 하면서 임종을 맞이하였다는 것입니다. 부자 노인의 손을 양쪽에서 들고 있었던 변호사와 의사는 평생에 노인의 돈을 뜯어먹고 산 "강도"였음을 깊이 암시하는 우화(寓話) 아닌 우화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유머---하나>

-- 관광 -

국제수지가 불리한 이스라엘에서는 관광 수입을 중요시하고 있다. 관광에 얽힌 유머 한 토막: 어떤 유대인이 죽었다. 그는 천국과 지옥 중 어느 쪽이 좋은가 하고 잠깐 천국을 엿보았다. 천국은 마치 유대 사원처럼 정연하고 엄숙해서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지옥은 어떤가 하고 울타리 틈으로 엿보았더니, 아주 화려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결국, 유대인은 지옥에서 살기로 하고 입주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뿔이 난 악마가 다가오더니 그를 창으로 죽이려고 하였다. 깜짝 놀란 사나이가 이것은 지난 번에 본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라고 항의하자 악마가 말했다. "네가 지난 번에 왔을 땐 관광 비자로 들어오지 않았느냐!"

<건강 상식>

무좀 완치법

여름이 되면 무좀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무좀은 좀처럼 완치되지 않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무좀은 몸의 체액을 확인 할 수 있는 표적이다. 무좀은 다리에 몰린 독이 있는 변질된 체액 때문에 순환이 안되므로 발가락에서 부패하여서 생긴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관절염이 심해지고 또 열이 생겨서 머리로 올라가 두통과 각종 열에의한 병이 생기게 되고 혈압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좀은 근본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근본 치료가 될까? 바로 발가락에서 변질된 피를 뽑아(사혈) 버리면 된다. (사혈법은 침술원이나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이 좋다.) 무좀이나 습진이 있는 사람들의 발가락에서 빼낸 피는 아주 진하고 꺼멓다. 그것을 자주 빼다 보면 맑은 피가 나오는데 진한 피는 나와도 동그랗게 뭉치고 맑은 피는 연하여 흘러 퍼진다. 무좀이 생기는 듯하면 피를 빼 주고 소금물에 담그든지 아니면 소금물을 진하게 타서 씻어 주고 발라 주면 발이 가볍고 발가락이 시원해진다. 이렇게 하면 혈액 순환이 발에서 막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좀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길이며, 곧 전신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된다.

-고달삼 목사의 '병원을 포기한 사람들' 발췌- <편집부>

<유머-둘>

-- 면회 --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입원접수실은 입원서류를 작성하는 환자들, 면담을 하는 환자들, 또 입원실로 안내되어 가는 환자들로 붐볐다. 한 할머니가 머뭇거리며 내가 있는 칸막이로 들어왔다. 그 할머니는 이미 입원수속 서류를 작성해 가지고 있었고 내 요구에 따라 의료보험카드도 내놓았다. 나는 필요한 사항을 타이프로 쳐 놓고 할머니에게 병원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친구를 면회하러 왔는데 서류를 작성하느라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신앙 간증>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1988년 나에게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놓인 해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아무런 이유없이 몸의 상태가 몹시도 피곤에 지쳐 있었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앉기만 하면 조는 것이 아니라 숫제 코를 골고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은 내가 분명히 화가나서 마음이 편치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얼굴의 표정은 영 반대로 웃음이 났다. 과로와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피곤에 지쳐서 그러려니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 집사님께서 지적하시기를, "사모님 도대체 걸음걸이가 꼭 술취한 사람같이 갈지(之)자로 걸으면 어떡합니까? 남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좀 나무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래서 나는 행길가에 깔려있는 보도 블럭 위를 곧장 바르게 걸어 보려고 시도해보았으나 곧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갈지자로 걷고 있었다. 아무리 곧장 걷고자 노력했으나 몸이 말을 안들었다. 비로소 나는 무언가 내 몸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저를 아껴주시던 서울에 계신 목사님께서 전화로 "김윤옥 사모님, 빨리 서울에 올라와서 한양대학병원에서 머리 사진을 한 번 찍어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사진 찍은 결과는 머리 속 작은 골 위치에 커다란 혹(tumor)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혹(tumor)으로 인하여 운동신경이 마비가 되어서 수술을 앞두고는 보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었다. 너무도 혹이 커질대로 커져서 생명의 위험이 있으니 속히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내 자신 대수술을 앞두고 제대로 기도 한번 못하고 머리 수술을 받게 되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1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혹(tumor)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보내져서 며칠인가를 보냈다. 나를 사랑해 주시던 주위의 여러 부모 형제 성도님들의 눈물어린 간곡한 기도 덕분으로 꺼져갈것 같았던 생명이 다시 소생하게 되었다. 모든 주위의 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라고 하셨다. 부족한 제 자신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보시고 다시금 새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라고 살려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감격도 조금뿐 수술 후 2년이 지나면서 머리 속에 일부 절단해냈던 그 혹(tumor)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면서 예전같은 증세가 다시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의 친정 형제들이 모두 미국에 있었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머리 수술을 하면 위험할텐데 재수술만큼은 미국에 와서 해야된다고 간곡히 권면하므로 미국(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미국인 의사의 재 검사 결과 역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수술치 않으면 1년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술을 하기는 하되 혹(tumor)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확률은 50%이며 머리수술을 하므로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장애현상은 98%라고 했다. 숨김없는 미국인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의사는 한달 이내에 모든 수술 스케줄을 잡아 놓겠다고 했다. 주변의 모든 형제들은 한결같이 믿음을 가지고 수술을 하자고 위로하였지만 당사자인 나로써는 믿음이 서질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생명을 건진다 하더라도 육신이 불구가 되어 평생을 지낸다면 목회하시는 남편 목사님께 너무 짐이 될 것만 같았다. 수술은 미국의 유수한 병원 가운데 하나인 스탠포드(Stanford)대학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한국인 목사님 한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께서는 일찍이 미국에 유학오셔서 기반을 잡으셨고 미국의 큰 은행 중의 하나인 뱅크 어브 아메리카(BOA)의 매니저이셨고 또한 교회의 장로님이셨는데 38세에 골수암으로 말미암아 사형선고를 받으신 상태에서 여러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다가 모든 의술과 의약을 포기한채 하나님께 의지하므로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비록 하반신을 못쓰고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 되셨지만 왕성한 목회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계시는 주의 종이 되신 분이셨다. 그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대뜸 하시는 말씀이 "사모님, 수술을 포기하시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되 100%의지하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세요."라고 하셨다. 수술하기로 결정한 나로서는 이제와서 수술을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고 수술을 안한다면 금방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산 증인인 목사님과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믿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수술을 포기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사생결단(死生決斷)하는 자세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셔서 감마나이프수술 전문의를 만나게 해주셨다. 처음에는 혹이 크기 때문에 장담을 못하겠다고 난색을 했지만 믿음을 가지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후 6개월 후에 사진을 찍어 본 결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실망했고 정말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믿음을 잃지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다시 6개월 후에 사진을 찍어보니 혹이 자라는 것이 멈추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치료받자마자 혹이 줄어들면 의술을 통해서 완치되었다고 생각할까봐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을 보시고 6개월 후에 역사를 해주신 것이었다. 지난 1월 다시 사진을 찍은 결과 적은 치수이지만 혹이 줄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현재에도 머리 속에 혹이 있는 상태이지만 없어지기까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의료수가가 비싼 미국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게 됨이었다. 지금에 와서 1년을 넘길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은 무색하게 되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이 지내게 되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와 때로는 금식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다보니 하나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보아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환란과 재난, 그리고 사고와 병고로 인하여 절망 가운데 계시는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사랑하심을 나는 확신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피로써만이 우리가 구원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뿐이다. <평강교회 목사 사모 김윤옥>

<칠월의 시>

나의 목자(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를 읽는 마음>

목사와 영문학자

한 번은 영문학 교수가 소년시절 부터 자라났던 자기 교회의 문학회에서 "시편 23편의 문학적 탁월성"이라는 훌륭한 강연을 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한 때 유년시절 주일학교 교사였던 연로한 목사가 그 날의 사회자였다. 강연이 끝날 즈음 교수는 목사님께 시편 23편을 낭송해 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님은 지나간 수년 동안 교인들이 슬픔과 역경 속에 빠져 있을 때 자주 읽어 주시던 그대로 교인들 앞에서 낭송했다. 이 백발이 성성한 목사님의 심금을 울리는 낭독이 있자, 장내는 얼마동안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강연을 했던 영문학 교수가 조용히 일어나서 입을 열었다. "저는 시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이 시에 나오는 주님 되시는 목자를 알고 계십니다." (존 트레버 데이비드) <편집부>

<광야의 소리>

"X" 는 무엇?

현대는 걷잡을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X세대라는 새로운 칭호가 붙혀지면서 그 변화의 주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금녀(禁女)의 직종이라 불리웠던 보디가드( bodyguard)에 이젠 여자보디가드가 활약을 하고 있으며 TV광고 속에서는 여인들을 모두 미이라로 만들어 화장품 선전을 하는가 하면 투명한 비닐로 옷을 만들어 입고 신발을 만들어 신는 등 그들이 보여주는 일면은 과연 가관이다.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특성이 바로 그들이다. 미국에서의 X세대는 65년 전후에서 75년 사이에 태어난 20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미국의 변화의 주역이 되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경제적 쇠퇴와 문화적 파괴의 주역을 또한 담당하였다고 말한다. 마약과 폭력 그리고 문맹률의 증가 등의 온상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올바로 정립되지 못한 신세대의 개념은 오히려 문화를 창달하기 보다는 망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뿐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무분별한 과잉소비로 소비율의 증가를 젊은이들이 부추기고 있으며(평균 젊은이들의 한 달 용돈이 30-40만원!!!) 사람을 상품화 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이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2000년동안 세상을 향하여 특별히 젊은이들을 향하여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 받아서 유익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오히려 우리의 맑은 영혼과 감성만이 둔해지고 탁해질뿐이다. 종잡을수 없는 X세대의 젊은이여! 진정한 X세대의 의미를 알자. 모든 문화의 창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앞세워 세상에 고립된 사상을 정립하고 이 어두워가는 세상을 다시 젊은이다운 밝은 곳으로 만들며 새로운 신세대의 문화를 창달하여 가자. 바로 이것이 2000년전부터 우리에게 당부하는 거룩한 음성이 아니겠는가! (한은성 전도사)

<사랑의 힘>

청각장애 발레리나 강진희,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소리를 듣지 못한 스물 네살, 그녀는 어떻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음악에 몸이 감겨 들까, 그녀의 공연에서는 그래서 관객들이 숨을 죽인다. 음악이 춤속으로 스며 들어 완전히 하나가 될 때 객석은 무대 위보다 더 격정에 휩싸인다. 춤동작은 또 어떠한가, 관객들의 경탄 속에 우뚝 솟아올라 힘차게 비상한다. 활달하고 시원하다. 내면에서 우러난 표정연기는 너무도 당당하다. 우아한 자태에 당당한 표정. 자칫 교만하게 보일 정도의 자신감. 그녀를 감싸고 있는 신비로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엇이 영혼 속을 흐르기에 침묵의 세계에서도 노래를 듣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부모가 자신의 딸이 농아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생후 10개월 때였다. 놀라지 않는 아이. 울음소리가 이상한 아이. 어머니는 기도하며 울었다. 말못하는 딸을 위해 여러가지를 가르쳤다. 농아에 맞는다는 미술, 테니스, 육상,.... 그러나 딸은 무용만을 고집했다. 그렇다고 듣지 못하는 딸에게 무용을 시킬 순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농아 소녀의 담임선생은 무용교사였다. 소녀는 담임선생에게 매달렸다. 선생은 단호히 뿌리쳤다. 그러나 뜻밖에 어머니가 소녀의 편이 되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 춤추는 딸이 보였던 것이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이번엔 모녀가 함께 졸랐다. 이렇게 해서 소녀의 바람은 이뤄졌다. 선생은 농아라고 봐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가르치고 따라오지 못하면 가혹하게 나무랐다. 매도 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울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음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자신보다 앞서거나 뒤에 처지는 음악과 간격을 좁힐 수 없었다. 다른 아이가 다섯 번 연습하면 꼭 4배인 스무 번을 했다. 발가락에 피멍이 가실때쯤 되면 선생은 연습량을 더 늘렸다.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솔로 콩쿠르에 참가했다. 탁월한 기량으로 예선을 통과했지만 본선에선 탈락했다. 역시 음악이 문제였다 음악을 타지 못하는 발레리나. 듣지 못하는 음악을 눈으로 헤아려 외우고 리듬을 타는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몫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녀에겐 음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소리의 작은 입자--진동이 느껴졌다. 끝내 이듬해 참가한 콩쿠르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그녀는 대학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연기를 배웠다. 거친 동작들은 하나씩 시어(詩語)로 변했다. 그녀의 춤은 갈수록 무르익었다. 92년 전국대학 콩쿠르 금상, 93년 마카오 초청공연 북큐수 국제 양무 콩쿠르 준우승. 마침내 대학 졸업을 앞둔 95년 2월 그녀는 조승미 발레단이 공연하는 <삼손과 데릴라>에 주연으로 발탁됐다. <기적의 발레리나 강진희. 청각장애인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발레리나인 강진희양은 천부적인 예술성과 고도의 테크닉, 그리고 예민한 감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다.> 필담을 통해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다. "발레를 통해 무엇을 얻는가?" "평강이다. 마음에 알 수 없는 것들이 흐른다. 난 느끼지 못하지만 아마 노래인지도 모른다." "감명받은 영화가 있는가?" "십계명과 작년에 본 쉰들러리스트다. 십계명에서 기적의 하나님을 확인했고 쉰들러리스트에선 인간 사랑이 감동적이었다. 쉰들러의 자기 본성 고백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사랑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녀을 위해 새벽기도를 올린다(경향신문95.5.31.).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팀이 실험을 하였습니다. 어느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병원에서 도와 주는 아름다운 사랑의 봉사 내용을 찍은 기록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그 학생들의 IG-A(감기바이러스와 싸우는 저항력)를 검사하고, 일주일 후 같은 학생들에게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하는 잔인한 기록 영화를 보여 주고 다시 IG-A를 조사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름다운 사랑의 봉사에 대한 영화를 본 뒤에 IG-A수치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떤 사랑의 능력에 연결될 때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병균뿐이겠습니까? 세상과 싸우는 힘도 강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력을 가졌습니다. 상식과 지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힘이,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내가 믿음으로 연결될 때 발휘되는 것입니다. <편집부>

<유머-셋>

--신학적 상대성 원리--

처녀가 랍비(선생)을 찾아 간다면 랍비는 랍비이고 처녀는 처녀이다.

랍비가 처녀를 찾아가게 된다면, 랍비는 이미 랍비가 아니며 처녀는 처녀가 아니다.

<삶의 지혜>

안전한 성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100만명의 십대 임신, 40만의 낙태와 50만의 십대 미혼모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도덕의 "댓가"로 문명자체가 멸망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정이 완전히 붕괴된 적이 2번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사회의 붕괴도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기원전 300년의 그리스 문명이었고, 또 한 번은 서기 33년의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언젠가 역사학자들이 "미국의 흥망성쇠"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낼지도 모를 만큼 오늘날의 미국은 벼랑 끝에 있습니다. 성(性)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 않으면 미국의 장래는 보장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행복한 결혼과 안전한 성(性)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가 있습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전 7:1-2) 하나님은 결혼의 물리적 행동에 분명한 경계를 설정하셨습니다. 이러한 경계선이 없이는 국가도, 도시도, 가정도 오래 존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매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고전 6:16) 성(性)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결혼이라는 사랑의 신성함 속에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니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3-4) 안전한 성(性)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욕망은 항상 사랑을 가지려고만 하지 베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먼저 언급된 것에 주목하십시오. 그가 먼저 주어야 합니다. 3절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은 애정과 아낌으로서 감싸주는 것이 당연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이끄는 자가 되게 하셨고, 또 아내를 화답하는 자로 지으셨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사랑 안에서 화답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녀에게 친밀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안전한 성(性)에는 보호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안정된 가정을 갖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를 육체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성한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은 성(性)에 대한 적절한 태도를 알지 못하는 불안정한 가정입니다. 아내들은 하나님이 남편에게 주신 성적욕구를 이해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필요로 하는 열렬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사탄은 남편에게 "저 여자가 너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네가 조금 속인다고 해서 불평할 수 없을 거야. 이것은 당연한 거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탄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한 아내가 나에게 상담을 하기를 "내 남편은 내 주위만 맴돌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느끼는 것을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때때로 그녀는 침대를 정리하지 않는 것 같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녀의 남편은 매력적이고 세심하게 단장한 젊은 여성들이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집에 가면 문 앞에서 빛 바랜 실내복에, 각각 다른 색깔의 슬리퍼를 신고 머리위로 올린 손엔 쥬스 캔이 있는 아내를 만납니다. 나는 "부인, 정신차리십시오" 라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남편을 탓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아내에게 충실한지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 부인이 한 일은 사탄에게 문을 열어서, "마귀여 어서와서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라" 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열렬한 사랑을 억누르고 있어서 차갑고, 무관심해지는 사람은 여자들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남편들도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한 성(性)에 대한 보호막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열심히 각자의 파트너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가 되는 성(性)생활이라면, 독신생활은 어떻습니까? 성경에는 독신생활에 대한 몇 가지 유익한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의 쓴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함이 좋으나"(고전 7: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독신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좋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결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독신으로 산다 하여도 "보다 나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독신 생활은 좋은 것입니다. 어떤 독신자들은 자신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굉장한 압력을 받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함이 좋으나" 라고 말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한 사람들이 이들을 낮은 차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만 합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부정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전 7:6) 바울은 독신자를 염두에 두고 이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바울이 결혼을 했고 단지 홀아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바울이 권하는 것은 독신생활도 인정하는 것이며, 그렇다고 독신생활만을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결혼을 원치 않아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독신으로 있을 때 더욱 영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러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독신으로 남아있는 것을 더욱 영적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성스러운 독신생활, 육신에 속한 결혼생활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것은 어떤 사람들은 독신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6절에서 사도바울이 독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왜 그렇습니까? 임박한 환난 때문입니다. 그 때의 초기 교회들은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이 후로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을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되 마음이 나누이며" (고전 7:29-33) 결혼을 한다는 것은 큰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긴박한 때에 하나님 섬기기를 부름받거나 특수한 목회 사역에 독신으로 부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여행과 위험까지도 안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독신의 삶이 최상의 길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그는 당신이 독신생활 잘 하도록 재능을 주십니다. 독신으로 부르심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결혼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독신으로의 삶에 부름 받았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 생활도 훌륭하고 축복 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7장 8 9절을 봅시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 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물론 지옥에 가서 불타는 것이 아니라 정욕에 불타는 것을 말합니다. 경고하건대 정욕을 느낀다는 것은 성적인 교제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하지 않고서 성교를 가져서도 안되고 시도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네가 절제하지 못하겠거든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건강한 성(性)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독신생활도 훌륭한 삶이며, 축복 받은 삶이며 보호받은 삶이며 신령한 삶입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을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 꼬 하되"(고전 7:32) 독신자들은 이 특별한 삶에 부름받은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혼했든지 독신자이건 간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거룩함으로 부르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유혹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는 탐람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소리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위와 같은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당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든지 간에 예수 믿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정결하게 씻으시고 의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의 삶이 부도덕하고 혼전 성교를 시도하고 있거나 혹 결혼 후에 불성실하다면 당신 앞에 하나님께서는 채찍를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마귀는 이 세대를 속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어쨌거나 그걸 하고 또 천국도 갈 겁니다."는 생각을 가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갈 6:7) 기독교인이 이런 범죄로 말미암아 그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이 이런 죄를 범한다면 당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당신을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난자 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1 3:9) 결혼했든지 독신이든지 간에 거룩함을 쫓는 것은 자기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생명에 대한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이 순결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법은 우리의 번영을 위함입니다. 그가 하지 말라고 하실 때는 자신의 행복에 스스로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방종하고 느슨한 삶을 살았던 한 소녀는 자신의 순결을 한 남자의 정욕에 바쳤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여자 친구도 같이 동참하게끔 강요했습니다만, 이 소녀는 정결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지혜가 있어서 그 분방한 소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언제고 너처럼 될 수 있지만 나처럼 되고 싶어해도 너는 나같이 되지못해." 안전한 성(性)에 대한 하나님의 넓은 뜻을 실현하고 도덕적으로 정결해야 할 8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부도덕은 정신적으로 해롭습니다. 미국정신과 의사 연합 회장은 "새로운 개방적 사고가 혼전성교를 부추겨서 정신병원에 젊은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다 현명하지 못합니다. 오늘날에 아주 많은 십대들은 세상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성취감을 놓쳐버린다고 배우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2. 부도덕은 진정한 사랑을 죽여 버립니다. 당신이 부도덕하게 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성(性)의 개방이 만연할수록 그 만큼 여성들은 사랑받는 존재이기보다는 이용되는 목적으로 취급당합니다. 진정한 애정과 사랑은 사라져 버립니다.

3. 부도덕은 미래의 결혼 생활을 위협합니다. 감수성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많은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혼식 날 정결한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 전에 성관계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몇 천년 전에 이와 같은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 소년이 소녀에게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소녀를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는 직장관계로 해외에 나가거나 군대에 입대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소녀는 "나는 그가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을 알아"라고 말합니다. 신뢰감정은 무너져버렸습니다. 믿음은 행복한 결혼의 주춧돌입니다. 내가 널 사랑해서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나만을 사랑해. 나는 나만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욕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그녀의 순결을 보호하고 그 자신도 깨끗이 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미래의 불행이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생활은 결혼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위험한 것이며, 결혼생활 안에서는 안정된 것입니다. 소녀를 사랑해서 기다릴 수 있고, 성관계가 없어도 그녀를 존중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성경은 야곱이 라헬을 연애할 때에 7년이나 기다렸다고 말합니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야곱에게는 그 기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4.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유연애를 주장합니다. 자유연애란 개념에서조차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자유연애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애, 즉 사랑은 약속이자 속박인 것입니다. 많은 보고서에는 부도덕한 성(性)생활에 빠져있는 사람은 안정되고 성장하고 자기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불안정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5. 부도덕은 사회의 큰 위험 요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옛 그리스와 로마 제국과 이집트와 바빌론 제국의 멸망 원인이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이 쓴 『로마제국의 흥망사』라는 책에는 다섯 가지 멸망 원인이 있는데, 그중에 첫번째 되는 것이 부도덕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적이며 가정의 적은 나라의 적입니다. "대통령 후보자가 자기의 아내에게 충실한지 아닌지를 투표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투표하는데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결혼식에서 엄숙한 선서를 하고 그것을 깨뜨리는 사람을 나는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성(性)을 가볍게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가볍게 취급합니다.

6. 임신의 위험: 우리는 사생아들을 불법적인 아이들이라고 여깁니다. 불법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불법적인 부모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생명의 권리뿐만 아니라 건전한 부모가 있는 건전한 가정에게 태어날 권리도 있습니다.

7. 병의 위험: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위협입니다. AIDS뿐만이 아닙니다. 감각도 없게 하고 지독한 병들이 우리 사회를 먹어 치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전염병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8.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 : 하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법을 어긴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형벌이 없는 법은 단지 충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충고를 하시지 않습니다. 한 임신한 소녀가 있다고 하면 그녀의 부모에게 말하고 결혼을 해야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지 않아 나는 낙태를 하겠어, 우린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라고 하지만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다만 태어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아이를 죽이느냐 아니면 살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性)이 거룩하고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선물이라고 합니다.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 6:8)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대화에서 성(性)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부모님들이 주의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성(性)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안전한 성(性)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한 것이며, 미래 생활에서 거룩함을 좇는 것입니다. -Adrian Rogers의 "Safe Sex"에서- (대학부 김정희 번역:울산대 영문과)

[애플-하나]

'세이카.핫슈.데인' 이라고 하는 유대인의 책에는 "만일 잉크물이 책과 외투에 동시에 엎질러지거든 먼저 책의 잉크부터 닦고 나서 그 다음에 돈을 주어라"는 교훈이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의 교훈에는 "만일 자기 아버지와 스승이 해적에 잡혀가서 노예시장에 팔릴 경우, 그에게 한 사람만을 살 수 있는 돈 밖에 없을 때 우선 선생님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는 단순히 자기들을 세상으로 데려온데 불과하지만, 스승은 인간을 영원의 세계로 인도해 가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이 동전을 모으고, 우표수집을 하고, 그림엽서를 모으는데 열중하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길러 준 취미를 따라 책 모으는 재미로 자라났던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유대인은 세계의 경제, 세계의 과학, 세계의 학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표제에 덧붙여》

숲속의 사과나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가서 2:3) 성서의 아가서(Song of songs)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숲속의 사과 나무"(an apple tree among the trees of the forest)에 비유합니다. "숲속의 사과 나무"는 조건을 가진 쉼(rest)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그늘에 앉아서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 놓고 안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열매는 나그네의 몹시도 타는 목을 축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는 이런 편안한 쉼이 있는 연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리고 특별히 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못한 병원의 환자들에게 지친 삶에서 벗어나 "숲속의 사과 나무" 그늘에 누워서 쉴 수 있는 평안을 주고 싶습니다.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이 조그마한 책자에서 휴식과 안식을 얻으시길 사랑과 정성을 담은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한은성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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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호(1995.8)

차 례 --------------------

▒ 말씀의 샘 <민족을 위하는 길-2>

▒ 생각이 있는 글 <다이 하드-16>

▒ 건강 상식 1 <건강한 잇솔질-20>

▒ 건강 상식 2 <사랑의 건강학-27>

▒ 팔월의 노래 <우리는 잊을 수 없다-28>

▒ 광야의 소리 <한국은 액션영화 세트-33>

▒ 사랑의 힘 <틀니 사랑-36>

▒ 삶의 지혜 <천재 기르기-39>

▒ 애플 퍼즐 <46>

제4호 팔월호(광복절 특집)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광복절을 앞에 두고

<말씀의 샘>

민족을 위하는 길

"(요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요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요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요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요11: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요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요11: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요11:52) 또 그 민족만 위할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11:53) 이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11: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리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요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요11:56)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요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윌터 롤리(S.W.Raleigh:1552~1618)는 아메리카에서 영국으로 담배를 도입한 군인이자 시인이며 탐험가입니다. 그는 담배와 마찬가지로 감자도 그의 집 정원에서 처음으로 재배하였습니다. 여러 번의 시행 착오 끝에 감자 재배에 성공하자 그는 제일 좋은 종자를 골라서 왕실에 상납하였습니다. 당시 왕위에 있던 엘리자베드 1세 여왕은 롤리를 매우 총애하였는고로 기뻐하며 이를 왕실 정원에서 재배케 하였습니다. 얼마 후 감자에서 파란 싹이 나고 잎이 올라왔습니다. 요리사는 그 파란 잎을 따서 샐러드를 만들어 왕의 식탁에 올렸습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이것이 그토록 맛이 좋다던 감자란 말이오? 그 색깔의 푸르름이 짐의 입맛을 한결 돋우는구려" 하고는 그 샐러드를 집어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왕의 표정은 순식간에 찌푸려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맛이 이상할 뿐더러 그 싹에는 독성까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왕은 그토록 자신의 총애를 받던 롤리가 돌이켜 자기를 독살시키려 한 것으로 오해, 분노하여 롤리를 처형하도록 명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체포당한 롤리는 왕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폐하! 무슨 영문으로 소인이 체포를 당했는지 모르겠나이다." "네 놈이 나를 독살하려고 해 놓고도 죄를 모른단 말이냐?" 왕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내 너를 총애해 주었건만 너는 감자라는 식물을 나에게 먹여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는가? 여봐라! 감자를 이리가져 오너라! 이놈이 끝까지 자기 죄를 부정하려 드는구나." 잠시 후 감자하고 가져 온 그 싹을 보고 모든 상황을 파악하게 된 롤리는 "전하, 이는 감자가 아니라 감자의 싹이옵니다. 감자는 잎을 드시는 것이 아니라 뿌리의 둥글둥글한 것을 드시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함으로서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예수의 표적이 정치적 행동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고 종내는 예수를 죽이게 됩니다. 그들 역시 예수의 증거를 두고 그 알맹이인 하나님 나라는 보지 못하고 엉뚱한 잎만 먹고는 날뛴 격이 아니겠습니까?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사건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았습니다. 400여년 동안 나라 잃고 여기 저기 흩어져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학수고대하던 메시야가 바로 그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예수가 아닌가 했던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면 얼마든지 '죽은 나라 민족'도 살려 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추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예수를 그대로 방치해두면 이 사건을 비화로 해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우리 나라의 과거 3.1운동처럼 확산되게 되면 일제(日帝)의 강압적인 헌병통치로 나라와 민족을 말살시키려했던것 같이 이스라엘 땅과 민족이 완전히 멸망당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유대인의 최고 의회 기관인 산헤드린이 열리고 그 대책을 숙의하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양파(兩派)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전혀 정치적인 당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율법의 모든 세칙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사소한 일에 까지 마음을 쓸 만큼 율법 준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한 누가 정권을 장악하든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 사두개파들은 극히 정치적인 당파였습니다. 사두개는 부유하고 귀족적인 당파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로마 정부에 협력적인 당파였습니다. 자기들의 부귀와 안일과 권력자로서의 지위를 향수하고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로마에 협력하는 것을 만족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모두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었던 것은 분명히 그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발언권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 모두가 사두개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의 무리들로 조직된 종교 단체이면서도 정치적인 관심이 대단한 사람들로 세속적이고 타협적인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정치와 잘 타협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두개인들이 목표로 삼고 있던 유일한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력과 명망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예수가 그 추종자들을 얻어서 정부에 대해서 소동이나 일으키지 아니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식민지에 대해서 관대한 정책을 펴나갔으나 시민 폭동에 대해서는 항상 확고하고도 무자비한 방법으로 시민 폭동을 진압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가 그 폭동의 장본인이라고 한다면 로마는 그 총력을 기울여서 습격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도 없이 사두개파는 부귀와 권력, 그리고 영광을 누리고 있던 그 권위있는 지위에서 추방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들의 무리이면서 아직까지도 예수가 옳으냐 아니냐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오직 "이것이 나의 안일과 권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누리고 있는 부귀 영화의 안전 유지 측면에서 모든 정책을 세우고 추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보다도 자신들의 출세를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와같은 것이 마치 나라 민족을 위한 것인양 서슴없이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요11: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더군다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서로 권력 다툼을 일삼는 무리들로, 바리새인들은 육체의 부활과 천사를 믿는데 비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의 다시 살아난 사건은 바로 바리새파의 교리가 옳고 사두개파의 교리는 틀렸다는 중대한 증거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리새파는 이 사건을 빌미로 국민 대중의 지지 기반을 더 한층 확고히 하여 사두개파의 기세를 꺽고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고, 사두개파는 그 사건을 빌미로 로마가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양 하면서 정치적 문제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마디 합니다. "(요11: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요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은 소위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여서 나라가 무사하다면 죽이자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정치적 수완을 부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죽여서 나라가 조용하고 자신의 권력이 유지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적은 수의 희생으로 많은 이익을 보자는 공리주의 발상입니다. 이같은 공리주의(功利主義)는 분명히 죄악입니다.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한 것은 한 사람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다수가 원하는 바일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을 추종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소수의 의견이 분명히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부결되면 그 옳은 것이 폐기되고 그릇된 것이 옳은 것이 되고마는 우매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하나님은 다수를 싫어 하십니다. 진리는 다수결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한 사람이 주장해도 어디까지나 진리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나라 민족을 위하는 길로 공리주의를 택하여 의인을 죽이자는 것입니다.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은 그 나라에 의인이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잠28: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잠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간디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한 마디의 거짓말을 해서 평생 원하는 이 나라가 독립된다 해도 나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짓말 위에 세워지는 나라는 곧 무너질 것이니까." 그가 평생을 나라 독립을 위해 바친 몸이지만 자기 한 마디의 거짓으로 나라가 독립된다 해도 거짓말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서 의냐 불의냐를 묻지 않고 나라가 안정 속에 무사할 것이라면 얼마든지 불의를 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에 남북 통일 문제가 가장 큰 이슈(issue)입니다.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우상숭배하는 타종교와 손을 맞잡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공산주의와 타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며, 얼마든지 과거를 땅에 묻어 두고 원수와 포옹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통일만 된다면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좋다면 그 과정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고 방식은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무리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로 예수를 죽여 안정을 꾀하자는 술책을 폈지만 그것은 순전히 당리 당략을 위한 것으로 결국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구하고자 취했던 바로 그 수단이 나라 민족을 멸망케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데 합작한 로마와 이스라엘은 결국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은 예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살리는 길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은 예수 믿는 의인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정치가가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대기업이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학교 교육이 없어 망한 나라가 없습니다. 오직 의인이 없어 나라와 민족이 망했다는 것이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역사의 산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 역사의 관심을 핵무기나 문민정부에 두지않습니다. 오직 의인의 존재 여부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민주화, 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 개방화 등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마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이것은 요즈음 사람들의 생활 원칙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전체를 위해서는 사람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은 파리 죽이는 것보다 더 쉽게 하는 것이 현대인입니다. 모든 것을 숫자로 옮겨서 풀이하는 현대인에게 다수가 선이고 소수가 악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반기를 들고 계십니다.

"(마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흔 아홉의 중요한 것은 그 구성분자인 하나 하나가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지 99이라는 많은 숫자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이렇게 외치실겁니다. "어린 딸 한명의 인격을 존중하십시오.어린이 하나도 집안 체면이나 가문의 명예나 부모의 얼굴을 세우는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라의 번영을 위한다는 구실로 작은 한 개인이나 힘없는 민중이 희생되어서는 안됩니다." "대자본 축적을 위하여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악마적인 경제론을 철회하십시오. 대자본이 흘리는 공해로 한 인간도 생명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비겁한 99명보다 바른 말 할 수 있는 한 명의 인간이 천국 건설에 더 필요합니다." "모두가 손을 드니 나도 손을 드는 눈치꾼 숫자의 노예보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는 인간을 나는 기다립니다." "소수의 신체 장애자, 적은 수의 정신 박약자들도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건장한 자들만의 주님은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이 잘 되는 길은 의인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그의 취임식 때, "(잠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는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고 합니다. 나라와 민족이 잘 되는 길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의로와지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서 새 나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헌법 제정 회의가 필라델피아에서 소집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한 가지로 의견일치를 못보고 서로 분열하여 퇴장하려고 할 때에 벤자민 프랭크린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기다립시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탄생한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기도의 응답을 믿습니다. 우리 다같이 무릎을 꿇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어려운 궁지와 문제에 해답을 주시기를 기다립시다." 그러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드디어 불후의 문서인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로 세운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기도로 세운 나라는 번영합니다. 미국 의사당에는 기도실이 있다고 합니다.

"(렘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헬라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켜고 아테네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조국의 위기를 막아 낼 인물을 찾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이 요구되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발견되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정황이 어떠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의 의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목사)

<유머-하나>

부 활

소련 땅 안에 스탈린의 유해를 두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긴 후르시쵸프는 드골에게 청하여 나폴레옹을 안장한 앵바리드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하였으나 드골은 앵바리드는 영웅을 위한 묘지임을 내세워 승인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턴에 전화를 했지만, 앨링턴 묘지에서도 스탈린은 거절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도 영국의 영웅 이외는 받아주지 않았다. 더 이상 도리가 없어서 이스라엘에 문의했더니 여기서는 쉽게도 받아들여 주겠다는 회답이 왔다. 그러나 편지 말미에 "신뢰할 만한 국제통계에 의하여 신성한 이스라엘에서는 부활의 확률이 세계에서 으뜸 간다는 사실을 미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명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탈린의 유해는 지금도 소련 안에 있다는 것이다.<생각이 있는 글>

"다이 하드,Die hard"

전형적인 형사 폭력물의 하나로서 미국 영화에 윌리스(Bruce Willis)주연의 <다이 하드, Die Hard>가 있습니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죽을 것 같은데도 좀처럼 죽지 않고 불사조처럼 살아 남는 현대판 조작영웅(造作英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원래 "다이 하드, Die Hards"의 유래는 약 2세기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3개 연합군이 1811년 스페인의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 알부에라에서 프랑스군과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프랑스군을 격파한 영국의 육군 제 57 보병연대는 그 영웅적이고 무모할 정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57연대 병력이 적의 포화로 여기 저기서 허물어져 갈 때 연대장 윌리엄 잉글리스 경(卿)도 빈사(瀕死)의 중상을 입고 쓰러지면서 "버티어라, 57연대여! 최후까지 저항하라!(다이 하드, Die Hard!)"라고 절규했습니다. 연대장의 말을 그대로 실행하여 "다이 하드, Die Hards"란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분명히 패색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집하는 정치가에 대해 조소하는 뜻으로 사용된 영국의 정치용어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20세기 영국의 정치 현장에서 전용(轉用)되 뜻의 의미도, 20세기 말 미국의 영상 예술에서 조작된 영웅의 모습도 아닌, 18세기 원래의 유래에서 처럼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과 뜻으로서의 "다이 하드, Die Hard"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대의 취약점 중의 하나가 바로 <저항 정신>의 결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의, 부정에 대해 침묵하고 불법에 항거치 못하는 그야말로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왜곡된 현실에 안주하며 바르지 못한 힘들과 적당히 타협하는 안정추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56:10)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삶의 환경에 대한 문제만 해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좌절하고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장애물을 뛰어 넘기 전에 아예 주저 앉아 버립니다. 위험부담이 따르는 모험은 한사코 거절합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저항도 싸움도 위험수위를 결단코 넘지 않습니다. 싸움에도 한계가 있고 저항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없는 반항이 아니고 분별없는 싸움이 아니라면, 목적이 뚜렷하고 의식있는 반항과 명분있는 싸움이라면 끈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용기>란 스피노자의 말대로 "불요불굴의 정신"(fortitude)일진대 끝까지 저항하는 이가 진정한 용기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義人)의 삶이요 "다이 하드, Die Hard"의 진면목인 것입니다.(크리스탈 크리스챤, 한명철목사)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인생의 3분의 1을 감옥에서 지낸 남아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은 <저항정신>의 표상(表象)이며 승리였습니다. 8.15 광복절을 맞아, 나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리신 순교자들의 <저항 정신>이 이 시대에는 나라의 정의와 진리를 위해 요청되고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입니다. (편집부)

<유머---둘>

패인(敗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즈음, 독일의 어느 국민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한릭스, 지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독일군 속에 유대인 병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겁자로, 전쟁터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독일이 전쟁에 진 겁니다." "음, 좋아요. 그렇다면 할트비히에게 묻겠는데 그 밖의 패배 원인으로 무엇을 들 수 있나?" "병참부에도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군량을 훔쳐냈기 때문에 독일이 패배한 것입니다." "그래, 그래, 맞았어요. 그러면 로젠베르크,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유대인인 로젠베르크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듯이 말했다. ".....저어, 참모본부에도 유대인이 있어서....." "이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독일 참모본부에는 유대인 따윈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걸 몰라?" 로젠베르크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을 받았다. "선생님, 독일의 참모본부가 아니고요, 사실은 프랑스의 참모본부에 유대인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독일이 패배한 거예요."<건강 상식 1>

-구강 건강의유지 및 증진을 위한 한 방법-

< 잇 솔 질 >

우리 인체중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만은 구강악안면계, 특히 구강(입)은 첫 소화 관문으로 음식의 저작과 삼킴에 관계하고, 절대적 발음기관이며 심미(미용)적 차원에서 안모의 하방 1/3을 구성하며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읍니다. 따라서 구강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피조물)주신 엄청난 선물(?)중 하나라고 보고 있으며, 주신 것을 잘 관리 유지해야 할 책무가 사람에게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이 아무렇게나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매스컴과 대중교육에 힘입어 많은 상식들이 늘어가고 있으나 잇솔질(양치질과는 약간 다른 개념으로 잇솔<치솔>을 사용하여 입안을 닦는 것을 의미)에 대해 개념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1. 다른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구강병(특히 치아유식증<충치>및 치주병<풍치>도 발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인 인자가 결합되어야 합니다.

가. 숙주요인

나. 병원체요인 + 시간(Time)이 필요

다. 환경요인

위의 그림에서 가, 나, 다 중 어느 한 가지가 없어도 구강병은 발생하지 않는데 잇솔질은 환경요인에 관련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시말해 충치를 간단히 예를 들면 숙주요인인 치아와 병원체요인인 구강내 세균과 환경요인인 당분(음식물)이라고 보면 잇솔질은 환경요인인 음식물 찌거기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잇솔질은 현재로써는 가장 기본적이고 비교적 효과적인 구강 건강관리법의 하나라고 결론부터 내리면서 교과서적인 잇솔질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잇솔질의 목적은 정확히 이해하려 할 때 효과가 증대 된다고 봅니다. 구강내 기분을 상쾌하게 하거나, 추한 치아를 깨끗이 하여 심미적 효과를 얻는 것도 한 목적이나, 치아우식증이나 치주병 예방을 위해 잇솔질을 한다는 것이 특히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치아경조직이나 치주조직은 일단 파괴되면 회복시키기 어렵고 여기에 생긴 병은 자연 치아의 수명 단축의 가장 주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목적 1) 구강을 청결하게 유지한다.

2) 치아유식증과 치주병을 예방한다.

3) 구강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잇솔질의 기본적 요건을 갖추어야겠습니다.

1) 치아 표면에 부착된 음식물 잔사와 세균 및불완전하게 석화화된 치은연상치석을 제거 한다.

2) 치간 인접면에 부착되어 있는 음식물 잔사와 세균도 제거한다.

3) 치은을 맛사지하여 치은에 혈액 공급을 증대시키고 치은 상피의 객화를 적당히 촉진한다.

4) 치은을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치은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참고로 잇솔의 일반적 구비조건과 잇솔의 보관 요령을 살펴 봅시다.

- 잇솔의 일반적인 구비조건 -

1) 구강내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2) 강모가 구강에 있는 전치면에 도달할 수 있어야

3) 청결해야

4) 강모가 가늘고, 일정한 탄력을 가져야

5) 인구성이 있어야

6) 외관이 양호

7) 가격이 저렴해야

- 잇솔의 보관 조건 -

1) 청결한 장소

2) 건조가 잘 되는 곳

3) 서로 접촉되지 않게

지금까지 잇솔질의 목적 달성을 위한 요건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울러 잇솔질의 방법으로는 회전법을 건강인에게 추천합니다. 회전법이란, 잇솔의 강모가 치아장축에 평행하되, 강모단면이 치근단부에 위치할 정도로 잇솔을 깊이 넣고, 강모 측면으로 치은에 압력을 가하며, 교합면을 향하여 잇솔을 이동시키다가 강모 단면이 치경부에 이르면 잇솔의 이동을 중지 시키고, 잇솔대를 축으로 하여 또한 치아의 씹는 면을 잇솔을 전후로 움직이면서 닦고, 마지막으로 혀도 닦는 방법입니다.

2. 기타 진료실에서 흔히 보이는 잇솔질과 관련된 사항

1) 잇솔질과 절대적 관련이 음식물 섭취입니다. 원칙적으로 치아에 남아 붙어 있는 음식물 찌꺼기 제거를 위한 잇솔질은 먹으면 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으니 최대한 섭취 횟수를 줄이고, 치아에 잘 달라 붙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2) 특히 어린이에게 있어서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질이 중요합니다. 3-3-3.요법(하루 3번, 식후 3분 이내에, 3분간 양치질)으로 구석구석 철저히 닦는 습관을 어릴 ? 부터 길러 주어야 합니다.

3) 잇솔질을 열심히 하시는 분은 대개 횡마법(치아 장축에 직각으로 잇솔을 앞뒤 움직이며 닦음)사용이 많고, 이 경우 마모증을 많이 야기합니다. 빗물이 바위를 뚫듯이 인체의 가장 단단한 조직도 잇솔에 의해 닳는 것입니다. (증상---이가 잇몸 부위에서 패이고, 시리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치아 파절의 원인이 되기도 함) 또한 지나치게 열심히 닦으면 1주일도 안 되어 치솔의 강모가 옆으로 벌어져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4) 잇솔질에서 세치제(치약)는 보조 수단입니다. 약용 성분의 치약은 필요한 경우 보조적 요법은 될것입니다.

5) 특히 상악 어금니 구석은 힘드는데 어린이용 치솔을 따로 준비해도 좋습니다.

6) 스케일링은 음식물 찌거기를 제대로 못 닦아 침안의 무기물과 결합되어 굳은 채석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개월마다 체크하고 (하다 못해 생일을 기준으로하여 연 1회)치석을 제거하는 것이 잇몸 건강 유지 증진에 엄청 도움이 됩니다. 참고로 평생 처음 스케일링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시린 증상도 훨씬 적어집니다. 모든 병이 식이요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치아우식증(충치)및 치주병(소위 풍치)도 끈적끈적하고 부드러운 음식물(예:초콜렛등)은 치아 부착 시간이 길어 김치나 야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치 유발지수가 높다고 봅니다. 특히 야채류를 저작시 물리적인 치아 세정 효과가 훨씬 크고, 음식물은 최소한의 자정 시간이 있으므로 먹는 횟수를 줄이는 것이 한 번에 얼마나 많이 먹느냐 보다 중요합니다. (치과의사:정성용)

<애플--하나>

위엣 것을 바라보자

미국 어느 청년이 하루 길을 가다가 지페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 뒤로 이 청년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주을까 하여 계속해서 땅 밑만을 바라보면서 땅에 떨어진 동전을 찾아다니며 살았다고 합니다. 늙어 노년이 되었을 때 그가 일평생 주은 것은 얼마되지 않은 동전과 단추 6,000개, 바늘 2,500개 이었다고 합니다. 땅만 바라보았던 이 사람은 평생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건강 상식 2>

사랑의 건강학

뉴욕 데일리 뉴스는 예방의학 전문가 핸센 박사(Peter Hansen)의 연구를 보도하였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보통 말하는 건강음식, 규칙적인 운동, 해로운 습관을 버리는 것(담배, 술, 과로, 과식, 수면부족) 등 세 가지를 50점으로 보고 남은 50점의 건강관리법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믿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의 관계에서 신체의 저항력이 강해지고 병균과 싸우는 자연의 힘이 배양된다고 합니다. 핸센 박사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그대의 건강상의 문제이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나에게 벌어집니다. 내 몸은 건강해지고 내 마음은 행복해지고 내 장래는 밝아지고 영원한 생명까지 약속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팔월의 노래>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광복 50년, 잃어버린 50년-

우리야 고향은 경상북돈데

나는 어째서 숯 파러 왔느냐

일본땅 좋다고 누가 말했느냐

일본땅 와보니 배고파 못살겠다

석탄 팔 때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 말만 하며는 몽둥이 맞았다

요놈의 카프(Cap Lamp)야 너 어찌 무겁노

요 내 허리가 끊어지게 된다

배가 고파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내었다

어머니 곁에서 쌀가루 부쳐왔네

쌀가루 받아들고 눈물만 흘렸다

보따리 풀어서 쌀가루 집어먹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불렀다.

15세 소년은 몸이 아파서

하루를 놀다가 두드려 맞았다

몽둥이 맞아서 굴 안에 끌려와

천정이 떨어져서 이 세상 이별했다

죽은 *아 꺼내서 손발을 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름을 불렀다

감독놈은 몽둥이 들고

죽은 사람 옆에 두고 "숯 파라" 했다

이 말을 듣고서 *복장을 두드리며

나라 뺏긴 민족은 요렇게 설움 받나

우리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게다.

우리의 목숨은 누가 지켜주노

"몽둥이 맞을 때는 같이 맞다" 하면서

*하코를 채쳐서 죽은 아 실어냈다.

여기저기 죽은 사람 수없이 많았는데

초상치는 것은 한 번도 못 보았네.

<참조> 1940년대초 일본 후쿠오카현 다카와군 가와사키 마을의 호슈탄광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갱내에서 남몰래 불렀던 노래. *아:어린아이를 일컫는 말.*복장:가슴 한복판. 속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 *하코: 일본말로 탄광에서 석탄을 실어 나를 때 쓰는 짐수레 같은것.

<시를 읽는 마음>

과거의 상처를 잊는다는 것,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우에 따라서는 잊을 수도 있다. 생각할수록 괴롭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어야 할 과거가 없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가 이 땅에 36년간 총칼로써 지배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진실과 그들의 죄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도 일본과 우리 정부는 21세기에는 지난 날을 잊고 친하게 지내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범죄행위로 인해 한민족이 받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다. 그 중에서도 일본제국주의가 1939년부터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조선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00여만 명을 전쟁도구로 삼아 국내외로 강제로 끌고 갔으며, 그 중 수 십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던 현대판 노예사냥의 역사---강제동원의 역사는 청소년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추악한 범죄행위였다. 여기 그 범죄의 몇 가지를 공개한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인간으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야수같은 삶을 강요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끌려가 힘겨운 삶을 살다가 어느 날 한 줌 재로 사라져 버린 조선인 원폭희생자들과 아직도 질병과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원폭피해자들의 신음소리. 동토의 땅 사할린에 강제동원되었다가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지 50년이 되었어도 그리운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이역 만리 머나먼 땅에 묶여버린 사할린 한인 동포들. 일본 사회의 냉대와 법적 차별 속에 외국인 아닌 외국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 일본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갔다가 부상당한 채 고통받는 조선인 출신 상이군이들과 억울하게 전범으로 몰려 오욕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이른바 조선인 출신 BC 급 전범들의 통곡. 일본 열도의 탄광촌과 지하 군수공장에서 혹은 남태평양의 전선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채 백골로 남아 오늘도 고향의 땅에 묻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45만 강제동원 희생자들. 이같은 것들은 지금껏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제대로 말조차 꺼내보지 않았고,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는 너무도 고통스런 일이었기에 말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제대로 실리지 않은 현대판 노예사냥의 역사----강제동원의 역사가 광복 50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내팽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현실을 두고 어찌 일제 식민지지배의 역사를 한낱 과거의 일이라고 하겠는가? 어찌 청산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우리가 잊어도 될 가볍고 희미한 옛 상처이겠는가?(편집부)

<유머---셋>

아돌프 아이히만이라고 하면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 주모자로서, 또한 이스라엘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이히만이 사형 받기 전에 마지막 소원으로 유대교로 개종하고 싶다는 제의를 해 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히만은 무거운 입을 떼어 말했다. "그렇게 하면 또 한 사람의 유대인이 죽게 되기 때문이지요."

<광야의 소리>

한국은 액션영화 세트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사에서 조만간 세트를 한국으로 옮길 것 같다. 비싼 제작료를 들이지 않아도 실감나는 액션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거대한 다리 붕괴, 가스 폭발, 유람선 화재에 이어 이번에는 급기야 거대한 호화판 백화점이 무너졌다. 세상에!!! 어떤 신문에 이번 참사를 잘 묘사한 시사 만화가 실렸다. "(딤후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광야같은 세상에 외치는 하나님의 외침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대구 가스폭발이 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단 말인가! 안전하다 하는 이들이여! 이제는 그곳에서 돌이켜야 하리라! (한은성 전도사)

*."숲 속의 사과나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 기쁨이 되며, 사회를 밝게 하는 소망스러운 이야기를 보내주시면 저희 "숲 속의 사과나무"에 게재하고 가족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의 모든 출판물과 정기 간행물을 무료로 계속해서 보내드립니다.

<유머-넷>

추녀(醜女)

만약 여자의 얼굴이 재산이라면, 그녀는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을거야 (If a woman's face is her fortune, she'll never have to pay income tax)

<사랑의 힘>

틀니 사랑

미국의 유명한 잡지인 <라이프, Life>지의 사진 기자가 영국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아침 그 기자는 지하철 대합실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앞자리에 노인 부부가 서로 부축하면서 소꿉동무처럼 정답게 앉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비스켓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 한 잔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들의 차림새는 퍽 누추하였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개의치 않고 조용히 마주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문한 비스켓과 차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비스켓을 천천히 먹기 시작하였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고 나서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잡지사 기자는 그 다음의 신기한 장면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비스켓을 반쯤 먹고나서 틀니를 뽑아 깨끗이 닦아 아내에게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그 틀니를 자연스레 입에 넣고는 비스켓을 천천히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잡지사의 기자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코가 찡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의 사랑이 있는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 서로를 아껴주고 기다려 주고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려는 마음, 이런 사랑을 지닌 사람들은 경제적 가난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시대와 연령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노인 부부에게 주위의 사물과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체면 따위는 더더욱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외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정의 행복이 재물에 있지 않습니다. 부부의 진정한 사랑은 연령에 따라 노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가정은 조건없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진 곳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전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편집부)

<유머---다섯>

"너는 새 여자 가정교사를 좋아하지 않는 듯하구나."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아주 싫어해. 나는 아빠가 하는 것처럼 그녀를 붙잡고 목덜미를 물고 싶어." 아이가 외쳤다.

<삶의 지혜>

천재기르기

아인슈타인, 스필버그, .......이런 이름들을 열거하면 우리 머리에 쉽게 떠오르는 것이 천재, 유대인이라는 단어들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무기나 권력으로가 아니라 천재적 민족성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과학의 분야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계에 이르기 까지 어느 장르를 물론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활약하고 있음을 알것이다. 그들의 이런 천재적 기질은 유전에 의한 것인가? 물론 천재적 기질이 민족성 속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재는 1%의 유전과 99%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의 이런 기질은 숨은 노력에 의한 것이다. 바로 유대인의 가정교육속에 그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모 역시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교육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서 어떻게 천재를 기르는지 살펴보자.

1. 유대 역사속에서의 가정교육

유대인의 교육을 특징짓는 말은 "가정교육"이다. 그들의 가정교육의 본거점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역사인 성서의 구약부터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교육이라는 것은 형식화된 정규학습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졌으며 부모는 가장 중요한 교사의 역할을 담당하였었다. 특별히 하나님 신앙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의 바탕은 신앙전달이었고 그것을 기본으로 자녀들을 참으로 올바로 키우고자 하였다. 당시의 교육내용을 3가지로 제시할수 있는데 쉐마, 토라, 의식행사에 의한 교육이 그것이다.

① 쉐마

이스라엘에는 우리의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쉐마"라는 교육지침이 있다. 성경의 신명기 6:4-9이 쉐마의 내용인데 첫머리가 히브리어 "쉐마(들으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 명칭을 쉐마로 사용하고 있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이 교육지침은 이스라엘이 가야 할 핵심적인 교육방침을 명백히 제시하였다. 첫째는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다. 5절의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에서 보듯이 가장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육의 촛점을 하나님에게 두는 것이었다. 둘째는 계승적 교육이었다. 부모들이 가진 신앙의 유산과 지식을 그 당시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비형식적 삶의 교육이었다. "∼집에 있을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교육시간과 장소가 틀에 박힌것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고 어떤 때에든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자녀를 교육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삶 전체가 교육의 현장이며, 교육의 방법, 내용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② 토라

이것은 유대인의 경전이며 법전이다. 내용은 모세오경으로 불리우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로 되어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성전을 파괴하고 그들의 종교를 묵살하자 포로에서의 자유와 조국의 재건을 기리며 이 토라를 만들어서 자녀들을 교육하였다. 토라의 목적은 하나님이 필요한 인간,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만드는데 있었다.

③ 예식및 절기를 위한 의식(儀式)교육

위에서 살펴본 쉐마라든지 토라가 교육의 내용이라면 이 의식교육은 교육 내용이자 교육의 실제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그들의 삶을 통한 경험과 행동을 단순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모든 의미를 부여하여 교육의 자료로 사용하였기에 이러한 절기와 예식은 가장 본보기적인 교육의 장이었다. 즉 산 교육의 장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예식교육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되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예식을 행한다. 이 나무는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할때 식장의 장식으로 사용되어 그 동안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안에서 이만큼 성장함을 감사하며 축하객들과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통하여 부모는 율법에 대한 책임, 종교적 책임을 고취시켜 완전한 한 인격으로 대우한다.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각 절기행사를 통해 단지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음식이며, 의상, 그리고 절기가 발생된 유래들을 아이가 묻고 부모는 그에 대해 응답하는 순서를 넣어 실제적 산 경험과 당시의 사건을 재현시키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철저히 절기에 행해야 하는 의식들을 지키고 자녀들도 모두 동참시켜 그들의 사상을 가르치고 이어나간다.

2. 전통을 이어나가는 유대의 교육

역사를 이어오는 유대의 교육은 그 옛날만의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이스라엘에서도 여전히 이러한 교육의 지침은 이어져 가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의 방향이 천재적 유대인을 만드는 것이다. 유대의 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맡기고 그들의 교육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부모들처럼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는 것으로 부모의 가정에서의 교육을 대처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실제 생활속에서 아이들을 교육하며 지나치리 만큼 아이들에게 법의 준수와 사상을 교육하고 있다. 만일 버스 뒷자석에 아이를 안은 엄마가 탄다면 그 여행은 조용할 수 없다고 한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저것은 국회의사당이며, 저곳은 박물관이며....."계속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어머니 머리속에 축적된 지식을 반복적으로 애기의 귀를 통해서 그 머리에 입력시키는 교육을 한다고 한다. 또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입속에 흙이 들어가도 툭툭 털어주면서 계속 놀게 한다. 그것이 오히려 면역성을 키우는 방편으로 생각한다. 유대인의 아파트 베란다는 유난히 크다고 한다. 그것은 유대인의 장막절 절기에는 모두 집을 떠나 텐트에서 생활을 하는데 집을 떠나지 못할 경우 베란다에다 텐트를 치고 장막절 행사를 치르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단순히 가지고 노는 놀이기구나 장난감들도 단편적인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제작하고 그러한 것들 속에서 아이들이 창조력을 기른다. 유대인의 이러한 교육은 성장기에 있고 또 가치관을 형성하는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천재가 달리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너무나 힘든 교육이 필요한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들 역시 유대인 못지 않게 자녀교육에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왜 세계와 겨루어 뒤쳐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교육관심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물질과 억압은 한계를 금방 들어낸다. 부모 스스로가 정신적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유대인의 부모들은 특히 그들의 삶이 신앙이었기에 모든 교육의 촛점을 거기에 두고 쉐마에서 일러주듯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길렀으며 지금도 그렇게 기르고 있다. 교육의 핵심이 무엇이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 제공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6000년 역사속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것이다. (한은성 전도사:기독교교육과 졸업)

《표제에 덧붙여》

숲속의 사과나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아가서 2:3) 성서의 아가서(Song of songs)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숲속의 사과 나무"(an apple tree among the trees of the forest)에 비유합니다. "숲속의 사과 나무"는 조건을 가진 쉼(rest)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그늘에 앉아서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 놓고 안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열매는 나그네의 몹시도 타는 목을 축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는 이런 편안한 쉼이 있는 연인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그리고 특별히 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못한 병원의 환자들에게 지친 삶에서 벗어나 "숲속의 사과 나무" 그늘에 누워서 쉴 수 있는 평안을 주고 싶습니다.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이 조그마한 책자에서 휴식과 안식을 얻으시길 사랑과 정성을 담은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한은성 전도사>

<애플-하나>

사 과 씨

옛날 어느 왕이 한 마을 사람들의 정직성을 시험해 보려고 볶은 사과씨를 나누어 주면서 얼마 후 이 마을에 다시올 때 화분에 이 사과씨를 심어 잘 기른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사과씨를 화분에 심고 열심히 길렀지만 웬일인지 싹이 나지 않아 똑같은 사과씨를 구하여 다시 심어 아름다운 사과나무 꽃들을 피웠습니다. 드디어 왕이 오던 날 거리는 그들이 정성껏 가꾼 사과나무 꽃들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틈에 싹이 나지 않은 흙덩이만 들어있는 빈 화분을 안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더 서럽게 울면서 "내 사과씨는 웬일인지 싹이 나질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그에게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정직성을 알아보려고 볶은 사과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ps:저희 "숲 속의 사과나무"는 볶은씨가 아닙니다.

<애플--둘>

위엣 것을 바라보자

미국 어느 청년이 하루 길을 가다가 지페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 뒤로 이 청년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주을까 하여 계속해서 땅 밑만을 바라보면서 땅에 떨어진 동전을 찾아다니며 살았다고 합니다. 늙어 노년이 되었을 때 그가 일평생 주은 것은 얼마되지 않은 동전과 단추 6,000개, 바늘 2,500개 이었다고 합니다. 땅만 바라보았던 이 사람은 평생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애플-셋]

시인이 된 이유

원래의 인간은 원시인입니다. 현대인은 도시인입니다. 인간답지 않은 인간은 시시한 인간입니다. 내가 시인이 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시인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느니라" 하셨기에 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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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호(1995.9)

차 례 --------------------

▒ 말씀의 샘 <법과 사랑의 딜레마-2>

▒ 생각이 있는 글 <벼락맞는 이유-16>

▒ 건강 상식 1 <불소도포-18>

▒ 만화 <독서삼매경-22>

▒ 건강 상식 2 <디스크 예방법-24>

▒ 구월의 시 <별헤는 밤-26>

▒ 신앙 고백 <주님이 주신 삶-29>

▒ 병동 일지 <그분을 알고 있다면-34>

▒ 광야의 소리 <서울 구경-36>

▒ 사랑의 힘 <딸의 체온-40>

▒ 삶의 지혜 <장수 비결-43>

▒ 애플 퍼즐 <49>

제5호 구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가을의 문턱에서

<말씀의 샘>

법과 사랑의 딜레마

"(요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요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요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미국의 흔한 농담입니다. "2+2의 답이 뭐냐?고 물었을 때, 수학 이론가는 "3과 5 사이 어디 쯤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고 대답할 것이고, 계리사는 " 4 입니다."하고 대뜸 대답할 것이고, 변호사는 문을 닫고 아무도 엿듣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 "답을 어떻게 만들어 드릴까요?"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법과 그 실천은 거리가 먼 것을 풍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보다 인간을 더 중요시하셨고 그에 반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은 인간보다 율법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율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본문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죄를 사하신 이야기는 예수께서 세상을 율법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오셨으며(마5:17), 율법을 완성하는 근본 정신은 사랑임을 천명(闡明)하고 있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리새인의 소위 준법생활에 대한 예수님의 공격은 "(마23: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눅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의(正義)와 사랑이 법정신(法精神)의 초석(礎石)임을 밝힌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인 예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체포할 충분한 증거를 얻고자 올무를 놓았습니다. 그들의 올무는 다름 아닌 정치적, 종교적 함정이 깔린 간교한 음모에서 비롯된 바, 예수를 율법의 파괴자요, 하나님의 왕권을 침해하는 죄인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음모가 구체화된 것이 바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께 끌고 온 일입니다. 간음(姦淫)이란 남녀간의 불법 성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주변 이방인들의 우상숭배하는 국가들은 다산(多産) 종교에 의해 성적(性的) 방종(放縱)을 널리 허용했으며 심지어 제사 의식을 통하여 이를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간음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간음죄의 행위를 더욱 확대시켜 마음으로 범하는 음욕(淫慾)까지도 간음죄로 정죄하셨습니다.

"(마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이같은 개념은 다시금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도 적용되는데, 곧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靈的) 간음인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렘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예수께서는 음행(淫行)한 연고(緣故)외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다시말해 남편이나 아내가 간음했을 때만이 이혼이 가능한 데 이는 간음한 사람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마5: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처럼 간음은 중범죄(重犯罪)로서 율법을 적용시키면 이 간음한 여인을 처형하는데는 사실상 예수님의 동의(同意)는 필요없는 것이었습니다.

"(신22:21)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신22:22)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신22: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신22: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자만을 예수께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함정은 예수가 여인을 용서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율법의 권위와 가치를 무시하게 되거나, 여인에게 죽음을 선고함으로서 자신의 사랑의 메시지를 포기하게 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음으로 예수가 만약 사형을 선고하게 된다면 그것은 로마 총독의 권한 침해라는 구실로 그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이렇듯 모든 죄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힘쓰신 예수님이시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갖은 음모와 계책을 감행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눈은 어두움에 가리워져 있었으므로 진리에 대한 무지한 영적 소경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법대로 하자면 간음한 여인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하며, 또한 사형을 선고하게 되면 로마법을 침해하게 되어 고발당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그 여인을 사랑으로 용서하라고 하면 유대의 율법을 위배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은 무력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법과 사랑의 딜레마(dilemma)'에 몰아넣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딜레마를 두 차례에 걸친 초월적인 지혜의 행위와 말씀으로 간단하게 해결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판결은 죄없는 자가 돌로 쳐죽이라는 법의 집행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증인이 먼저 죄인에게 손을 대어 그를 죽게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17:7) 이런 자를 죽임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에 따라 처형을 하되 처형하는 자 스스로가 죄없는 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를 심판하는 일없이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그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돌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 정신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돌을 던져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는 심판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지므로 나로 하여금 그와 같은 범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계입니다. 한 사형수가 단두대로 끌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 대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형을 피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단두대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단두대에 올라가려는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서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형 당하기 전에 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이라도 임금님을 뵙게 해 줄 수 없겠소?" 이제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소원인지라 알현(謁見)이 허락되었습니다. 임금님 앞에 선 그 죄수는 다짜고짜 품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꺼내 그 앞으로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금덩이는 보통 금덩이가 아니라 죄없는 사람이 심으면 싹이 나서 나중에는 금덩어리 열매가 열리는 진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죄인이므로 심어도 소용이 없고, 또 이제 곧 죽어야 하니까 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죄 없으신 임금님께 바치고 세상을 떠나려 하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하게 금덩이를 받아들은 임금이 생각했습니다. '나도 죄가 있으니 심어도 싹이 안 나올거야, 또 만일 심었다가 싹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백성들에게 임금님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것이 아닌가?' 임금은 얼른 금덩이를 옆 자리의 대신에게 넘겨주며 심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가 싶더니 옆에 있는 다른 대신에게 또 다시 얼른 넘겨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금덩이는 자꾸만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밀려갔습니다. 결국엔 누구 하나 심으려는 자 없이 핑계만이 무성해졌습니다. 이 광경을 본 죄수는 "이 중에도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죽이려 하십니까?" 하면서 자신의 무죄함을 거듭 호소했습니다. 그의 호소에 임금 이하 모든 대신들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결국 이 죽을 죄인은 사형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다 흩어졌습니다.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이 때,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간음한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녀를 정죄치 않으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같은 예수님의 행위는 자신을 죄인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 한 것입니다. 나는 의롭다고 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사랑하셨으므로 스스로 죄인의 위치에 앉으신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같이 낮아져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감상적이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사랑하려면 나도 죄인과 동일시되어야 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절)는 전제하에 사죄를 선언하시고 있습니다.이는 예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간음한 여인을 죽음의 깊은 어두움 가운데서 예수 앞에 이르게 하였으나, 율법의 완성이시며 사랑의 실체이시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새로운 생명과 빛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법과 사랑의 딜레마를 극복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법과 사랑의 딜레마 속에 병든 사랑, 찌들어진 사랑, 상처입은 사랑, 고통스러워하는 사랑 등이 십자가의 사랑과 지혜로 치유되어 건강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랑으로 회복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목사>

<애플-하나>

<법대로 합시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 여행 간 청년이 어떻게 현지 처녀를 넘보았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그 나라에는 도둑질한 자는 도둑질한 손을 절단하는 법이 그대로 존속하는 바람에 이 청년은 재판관 앞에서 생식기 절단이라는 무시무시한 판결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자식의 곤경을 지켜보던 나이 든 아버지가 재판관에게 하소연 하기를, 자신은 나이도 들었고 자식은 대를 이어야 하니 형벌을 자신이 대신 감수하겠노라고 애원을 했다. 재판관은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받아들여 그렇게라도 하라고 일렀다고 한다. 바로 그때 어머니되는 여자가 손을 치켜들고 재판관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법대로 합시다."

<생각이 있는 글>

벼락맞는 이유

일제 치하 때의 일입니다. 만주 봉천 석탑교회에서는 김익두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었습니다.(봉천 석탑교회는 현재도 중공정부의 승인을 얻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임) 당시는 공산주의자들이 만주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여서 부흥회 기간 동안에도 공산당원 두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경회로 말씀을 공부하는 중에 '사람이 범죄하면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신다.'고 가르치자 공산당원 한명이 손을 번쩍 들어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요."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 옆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벼락을 맞아 타죽은 것도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입니까?" 갑자기 예상치 않던 애매한 질문을 받고 김익두 목사는 난감해졌습니다. 버드나무가 무슨 죄를 짓는다는 말인고? 공산당원의 돌연한 질문에 그는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 속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그는 얼른 하나님께 전보(기도)를 올렸습니다. "주여! 대답할 말을 주소서." 그 순간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대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사람이 범죄할 때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려고 벼락을 내리다가 차마 택한 자를 칠 수가 없어 애꿎은 나무를 친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말을 안듣고 떠들면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흑판을 두들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차마 학생을 때릴 수가 없으니까 애꿎은 흑판이 매를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범죄하면 벌이 내려오다가 차마 하나님께서 자녀를 칠 수가 없기 때문에 엉뚱한 나무를 치거나 물건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모든 성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의 은혜를 받았고 질문했던 공산당원조차 반문할 말을 찾지 못해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되어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죽지않는 순교자 김익두"에서>

<유머-1>

<죤 밀턴에 대하여>

교수:"죤 밀턴에 관하여 한 두 가지 아는 것을 말 할 사람있나요?"

학생:"네, 교수님 죤 밀턴은 결혼하고 곧 실락원을 썼구요, 그의 부인이 죽고난 후 복락원을 썼다구 하는 사실입니다."

<건강 상식 1>

불소도포와 치면열구전색이란?

만일 치아가 없다면, 또는 없어도 삶에 전혀 지장이 없다면 오늘의 이야기는 헛된 것일거지만, 치아가 없으면 식사문제 뿐만 아니라 성격에도 영향을 미쳐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치주병과 더불어 치아상실 2대 원인 중의 하나인 치아우식증(충치)의 발생을 낮추기 위해서는-지난호에 언급했듯이 음식물 찌거기가 입안의 세균과 만나 산을 만들고 이 산에 의해 치아가 녹는 현상을(우식) 치아우식증(충치)이라고 함-산의 생성을 낮추든지(환경적 요인), 치아가 환경요인에 더 잘 견디어 내게 하면 될 것입니다.(치아요인) * 환경 요인을 좋게 하려면 입안의 세균의 활동을 줄이는 약제를 사용(함부로 쓰면 안됨)하거나 음식물의 철저한 제거를 식이요법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지난호 언급)

* 치아요인 개선을 위해 불소도포와 치면열구전색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불소도포

불소를 사용하여 치아를 튼튼히 하는 방법으로, 불소는 할로겐 원소의 일종으로 치아표면에서 산에 대한 저항성을 높혀 치아 표면을 보호하고, 치아 표면에 불소막을 형성하여 세균을 효소작용을 억제하여 초기 충치를 야기하는 세균억제작용을 합니다. 불소도포란 치아 표면에 불소를 발라 주는 것으로 40-70%의 예방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충치예방에도 좋지만 특히 어린이에게서 효과가 큰데, 그 이유는 치아는 날때 겉표면(법랑질)은 아직 완전히 석회화가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잇몸을 뚫고 나온 뒤에도 거의 2년 동안 숙성을 합니다. 이는 치아의 부피가 커진다는 뜻이 아니라 법랑질이 성숙하는 기간을 말하는데, 이 때는 불소가 특히 법랑질에 잘 침착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커지는 것입니다. 불소도포란 치아에 방탄조끼나 우산을 씌우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외에 불소이용법에는 상수도수불화법, 불소용액양치법, 불소정제복용법, 식염 및 우유 불화법등이 있습니다.

2. 치면열구전색

치아의 씹는 면을 보면 눈으로는 쉽게 볼 수 없을 정도의 가느다란 틈세(열구:裂溝)와 작은 구멍(소와:小窩)가 있는데 여기에 프라그와 음식물이 잘 끼이고, 잇솔질로는 잘 제거 되지 않습니다.(그림1) 그래서 열구와 소와에서는 충치가 훨씬 잘 생깁니다. 여기에 치아를 갈지 않고 인공적으로 열구와 소와에 플라스틱 계통의 복합레진으로 메꾸어 프라그와 음식물 찌거기가 끼이지 못하게 하는 것을 치면열구전색이라고 하며,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65-90%)(그림2) 이 방법은 마취도 필요없고, 시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으며, 아플 이유가 없는데,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해주면 혹시 귀퉁이에서 발각이 되더라도 다시 채워줄 수 있기에 치면열구전색을 하면 훨씬 충치가 생길 확률이 낮아집니다. 추가로 불소도포와 병행시 효과는 증대 된다고 봅니다. 치면열구전색은 유치, 영구치, 어린이, 성인 모두 가능합니다. 그리고 5-15세의 영구치에 아주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음의 경우는 꼭 권하고 싶습니다.

1)새로난 어금니를 지닌 10대 초반의 아동.

2)치아우식증의 발생율이 높은 사람.

3)안쪽에만 충치가 있는 사람.

4)씹는면에 열구가 깊은 치아를 가진 사람. (치과의사 정성용)

<건강 상식 2>

디스크 예방법

1.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흡연은 디스크로 가는 피의 흐름을 약하게 만들어 디스크를 노화시킵니다. 흡연자들이 비흡연자보다 더 많은 요통을 받게 됩니다.

2.물건을 바르게 드십시오.

물건을 몸에서 멀리 들수록 디스크를 더 많이 손상시키게 됩니다. 예를 들면 팔을 벌려서 1Kg의 물건을 든다면 12Kg의 힘이 들게 됩니다.

3.장시간 앉아있지 마십시오.

근무 중에 전화를 받을 때도 이따금씩 일어서고, 운전을 할 때도 잠시 차를 세우고 걸어보세요.

4.등이 편한 의자를 사용하십시오.

표면이 미끄럽지 않고 허리를 지지해 주며,팔걸이가 있는 의자이어야 합니다. 무릎이 엉덩이보다 약간 높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5.알맞은 체중을 유지도 중요.

정상인 보다 지나치게 나온 배의 체중은 신체의 평형을 깨뜨려 등에 힘을 주게 됩니다. 체중을 줄이고 신체를 튼튼히 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죠

6.산책, 자전거 타기, 수영을 즐기십시오.

등을 튼튼히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복잡한 운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점심먹고 산책하고 친구와 하이킹을 가거나,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면 등의 근육을 튼튼히 할 수 있고 여가도 즐기고 일석이조.<편집부>

<유머-2>

-짐든 아내-

자기들이 지금 신혼 여행길에 오른 티를 남에게 보이는 것을 수줍게 생각한 신부가 이를 숨기고 싶어한 나머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처럼 보이게 하는 무슨 수가 없겠느냐고 비행기 속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있고 말구." 하고 남편이 대답했다. "당신이 가방을 들고 가라구."

<구월의 시>

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 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 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윤동주>

<신앙 고백>

주님이 주신 삶

작년겨울 수능시험장을 빠져나오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부끄럽고 난처해 얼굴을 가리면서 빠져 나왔지만 하나님과 나만의 그 눈물은 그냥 그대로 자꾸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리석고 부끄러웠던 내 자신을 생각해 보며 그리고 "하나님 조금만 일찍 부르시지요" 라고 나혼자 중얼거리며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카톨릭을 30여년간 믿어온 아무 어려움 없고 평범했던 우리가정. 그러나 어머니의 사업실패로 시작된 우리 가정의 흔들림, 나에게 닥쳤던 지긋지긋했던 병마 그리고 큰 누님의 교통사고. 10년전 그러니까 1984년 1년을 재수하고 이대학 저대학 몇번의 고배를 마시며 인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학을 앞두고 갑자기 몸이 부어 오르고 소변을 전혀 못하면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가뜩이나 시끄럽고 어려웠던 집안에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단지 피곤해서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5kg이던 체중이 72kg까지 오르고 피부가 견디다 못해 틀정도까지 부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신증후군이라는 신장염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신장염으로 생각하고 약물로 체중만 떨어뜨리고 인천으로 올라갔습니다. 80년대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대학, 그리고 불규칙했고, 술, 담배등으로 무분별했던 대학생활.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도 고향 어머님은 학비와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던 고가의 약을 계속 부쳐주셨습니다. 6개월정도 쉬면서 치료하면 되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그것은 착각이었고 그때부터 무섭고 지긋지긋했던 나의 투병은 시작되었습니다. 1년, 2년, 3년..... 조금 괜찮은가 싶어서 다시 공부룰 시작하면 여지없이 아프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에 좋다는 병원 좋다는 약은 다 다녀보고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내과의사인 매형도 불가능하다면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계속 재발하는 병에 다 지쳐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습니다. 정말 막막했고 이렇게 까지 살아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할땐 정말 내 자신이 미웠고 변함없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다 미웠습니다. 그냥 그렇게 무의미하고 목적없는 세월만 보냈습니다. 친척, 이웃들은 저러다가 죽겠지 하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같은 인간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 이신데 딸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된 어머님의 오랜 친구분이신 이점재집사님. 그 분은 이러지 말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부탁 드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딸은 예수를 몰라서 잃었지만 친구아들인 나는 절대로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어머니와 나를 권면했습니다. 우린 이상하리만큼 아무 어려움없이 개종까지 하며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매일 병원에 다니듯이 매일드리는 2시반 예배에도 참석했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목사님께선 금식까지 하시며 기도해 주셨고 전도사님께선 매일 안수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분이 내 마음에 오시면서 이때까지 나를 괴롭혀 왔던 그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성경말씀처럼 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것이 변화되었습니다. 말하고 생각하는 가치관, 그리고 먹고 마시는것 까지 나에겐 감사와 기쁨밖엔 없었지요. 그후 나는 지금까지 교회에 살다시피 하며 청소하고, 운전도 하며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올 3월엔 신학교에 입학도 했고 지금은 교회 사무실에서 목사님을 도우며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요즘 학교와 교회일로 힘들고 어려운때도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내가 진 사랑의 빚을 생각합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던 집사님 권사님들. 개성이 뚜렷하고 부지런한 기도대장들이신 그분들. 그덕분에 내가 살아났고 그리고 이렇게 또 살아갑니다. 언제인가 여느때처럼 바쁘게 목사님을 모시고 병원심방을 다녀오면서 병원 안내책상 유리에 끼워져 있던 빛바랜 종이의 시(詩)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주님 저는 출세의 길을 위해 건강과 힘을 청했으나 당신은 제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일을 하고파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제게 보다 큰 선을 하게 하시려고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하게 살고파 부귀를 청했으나 당신은 제게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만인이 우러러 존경하는 자가 되고파 명예를 청했으나 당신은 저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로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홀로 있기가 외로워 애정을 청했으나 당신은 제게 형제를 사랑하라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제 삶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모든것을 청했으나 주님은 제게 만인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하는 삶의 길을 주셨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 청한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당신이 제게 바라던 그 모든것을 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ぱぱぱ 부산반석교회 이승룡

<유머-3>

<하나님의 창조 솜씨>

수지:아빠, 하나님이 아빠를 만드셨어?

아빠:그럼

수지:그럼, 나도 하나님이 만드셨어?

아빠:그렇고 말고

수지:하나님의 솜씨가 그 전보다 훨씬 좋아지셨나보다!

<병동 일지>

그 분을 알고 있다면

수술실에서 근무한지가 벌써 올해로 6년째! 1년 평균 5,000건 정도 수술하니까 6년째면 적어도 3만건 정도의 수술을 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환자가 한 명 있다. 약 4년전으로 그는 그 당시 27세의 청년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한 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급하게 절단수술을 해야했다. 절단수술은 직계가족의 절단동의서가 필요한데 그의 가족은 제주도에 살고 있었고 그 날 오는 비행기표가 없어서 가족이 올 때까지 계속 대기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수술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을 힐끔거리면서도 감히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다. 다만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 볼 뿐 . 그러던 그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 다리 안 자르면 안돼요? " 아!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젊은 청년의 인생의 허무를 보았기 때문이다. 수술은 끝났다. 잘려진 다리! 그의 인생도 동강났을까? 지금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젊은 날의 그의 인생은 다시 새롭게 태어났을까? 아직도 좌절속에서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아마 그는 두 다리 모두가 잘리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는 그 분, 구주 예수님을 알고 있다면.....(해성병원 수술실 김영희 간호사)

<유머-4>

치과에 찾아온 처녀

한 처녀가 이가 몹시 아파 치과 의사를 찾아가 보이면서 물었다. "선생님, 이 하나 빼는 데 얼마죠?" "만원입니다."

"뭐라구요? 눈 깜짝할 사이에 만원이란 말예요?" 그러자 의사는 처녀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아주 천천히 뽑아 드릴수도 있어요."

<광야의 소리>

서울 구경

옥황상제가 1960년대 초의 어느 날 김옥균을 불렀다. 김옥균이 바둑을 잘 둔다는 얘기를 듣고 한 수 겨루고자함이었다. 불려온 김옥균은 조건을 달았다. 그냥 두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저는 한국을 개혁하려다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지금도선진국이 되지못하고 있는 이유는 과학기술이 부족해서입니다. 바둑을 둬서 제가 이기면 뛰어난 과학자들을 한국에 내려보내 주십시오. 뉴튼, 아인슈타인, 에디슨, 갈릴레오, 퀴리부인, 다섯 명이면 됩니다." "자네는 욕심도 많네그려. 한 세기에 한 명 내려보낼까말까 한 천재들을 다섯 명씩이나 좁은 한국 땅에 한꺼번에 내려보내라니... 하지만 자네의 지극한 애국심이 가상하니 그렇게 하겠네." 이 말을 들은 김옥균은 열심히 바둑을 둬서 결국 이겼고 뜻대로 다섯 명의 과학자를 한국 땅에 내려보낼 수 있었다. 그는 머지않아 한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90년대 초반, 김옥균은 내려보낸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천리경으로 한국 땅을 내려다보았다. 먼저 뉴튼. 김옥균은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김뉴튼이 대학교수가 되어 있거나 연구소에서 근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천리경으로 보이는 김뉴튼은 국민학교 교사가 돼서 1학년 코흘리개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김뉴튼이 국민학교 교사가 된 사정은 이랬다. 그는 대학때 역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새로운 학설을 발표하기도 했고 교수들의 이론을 뒤집는 학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이론이 외국 학술전문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게 괘씸죄에 걸릴 줄이야. "감히 건방지게 교수들의 이론을 뒤집어?" 김뉴튼은 대학원시험에 떨어졌고 교수들이 추천서를 써주지 않아 연구소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국민학교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아인슈타인. 그도 역시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는 중국집 배달가방을 오토바이 뒤에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는 중고교 시절 수학과 과학은 한 문제도 틀려본 일이 없을 정도로 재능이 탁월했다. 그러나 국어와 영어, 기타 사회과목 점수가 형편없었다. 그 결과 삼수까지 했지만 매번 학력고사 점수가 중간에도 못 미쳤고, 그래서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 중국집 배달원으로 취직했던 것이다. 에디슨은 조금 달랐다. 그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생각했다. '음, 이 친구는 제대로 됐군.'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책은 법률서적이 아닌가? 박에디슨은 그동안 여러가지 획기적인 발명을 했지만 특허청에서 한번도 그의 발명을 받아주지 않았다. 특허 신청을 해도 "등록요건 미비", "담당자의 이해불가" 등의 이유로 처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에디슨은 '한국에서 먹고 살기 위해선 법률가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갈릴레오의 경우는 한층 더 심했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최갈릴레오는 불행하게도 북한에 태어났다. 그는 북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연구하다 그게 사실이 아님을 깨닫고 "반주체론"을 펴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리경에 나타난 윤퀴리부인은 봉제공이었다. 그 여자는 공부를 무척 잘했지만 취직을 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여학생이 자살까지 하는 판이니 그럴 만도 했다. 윤퀴리부인은 먹고 살기 위해 봉제공장에 취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리더스다이제스트 95 발췌)한국의 고질병들을 시사하는 하나의 우수개이야기이지만 뼈대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늘 이런 이야기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젊은이들이여 이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가지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자.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미래이리라!!!"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한은성전도사>

<유머-5>

<루이스 14세의 침대>

세계 골동품 경매장에서, 루이 14세의 초호화판 침대가 최고 가격에 낙찰되었다. 이것을 산 환상가는 집에 침대를 들여놓고 최고의 장식을 한다음 누워 보았다. 그런데 침대가 자기의 키보다 좀 작았다. 실망한 환상가는 파리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시오. 거기 경매장이오? 내가 방금 루이 14세의 침대를 경락으로 산 사람인데 그 침대가 내게는 좀 작아요. 그러니 미안 하지만 루이 15세의 것으로 좀 바꿔주시오...."

<사랑의 힘>

딸의 체온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시던 대학 시절의 은사가 한 분 계시다. 지방의 모대학에서 재직하시는 그 분은 지천명이 훨씬 넘는 나이에도 요즈음 젊은이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생활태도를 가지신 분이었다. 하루는 그 분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혹시나 교통사고 같은 불행이나 당하지 않았나 싶어서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병실 문을 연 순간 침대 위에 두 눈을 붕댈 감고 계신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 종한이 왔습니다." "그래, 왔구나. 아이구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되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빨리 나으셔야지요." 선생님의 병명은 '망막신경증'이라 했다. 두 눈을 수술하여 망막을 제거해야 한다는데 만약 수술이 잘못되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지난날의 패기는 남아있지 않은 듯 보였다. 선생님의 눈은 며칠이고 진전이 없었다. "이 나이까지 세상에서 볼 것 다 보고 살았으니 이젠 됐지." "아니, 선생님. 그런 말씀마세요. 이제 차차 회복되실 겁니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늘 간호할 사람이 붙어 있어야 했다. 물론 대부분 사모님이 병간호를 했지만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같이 모시고 고삼짜리 딸까지 있으니 잘못하다간 사모님까지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사모님이 하루 쉴겸 집안 일을 하기 위해 막내딸과 교대를 했다. 막내딸은 고등학교 일학년이었지만 아직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만큼 어른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 막내딸이 병실에서 하루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피곤에 젖은 그 딸은 졸음에 겨워 아버지가 누워 있는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며칠 후 망막제거 수술을 하는데 지금까지 별 차도가 없던 것이 뜻밖에 많이 호전되었다. 그 뒤로 빠른 속도로 완쾌되어갔고 며칠 있다가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길에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의사가 보기보다 상당히 회복이 빨랐다고 하던데요, 특별한 뭐가 있었습니까?" "있다면 있지." "그게 뭔데요?" 나는 궁금해서 다그치듯 물어보았다. "막내딸이 간호하던 날 있었지?" "예, 있었죠." "그 때 밤에 잘 데가 없으니가 내 침대로 올라와 잤잖아. 한참 자고 있는데 그 놈이 추웠던지 내 가슴팍으로 들어오데.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가슴으로 파고드는 딸녀석의 체온이 내 가슴에 닿았지. 이 어린 딸을 두고 두 눈을 못 쓸 생각을 하니까 눈이 번쩍 뜨여지데. 참 묘하지? 그 때 순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힘이 솟아난 것이."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 내 뇌리에 전파가 흐르듯 무언가 짜릿한 것이 느껴졌다. 퇴원하신 뒤 선생님은 삶의 의욕도 옛날보다 더 왕성한 듯이 보였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삶에서 육체적 고통이란 사랑의 힘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채종한 /국민은행 가족문예집 '까치둥지 속의 사랑이야기')

<삶의 지혜>

장수비결(長壽秘訣)

노인문제에 대한 권위와 신뢰를 자랑하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USC)의 노인노후생활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연구결과는 신앙생활하는 노인들이 건강한 노후를 보장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다음 네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째, 신앙을 가진 노인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미래에 낙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제주도 회복교회에서 목회하던 중 소천(召天)하신 목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가족들은 "축 환송. 박태린 목사 천국에 가시다!"라는 현수막을 크게 걸어놓고 승리의 찬송를 부르며 <천국 환송식>(장례식)을 거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천국 환송>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둘째, 신앙을 가진 노인은 질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니다."라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삽니다. 따라서 병중에서도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은 그 어느 치료책보다도 더 강력한 투병책이 되는 것입니다.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목회자와 노할머니와의 대화입니다. 평소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던 목회자는 어느 날엔가도 평상시처럼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목사관으로 들어가 누워 쑤셔대는 다리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열어보니 목회자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평소 뒷전에 조용히 와 앉아 있곤 하던 할머니 교인이었습니다. "목사님, 지금 아프시군요. 감사하고 계시나요?" 라는 할머니 물음에 목회자는 힘들여 대답하였습니다. "네. 지금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오 목사님, 바로 지금 순간을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말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칼처럼 목회자의 마음을 찔렀다고 후에 몸이 회복된 목회자는 이 일로 인한 은혜 충만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또한 세상의 약과 의사의 처치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가진 사람은 치료의 하나님을 바라고 치료의 광선을 간구하기 때문에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될 회복에 관한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셋째, 신앙을 가진 노인은 고독과 외로움을 믿음으로 해소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인이 고통받는 것 중의 하나가 고독과 외로움이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한국노인의 고독과 소외가 신세대와의 가치관의 혼재로 더 심각한 실정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노인은 이 외로움을 극복하고 고독과 소외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의 이름, 임마누엘(Immanuel)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마28:20).....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혹시 자녀에게 거부당하면, 이웃에게 늙고 돈없고 병들었다고 따돌림 받으면, 대신 친구되시고 마음이 따뜻하신 주님께 나가시면 됩니다. 그 분께 가슴에 맺힌 말들을 쏟고 눈물도 쏟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을 그 분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넷째, 신앙을 가진 노인은 위기와 어려움을 기도로써 극복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병들고 가난한 노인이라 할지라도 기도하는 노인에게는 그것이 혼자 지는 짐이 아니고 주님이 함께 동행해주시며 대신 져주시는 견딜 만한 것이 됩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께서 쉬게 하실 뿐만 아니라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아니하시며,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고난을 극복하고 통과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노인은 비단 자기자신의 노후생활뿐 아니라 자손들이 삶까지도 전능자의 돌보심을 받게 합니다. 노부모의 중보기도는 끝내는 자녀들을 감동시키고 자녀들로 하여금 "어머니 아버지는 너무 중요하신 분들입니다."라는 고백을 쏟아내게 만듭니다. 고달픈 삶에 시달리는 자녀들을 위한 노부모의 끊임없는 기도는 자녀들의 앞길을 형통케 만들기 때문에 노인은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십니다. 기도하는 노인이 되어 자녀들로부터 소중함이 인지되어질 때 노인은 더욱 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편집부>

<유머-6>

<삼각관계>

주일학교 공부시간에 사랑에 관해 배웠다.

선생님:철수야, 내가 사랑하고, 네가 사랑하며, 그도 사랑한다면 어떻게 되겠니?

철수:둘은 총에 맞아 죽죠

선생님:?? 왜?

철수:그렇게 삼각 관계가 깊은데 사고가 안 나겠어요?

<유머->

<예수를 믿으시오>

어떤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썼으나 좀처럼 멎을 줄을 모른다. 목사, 장로가 그 문제를 컴퓨터에 입력시켜 해결책을 얻기로 했다. 이윽고 컴퓨터에서 답이 나왔다. "예수를 믿으시오."

*."숲 속의 사과나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열려 있습니다. 1).함께 나누어 기쁨이 되며, 사회를 밝게 하는 사랑과 믿음에 관한, 그리고 소망스러운 이야기, 2)."숲 속의 사과나무"를 읽으시고 느낀 소감, 3).애플 퀴즈 정답을 보내주시면 저희 "숲 속의 사과나무"에 게재하고 가족으로 모시며 저희 교회 목사님의 설교집 "빛과 생명", "사랑의 향유" 한 권씩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의 모든 출판물과 정기 간행물을 무료로 계속해서 보내드립니다.각 병원이나 교도소 등 필요한 기관 단체에서 주문하시면 무료로 배부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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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호(1995.10)

차 례 --------------------

▒ 말씀의 샘 <삶의 열매-2>

▒ 생각이 있는 글 <큰돌과 작은돌-16>

▒ 건강 상식 <나의 건강비결-22>

▒ 사랑의 힘 <아아! 아버지-28>

▒ 시월의 시 <아빠의 기도-32>

▒ 광야의 소리 <지구가 단풍(?)들고 있다-34>

▒ 삶의 지혜 <시간을 다스려라-37>

▒ 가을의 양서 <안네프랑크의 불후의 일기-40>

▒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49>

▒ 애플 퍼즐 <56>

제6호 시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단풍이 붉을 때

<말씀의 샘>

삶의 열매

"(요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어느 조그마한 도시에 구두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바라던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 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내일 내가 너의 집을 방문하겠다." 다음날 아침 꿈을 깬 할아버지는 뛸듯이 기뻐하며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마련하는 등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벌써 정오인데...., 조금 늦게 오시려나?"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너무도 지저분한 거지가 들어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위해 깨끗이 청소를 해둔 집이 지저분해질까봐 잠시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배고픔에 지쳐 있는 거지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아프게 들어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기꺼이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가 돌아간 뒤에도 그는 예수님을 기다렸으나 밤이 늦도록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청소부 영감과 사과 장수 아주머니만 다녀갔을 뿐이었습니다. 구둣방 할아버지는 이들에게도 기꺼이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다시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나는 너를 세 번 찾아갔단다. 그런데 너로부터 세 번 다 후한 대접을 받았구나. 진실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의 열매를 맺는 자로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무화과 나무가 가시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또한 포도나무에서 엉겅퀴를 구할 수 없듯이 나무는 그 맺는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지만 다만 그 사람의 외적인 생활로써 그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외적인 생활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타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의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열매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까? 이러한 열매는 겉모습으로부터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롭게 된 본성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실로 의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지 않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므로 곧 찍혀 영원한 유황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시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렘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겔15: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15: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겔15: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겔15:4)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겔15:5)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치 않았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겔15:6)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지라."

위의 말씀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 심으셨는데, 그 포도나무가 악한 가지를 내고 들포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베어서 땔감으로 사용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들포도를 맺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 포도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그 은혜를 배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셨으며 이들은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 어두에서 "(요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참 포도나무"는 예수 자신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신 자신만이 참 이스라엘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소위 자기 선언(自己宣言, "내가 생명의 떡이다."-6:4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등 등)은 오직 예수만이 참 종교요 예수만이 참 진리되심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지가 되는 모든 성도들은 참 포도나무가 되신 예수님과 연합할 때만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타락한 포도나무입니다. 참 포도나무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구원(생명)에 이르는 길은 이제 타락한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니라 참 포도나무가 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뿐입니다. 어떠한 외적인 자격으로도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참 포도나무가 되신 예수님과의 친교만이 하나님(농부)과 바른 관계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과실을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과 지속적인 관계(친교)를 가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뿌리로부터 공급되는 수액과 영양분을 줄기를 통해서 공급받듯이 성도들 역시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서 생명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생수를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5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다시말해 믿음(빌3:8,9)과 순종(갈5:24)을 통해 그의 지체가 됨으로써(골1:18, 엡5:30)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의 열매, 사업의 열매, 권세의 열매, 명예의 열매, 선한 일의 열매 등 등 모든 열매들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참 포도나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없는 지식은 무용한 것입니다. 예수없이 배운 지식은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많은 것입니다. 예수없이 번 돈 역시 악용될 수 있습니다. 예수없이 돈 버는 사람이 나라의 경제를 망치는 수도 있습니다. 예수 없이 다스리는 권세는 국가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우시는 나라가 영원한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예수 없는 것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예수 없는 사람들의 출세와 성공, 번영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추수 때에 보면 빈 껍데기뿐입니다.(시 73:1-20)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아무리 유익한 것일지라도 다 해(害)로 여겼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예수 믿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았어도 잘 되었다고 기뻐하지 마십시오. 빛좋은 개살구같은 것입니다. 예수 믿고 말씀대로 했더니 더 힘들고 어렵고 별로 좋아진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비록 적고 작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말씀에 대한 순종의 생활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서 볼 때 축복인 것입니다. 어느 어촌의 조그마한 배들이 고기잡이를 떠났습니다. 이 어촌에는 고기잡는 일 외에 다른 직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질 못했습니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설상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 아이가 집을 보다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해서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다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싸우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는 중에 배가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풍랑을 이기며 돌아온 것입니다. 아침이 밝아왔고, 어젯밤의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불끄는 데 누가 가장 애썼고, 풍랑은 또 어떠했느냐, 얼마나 서로가 힘이 들었느냐 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어느 어부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던 불이 보여서 그것을 바라보고 목표를 정해서 결국 집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 나지 않았으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고 두 손을 모았다고 합니다. 집에 불난 것이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고 실패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해도 예수 없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었다해도 예수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인생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인생의 추수 때가 있습니다. 이 한 낫을 들고 인생들을 추수할 때(심판의 때) 알곡들이 다 되어 있기를 축원합니다. 참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님께 끝까지 남아있고 머물러 있고 붙어있는 사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 열매를 더 풍성히 맺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치기하는 아픔이 있다해도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본문 2절>) 끝까지 말씀대로 살며, 성령을 따라 행하시고 사시는 믿음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영적인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신을 괴롭히는 교인 하나 때문에 새벽마다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 다음과 같은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종이 저 사람 때문에 괴롭고 힘들어 목회를 못하겠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종아, 그 사람을 꼭 내보내야 되겠니?" "그렇사옵니다." "그 사람은 갈 곳이 없다. 내가 구원시켰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교회로 가야 되는데 네가 맡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 이 종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주여,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시옵소서." "아직 때가 안 되었다." "그러면 그의 버릇을 고쳐 주시옵소서. 그 버릇 때문에 이 종이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 사람 버릇은 못 고친다." "주여, 주께서 왜 못 고치옵니까?" "나도 못 고치기 때문에 내가 죽었다. 나도 그 사람 못 고치겠기에 내가 대신 십자가에 죽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흘린 피로 덮어서 심판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데려갈 것이다. 너도 고칠 생각 하지마라. 나도 못 고치는데 네가 왜 고치려고 하느냐? 사랑하는 종아, 그 사람 버릇 고치려고 하면 심장이 굳어질 것이다. 그리고 명대로 못 산다. 네가 죽어 내 곁에 오는 것은 좋지만 그 사람 버릇 고치다가 와서야 되겠니?"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책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종아, 그 사람 버릇 고치려고 하지 마라. 버릇 못 고친 채로 내가 데려갈 것이니 너는 조용히 참고 기다려라. 네가 그 사람 구원시킬 것도 아니고, 또 천국으로 데려올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벧후1:4)........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1: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벧후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신의 성품(性品)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마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가 있어야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들의 열매들만 요구하지 말고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열매,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 영원한 축복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게 될 때 영적인 영원한 성령의 열매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십니다.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지는 우리 인생들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농부가 그 가지를 제해 버리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 가지를 깨끗케(전지,剪枝)하십니다. 예수를 믿으시므로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들이 되기 위하여 그 나무의 수액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그 분의 말씀과 성령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어 삶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인생의 알곡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목사>

<생각이 있는 글>

죄없는 자 먼저 돌로 치라!

(요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요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썸머타임 킬러(Summer Time Killer)! 이것은 오토바이 맨으로 분장한 크리스 밋참 주연의 영화제명이다. 백주에 시장 한 복판에 나타난 창백한 청년 뫼르소는 갑자기 품속에서 45구경 리벌버 권총을 빼들고 태양을 향해 연속 3발을 발사한다. 태양이 관통상을 입고 즉시 어두워진다. 청년은 곧 현장범으로 군주에 의해 체포되어서는 공판정으로 간다. 변호인 없는 피고에 대해 간단한 사실심리와 검사의 논고가 있은 뒤에 "무모한 행동으로 태양에 전치 1주의 상처를 낸 썸머타임 킬러에게 극형을 언도할 것"을 주장한다. 피고가 최후진술을 한다. "하늘과 바다와 태양은 당신들의 허영의 시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자! 진정한 썸머타임 킬러는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 이 소리에 격분한 방청석에서 야유와 함께 소주병들이 날아와 청년을 피투성이로 만든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청년은 또 한번 외친다. "이 중에 죄 없는 자가 소주병을 날려라!" 한 낮에 외간 남자와 통정을 나누던 여인이 현장에서 붙들려 예수의 공판정으로 끌려 왔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기 위해 군중들은 저마다 돌을 움켜쥐고 있었다. 율법없는 예수가 되든지, 사랑없는 예수가 되든지 하는 진퇴양난의 자리에 주님은 말없이 몸을 굽혀 땅바당에 글을 쓰셨다. 의기양양하게 윽박지르는 군중들을 향해 일어서신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그리고는 또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글을 쓰셨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남녀노소 모든 군중들이 돌을 버리고는 하나 둘 사라졌다. 간음한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을 던지지 않으셨다. 그녀를 정죄치 않으셨다. 어떤 면에서 이같은 예수님의 행위는 자신을 죄인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 한 것이다. 나는 의롭다고 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인을 사랑하셨으므로 스스로 죄인의 위치에 앉으신 것이다.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를 사랑할 수 없다. 같이 낮아져야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감상적이거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을 사랑하려면 나도 죄인과 동일시되어야 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세상의 타락을 정죄한다. 한 순간의 죄의 올무에 갇혀버린 형제와 자매들을 향해 차거운 시선을 던지곤 한다. 배신자들을 마음껏 비웃는다. 심지어는 하나님에게 이미 용서받은 신실한 회개자를 향하여서도 따뜻한 마음을 건네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깨끗한가? 우리도 공범자가 아닌가? 그들은 드러난 죄인들이고, 우리는 숨은 죄인들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두 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앞의 여인에게는 커다란 돌을,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들을 가져오라고 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다. 큰 돌을 들고 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말한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으나, 많은 작은 돌들은 원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도로 갖다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져온 너는, 한때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에 겸허하게 견디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잘 것 없는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기에 버릇이 들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면서 자기가 더욱 죄에 깊이 빠진 것을 모르고 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죄인을 용서해야 한다. 사랑으로 감싸고 덮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사함받는 죄인"들일 뿐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어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절)는 전제하에 사죄를 선언하시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앞에 나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편집부>

<건강상식>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건강에 대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건강에 좋다고 만하면 무슨 약이든 음식이든 돈을 아끼지 않고 먹으려고 하는 것이 근래 세인들의 풍조인 것 같다. 건강에 대하여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생활하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건강이 유지될 수 없었던지 3년전 뇌혈전이라는 무서운 병에 들고 말았다. 이렇게 병에 걸리고 보니 건강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나는 과거와는 달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하여 일구월심 고심하게 되었다. 병들고 보니 "천병만약"이라더니, 약도 많고 유명한 의사도 많고, 치료방법도 무수하였다. 며칠동안 건강상식을 가진 유명한 의학박사에게 건강세미나도 받고, 건강에 대한 참고도서도 여러번 구입해서 읽었다. 그 외에 무수한 약과 유명의의 치료를 받았으나, 그 당시 약간의 효과만 있었을 뿐 건강의 완전한 회복은 얻지 못했다. 이러한 3년 동안의 투병 경험을 통하여, 나 자신 나름대로의 독특한 건강비결을 체득하여 나의 병은 점차 호전되어 갔으며 남은 여생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자신감과 지혜를 얻어 감히 "나의 건강비결"을 세상에 소개하게 되었다. 성경 창세기 1장 29절에서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뜻인 성경대로 사는 방법이 마땅한 일이며, 건강방식도 여기에 근거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건강에 대한 나의 비결은 식생활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먹고사는 저 공중의 새가 심장병으로, 저 산에 뛰어다니는 노루가 간암으로 쓰러지는 일은 없다. 공연히 인간의 짧은 지식을 가지고 식품을 가공하고 또 방부제, 표백제, 조미료를 가미하여 건강에 유해한 독성분을 함께 먹고 마시는 격이 되었다. 인간의 주식인 쌀을 살펴보면, 부드럽고 보기 좋게 만든다는 것이 유익한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 당분이 풍부한 쌀눈을 제거하게 된 결과를 초래했다. 또 야채생식은 비타민을 손실없이 섭취할 수 있고, 세포와 혈액이 깨끗해지고, 알칼리성체질로 전환시켜주고, 식물성 섬유가 함유되어 있어 장을 자극하여 운동을 촉진시키고, 변비 예방등 건강유지에 매우 효과적이다. 약(藥) 자라는 글을 풀어 보면 풀초(?)변 밑에 즐거울 락(樂)자를 붙인 것을 알 수 있다. 풀이 즐겁다는 것은 다시 말해 풀이 전부 약이라는 것이니 즉 생야채가 약이라는 말과 같다. 식수로는 자연수(生水)가 좋다. 끓인 물은 물의 기능이 죽은 물이며, 생수는 살아 있는 물이므로 생수를 많이 마시면 장안에 있는 모든 독소가 배설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생수는 산상에서 솟아나는 자연수를 이름이다. 둘째 비결은 운동이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이마에 땀을 흘리고 활동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몸은 쓰지 않는 곳에는 피가 돌지 않고 따라서 영양분의 보급이 잘 안됨으로 노쇠하고 굳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더 움직여야 건강하게끔 되어있으니 우리는 죽을 때까지 몸을 움직여 살아 갈 운명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남아도는 지방을 제거하고, 또 적혈구의 증가를 가져와 우리 몸을 재생하게 한다. 여러가지 운동방법이 있으나 나는 운동기기와 상대방이 없이도 혼자서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는 등산이 최고인 것 같다. 첫째, 등산은 흙과 가까이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다는 말씀은(창2:7) 흙을 가까이하는 것이 사람의 체질에 부합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둘째, 등산은 곧 산림욕이다. 숲사이 오솔길을 헤쳐감으로 자연적인 산림욕이 되는 것이다. 셋째, 등산은 일광욕이기도 하다. 일조시간이 짧은 나라에서 볼 수 있듯이 일광욕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넷째, 솟아오르는 생수를 그대로 마실 수 있다. 우리나라 산은 생수가 솟아나지 않는 곳이 없다. 산상에서 솟아나는 생수야말로 진짜 생수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우리인간들에게 관리하도록 맡기셨다. 그러므로 자연과 더불어 활동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셋째, 건강에 대한 나의 비결은 마음의 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잠언 17장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였다. 현대의 대부분의 병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한다. 마음이 즐거운 생활을 하면 엔돌핀(Endorphin)이란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되어 우리의 체내에 면역기능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마음의 즐거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여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첫째, 믿음을 갖는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장1절)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둘째, 염려를 주께 맡겨라.(베드로전서 5장7절)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선하게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셋째,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장6∼7절) 연약한 우리는 세상 우수살이를 해결할 수 없은즉 하나님께 아뢰어 해결을 받아야 한다. 넷째,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디모데전서 6장7∼10절) 물욕을 가진 자는 오히려 시험과 올무에 빠져 멸망을 자초할 뿐인즉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범위 안에서 만족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장34절)고 기록하고 있다. 아득한 장래 일로 걱정에 휩싸이는 일없이 당일의 괴로움은 그것을 마쳐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개인적인 미흡한 방법이나마 나의 건강비결 세가지 방법의 소개를 마친다. 이런 방식으로 3년쯤 계속한 나의 건강상태는 뇌혈전으로 한쪽 신체가 조금 불수하던 것이 회복되어 가고 있고 일체의 다른 병도, 감기몸살도 앓은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고귀하게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섭리와 질서대로 잘 관리한다면 병에 걸리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이 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저항력이 있도록 창조되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의료보험 연합회 체험수기 중에서 요약 발췌)

<사랑의 힘>

아아, 아버지!

결혼 후, 세 번째 가는 대부도 여행이었지만 아내는 그런 광경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 세 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하고, 다시 배가 늦게 온다는 소식에 투덜거리며 잠 못 잔 것을 아쉬워하고, 일곱시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덜컹거리는 트럭에 실려 나루터에 나왔을 때는 3일이나 폭풍으로 끊겼던 배가 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법석대고 있었다. 표를 사기 위해 아우성, 배를 타기 위해 아우성. 정원 240명만 태우고 나면 매정하게 기적을 울리며 떠나는 연락선임을 잘 아는 섬사람들은 검표원의 욕을 먹어 가면서도 서로 먼저 타려고 밀고 당기고 수라장을 벌인다. 까딱 잘못하면 철책도 없는 방죽 위에서 시퍼런 바다로 밀려들것만 같다. 철렁거리는 파도, 싸늘한 겨울 바다! 두꺼운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그 바다 위를 연락선은 간다. 참으로 어려운 여행길이다. 아무리 멀어도 기차나 버스로 가는 육지길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도 곧 태연한 얼굴이 되어 배의 갑판에 쪼그리고 앉은 섬의 촌로들, 어린 아이들, 선원들. 여기서도 삶의 한 단면을 본다. 바다는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고 잔잔하기만 하다. 흰 얼음이 바다를 가로질러 멀리 거대한 섬처럼 떠 있다. 희끗희끗한 물새들은 그 위에서 잠시 쉬었다 가고....배가 지나며 일으킨 물결 때문에 배가 하얀 물새는 깜짝 놀라 뛰어오른다. 풍파 많은 세월을 잘도 살아오신 아버지, 아버지와 살았던 햇수가 손꼽을 정도지만, 나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다. 내가 구원 받은 후부터 그렇게도 간절히 소원했던 아버지의 구원. "아버지, 저를 따라 하세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예요. 아버지의 마음을 여시고 저를 따라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 구원받는 거예요." 아버지께 그런 간청을 드렸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뵐 때마다 내 가슴 속에 가득가득 차 있다가 튀어나오는 말이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아버지 사랑해요. 전 아버지가 구원 받으시기 원해요. 아버지가 천국 가시는 일 외에 제가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선물은 아무 것도 없어요. 아버지..." 나의 진실을 아버지는 받아들이셨다. 풍파 많은 인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인생 경험보다 어린 자식이 품고 있는 확신과 사랑의 뜨거움이 얼어붙은 아버지의 마음을 녹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머뭇거리며 시종 어색해하면서도 아버지는 그 꺼칠한 손을 내게 맡긴 채 영접 기도를 따라 하신 것이다. "주 예수님!"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아아,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대부도에 계신 나의 아버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섬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육신의 아버지를 구원하여 주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이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이 겨울 방학. '대부도여, 안녕! 나를 많이도 울게 했던,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을 섬마을이여. 안녕!아버지, 안녕히 계십시오! 이제 얼마 안 남은 당신의 인생. 감기에 얼굴이 붓고, 관절염에 시달리고, 당뇨병으로 물을 한 사발씩 잡수셔야 하며, 어둡고 침침한 눈과, 해소 기침으로 말할 수 없이 고생스러운 육체를 갖고 계시지만, 마음과 영혼 위에 평안을 가꾸시다가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지 사랑해요! 하늘의 아버지, 땅의 아버지, 두 분 다...... 안녕이라고 말하려니 눈물이 나오는군요. 아버지를 구원해 주신 아버지. 정말 감사해요.' (신상언의 사랑! 그렇게도 끝이 없는 이름이여 中에서)

<10월의 시>

아빠의 기도

서정윤

신이여, 나의 아이들을 지켜 주소서.

내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의 몫으로 남겨두지 마시고

당신이 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주소서.

그가 홀로 쓸쓸해하며

들판의 돌과 바람을 벗하며

놀고 있을 때, 신이여

당신의 바쁜 일이 많을지라도

그의 외로움을 돌아보시고

결코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믿게 해 주소서.

먼 옛날

내가 길을 가다 넘어졌을 때

당신이 손 내밀어 일으켜 주신 것처럼.

내 흙장난에 지치고 졸음에 겨워

엄마를 기다릴 때, 당신은

나를 업고 달래며 재워 주셨지요.

어쩌면 나의 아이들이

당신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향해 등돌리지 마시고

그들의 투정마저도 나의 어린시절처럼

안아 주소서.

당신이 아니면 내 아이들은 언제나 한쪽 담모퉁이에서 울고 있을 겁니다.

<광야의 소리>

지구가 단풍(?)들고 있다.

뜬금없이 지구가 단풍이 든다는 말을 왜 하는가! 가을이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벌써 내장산, 그리고 강원도 산골엔 단풍이 들고 있다.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한국의 강산을, 그리고 세계에 자랑할만한 한국의 가을 하늘을 언제까지 만끽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그림은 예전에 가졌던 푸른색보다는 여러 군데 구멍이 난 부분이 노랗고 빨간, 그야말로 단풍을 연상케 한다. 환경오염이라는 거대한 '썰렁군'이 지구를 단풍들게 만드는 것이다. 73년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동일한 유형의 신체장애아 90명이 출산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은 왼쪽 팔꿈치 또는 손목 아래부위가 없는 기형아들이다. 이러한 장애아의 출산을 조사한 결과 대기와 토양오염이 최악에 달한 공단지역에서 수태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러시아 전역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10%가 공해로 인한 기형아거나 선천성 불치병을 갖고 있다는 보도도 덧붙여서 밝혔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사건이 단지 러시아라는 나라에 머무는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피부로 절실히 느낄 것이다. 이 환경오염은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계속되는 바다의 오염으로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적조현상이 온 한반도 바다를 뒤덮고 있다. 또 갑작스럽게 전염병이 돌고 가을이 와도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가 왔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기오염의 40%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불어온 것이라고 한다. 지구전체가 연대적으로 이 상황에 대처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내리신 첫 명령은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가장 첫번째 임무가 바로 이 주님의 피조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첫번째 위치에 둘 만큼 이 사명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시고 계시며 이를 잘 감당하지 못할때는 인간에게 큰 위험이 있을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임무이다. 요즘 들어서는 의식있는 사람들에 의해 환경을 살리는 운동이 부쩍 늘고 있지만 몰지각한 인간들에 의해서 이러한 노력은 허사가 되기 일쑤이다.

하나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자각하라! 그네들이 흘려버리는 폐수가 그들의 아이들이 마시게 되고, 굴뚝의 검은 연기로 인해 그들의 손자들이 괴로워 할 것을..... 유조선 제1유일호가 또 침몰하였다. 이번 사고로 또 얼마만큼의 생명이 죽어갈지 안타깝기만 하다. (한은성 전도사)

<삶의 지혜>

시간을 다스려라

현대인들은 바쁘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린 아이들조차 바쁘다. 공평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이라는 선물-자신의 능력으로 시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생명과 함께 거저 받았으므로-을 주실 때 하루의 시간 분량을 24시간으로 주셨다. 어느 누구도 "나의 하루는 내 맘대로 늘려 쓴다!"라고 말 할 수 는 없다. 이 한정되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해도 과언은 아닌데,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에 대해 깊은 회한을 씹고 싶은 사람도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시간'이라는 신의 선물을 최대한 유익하게 잘 사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 알맹이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그것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라(창1:28)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시간의 노예가 되는 것 역시 그 분의 뜻이 아니다. 시간은 생명이 있는 날 동안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유익함을 베풀라는 목적 아래 우리에게 임시로 맡겨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시간' 이라기 보다는 '내게 주어진 시간' 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먼저,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을 알자.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의 리듬이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르므로 어느 때에 무엇을 해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기 다르다.그리고 계획을 세우자. 예산 없이 지출 하는 돈이 낭비 되기 쉽듯이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엉뚱하게 낭비되기 쉽다. 무엇보다도 계획에 따라 시간 사용하는 훈련을 쌓자.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우리는 종종 대수롭지 않은 일에 필요이상의 시간을 소모하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시간 사용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6,17)" 가을이 한껏 여물어 있는 이 때에 자칫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일이 없도록 긴장하자. 그리고 앞으로 주어질 모든 시간들을 후회없이 채워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보자! (청년부 장옥순)

<가을의 양서>

안네 프랭크의 불후의 일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소녀가 오십년 전에 히틀러가 만든 죽음의 캠프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후세에 남긴 일기는 아직도 전세계의 수백만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프린젠그라흐트街 263번지의 뒷쪽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이 빈 이층 짜리 건물에 조그만 방이 4개 그리고 다락방이 있다. 나치로 부터 몸을 숨기기에 필사적이었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가고 없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 안네 프랭크의 목소리가 여전히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다. 두 가정과 의사인 프리츠 페퍼를 포함해 모두 8명이 이곳에 25개월간 갇혀 지냈고, 이들은 잠이 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랬고, 공포로 찌들린 한없이 지루했던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안네는 결코 굽히지 않았었다. 나는 여전히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진실로 마음이 선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혼돈, 고통과 죽음이라는 토대 위에 나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전세계가 천천히 황무지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다가오는 천둥소리를 듣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웬일인지 이 잔인함들은 사라지고 평화와 고요함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안넬리제 마리에 프랭크는 1929년 6월 12에 독일 메인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그녀의 유태인 일가가 대대로 살았던 곳이었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랭크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육군장교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후 독일의 재난을 유태인들에게 돌리자,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첫 해에는 안네는 행복했었다. 안네는 쾌적한 교외에 살면서 독일에 있었던 일들을 잊을 수 있었고 점점 네덜란드인처럼 자랐다. 안네의 언니 마곳은 안네보다 세살이 많고, 똑똑하고 예뻤다. 안네는 재치와 매력으로 인기가 있었다. 1940년 5월 독일군대가 중립국인 네덜란드를 급습했다. 경찰은 유태인을 검거하기 시작했고 안네와 마곳은 1941년에 유태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해야만 했다. 이듬해 4월 유태인들은 옷에 노란 별을 차고 다녀야만 했다. 1942년 6월 12일 안네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안네의 13세 생일날 얇은 일기장을 선물했다. 처음엔 학교생활 이야기가 많았으나, 일주일 만에 다음과 같이 썼다. 6월 20일. 유태인들은 자전거로 바꿔야 했다. 유태인들은 전차를 타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차조차도 타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태인들은 오후 8시에서 아침 6시까지엔 외출이 금지되었다. 유태인들은 오후 8시 이후로 정원에 나가 있는 것이 금지되었다. 안네의 아버지는 프린젠그라흐트街 263번지의 다락방 아래에 있는 사용하지 않았던 방에 가족들을 숨기기 위해 준비를 해 왔었다. 일요일마다 오토는 가사도구, 가구와 음식이 든 캔 상자들을 비밀별채로 몰래 옮겼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고용인이었던 요아네스, 빅터와 두명의 젊은 비서들인 밉과 벱을 신뢰했다. 7월 5일 일요일. 며칠 전에 아버지께서 숨어 지내는 것에 대해 말하시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아주 심각하게 말씀하셔서 겁이 났다. "안네야, 무서워마라. 단지 네가 할 수 있는 동안 즐거운 생활을 즐겨라."고 말씀하셨다. 아! 가능한 오랫동안 이 침울한 말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안네가 이 내용을 쓴지 몇 시간 후에 16섯살난 마곳 프랭크가 수용소에 다음날 오후에 옮겨져야한다는 비밀경찰의 소집명령이 전달되었다. 더이상 이사를 뒤로 미룰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 프랭크의 전 가족은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 아빠, 엄마 그리고 나는 쏟아지는 비 속으로 걸었다. 우리는 각각 갖가지 물건이 든 책가방과 쇼핑백을 들었다. 안네는 맨 처음에 자신의 일기장을 챙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걱정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졌고, 얼마 후 위험에 처한 오토의 동업자 허먼부부와 15살난 아들 피터가 같이 살게 되었다. 7월 11일. 좀 이상한 하숙집에 있는 것 같았다. 습하기는 하지만, 이 이상 폴란드에서 숨을 수 있는 더 안전한 장소는 없다. 침실 위로는 휑한 벽밖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의 영화배우 사진집을 가져다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사진들로 벽을 장식할 수 있었다. 좁은 방은 안네와 마곳이, 부모님은 그 옆방을 사용했다. 펠스에서 온 허먼씨 가족들은 위층의 두방에 있었다. 특별히 회전하도록 만들어진 책장은 비밀별채로 향하는 단 하나의 입구를 숨겨주었고 모든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봉쇄된 작은 우주 안에서는 요리할 때나, 쓰레기 처리시에, 또 화장실 이용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해야했다. 낮에는 창고 종업원이 들을까봐 속삭이듯 말을 했다. 그들은 스타킹을 신고서 걸어다녔다. 그것은 아주 유용했다. 1942년 여름이 지났다. 11월에 밉은 자신의 주치의사 프리츠 페퍼가 숨을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곳은 부모님과 방을 같이 썼고, 곧 안네는 새로운 사람과 방을 같이 썼다. 어두워지면 선하고, 죄가 없는 사람들이 죽음으로 행진하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줄을 지어서 걷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따스한 침대에 잠자는 것이 죄라도 지은것 같다. 세상에 거드름을 피우며 다니는 가장 잔인한 괴물들의 손에 나의 친한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유태인이기 때문이라니!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이 사실들에 대해 쓰지 않겠어. 내 생각들 때문에 악몽을 꾸게 되는 것같다. 일기장을 다 쓰자 밉이 쓰지 않은 종이와 회계장부를 가져다 주어서 일기를 계속 쓸 수 있었다. 일기는 안네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해주었다. 비록 자신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날개를 빼앗긴 새와 같고 어두운 새장 안에 내몸이 던져진 것 같다. 내가 단순히 즐거움이 절실히 필요한 십대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처음엔 안네는 15살난 피터를 퇴짜놓았다. 수줍어하고 촌스러운 소년은 교제하기에 즐거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1944년 봄엔 안네는 거의 15살이었고, 곧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은 종종 다락에서 만났다. 그곳은 창문이 있어 파란 하늘과 초록빛 개암나무와 바람에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볼 수 있었다. 4월 16일. 어제 있었던 데이트를 기억해두자. 어떤 소녀들에게든지 첫 키스는 기억할 만한 것이 아닐까? 그 후에, 아버지께선 내가 자주 위층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셨지만 나는 피터와 있는 것이 좋다. 난 그를 신뢰한다. 안네는 책을 두루 읽었다. '아! 여전히 찾아서 배울만한게 많구나!'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근거해서 The Secret Annex(비밀별채)라 불리는 책을 쓰길 갈망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야! 나는 내가 쓸 수 있다는 걸 알아 . . . 나는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가 살아가길 원해!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이 재능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이유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내속에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기에! 1944년 6월 오전 8시. BBC방송은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했음을 알리자 이 희망의 전율이 비밀별채에 넘쳐흘렀다. 올 해는 승리와 자유의 해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새학기에 학교에 돌아갈 수 있을까? 며칠이 지난 6월 12일 안네는 15세 생일을 맞이했다. 8월 4일 따스한 금요일 아침. 그들이 숨어 있은지 761일이 지난뒤에 끝이 찾아왔다. 10시에 프린젠그라흐트街 앞에 차 한대가 멈춘 후 몇 명의 사복경찰과 총을 꺼내든 독일 제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 총을 가지고서 빅터를 위협해 위장된 책장으로된 문을 열도록 했다. 안네 가족들과 펠스에서 온 가족들과 페퍼의사가 체포되었다. 두명의 비서들, 밉과 벱은 오후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별채에 올라갔다. 그곳은 난장판이었다. 밉은 마루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기 시작했다. 곧 돈과 보석에 비해 훨씬 더 귀중한 가치가 있는 안네의 일기장을 찾았다. 한 달 후에 여덟 명의 프린젠그라흐트의 도망자들은 네델란드에서 아우쓰비츠로 가는 열차에 실렸다. 남자와 여자는 따로 떨어져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안네와 마곳은 독일 중부의 베르겐 벨슨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마곳이 발친티푸스에 걸리자, 안네는 끝까지 마곳을 보살폈고 1945년 영국군이 수용소에 들어오기 몇 주 전에 언니를 따라 영원한 잠을 잤다. 8명의 은신자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 오토 프랭크는 1945년 1월 소련군대에 의해 아우쓰비츠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 마침내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되돌아왔다. 안네의 죽음을 들었을 때, "여기 당신 딸이 당신에게 남긴 유산이어요."라며 밉은 오토에게 안네의 일기를 주었다. 그가 그것을 다 읽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 년 후에 그것은 안네가 붙인 "비밀 별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안네의 소망은 이루어 졌다. 죽음을 직면해서도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아간 안네의 일기는 출판되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떤 사람은 안네의 집의 방명록에 "내 평생에 단 두권의 책을 가질 수 가 있다면, 그건 성경책과 안네의 일기가 될 것이다." 라고 썼다. 또 안네 프랭크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런던에서 온 한 미국 대학생은 "안네는 이곳에서 죽음에 맞섰고 그리고 여전히 일기속에서 웃고 전쟁이 끝난 삶을 꿈꾸었다. 당신이 언제 어떻게 죽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한 것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선하다고 믿고 있다. 믿고, 바라고, 꿈꾸는 것에 대해 결코 확신을 버리지 않았던 안네. 그녀는 오늘 이 어두운 세상의 촛불로서 남아있다.(리더스 다이제스트 영문판 9월호 中 요약 발췌 번역: 대학부 김정희-울산대학교 영문과)

<문화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김문택 -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보석, 반지, 시계, 양복, 구두, 단독주택, 아파트, 야채, 고기, 밥, 떡볶이, 만두........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고 어떠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우리는 가끔 이러한 질문들을 하며 삶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왜냐하면 다른 것들은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만 음식이 없으면 당장 생사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고로 사람들은 매일매일 음식을 먹는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또 먹고, 더 먹고...... 여하튼 인간은 먹는다,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는 육신만을 갖고 있는 존재인가? 그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행동을 하고 웃고 울 수 있으며,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받을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분명히 밥과 고기와 야채를 좋아하는 육체적인 존재만이 아닌 혼과 영을 가진 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과 혼과 육은 각각 무엇을 섭취하고 사는 것일까?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매일 섭취하고 있듯이 물질적인 음식을 먹고 산다. 그리고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그러면 "혼"(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신"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한다)은 무엇을 섭취하고 사는 것일까? 우리의 "혼"은 "문화"란 것을 먹고 산다. 한사람이 어떠한 종류의 문화를 섭취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과 행동양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문화는 어떤 종류의 것일까? 그것은 단연 음악, 그 중에서도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래"들일 것이다. 음악은 기계화와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주 쉽게 우리의 귀를 침범한다. 일을 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그냥 흥얼흥얼하게 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문화의 침투는 과연 심각한 것일까 아니면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그까짓 흥얼거리는 노래가 무얼 그리 심각하며 대수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이번호부터 연재되는 글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하며 우리가 접하는 세상음악과 그 속에 숨겨있는 의미와 음모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음악의 탄생과 그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자.음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중요한 수단중의 하나이다. 즉 찬양이 음악의 목적인 것이지 사람을 위해 음악자체를 즐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43:21)또한 에스겔서 28장 12절-19절에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창조하신 목적과 창조, 그리고 타락하는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천사장인 루시엘(Luciel)을 만드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직분을 주고 소고와 비파를 예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루시엘(Luciel)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재능들과 영광에 대하여 욕심을 갖게 되고 결국 그것들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죄악을 저지르게 되어 더이상 천사 루시엘(Luciel)이 아닌 루시퍼(Lucifer) 즉 "사탄"으로 타락하여 영원한 흑암에 갇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전에 있었던 최초의 타락인 것이며 이후 사탄은(요8:44)-살인자,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요3:8)-범죄자(요일 5:19, 3:12, 2:13)-악한 자(살후2:3)-불법자등등 다양한 종류의 이름을 갖게 된다. 이름과 명칭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 이름에 따라서 또는 명칭에 따라서 혹은 그 삶에 따라서 이름과 삶이 변화한다. 사탄의 타락후 사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려는 악독한 일을 자행하게 되었으며, 첫 계략으로 아담과 하와를 자신과 같이 범죄케 만들어 타락시키고, 그 사건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인간들을 타락의 길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면서 사탄이 대중문화를 더욱 더 사용하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흩트려 놓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을 교묘히 이용해 인간을 사망으로 몰아 넣고 있다.이러한 것은 비단 근대, 현대에서 비롯된 일들이 아니라 사탄의 타락후로 부터 계속되어진 일이며 그 방법은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변형된 모습들로 나타난다. 이제 예전의 "팝 뮤직(Pop Music)"과 오늘날의 "팝뮤직, 뉴에이지 음악(New Age Music)"등 여러가지 현대 대중음악과 그것의 음모와 계략, 그리고 그에 따른 폐해를 알아보도록 하자.현대 대중음악이 어떤 종류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살펴보자면 현재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음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음악의 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팝음악은 처음에 백인음악인 "컨츄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과 "흑인음악(Black Music)"으로부터 시작되며, 흑인음악의 변형으로 "블루스(Blues)"와 "재즈(Jazz)"가 발생하게 된다. 그후 1950년대 초에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이 접목되어 "로큰롤(Rock'n Roll)"이라는 형태의 음악으로 변형되어 팝음악계의 커다란 이정표를 세우게 되며, "로큰롤(Rock'n Roll)"은 시대상황과 맞물려 여러가지 종류의 팝음악을 탄생시키게 된다. "히피음악(Hippie Music)" "사이키델릭 사운드(Psychedelic Sound)" "하드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디스코 음악(Disco Music)" "펑키 음악(Punk Music)" "뉴웨이브 음악(New Wave Music)" 그 외 "랩음악, 레게음악, 하우스 음악, 마이에미 록....." 등등 많은 쟝르의 세상음악이 나타나게 되었다.자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세상의 음악을 우리가 왜 조심하고 경계를 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팝음악의 가수들과 제작자)의 사고방식및 사상, 그리고 가사내용이 "불순과 아픔과 상처 그리고 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간혹 있기는 하다) 팝음악속에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죽이려하는 음모가 숨어있다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아마도 "설마" 하 시는 분들도 계실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설마가 아닌 현실인 것이다. 외국에서 팝음악을 듣고 그로 인하여 가출과 마약, 강도,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외신을 통해 듣는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외적, 내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되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최상의 선물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팝음악은 이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타락과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왜? 그저 시대적인 조류일까?아니다!어떠한 큰 물건이나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만들어질 때에는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상음악의 뒤에는 "사탄"이 그의 발톱을 숨기고서 인간의 타락과 죽음을 조장하며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우리같은 인간으로 지금 우리들처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우리는 그저 성경속의 한 이야기로 보아 넘겨서는 안될것이며 사탄의 존재 역시 관념적인 상상의 존재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사탄은 육신이 없는 실체로서 모든 악의 배후에 서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그러한 사탄이 배후에 있는 악의 음악과 계략에 대하여 살펴보자.(다음호에 계속)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김문택 -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지난호에서 우리는 음악의 탄생과 목적, 음악의 타락과 현대 대중음악의 전반적인 역사를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록 음악(Rock Music)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팝 음악의 실질적 기틀이 되는 "로큰롤(Rock and Roll) 음악"은 흑인들의 속어로서 "Rock"은 '남자의 성기', "Roll"은 '굴러다닌다'라는 뜻으로 두 가지를 합치면 '차 안에서 행하는 섹스'라는 뜻이 된다. 또 원래의 사전적 의미로는 "Rock"은 '반석' 즉 '교회'를 뜻하고 "Roll"은 '흔들다'라는 뜻으로 '교회를 흔들다', '교회를 타락시키다'라는 뜻도 있다. 이렇듯 로큰롤은 그 시작과 의미부터가 불순과 악으로부터 출발점을 갖는다는 놀라운 것이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록 음악은 음란과 섹스, 폭력, 파괴, 살인, 사탄숭배, 강도, 마약....등의 사회악적(社會惡的)인 주제들을 음악이란 포장으로 포장한 후 리본을 달고 진열대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록 음악(Rock Music)을 비롯한 팝 음악들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음악의 배경은 사탄 숭배사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날이 갈수록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며 난폭해지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은 것일까?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사는 청소년들(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음악들 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세지가 흘러나오는 것을 외형상으로 당장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증거들을 미루어볼 때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나타난다. 세계적인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는 "록은 언제나 악마의 음악이었다.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외국의 유명 록 그룹 중 많은 수가 음반제작 혹은 무대공연전에 사탄 숭배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록 그룹 중 극히 일부도 이런 사탄 숭배 의식을 본떠 사탄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외국의 사탄숭배형식 뿐만 아니라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등 시작 전부터 갖가지 사탄적 주술적인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또한 일반 록 음악의 가사는 성적인 것, 변태적 성, 마약, 폭력, 사탄숭배....등 등 사회악적인 내용들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는 사회 전반적인 이유로 인해 직설적인 가사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가 없으며 서서히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의 가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도 사탄적 주술적인 가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농도를 높혀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얼마전 새로운 앨범을 발표한 국내 인기 정상의 모 그룹은 새 앨범의 심의과정에서 지나치게 파괴적이고 반항적인 이유로 인해 심의거부를 당했다. 결국은 그 곡은 가사가 빠진채 연주곡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그룹의 앨범이 나오자마자 엄청난 양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가사의 내용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것인가에 대해 심각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곡들의 가사전달이 제대로 되고있지 않고 있고 가사에 대해 사람들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모 방송사에서 이 그룹이 심의거부당한 내용과 다른 가수의 심의 거부곡(자세히 말하면 민주화운동의 운동권 노래)을 같은 범주로 말을 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나온 한 관련자 역시 외국에서는 어떻다느니, 미국에서는 더하다느니... 외국에서 하기 때문에 무조건 괜찮고 우리가 따라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신 사대주의 사상(新事大主義思想) 중 하나 일 것이다. 물론 음악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방패삼아 무언가를 노리는 자 곧 사탄의 계략이 그 배후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가사가 어떻게 진행되든간에 음악과 감각, 그리고 새 것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영적인 실명(失明)상태로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방법은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상투적인 수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록 음악은 록 공연장에서의 싸움과 폭력, 살인 등 광란적인 모습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954년 '쵸크베리와 빈센트'의 라이브 콘서트가 있었는데 이것은 하드 록(Hard Rock)를 사용한 최초의 공연으로서 팬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진 후 지금까지 많은 공연에서 관중들이 음악에 의해 난폭해져 폭력으로 이어져 수 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단지 매번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로큰론이란 뜻 자체가 난잡한 성행위를 의미한다는 것 이것은 이미 사탄적 본질에서 록 음악이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사탄적인 것들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기를 끌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돈을 얻기 위해서... 이렇듯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록 음악의 실제들을 이제 확인하여 보자. 초기 록 음악의 중심인물은 '엘비스 프레슬리'로서 그의 별명은 '엉덩이 엘비스'이었다. 이는 그의 엉덩이를 움직이는 동작이 아주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는 '엘비스'보다 훨씬 더한 춤으로 가수들이 춤을 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원래 요즘은 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록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으로 보다 충격적인 것을 접해야만 그것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된다. 만일 이대로 계속 진행될 때 우리의 관대함(?) 내지는 무감각이 어디까지 따라갈 것이며 언제까지 인내할것인가? 결국 세상은 사탄의 문화 저 깊숙한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며 그것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조소를 보낼 것을 우리는 충분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 춤에서 차츰차츰 타락해 결국은 어디까지 왔는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살펴볼 때는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적인 계단을 건너뛰어 근래에 와 보면 그 타락의 진행이 얼마나 빠르고 깊숙히 빠져들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마돈나(Madonna)'를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근래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의 하나로 '마돈나'는 관객들 앞에서 마치 창녀와같이 아니 창녀보다 더한 행동으로 자신을 만든다. 그녀는 "성(性)은 내 이미지의 일부이다. 나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라며 공공연히 말하며 공연때는 속이 다 비치는 옷이나 아예 속옷만 입고 나오며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하는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가 일어난다. '마돈나'뿐만 아니라 흑인가수 '프린스(Princ)'는 성적인 내용과 함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십자가를 몰라도 죽지 않는다."라고 떠들어대며 변태적인 성관계를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항상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욕하기 위해 달고 다니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섹스를 도구로 록 음악을 하는 자들은 많이 있다. '롤링 스톤즈', '마빈 게이', '팻 베나타', '웸', '신디로퍼', '올리비아 뉴튼 죤', '듀란듀란', '키스', '비치보이스', '데보라 해리', '화이트 스네이크',.... 또한 외설 정도가 아닌 인간타락의 상징인 동성연애와 변태적 성행위를 주장하는 자들도 엄청난 숫자이다. 예를 들어 '엘튼 죤', '엘리스 쿠퍼', '컬쳐 클럽', '퀸', '데이빗 보위' 등등 위에 열거한 그룹들 이외에도 시대를 마다않고 많은 록 그룹 및 록 가수들이 사회악을 찬미하고 조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특히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들을 우상시 하며 이러한 내용의 가사를 부르며 또는 아예 외우고 다니며 그들의 의상과 생활을 답습하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이들을 통해 우리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늘고 특히 성범죄, 폭력, 약물, 마약 등등 많은 부분의 범죄의 시초및 근원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록 음악'인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록 음악의 또 다른 피해를 살펴보자.

<문화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세번째 이야기

김문택-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지난호에서 우리는 세상음악의 폐해 중에서 섹스를 조장하는 록음악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폭력과 파괴 그리고 살상을 조장하는 록음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폭력과 파괴와 록음악과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이며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먼저 록음악의 파괴성에 대해 살펴보자.근대, 현대에 들어서면서 전자음악의 발달로 말미암아 다양한 음색과 폭넓은 음량을 표현할 수 있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록음악이 발달(?)하면서 '하드록' 그리고 '헤비메탈'로 진행이 되는데 이것은 음색과 음량의 거의 무제한적 사용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 여기서 최광신씨의 '대중음악에 나타난 사탄의 영'이란 책속에 기록된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6년 그룹 '더 후(The WHO)'의 야외공연시 발생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광란하는 듯한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고 기성과 괴성이 뒤엉킨 온통 지옥의 아비규환과 같은 난장판이 끝나고 났을 때 공연장 옆의 호숫가에 물고기들이 하얗게 배를 드러내고 죽어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공연장의 굉음을 이기지 못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러니 그 공연장에서 한바탕 일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귀는 온전했을까?이와같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을 이용하여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헤비메탈(Heavy Metal)'의 원래의 뜻을 살펴보면 '고통' '한꺼번에 수천명을 죽일 수 있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대포' '디트로이트에 있는 굉장히 시끄러운 자동차공장 조립라인'등이 있는데 그 뜻만을 살펴보더라도 이것이 심상치 않음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 헤비메탈'만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드록'과 '헤비메탈'에서 사용되어지는 악기소리의 크기는 최하 100DB(DB=소리측정의 단위)에서 200DB까지 사용되는데 보통 우리가 생활하는 소음이 밤에 30DB이상이고 낮에는 60DB이상이다. 여기에서 DB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몇가지 들어 비교해 보고자 한다. 터널 안에서 10량 기차가 전속력으로 경적을 '빵' 울리며 질주하는 것을 10m이내에서 듣는 소리가 120DB이며, 가장 큰 소음을 가진 비행기가 터널 안을 지나갈 때 느끼는 정도가 140DB이다. 100DB가 되면 사람의 고막은 심히 진동을 하며 120DB가 되면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상태와 같이되며 140DB는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헤비메탈'은 200DB이상을 사용할 수 있고 계속적인 과학의 발달로 기계만 갖추어지면 거의 무제한적으로 음량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근래에 들어서는 주의사항에 귀를 조심하라는 문구를 달고 나오는 스피커까지 등장했다. 아무튼 1954년 '쵸크베리와 빈센트'는 최초로 '하드록(Hard Rock)'을 사용하여 라이브 콘서트를 가졌는데 이곳에서 관중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러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신호탄으로 수많은 '록' 공연장에서 폭력과 파괴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라 할지라도 예외가 되지못하고 많은 외국의 록가수 혹은 그 팀이 공연을 갖을때 심심찮게 사상자가 나타나고 있고 최근의 예는 1992년 2월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뉴키즈 온 더 블럭(New Kids on the Block)'이 우리나라에서 공연하기 3개월전 독일의 베를린에서 공연할때에도 공연중 어린이 1명이 사망하고 949명이 부상당하였다.1969년 12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의 한 페스티발에서 '지옥의 천사들'이란 히피 폭주족을 경호원으로 고용하였는데 공연이 시작되었을때 관객이 흥분하여 나체의 여성관객이 무대에 오르려하고, 집단 패싸움이 일어났으며 이를 제지하려던 경호원들은 관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다가 무대에 오르려는 한 흑인을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다. 또한 1979년 오하아오주에서 있었던 '더 후(The WHO)'공연에서 관중들이 음악에 의해 난폭해져 서로 짓밟는 사태로 11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이러한 일들을 모두 열거하자면 밤을 새며 적어 내려가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단지 관객들의 실수로 말미암은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코너를 처음 시작할때 언급했듯이 사탄이 대중음악을 이용해 인간을 타락으로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하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탄이 이용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거부함과 동시에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을 가졌고 지금 이와 같이 사탄의 치부를 들추어냄으로써 보다 손쉽게 사탄문화를 정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씨의 비자금이 숨어 있을 때에는 그 비자금이 또 비자금을 만들어서 우리 경제의 암적 존재로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파고들어 들추어 내니까 몇주만에 항복하고 구속까지 당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 아니겠는가?만일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는데 어떻게 구속까지...' 하고 뒤끝을 흐렸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말끝을 흐리지 않았고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국민의 뜻을 전달했고 외쳤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탄이 조종하는 이 대중문화에 대해서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절대로 현실이란 명목하에 협상하거나 말끝을 흐리면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목소리를 낼 것인가?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그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서로 에게 사탄의 치부를 들추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T.V.나 대중매체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 시키려하고 할 때 우리는 당연히 아니라고 외쳐야 한다. 전화, 팩스, 편지, 엽서, PC통신.... 등등 문명의 이기를 역으로 이용해 대적해야 한다. 사탄은 미사일을 가지고 공격해 오는데 우리는 돌도끼를 던지고 있다면 말도 않되는 싸움일 것이다.특별히 젊은이들이여! 주님을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십시오.이 글이 실릴 때쯤이면 사탄숭배 그룹인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내한공연이 끝난 후 일 것이다. 이 '블랙사바스'는 '검은 안식일' 이란 뜻으로 사탄숭배자인 '오지 오스본'이 이끌던 이들은 '루시퍼'를 숭배하며 공연중에 비둘기, 닭, 등을 잡아죽이고, 그 피를 뿌리고, 십자가를 거꾸로 세우고, 적그리스도의 표인 666, 해골십자가 뼈를 마스코트로 사용하며 '우리자신(블랙 사바스)이 바로 구세주다'라고 떠들어대는 사탄그룹 중의 사탄그룹이다. 이러한 사탄주의자들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이 땅에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지금 우리나라도 강건너 불구경할때가 아니다. 얼마전 새 앨범을 낸 걁둁둁그룹이 이번 앨범에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매스컴을 통해 나타났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종종 자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관심을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한발만 뒤로 물러서 그 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확인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항상 이러한 것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탄의 치부를 서로 들추어내 최후 승리를 얻는 그날까지 말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탄과 마약과의 관계, 사탄이 이용하는 인간의 잠재의식, 사탄이 위장하고 있는 뉴에이지 사상과 운동, 뉴에이지 음악등에 대해 들추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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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호(1995.10)

차 례 --------------------

▒ 말씀의 샘 <믿음에 이르는길-2>

▒ 병동 일지 <한 소년의 외로움-15>

▒ 건강 상식 <암을 예방하려면-18>

▒ 사랑의 힘 <괴상한 작은 선생님-29>

▒ 십일월의 시 <가을의 기도 -33>

▒ 광야의 소리 <본질로의 복귀-35>

▒ 삶의 지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39>

▒ 가을의양서 <흰고래모비딕-43>

▒ 문화 엿보기<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2-47>

▒ 애플 퍼즐 <56>

제7호 십일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낙엽을 밞으며

<말씀의 샘>

믿음으로 가는 길

"(요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요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칼 바르트는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지 볼 수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입니다.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 말씀에서 '본다'는 말과 '안다'는 말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처럼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지만 궁극적인 천국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온전하게 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보고 싶다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알자는 것이지 보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영원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영생에 대한 소유와 모든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능력과 권능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 속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가는 길 즉,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육신으로 만날 수 없는 예수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방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골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연합하여"란 헬라어는 "숨비바조(?????????,sumbibazo)"로서 "짜여진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털실로 스웨터가 짜져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주듯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도 사랑으로 연합할 때 아름다워진다는 말입니다. 즉, 사랑의 짜짐, 사랑의 연결 속에서 예수를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도 마찬가지로 말합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길 즉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헨리 누엔(Henri Nouwen)박사가 교수직을 사임하고 매사추세츠에 있는 작은 정신박약자 시설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 학원의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신학자가 하버드 교수의 많은 보수와 명예를 버리고 정신박약자들의 용변 지도와 행동 교정과 식사, 세수, 옷 입히는 훈련 같은 구질구질하고 고생스러운 일에 작은 보수를 받고 종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신학자가 학생들을 가르쳐 훌륭한 목사와 학자들을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왜 하버드를 떠나 정신박약자 시설에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누엔 박사는 책 한 권을 썼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란 책입니다. 여기에서 누엔 박사는 "예수를 정말 아는 길이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나아가서는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의 결론은 예수를 아는 길은 <내리막길을 살아봐야 한다.>(downward mobility)는 것입니다. 예수가 보였던 종의 모습에서, 곧 내리막길에서만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엔 박사 자신은 그 동안 올라가는 길만 추구해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신동(天才神童)이라 추앙되었고, 하버드 대학의 교수까지 이르는 정상에 올랐으며, 20여 권의 저서는 모두가 베스트 셀러이고, 그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전세계에 깔려 있습니다. 누엔은 말합니다. "나는 그 동안 작은 성공의 외로운 꼭대기를 향하여, 작은 인기, 작은 권력의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만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어느 날 아담(정신박약자 중 한 청년)군 곁에 앉았을 때 이런 인간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하여 예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안 보인다. 내리막길에서만이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은 높고 큰데서 예수를 만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진급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성공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출세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가정은 가난한 목수 직업의 아버지 요셉과 농부의 딸 어머니 마리아의 가정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문명에서 소외된 작은 목동의 마을 베들레헴이었습니다. 예수를 만나시고자 하면 높아지고 커지려고 하지말고 낮아지고 작아져야만 합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추게 될 때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높고 큰데에 계시지 않고 낮은데 작은 모습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은 겸손으로 성취됩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높은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낮은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표적을 베푸신 곳들은 모두가 다 낮은 곳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만나서 새 생명을 베푸셨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낮고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태어날부터 소경된 사람,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불구자,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인, 세리 마태, 아니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다 가난한 어부 출신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데 있었던 바리새인, 서기관들, 제사장들은 오히려 예수를 만났지만 그리고 많은 표적과 말씀을 들었지만 지위와 명예, 부귀 영화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듣지못하고 사랑의 표현을 보지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알고 있고 연구하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사랑을 모르고 행하지 못하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지 못한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못한 것입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표적, 오병이어(五餠二魚)를 가지고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신 표적, 태어날 때 부터 소경된 사람들 눈뜨게하신 표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등 등을 보여주셨건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고 빌립이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요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답답한 심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요14:9)....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토록 많은 표적과 권능있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그 여러 표적들과 말씀들만 보고 들었을 뿐 그것들 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많은 표적들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의 표현들입니다.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사람의 생명인데 그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들을 나타내 보여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표적들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볼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표적 중의 표적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시기 원하십니까? 낮고 천한 인간이 되신 예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보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십시오. 서부 영화에 <쉐인>(Shane)이 있습니다. 작가가 주인공 쉐인을 통하여 그리스도상을 부각하려고 시도한 작품입니다. 한적한 광야에 외딴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를 둔 부부, 그들은 착하고 힘없는 개척민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조와 마리온(Joe and Marion)이라고 붙인 것도 요셉과 마리아(Joseph and Mary)의 은유라고 합니다. 이들을 무례한 총잡이들이 괴롭힙니다. 이 집에 홀연히 나타나는 신비한 인물이 바로 쉐인입니다. 그는 얼마동안 이 집에 유하면서 그들을 격려하며 희망을 잃지 않게 하고, 어린 소년에게 참다운 용기와 사랑을 가르치고 자기의 목숨을 걸고 악한들로부터 이 착한 가정을 보호합니다. 일이 해결되어 다시 평화롭게 되자 이 신비한 나그네는 정처없이 지평선을 향해 떠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쉐인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듯 광야의 먼지 속으로 사라질 무렵 소년은 그의 구세주와 같은 거룩함을 알며, 그를 따라가고 싶지만 광야에 머물러 자기도 쉐인과 같은 사랑과 정의의 사람이 되고자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지저분한 얘기에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구석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높고 큰데 계시지 않습니다. 낮고 작은 데서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환란 중에서도, 실패와 낭패 중에서도, 가난과 병고 중에서도, 고독과 아픔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시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의 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높고 크신 사람들은 마음을 낮추시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랑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을 보시고 믿음의 능력과 권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동희목사>

<병동일지>

한 소년의 외로움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이맘 때면 나에게 떠오르는 꼬마아이 한 명이 있다.눈이 크고 잘생긴 얼굴이지만 혈색이 없던 아이.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버림받게 된 아이. 교통사고로 인한 대퇴부 골절로 몸통부터 다리까지 석고붕대를 감고 있어야만 했다. 거동이 어려워 꼭 보호자를 필요로 하고 부모님의 따스한 손길이 절실한 아이였지만 그 아이에게는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찾아오는 유일한 방문객이라고는 성당의 보모선생님과 그 곳에서 사귀게 된 친구, 누나, 동생들이 전부였다. 그 유일한 방문객들이 돌아가 버리면 어김없이 큰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같은 병실을 사용하고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조차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있는 병실은 주로 여자와 어린이 환자가 사용하는 병실이므로 늘 가족과 친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병실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더 이 아이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가족의 손길이 아니고는 누구나 꺼려하는 대소변을 볼 때면 어김없이 이 아이만 남겨두고 병실 문을 열어둔 채 모두 나가버리곤 했다. 그 추운 날씨에도……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외로운 영혼에 더 깊은 상처를 주는 듯하여 마음이 아팠다. 늘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이 아이의 대소변을 받아 주면서 역겹다는 생각보다는 변비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퇴원하는 날 새벽에 병실에서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쯤 성당의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그 아이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외로움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면 결코 이 계절이 춥지 않으리라 믿는다. (해성병원 정형외과 51병동 문 희 간호사)

<건강상식>

암을 예방하려면

암의 정의는 '목적없이 의미없이 자라는 세포'이다. 실제로 암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질서가 없고, 세포 하나 하나가 마치 화가 난것 처럼 보인다. 우리 몸에는 하루에 6, 7개의 암세포가 매일 생겨나는데 이 세포들이 목적없이 무질서하게 인체에 돌아다니면서 주위의 세포를 파괴하고 폐나 뇌 등의 기관에 붙어서 암을 유발한다. 마치 사탄과도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아니하고 한껏 성이 나서 질서있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세포들을 파괴한다. 우리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 몸 속에 암세포를 잡아 먹는 경찰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세포의 수가 100만개를 넘으면 경찰세포도 그 암세포에 대항할 수가 없게 되고 마침내 암에 걸리게 된다. 즉,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암세포의 증가를 억제하든지 경찰세포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미 암에 걸렸을 경우 증상이 나타나려면 7년이 걸린다. 그러면 무엇이 암세포를 증가시켜 암에 걸리게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의학계에서 증명된 암의 원인은 한 가지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담배>이다. 담배를 안 피우면 암의 40%를 없앨 수 있다. 그 외의 원인들은 간접적으로 증명된 것들일 뿐이며 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담배 한 가지이다. 담배가 왜 암을 일으키는가? 니코틴 때문이 아니라 담배 줄기 자체 내의 방사능과 수소화된 탄소들이 암을 일으킨다. 담배를 피우면 하루 6-7개 생기는 암세포가 25배로 증가하여 최소한 150개 이상이 생기게 된다. 또 담배와 술을 함께 할 경우 담배를 피울 때의 4배 즉, 본래의 100배가 증가한다. 미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담배는 우리 몸에만 나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가 크다. 절이나 무당집에 가보면 반드시 연기가 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워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담배를 피워야 생각이 난다고 말한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담배를 피울 때 생각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귀신이다. 퇴폐문화를 하는 사람이나 세상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왜 어두운 곳에 가서 담배를 피우는가? 그 곳에 귀신이 많기 때문이다. 사업을 할 때 담배를 피우며 결정을 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악한 사탄의 생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 하신다. 의학적으로 볼 때도 담배를 피우면 혈관이 수축된다. 가장 먼저 뇌로 가는 혈관이 수축된다. 그래서 뇌에서 가장 중요한, 생각이 들어 있는 '콜텍스'로 가는 피가 반으로 줄어버리고 인간적인 본능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교회가 한국에서 한 일 중의 큰 일은 술, 담배를 끊게 한 일이다. 담배는 피우는 사람에게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한 방에서 생활 하는 자녀들에게 폐기종이나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는 담배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옆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고발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암세포를 증가시키는 원인 중에 술, 담배를 제외하면 공해가 큰 문제가 되고 있고 합성세제, 농약 등도 그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담배처럼 심하지는 않고 대개 2-3배 정도이다. 그러면 경찰세포는 무엇에 영향을 받을까? 우리 몸에는 부신피질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이 부신피질호르몬이 올라가면 경찰세포가 혈관에서 돌다가 공중에서 터져버린다. 또 아드레날린이 많이 나오면, 경찰세포가 혈관에 있다가 우리 조직으로 나가서 암세포를 잡아먹어야 되는데 혈관에만 있고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다. 제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신피질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을 어떻게 조절하는가에 달려 있는데, <스트레스>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서 암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문제이다.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불안함에서 온다. 불안함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하나님 앞에서 새 사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함이 오는 것이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갈6:15-16)" 할례나 무할례 즉, 종교의식에 매여 있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에게 종교를 주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다. 또 세상것에 매여 있을 때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함을 줄 수가 없다. 우리의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 어떻게 해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새 사람이되려면 화해 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과 화해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 하실 필요가 없다. 이미 화해를 작정하시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화해할 것을 선포하셨는데 우리가 하질 않는 것이다. 화해하지 않은 사람 특히,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 하면서 의식, 무의식 중에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 속에 평안이 없다. 그래서 경찰세포가 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심어 놓으신 법칙이다. "네가 나를 알기 전에는, 내 안에서 네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는 절대 만족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심어 놓으시고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에는 절대로 우리 몸에서 부신피질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이 떨어질 수가 없고 경찰세포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예수 이름으로 화해하라. 하나님과 화해한 사람은 표적이 있는데 그것은 나와 화해한 것이다. 나와 화해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한 것이 아니다. '나'를 학대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학대 하고 귀히 여기지 않는다. 온 인류가 다 예수를 믿고 나 하나만 예수를 안 믿었어도 예수님은 그 한 사람때문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신다. 우리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신다.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대하게 나아 오는 사람이 자기와 화해한 사람이다. 세번째로 화해한 사람의 증거는 이웃과 화해한 사람이다. 내 이웃과 화해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마음에 평안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관계를 떠나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 없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도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얍복강가에서 야곱에게 나타났던 하나님도 처음에는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인간관계에서 자기모습이 드러나기를 원하신다. 화해하지 않은 사람은 새 사람이 될 수 없다.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마다 경찰세포는 떨어진다. 두번째,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새로이 통합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내문제에 대해 내 의지로 결정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사람, 내 삶을 내 주장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없다. 예수 안에 연합된 사람은 부신피질호르몬이나 아드레날린이 올라 갈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 갖다 맡겼으므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내 삶의 목적이 생긴다. 그런 사람은 삶의 새 용기가 생기고 새 능력이 생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귀한 사람이 된다. 세번째, 새로운 피조물은 부활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마지막 때의 부활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매일 매일 부활해야 한다. 내 죽은 몸에게 새 생명을 주는 부활의 역사가 매일 일어나야 한다. 옛습관을 누르면서 사는것이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다. 부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때 거기에 내 삶의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에게 복을 줄 때, 내가 다른 사람의 복의 근원이 될 때 우리에게 새 생명이 드러나는 것이다. 믿음에는 네 단계가 있다. 부활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네 단계로 믿음이 자라야 한다. 첫번째 단계는 의지하는 믿음이다. 나의 구원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어려울 때 의지하는 믿음이다. 두번째 믿음은 선택하는 믿음이다. 내가 예수 이름 때문에 어떤것을 택할 것인가? 그 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삶 속에서 선을 택하는 믿음이다. 그 때 부터 하나님이 쓰시려고 계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번째 믿음은 위험을 택하는 믿음이다. 예수님 때문에 위험을 택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위험이 있을 줄 알면서 복음을 전하러 간다. 예수님 때문에 위험을 택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다르므로 조그만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생각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여유가 없다. 내 안에 성령이 주는 스트레스 즉, 기쁨이 솟아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파워가 생긴다. 예수님을 위하여 위험을 택하는 사람은 삶 속에 생명이 솟아나는 사람이다. 네번째 믿음은 나의 최대 생각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는 믿음이다. 적어도 내 삶 속에서 위험을 택할 수 있는 믿음, 예수 이름 때문에 손해보기를 원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새 사람이 될 때 우리 몸에 있는 경찰 세포들이 점점 자란다. 마음 속에 있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장 잘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나의 삶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바쳐 살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영, 혼뿐 아니라 내 삶 속에 분명히 드러나서 암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이미 암에 걸린 사람들은 "암을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이 왜 나에게 암을 주셨나?"하는 분한 마음을 고쳐야 한다. 암을 고칠려고 의사에게 가면 화학요법을 통해서 암의 100분의 1은 줄일 수 가 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 화해하여 새 사람이 됨으로 고쳐야 한다. 절대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화해하고 새 사람이 된 후에 "하나님, 경찰세포를 길러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의사에게 가서 치료 하라. 의사는 암세포를 줄여가고, 환자는 기도하는 가운데 경찰세포를 늘려서 발란스가 맞을 때 완치가 되는 것이다. 암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새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하여 살겠나이다,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겠나이다!"라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일하면 재발되지 않는다. (원종수 의사의 신앙간증 테이프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에서 발췌-장옥순정리)

<사랑의 힘>

괴상한 작은 선생님

모건씨는 슬픈 표정에 허약해 보였고 눈매를 쳐다보면 고통스런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학생이었던 내 눈으로 보기에도 그는 기묘해 보이는 자그마한 남자로, 창백한 얼굴에 병자같아 보였다. 그는 우리 주일학교의 새 선생님으로 왔는데 첫 수업을 받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시는 주일학교에 오지 말아야지.' 그는 재미있지도 흥을 돋구지도 못했고 학습방법 역시 내 구미에 맞게 활기차지도 않았다.더욱이 교회수업을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은 항상 우리는 기도로 수업을 마쳤는데 그는 찬송으로 수업을 끝맺으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험한 십자가"라는 찬송으로 수업을 부르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교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였다. 눈물이 모건 씨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일세 눈물 방울은 그의 뺨을 타고 계속해서 흘러 내렸다.'왜 선생님의 기분이 저 지경이실까?' 나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그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처음 남자 아이들은 어떡해야 좋을지 몰랐다. 잠시 후 그들은 팔꿈치로 서로를 찔러대며 킬킬대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가 곤혹스러운 표정들이었다. 그애들은 눈앞의 찬송가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찬송가가 끝났을 때 모건씨는 손수건에 코를 풀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미안하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분은 거의 아무것도 걸치시지 않은 채 거칠기 짝이 없는 나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고 당신의 모든 피를 쏟아 버리셨다. 왜 그러셨을까? '나'를 위해서 그러신 거야! 바로 '내' 죄를 위해."킬킬대던 소리가 쑥 사라져 버렸다. 교실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건씨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우리들 모두를 둘러 보았다."그리고 '너희들의' 죄를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지." 선생님은 말했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영원한 집을 갖게 된거야."나는 그 말에 압도당했고 경외감에 휩싸였다. 나는 어른이 구원에 대해 그처럼 개인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이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의 마음속에도 그가 하는 말의 의미는 분명히 전해졌다. 모건 씨는 예수께서 자기 삶의 이유라는 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었다. 그가 흘린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예수는 책속의 인물일 뿐이었다. 나는 그 이전에는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나는 30년 전 그날과 모건씨가 준 선물을 잊지 않고 있다. 그분은 내게 우리의 가슴에 영원을 여는, 씨앗이 심겨져 있다면,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가이드포스트 1993년 10월호 中)

<11월의 시>

바람이 불어오는 날

친히 보내셨으니

꺼지지 않을 등불로 불을 켜십시요.

동터오기까지는 아직 먼 시간

어두움은 강물 흐르듯 쌓이고

난장치는 거리에

우리 아이들 뛰어가도 넘어지지 않도록

길이 되어 비취게 하소서.

환하게 보이는 아픔

닥쳐오는 노도광풍 속에서도

미약한 것 같으나 소중했기에

갈 상자 속에서 어린 모세를 지켰던

그 역청이 되어

오늘은

이 생명들을 숨기소서.

다시 돌아올 기다림 하나로 뿌리내리고

분주히 떠나고 있는 당신의 가을

아무것도 잃은 것 없으면서 잃었다는 사람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으면서 얻었다는 사람들

당신을 위한 춤은 없고

당신을 위한 노래도 없는 이 황막한 도시에

우리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도록

피리이게 하소서.

새벽은 새벽이라 걸을 수 없고

낮은 대낮이라 걸을 수 없고

밤은 어두워서 걸을 수 없고

어제보다 더 무서워진 거리

문명의 경적이 추적하고

사냥꾼들의 덫이 놓인 이 진노할 세상에

어느 한 쪽 구석에서 그냥 태워져

한 줌 재로 남는다 해도

우리 아이들 위해

번제로 타는 불기둥이게 하소서.

고훈『목자의 휘파람 소리』中에서

<광야의 소리>

본질로의 복귀

얼마 전 T.V. 드라마를 보면서 찝찝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방영한 드라마는 안방극장을 겨냥한 프로그램으로 가족들이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였고 나도 종종 그 드라마의 가벼운 느낌에 시청을 하였었다. 그날 역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을 하는데 금세 편안한 마음을 싹 가셔버리고 오히려 머리만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대충 줄거리는 이러한 내용이었다. 시작은 어느 여인의 자살에서 시작된다. 같은 고향에서 자란 두 여인이 있는데 한 여인은 남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고 다른 여인은 아기자기한 그야말로 여성 그 자체였다. 성인이 되어 이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던중 이 남성적인 여인은 자신 속에서 남성의 본능을 발견하게 되고 동거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여성적인 여인은 삶의 원리대로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신의 사랑을 이루지 못함에 괴로워하는 그녀는 결국 자살로서 그녀의 생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여인이 죽기전 써 두었던 소설을 통해서 여성적인 여인은 죽어간 자신의 친구의 마음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면서 드라마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 여인의 기구한 삶때문에 이 이야기는 안방에서 T.V.를 보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착잡한 마음을 가진 것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단순한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가진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안방극장에까지 이런 소재를 극으로 만들어야만 할만큼 우리주위에 이야기가 없는 것인가!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고 당사의 수익이 중요하지만 누가 보아도 인륜에 위배되는 이러한 드라마를 본사는 심의 위원회의 규정을 준수한다고 하면서 버젓이 방영하여도 되는 것일까. 심의위원회의 심의규정이란 것은 무엇인가!드라마뿐 아니라 요즘 매스미디어를 통한 문화에서 동성애는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제는 더이상 서방세계에나 있는 그런 뒷방 이야기거리가 아닌 세대가 왔다. 각종 T.V.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 서적을 통해서 우리의 생활에 살며시 침투해 그들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으며 우리의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에 큰 혼돈을 던져 주고 있다. 몇년전만해도 경악을 금치 못했던 이런 화젯거리들을 이제는 그들도 이해해 주어야 되지 않느냐라고, 또 어쩔 수 없는 본능이 아니냐라고 요즘의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에 바로 문화를 좀먹고 있는 매스컴의 위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며 살라고 하신 것이 창조의 원리임을 명심해야 하리라. 어떠한 이유에서건 인륜을 져버리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서는 이를 절실하게 증명한다. 잘 알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그 도시에는 동성애가 팽배해 있었다. 소돔의 이름만도 남색을 의미하는 '소도미'(sodomy)에서 유래되었다.(창세기 18-19장) 그뿐인가 이스라엘의 12지파중 베냐민 지파가 멸종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도 동성애를 묵인함에서 온 것이었다.(사사기 19-21장)한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소수의 프로그래머(programer)가 아니라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에 의해서이다. 문화의 이러한 세속화, 타락화에 대해 감성에만 치우쳐 분별력을 상실한 문맹이 되지 말고 문화를 보는 눈을 바로 가져 올바른 문화관으로 문화를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안방극장 앞에서 정신의 윤리성을 파괴하는 이루지 못할 사랑을 보면서 눈물만 흘리지 말고 이 가을에 정말 울릴 수 있는 순화된 문화를 찾고 만들어 만끽해 봄이 어떨까 한다. 자극적인 통속소설보다 학창시절에 읽어보지 못하였던 고전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하며 가을에 이 글을 쓴다. (한은성 전도사)

<삶의 지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은 타고는 과학자입니다. 그들과 함께 관심을 같이하고 흥미를 일으켜서 사물들에 대해, 현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도록 가르치십시오.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싶어한 세계에서 많을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아이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메뚜기가 풀을 뜯는 것을 본적이 있나요?" "내가 풀을 먹으면, 왜 배탈이 나나요?" "왜 눈물이 나오죠?" "거미들은 어디서 거미줄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얻나요?" "내 몸은 피로 가득 찬 가방 같아요. 칼에 베이면 피가 막 나요." 이런 질문에 당신은 당황하거나 답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때는 "나도 잘 모른단다. 하지만 함께 찾아볼 수 있을거야"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3살짜리 아이가 부엌에서 계란을 떨어뜨리면서 "엄마, 이 공들은 튀어 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혼자서도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2. 이야기를 해주되 사실을 나열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할 때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왜 밤에는 어두워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 낮보다 밤이 더 어두운지 생각해보자"라고 시작하세요. "벌들은 어디서 살아요?" "벌들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자"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의 질문에 함께 탐구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3.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어 보십시오.

우리 어른들은 재빠른 대답을 요구하고 생각할 시간을 단지 일이초 밖에 주지 않습니다. 만약 아이들에게 답을 할 시간을 좀더 준다면 좀더 논리적이고 창조적인 답을 하게 될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할지 말해주지 말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답이 틀려도 기다렸다가 도움을 요청받을때 의도된 질문을 아이에게 해보십시오.

4. 말을 주의해서 해보십시오.

아이들이 한참 생각할 때에 "좋아, 아주 잘하는데"라고 말 해주면 아이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지게 합니다. 하지만 성급한 칭찬은 아이가 가진 사물에 대한 흥미를 끊어버립니다. "아주 재미있을 것 같은데." 혹은 "전혀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아주 기발한 생각이야"라고 말해주십시오. 아이들에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당신이 원하는 정답만을 찾으려고 할것입니다. "왜?","어째서?"라는 질문을 피하세요. "왜 방을 치우지 않았니?", "왜 못하니?"처럼 비난받을 때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주의해 보십시오. "태양요?"라고 말한다면 자신이 말한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5. 말로하지말고 직접 보여주십시오.

실제 생활속에서 보고 느낀 것은 책이나 TV에서 얻는 교훈들보다 훨씬더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에게 확대경으로 손가락 끝을 보게 하면 왜 식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또 물이 증발한다고 하지 말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게 하세요. 도서관, 박물관, 전시회 등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 보십시오.(다이제스트 10월호중에서 번역, 요약:대학부 김 정희)

<가을의 양서>

흰 고래 모비 딕(Moby-Dick) 허먼 멜빌(1819∼1891)

미국작가 멜빌의 고래잡이 소설 《모비 딕》은 1851년 출판되었지만 1920년께야 그 진가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 구상의 웅장함과 짜임새의 호탕함, 상징적 함축과 비극의식의 깊이가 제대로 이해되고 음울한 교향곡처럼 우리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인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걸렸다. "난 이쉬메일이올시다."하며 이 긴 이야기는 시작된다. 청년은 고래잡이 배 피쿼드 호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다. 큰 바다로 멀리 나온 어느날 흰고래로 부터 한 쪽 다리를 잘린 선장 에이햅은 후갑판의 승무원 전원 앞에서 흰고래를 맨 먼저 발견하는 자에게 이것을 준다면서 돛대에 금화 한개를 못 박아 놓는다. 이에 승무원 모두와 이쉬메일은 흥분해 흰고래 추적을 맹세한다. 이 후에는 선상 생활의 실황, 문명과 야만의 각종 사내들의 특이한 모습, 고래사냥의 장비 준비,작살 던지기,해부,기름졸이기 등의 묘사, 철학적 사색의 내용이 여러장으로 이어진다. 고래를 잡을만큼 잡았어도 흰고래 추적은 집요하게 계속된다. 돌아가고픈 선원들의 뜻과 소망은 완전히 무시된 채 배는 남태평양으로 들어서서 마침내 모비 딕을 발견하게 된다. 무서운 공격과 추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의족마저 잃은 선장은 작살 끈에 몸이 감겨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성난 고래의 요동으로 큰 배도 뒤집혀 가라 앉고 이쉬메일 혼자만 살아남아 표류하다 구조되어 이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다. 장편 《모비 딕》속에는 모험 얘기가 있고 드라마가 있고 심오한 철학강론과 학문과 서사시 등 고래처럼 부피가 큰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 멜빌은 구약성경이나 신화의 주인공을 끌어내며 무드를 잡다가 담담한 문체로 사실을 묘사하는 급전환을 일으키거나 선원들의 용어를 교묘히 살려 바다 생활의 실감을 통해 독자에게 재미를 유발시키고 전편에 깔린 상징적 의미를 다시금 음미하게 한다. 절망에 빠진 인간에게 흔히 두 가지 길이 있다. 종교적 화해를 찾아 체험하는 길, 또 하나는 에이햅처럼 원망과 증오로 이성을 잃고 외곬로 반항하는 길, 즉 육체적 고통, 소외감, 굴욕감, 원망, 고뇌에 대항하여 죽기까지 오기를 부리는 것이다. 흰고래를 만나기 전날 밤 고요 속에서 에이햅 선장은 스타벅에게 "난 40년 세월을 참으로 어리석게 보냈어."라고 술회한다. 에이햅의 필생의 싸움은 흰고래 곧 우주악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위에 누가 있어?"하는 선장의 말에 스타벅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미친 소리라고 두려워한다. 누군가 "악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고 했다. 누구의 마음에나 이렇게 병든 구석이 있다면 에이햅의 비극은 자신의 비극일것이다. 나무관을 안고 떠 있다가 구조된 이쉬메일은 스스로를 "또 한 명의 고아"라고 하면서 이 긴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고아인지도 모른다. 이쉬메일과 같은 방랑자에게는 휴식처가 없고 여행은 끝이 없다. 우리는 에이햅선장의 최후를 통하여 인간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생의 목표로 하는 것들에서 무익함을 절감하고, 이쉬메일과 같이 쉽게 남의 목적과 허상에 편승하는 가운데 길고도 짧은 자신의 생의 여정속에 안식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었음을 돌아보고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시간과 생을 바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재확인하는 기회로 이 책을 대함은 어떨까? <이혜섭>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김문택 -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지난호에서 우리는 음악의 탄생과 목적, 음악의 타락과 현대 대중음악의 전반적인 역사를 살펴 보았다. 이번에는 록 음악(Rock Music)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팝 음악의 실질적 기틀이 되는 "로큰롤(Rock and Roll) 음악"은 흑인들의 속어로서 "Rock"은 '남자의 성기', "Roll"은 '굴러다닌다'라는 뜻으로 두 가지를 합치면 '차 안에서 행하는 섹스'라는 뜻이 된다. 또 원래의 사전적 의미로는 "Rock"은 '반석' 즉 '교회'를 뜻하고 "Roll"은 '흔들다'라는 뜻으로 '교회를 흔들다', '교회를 타락시키다'라는 뜻도 있다. 이렇듯 로큰롤은 그 시작과 의미부터가 불순과 악으로부터 출발점을 갖는다는 놀라운 것이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록 음악은 음란과 섹스, 폭력, 파괴, 살인, 사탄숭배, 강도, 마약....등의 사회악적(社會惡的)인 주제들을 음악이란 포장으로 포장한 후 리본을 달고 진열대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록 음악(Rock Music)을 비롯한 팝 음악들이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음악의 배경은 사탄 숭배사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날이 갈수록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며 난폭해지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은 것일까?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사는 청소년들(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음악들 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세지가 흘러나오는 것을 외형상으로 당장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증거들을 미루어볼 때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나타난다. 세계적인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는 "록은 언제나 악마의 음악이었다. 아무도 이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외국의 유명 록 그룹 중 많은 수가 음반제작 혹은 무대공연전에 사탄 숭배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록 그룹 중 극히 일부도 이런 사탄 숭배 의식을 본떠 사탄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는 외국의 사탄숭배형식 뿐만 아니라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등 시작 전부터 갖가지 사탄적 주술적인 행위가 난무하고 있다. 또한 일반 록 음악의 가사는 성적인 것, 변태적 성, 마약, 폭력, 사탄숭배....등 등 사회악적인 내용들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는 사회 전반적인 이유로 인해 직설적인 가사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가 없으며 서서히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의 가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도 사탄적 주술적인 가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농도를 높혀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얼마전 새로운 앨범을 발표한 국내 인기 정상의 모 그룹은 새 앨범의 심의과정에서 지나치게 파괴적이고 반항적인 이유로 인해 심의거부를 당했다. 결국은 그 곡은 가사가 빠진채 연주곡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그룹의 앨범이 나오자마자 엄청난 양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가사의 내용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것인가에 대해 심각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곡들의 가사전달이 제대로 되고있지 않고 있고 가사에 대해 사람들은 특별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모 방송사에서 이 그룹이 심의거부당한 내용과 다른 가수의 심의 거부곡(자세히 말하면 민주화운동의 운동권 노래)을 같은 범주로 말을 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나온 한 관련자 역시 외국에서는 어떻다느니, 미국에서는 더하다느니... 외국에서 하기 때문에 무조건 괜찮고 우리가 따라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신 사대주의 사상(新事大主義思想) 중 하나 일 것이다. 물론 음악에 있어서 창작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방패삼아 무언가를 노리는 자 곧 사탄의 계략이 그 배후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가사가 어떻게 진행되든간에 음악과 감각, 그리고 새 것에만 관심을 나타내는 영적인 실명(失明)상태로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방법은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상투적인 수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록 음악은 록 공연장에서의 싸움과 폭력, 살인 등 광란적인 모습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954년 '쵸크베리와 빈센트'의 라이브 콘서트가 있었는데 이것은 하드 록(Hard Rock)를 사용한 최초의 공연으로서 팬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이 벌어진 후 지금까지 많은 공연에서 관중들이 음악에 의해 난폭해져 폭력으로 이어져 수 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단지 매번 우연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로큰론이란 뜻 자체가 난잡한 성행위를 의미한다는 것 이것은 이미 사탄적 본질에서 록 음악이 시작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사탄적인 것들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기를 끌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돈을 얻기 위해서... 이렇듯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록 음악의 실제들을 이제 확인하여 보자. 초기 록 음악의 중심인물은 '엘비스 프레슬리'로서 그의 별명은 '엉덩이 엘비스'이었다. 이는 그의 엉덩이를 움직이는 동작이 아주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했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는 '엘비스'보다 훨씬 더한 춤으로 가수들이 춤을 춘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원래 요즘은 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기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록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으로 보다 충격적인 것을 접해야만 그것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된다. 만일 이대로 계속 진행될 때 우리의 관대함(?) 내지는 무감각이 어디까지 따라갈 것이며 언제까지 인내할것인가? 결국 세상은 사탄의 문화 저 깊숙한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며 그것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 조소를 보낼 것을 우리는 충분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 춤에서 차츰차츰 타락해 결국은 어디까지 왔는가? 한 계단 한 계단씩 살펴볼 때는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대적인 계단을 건너뛰어 근래에 와 보면 그 타락의 진행이 얼마나 빠르고 깊숙히 빠져들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마돈나(Madonna)'를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근래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가수 중의 하나로 '마돈나'는 관객들 앞에서 마치 창녀와같이 아니 창녀보다 더한 행동으로 자신을 만든다. 그녀는 "성(性)은 내 이미지의 일부이다. 나는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라며 공공연히 말하며 공연때는 속이 다 비치는 옷이나 아예 속옷만 입고 나오며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하는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가 일어난다. '마돈나'뿐만 아니라 흑인가수 '프린스(Princ)'는 성적인 내용과 함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십자가를 몰라도 죽지 않는다."라고 떠들어대며 변태적인 성관계를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항상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욕하기 위해 달고 다니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섹스를 도구로 록 음악을 하는 자들은 많이 있다. '롤링 스톤즈', '마빈 게이', '팻 베나타', '웸', '신디로퍼', '올리비아 뉴튼 죤', '듀란듀란', '키스', '비치보이스', '데보라 해리', '화이트 스네이크',.... 또한 외설 정도가 아닌 인간타락의 상징인 동성연애와 변태적 성행위를 주장하는 자들도 엄청난 숫자이다. 예를 들어 '엘튼 죤', '엘리스 쿠퍼', '컬쳐 클럽', '퀸', '데이빗 보위' 등등 위에 열거한 그룹들 이외에도 시대를 마다않고 많은 록 그룹 및 록 가수들이 사회악을 찬미하고 조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특히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들을 우상시 하며 이러한 내용의 가사를 부르며 또는 아예 외우고 다니며 그들의 의상과 생활을 답습하기에 급급하지 않은가? 이들을 통해 우리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늘고 특히 성범죄, 폭력, 약물, 마약 등등 많은 부분의 범죄의 시초및 근원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록 음악'인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록 음악의 또 다른 피해를 살펴보자.

(유머1)

기 적

세관에서, 유태인이 큰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세관원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묻자 루르드의 물이라고 했다. 루르드는 프랑스에 있는 카톨릭의 성지로서 그 물에는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믿지 않는 세관원이 병을 열어 보자, 그 속에는 꼬냑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유태인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야! 기적이 일어났다!"

(유머2)

양보다 질

암여우가 암사자를 비웃었습니다."겨우 새끼를 한마리 밖에 낳지 못하십니까? 한꺼번에 대여섯마리 쯤은 낳아야 되는것 아닙니까? 나는 아홉마리를 낳을 때도 있답니다." 암사자가 대꾸했습니다."한 마리지만, 사자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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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호(1995.12)

차 례 --------------------

▒ 말씀의 샘 <겸손과 평화의 왕-2>

▒ 병동 일지 <병원은 전도의 황금어장-16>

▒ 건강 상식 <된장을 담그는 이유-20>

▒ 사랑의 힘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24>

▒ 십이월의 시 <마리아의 찬송시-28>

▒ 광야의 소리 <그해 겨울은 따뜻할까-31>

▒ 하하호호잉글리쉬<기도-34>

▒ 삶의 지혜 <젊게 보이는 방법...-35>

▒ 성탄절명상1<크리스마스 트리를...-44>

▒ 성탄절명상2<사랑의 세계-49>

▒ 문화 엿보기<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3-52>

▒ 애플 퍼즐 <59>

제8호 십이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5년 첫 눈을 맞으며

<말씀의 샘>

겸손과 평화의 왕

"(요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요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요12: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요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요12:15)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것인줄 생각났더라 (요12: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거한지라 (요12: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요12: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니라."

파스칼은 "왕자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학자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도 좋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앞에서는 가슴을 조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필리핀의 막사이사이(Romon Magsaysay)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가난에 지지 않고, 역경에 꺾인 일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의 직책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항상 이 나라의 한 병사다.'라고 하면서 겸손하기만 했습니다. 실로 지도자는 겸손해야만 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하여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팍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습니다.'(단5:18-21) '그의 아들 벨사살 왕은 부왕이 교만하여 한 때 짐승처럼 들에서 살았던 것을 알고도 거룩한 성전의 기물들을 가지고 술잔치를 벌이며 우상을 숭배하고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고로 ...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했습니다.'(단5:22-31) 참으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 (잠언15:33),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언16:18)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도성'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은 겸손하신 왕의 모습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도 천박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시더니 세상에 사시는 동안도 겸손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죽으러 가시는 마당에까지 겸손의 상징인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시고 몸소 실천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참된 평화를 이룩하시는 방법은 바로 남을 섬기는 '겸손'인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겸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기점(起點)이자 중점(中點)이며 종점(終點)"인 인간사(人間史), 바꿔 말해 인간사의 기점이자 중점이며 종점이기도 한 종교사(宗敎史)엔 사랑과 용서보다는 그 반대가 먼저였다고 말했습니다. 미움과 살인이 앞장섰습니다. 동생 아벨에 대한 카인의 인류 최초의 살인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인류최초의 살인자에게 표시를 줘 아무도 그를 죽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표시가 인류 최초의 면죄부 아닌 면살부(免殺符)였고 사형폐지론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교의 기점이 살인으로 낙인찍혔듯이 그 중점(中點)도 종점도 끊이지 않는게 살인입니다. 인류사(人類史), 즉 종교사는 반목과 살인의 역사입니다. 13세기초 이래 중동 종교전쟁사를 비롯한 숱한 종교전쟁, 그것은 곧 대량살인극을 뜻합니다. 이슬람법과 같은 종교법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살인자를 살인(死刑)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레바논의 한 16세 미성년 강도 살인범에게 형법(刑法)이 아닌 이슬람법(종교법)에 의해 지난 3월 4일 총살형에 처한 것만 봐도 무서운 법이 종교사를 전쟁사로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겸손과 사랑의 법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 속에서 그것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8-44)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는 식으로 못된 인간의 이마에 교만의 뿔이 돋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는 그러한 바리새인이 허다합니다. 바리새인이 아닌척 하는 바리새인, 바리새인을 능가하는 바리새인, 영리하고 묘한 바리새인, 바리새인을 비난하는 초바리새인 등 말입니다. 그런데 철인 파스칼은 "종교인 가운데 '바리새인'이 많고, 성직자일수록 더욱 '바리새인'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최고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은 바로 나귀를 타시고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께서 살리신 나사로를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들은 경제적으로 부(富)를 누렸습니다.그들은 단순한 종교적 지도자들이 아니고 매우 귀족적인 지도자들이요 사회적으로는 특권층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안정을 원한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 사회의 개혁을 가로막는 죽은 사자와 같은 수구(守舊)세력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정치 혁명가로 보았던 것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등장해서 백성들을 동원하여 세상을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줄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이유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 역시 죽이기로 모의했고 예수님의 추종자는 모두 반란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또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대제사장들의 신앙과 신학적인 면에서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대제사장들 가운데 구약 시대의 '사독'이라는 제사장을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여기는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그들의 교리에 근본적 도전이 된 것입니다. 나사로와 그를 부활시킨 예수님을 그냥 두었다가는 사두개파가 없어질 위험에 처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의 증거자인 나사로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죽일 수가 없다! '돈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여자는 좀 더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가장 강하다.' 이것은 말틴 루터(M.Luther)의 말입니다. 참으로 인생의 행복은 진리와 더불어 있습니다. 또 참된 기쁨도 진리와 더불어 있습니다. 진리가 떠나는 날 행복도 기쁨도 함께 인생의 곁을 떠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독일의 휴매니스트 렛싱(Theodor Lessing)은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진실, 진리를 매몰시켜버리고 그 진실과 진리의 흔적을 없애고자 한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진리 발견의 역사요 정의 실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갈릴레오의 비극이 진리의 수난사이듯이 말입니다. 물론 인간을 죽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죽일 수가 없다! 이렇게 진리는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로 죽일 수가 없다! 진리는 용기를 낳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입성 당시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 한 예수님의 지상운명은 비참하게 끝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32-34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미 될 일을 알고 죽으시기 위해 입성하시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데 모든 면에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벳바게로 나귀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도 다 아시면서 이 일을 진행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처럼 죽으러 가는 인생길을 걷고 있는데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가진 사람이요 진리를 가진 사람은 진정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본문 15절에 인용하시면서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살인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신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말씀에 붙잡힌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용기의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다. 곧 신앙은 용기이다."(시세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옛날 신앙인들의 용기는 로마의 무력(武力)이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타콤(catacombs)은 그 용기의 꽃이요, 많은 순교자의 십자가는 그 용기의 열매입니다. 시인 괴테는 "재물을 잃는 것은 손해요. 명예를 잃는 것은 큰 손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만사가 끝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용기는 '진리'(요14:6)를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할 수 있는 진리 사모에의 열정(熱情)이요,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5)고 할 수 있는 순교자적 신앙에의 용단(勇斷)입니다. 그것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2:24)고 일어서는 일사각오의 자세이고, '한 알의 밀알'(요12:24)같은 희생의 표본(標本)인 것입니다. 목숨이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약4:14)와 같습니다. 안개(mist)는 헬라어로 '아트미스'(atmis)인데 그것은 '짧고 허무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시103:15) 또한 '그림자'(욥8:9)요, '풀의꽃'(약1:10)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오늘의 성도들이 비굴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자라야 참(眞)을 위하여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순교자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인생의 용기인 것입니다. 1943년 11월 5일 '런던 타임스'(London Times)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산다'고 크게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 하나의 실존이 꼭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용기는 선택이고 결단입니다. 곧 신앙은 용기입니다. 영원한 절망(絶望)이 영원한 생명을 만나는 꼭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절대(絶對)와 유한(有限)이 부딪혀서 제3의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좁은 길'(마7:14)입니다. '생명의 길'(잠6:23)입니다.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고 고집을 부리는 용기와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히12:1)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용기란 무엇입니까? 제 아무리 무서울지라도 악마를 향해 '너는 악마다.'라고 갈파(喝破)할 수 있는 것이 용기요, 험준하기 그지 없을지라도 그것이 옳은 길이기에 피와 땀을 흘리면서 '겟세마네'를 오르는 것이 용기입니다. 물맷돌 다섯을 들고 '골리앗'괴물(怪物) 앞에 늠늠히 나선 목동(牧童) '다윗'처럼 용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명'(有名)대신에 '고독'(孤獨)을 더욱 사랑하고,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목숨을 팽개칠지언정 죽음 앞에서 결코 비굴하지 않기를 우리 서로 기원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시60:12) <이동희목사>

<유머>

양보다 질

암여우가 암사자를 비웃었습니다."겨우 새끼를 한 마리 밖에 낳지 못하십니까? 한꺼번에 대여섯 마리 쯤은 낳아야 되는것 아닙니까? 나는 아홉 마리를 낳을 때도 있답니다." 암사자가 대꾸했습니다."한 마리지만, 사자란 말일세."

<병동일지>

병원은 전도의 황금어장

우리는 흔히 직장을 전도의 황금어장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영향력 있는 크리스챤들의 복음화를 향한 열정이 이곳에서 많은 결실과 수확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중에 병원이라는 직장은 황금어장 중에서도 자원이 최고로 풍부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이곳에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환자들이 모인 곳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위로를 얻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을 우리 먼저 믿은 자들이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함과 아울러 마음의 평안을 주기 위하여 병원 선교에 더욱 힘써야 한다. 특히 이러한 병원에 근무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영적으로 육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입으로만 외치는 외식의 신앙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가고자 한다. 7년여 전에 우리 병원에는 선교회가 조직되었다. 미력하나마 지금까지 사랑의 실천, 복음전파라는 취지 아래 회원들이 기도와 열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주일 날 일반 환자들은 외출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오후 3시 병원 예배 때는 많은 환우들과 그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이들 갈급한 심령들의 찬양과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섬김의 모습으로 넘쳐난다.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자아가 완전히 상실된 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길 때 더 크게 일어난다. 나는 환우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때로는 감격과 눈물, 때로는 부르짖음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이들의 모습을 늘 보아 왔다. 갈급한 심령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들이 어쩌면 더욱 복되지 않은가 라는 생각과 함께 어서 빨리 나음을 받아 교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주의 일에 더욱 힘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몸이 건강하다고 다 정상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야 말로 진정한 환자들이다. 그것도 아주 중병들이다. 전문가의 진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파송된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더욱 치료에 힘써야 한다. 특히 직장 속의 크리스챤들이 교회 내의 활동 못지 않게 직장 선교에 힘써야 한다. 선데이 크리스챤에 머무르는 한국 교회의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 선교에 눈을 뜰 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더욱 넓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역동적인 신앙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증인이라는 자격을 부여하셨다. 우리가 어디서 증인된 삶을 살 것인가? 직장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전도의 최일선이요, 증인된 삶의 현장이며 나아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장소인 것이다.산업현장에서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어느 형제는 목요 선교회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을 맡기니 왜 이렇게 기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는데 얼마나 편한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그리고 성령을 충만하게 하셔서 사랑·기쁨·만족·감사로 우리 생활에 새로운 차원으로 축복해 주신다. 나는 이 형제를 통해 나를 되돌아 보곤 한다.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장에서 찾고자 한다. 일주일 중에 6일의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곳, 바로 이 속에서 쫓기듯 피곤하고 일에 찌든 그런 생활이 아니라 주님이 파송한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다하는 것이 빛과 소금의 삶이다. 직장 속에서 어떤 일을 하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이곳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직장은 생활의 방편이나 자아 실현의 장으로서 보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복된 선교지이기 때문에 이 직장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 이어야 한다.추수 할 것 많은 병원의 직장인이 된 것에 감사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으로 승리하고 선교하는 나와 모두이기를 기도한다. <울산해성병원 방사선과 윤 재 수>

<건강상식>

집집마다 된장을 담근 이유

우리의 밥상에는 기본적으로 오르는 것이 정해져 있다. 그 중에 한 가지, 그것도 밥상 한가운데에 놓이는 것이 간장이다. 간장은 된장을 담아 그 국물을 달인 것이다. 양조간장은 된장 없이는 만들지 못한다.된장은 영양분석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효과, 즉 플러스 알파의 효능이 지극히 큰 식품이다. 된장에는 살아 있는 미생물이 대량으로 번식해 있으며, 그것이 장으로 들어가서 눈부신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된장이 가진 효능의 대부분은 이 미생물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그러므로 이런 좋은 작용을 하는 양질의 미생물이 많이 번식해 있지 않으면 된장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장에서 만드는 된장을 사 먹지 않고, 지금도 집집마다 된장을 담아 먹는 것이다. 공장에서 제조하는 된장에는 아무래도 식품첨가물이 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된장의 주원료는 콩이다. 콩에는 고단백,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 등 성분 조성이 아주 이상적이다. 그 콩에 뜸팡이를 작용시켜 띄워서 된장이라는 식품으로 변신시킨다. 그러면 소화되기 어려운 콩의 난점이 제거되는 동시에 번식된 미생물에 의한 수 많은 효능이 생겨난다.우선 첫째로, 된장에는 동물성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 있다. 식물성 식품을 먹으면서 동물성 아미노산을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으므로 육식하는 것과는 달리 혈액을 산독화할 염려가 없다. - 중략 - 된장에 함유된 메티오닌은 간을 보호하는 물질로서, 니코틴이나 알콜의 대사물질인 알데히드 등의 독소를 재빨리 해독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된장은 필수불가결의 식품이다.동시에 된장에는 방사성물질을 흡착하여, 체외로 배설시키는 작용도 있다. 또한 리놀산이며 레시틴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동맥경화, 고혈압, 뇌졸중, 심장병 등의 예방에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된장에는 많은 양의 소금이 들어 있으므로 고혈압에는 해롭다고 말하지만, 천일염을 썼을 경우나 된장이 충분히 맛이 들었을 경우라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 뛰어난 정장(正臟)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염증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큰 된장은, 알레르기의 추방에도 단연 위력을 나타낸다.된장 요리의 대표는 뭐니뭐니해도 된장찌개이고 이것은 우리나라 민속음식을 대표한다.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놓고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가정' 이것으로 우리나라의 화목한 가정의 묘사는 끝나는 것이다.게다가 된장은 고운 살결을 가꾸어 주는데도 크게 기여한다. 피부는 안에서 밖으로 세포를 밀어내어 신진대사를 하고 있으므로 된장의 효과로 안쪽의 피부세포가 건강을 찾게 되면 자연히 아름다운 피부로 변해 갈 것은 당연하다. -된장덮밥 요리-재료: 된장 300g, 양파200g, 연근70g, 당근50g, 새앙10g, 우엉60g, 마늘 다진 것 10, 유자 껍질 5g(귤껍질로 대용해도 좋고 없으면 안 써도 된다), 참기름 8큰술, 멸치국물이나 육수 1컵, 고춧가루 1큰술.

<만드는 법>

1.야채는 전부 잘게 썬다.

2.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둘러 뜨겁게 달군 다음, 마늘과 양파를 볶아 색이 변하거든 우엉을 볶고 연근, 당근을 차례로 넣고 볶는다. 된장은 멸치국물이나 육수를 붓고 저어, 한소끔 끓거든 고춧가루, 새앙과 유자껍질을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약한 불로 졸인다.

3. 눌어붙지 않도록 가끔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30-40분쯤 졸인다.

4. 따뜻한 밥 위에 끼얹어 먹어도 좋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된장국이 되기도 한다.

-김상무 편저의 '죽을 병이 아니면 다 고친다'중에서 발췌,정리 장옥순 -

<사랑의 힘>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그 청천벽력 같던 소식의 충격도 잠시 가라앉았다. 마침내 거실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 앞에 멈추어 서서, 큰 창문 너머로 햇살 가득한 뒤뜰을 내다보며 의사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결장암' '이상하기도 하지. 내가 죽어도 이 모든 것은 변함없이 남아 있을 거라니.'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안아 키우던 흔들의자, 늘 한쪽 구석에서 즐겨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천장 꼭대기까지 찬 서가의 책들, 그리고 남편이 만든 대형 괘종시계 등을 둘러보며 남편과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했다. 아무도 이 슬픈 소식을 알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여기 남아 있을 것이고 나만이 이 곳을 떠나게 되리라. 그 후 수술을 앞둔 며칠 동안 내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랍과 찬장, 벽장들을 들춰보면서 필요 없거나 오랫동안 쓰지 않던 물건들을 내버리기 시작했다. 또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를 적어 두며 이제 곧 끝날 삶에 나 자신을 적응시키려고도 해 보았다.'내가 왜 이러는 거지?' 나 스스로도 의아했다. '분명 죽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낫고 싶어. 남편과 함께 은퇴 후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지금 내겐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잖아. 비록 쉽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견딜만한데 왜 이 모든 것을 내어놓으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냥 포기해 버리려는 마음일까?'

이런 내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크리스천이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조심스런 결단의 순간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예수님이 나를 인도하면 어쩌지? 그러나 그 순간 내 의지를 주님께 내어 맡겼다. 결과적으로 주님은, 만약 내가 내어 맡기지 않았다면 결코 열리지 않았을 멋진 길로 나를 인도해 주셨다. 미국 루터교협회의 학생봉사국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여행하며 사역할 수 있는 꿈같은 일자리가 첫 직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한 가지 망설여지는 것이 있었다. 그 일을 하려면 대중연설을 하고 성경공부도 인도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학교 다닐 때 교실에서 낭송하는 것도 끔찍하게 생각했었다. 더구나 주일 학교는 참석해 본적도 없는 나였다.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나의 이런 태도가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세도 말재주가 없었고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해 뱃길로 도망가려했다. 하지만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결국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두려움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만 했다. 나 역시 그들처럼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번째 맡게 된 임무는 일리노이 주 대학 캠퍼스 내에서 루터교 학생 모임의 결성을 돕는 일이었다. 그 지역 목사들을 만나 보았고 지도자급 학생 몇 명을 찾아내어 홍보를 준비했다. 하지만 신규 기획팀의 일원인 한 학생이 "선생님께서 직접 성경공부를 인도하시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을 때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하나님께 대들 듯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난관도 넘어서게 해주세요!" 룻기에 관한 그 성경공부는 결국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학생들은 열심히 배웠고 나중에 이런 말들을 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그런 성경공부였어요."다른 기억들을 회상하면서 이런 내어 맡김, 한마디로 낯익고 안전해 보이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늘 취해 오던 자세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암제거 수술을 앞두고 나는 다시 그런 태도를 취하려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성공이었다. 다시금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새로이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영적 성장과 더불어 여러 가지 축복을 얻게 된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지상의 삶에서 완전히 떠날 때를 예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린도후서 5:8)"고 말했듯이,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 오는 순간, 죽음은 우리의 모든 내어 맡김 가운데 가장 작은 부분이 되리라.

<십이월의 시>

마리아의 찬송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누가 복음 1:46-56)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를 읽는 마음>

이 마리아의 찬송시는 교회 최대의 찬송 중의 하나인 마그니피카트(Magnificat)이다. 스탠리 죤스(Stanley Jones)는 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를 가장 혁명적인 문서라고 말했다. 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는 하나님에 의한 세 가지 혁명을 말해 주고 있다.첫째,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신다. 이것은 도덕적 혁명이다. 기독교는 교만함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을 따라 살아 나아가고자 하면 그의 교만은 그 마지막 가면까지도 벗겨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들을 낮추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 이것은 사회적 혁명이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간판과 지위에 대해 그 종언(終焉)을 고(告)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는 사라졌다. 셋째,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배불리시고, 부자를 빈 손으로 돌려 보내신다. 이것은 경제적인 혁명이다. 비 기독교적 사회란 각자가 이익을 취하면 취한 만큼 부(富)를 축적하는 탐욕 중심의 사회이다. 기독교적 사회란 다른 사람들이 조금 밖에 갖지 못하였을 때에는 자기도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아니하는 사회이며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단지 주기 위하여서만 소유하는 사회이다. 이것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에 있는 아름다운 면인데 이 아름다움에는 일종의 다이나마이트가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는 각 사람 속에서 혁명이 일게 하며 따라서 그것은 세계에 혁명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광야의소리>

올해 겨울은 따뜻할까

우리 격언중에 '용두사미'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머리는 용머리인데 꼬리는 뱀꼬리라는 말로써 시작은 늘 근사하고 화려하지만 끝은 미비하고 볼품없다는 뜻이다. 처음 시작했던 취지나 각오는 금방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거나 우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생활방식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올 겨울이 10년만에 찾아오는 혹독한 추위로 매서운 겨울이 될것이라는 기상대의 발표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김영삼 정권에게 사고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져다준 사고가 참 많이도 있었다. 성수대교를 시작해 삼풍, 대구가스, 적조, 유조선 침몰..... 우리의 마음을 써늘하게 했다. 그 뿐인가 이제는 한해를 정리하는가 했더니 요즘 보통사람은 돈 단위가 '원'이 아니라 '억'이라는 파문을 일으킨 사람까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것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 기관에서 삼풍사고 100일을 맞아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고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언제 발생했는지 질문에 '3개월전'이라는 응답은 44.6%, 이준 회장등 사고 책임자들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당시 64.5% 에서 58%로 낮아졌고, '붕괴 위험 때문에 백화점과 같은 대형건물의 이용에 불안을 느꼈다'는 응답자가 당시 64.5%에서 46.4%로 낮아졌다고 한다.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관심도 당시 80%에서 57%로, 후속 보상문제도 '전혀 합의되지 않고 있다'고 정확히 대답한 응답자가 7.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당시의 참상과 교훈은 불과 네 달만에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있으며 우리는 또 다른 위험속에서 안일하게 그냥 살고 있는 것이다.한 해를 마감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나온 날들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바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리라. 잠시 일어났다가 꺼져버리는 우리의 습관적 사고방식은 결국 사회부폐의 악순환만을 남길것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진정한 정의의 사회는 소수의 집권층이나 지도자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회체제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쓰라린 과거는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과거를 통해서 얻어지는 무수한 교훈들은 걸러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아스라이 잊혀져 가는 삼풍의 유가족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위로한다면 아무리 10년만의 추위라 할지라도 훈훈한 겨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한은성전도사)

<하하호호 잉글리쉬>

Prayer

As the boat was sinking, the skipper called out:

"Does anyone know how to pray?"

"I do," replied a man

"O.K. go ahead and pray," said the captain.

"The rest of us will put on life belts. we are short one."

기 도

침몰하는 배 위에서 선장이 소리쳤다. "누구, 기도할 줄 아는 사람 없나?" "나요." 한 남자가 대답했다. "좋소, 이리 나와서 기도하시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구명대를 입으시오. 구명대 하나가 모자랍니다."

<삶의 지혜>

젊게 느끼고 보이게 하는 8가지의 방법

건강하다고 느끼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좋은 유전자와 흡연, 음주와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의사들이 우리들 자신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건강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한 연구에 따르면 문제를 놓고 말할 때에 서로 화를 내고 싸우는 부부는 싸우지 않는 부부들보다 혈압과 심장박동수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다툰 후에 화를 내는 것은 상대방의 면역성을 24시간까지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은 당신을 건강하게 합니다. 한 이스라엘의 연구에 따르면 심장병으로 위험률이 높은 사람들은 낮은 사람보다 20배나 가슴에 통증을 더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가슴의 고통이 증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슴에 고통이 많이 느끼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 사랑을 나눌 때에는 당신의 신체가 더욱 더 좋게 느낍니다. 테드 맥베나의 말에 따르면 성(性)은 면역성을 활성화시키고 고통의 증가를 억제시키며 자연적인 진정제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고 합니다. 건강한 삶을 원하십니까? 서로를 사랑하십시오.

2. 예방주사를 맞읍시다.

홍역, 유행성 이하선염이나 풍진 예방주사를 어릴 때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어린이 병"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성인들의 면역성은 어린이들의 면역성과 똑같이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도 매년 5만에서 7만 명에 이르는 성인들이 유행성 독감과 폐렴, B형 간염과 다른 질병의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처방만으로도 이런 병들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는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유행성 독감백신이 병을 유발시키지 않는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만 유행성 독감예방주사는 젊은 성인의 70-90%를 병에 걸리지 않게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의 병원입원을 적게 하고 나이에 비해 일찍 사망하지 않게 합니다. 예방주사 때문에 두통이나 미열등의 부작용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일년에 약 2만의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고 있습니다.

3.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십시오.

대부분의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은 친구들과의 유대관계가 두텁고 서로 돌봐주고 있습니다. 서로 위로해주는 가족과 친구관계로 높은 면역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담배를 끊거나 힘든 운동을 계속해야 할 때, 암으로 투병생활을 할 때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큰 힘을 얻습니다.Healthy Pleasure의 공저자(共著者)인 데이비드 S. 소벨박사는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것은 담배를 피우며 운동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건강에 위험요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앤드류 페랜트는 아내가 죽은 뒤로는 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습니다. "난 네 번의 심장의 대체혈관 수술을 받았고, 내 관절은 아프고 난 항상 감기 아니면 독감에 걸렸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나가고 나니 '이젠 혼자 죽을 일만 기다려야만 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후에 사별(死別)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에 참석함으로 앤드류는 건강을 회복했습니다.당신을 도와줄 친구가 없다하더라도 당신에겐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는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은 같은 나이의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4. 충분히 자는 것을 아까워 마십시오.

일을 하거나 놀 때에는 몸이 휴식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만일 충분하게 자지 못한다면, 기분이 좋지 않고 또 피곤하게 보일 것입니다. 인생관도 부정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수면을 취하는 것은 장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6시간보다 적게 자는 사람들은 7∼8시간 자는 사람들 보다 70%정도 사망률이 높다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잠을 자십시오. 밤에 7∼9시간 정도 적절한 수면을 취하고 나면 기분도 좋아질 것입니다.

5. 신체에 귀를 기울이세요.

몸은 아픔이나 고통, 그리고 육감이라는 느낌들을 통해 꾸준히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주의해 보십시오. 유방 X선 사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한 30대 부인은 자신의 느낌에는 이상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고 난 후에 자신의 느낌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오른쪽과 왼쪽 유방에 전이성(轉移性)암과 전암(前癌)증세가 있어서 두 번의 유방 절제 수술을 한 뒤로 이제는 암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6.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십시오.

자신의 일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스트레스를 주고 지치게 합니다. 그것 때문에 수 많은 병으로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몇년 전에 NNLI는 직업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두통, 감기, 소화불량, 성지염과 폐렴 등에 걸려 고통받고 있다고 연구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주중에는 두통, 위염, 신경통 등을 호소하고 주말에는 그 증상들이 사라졌다가 신기하게도 월요일에는 다시 나타난다고 합니다. 직업은 변화와 업무완수에 대한 도전을 제공합니다. 실제적인 작업환경보다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직업이 주는 변화와 도전을 느낍니다. 시카고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남부 시카고의 황량한 공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사람을 만나 보았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그 사람은 "여름엔 공장은 꼭 오븐 같아요, 겨울에는 얼음으로 덮이고요. 철이 울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말을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 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만 그 학자는 그런 스트레스는 받는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자신의 일로 인해 행복해 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몇 년 동안 그는 공장의 변화에 익숙해졌고, 어떤 물건도 다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사랑한 것입니다. 평범한 일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드는 사람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도전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7. 지중해식 식이요법을 즐겨보세요.

조지 버나드 쇼는 "음식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먹는 것 중에서 무엇이 몸에 유익한지 아닌지를 일일이 살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요?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단지 편안하게 음식을 먹으세요.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아마도 영양분이 많은 곡물, 신선한 과일과 야채, 적은 양의 신선한 육류 그리고 풍부한 양의 마늘일 수도 있습니다. 마늘은 "좋은" 고밀도 지방 지단백질 콜레스테롤을 상승시키고 "나쁜" 저밀도 지방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올리브 기름도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한 몫을 하지만 많은 양의 올리브 기름 때문에 지방을 과다한 섭취하게 한다고 논란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름기가 있는 음식물을 많이 섭취해야 할 때에는 걱정을 하지 말고 식사를 충분히 즐기고 난 후에 밖으로 나가서 운동을 해보십시오.

8.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십시오.

神을 믿는 것이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게 한다는 증거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22개의 연구사례에 따르면 교회를 자주 가는 사람들은 고혈압(高血壓), 폐결핵(肺結核), 자궁경관암(子宮頸管癌)등의 병에 걸리는 확률이 낮다고 합니다. 버지니아 의학 대학의 제프리 S. 레빈은 "신앙이 더 건강한 생활을 갖게 하고, 더 확실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거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또 희망과 낙관적인 사고가 면역성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심장병의사인 랜돌프 C. 버드 박사는 그가 매일 한 집단의 환자들만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 심장병 환자들은 통제집단으로 있었습니다. 환자들이나 의사들은 누가 기도하는지도 몰랐지만 기도를 받은 그룹에서 다섯 배나 적은 항생물질을 필요로 했고 숨을 쉴 환풍기를 덜 필요로 했습니다.간단하게 말해서 건강하게 되고 싶다면 위의 8가지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넘쳐흐르는 마음, 그리고 희망적인 마음, 즐거워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아서 루빈스타인을 즐거움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삶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나면 인생이 당신을 다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한 루빈스타인은 95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리더스 다이제스트 영문판 11월호 발췌번역: 대학부 김정희)

<성탄절 명상 1>

크리스마스 트리를 발견한 사람은?

크리스마스와 전나무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이때는 아직 장식은 하지 않았지만) 700년대 초반의 독일이다. 독일에 전도하러 와 있던 성 보니페이스(680년. 윔프리드 태생의 영국인 선교사)가 가이스마르라는 마을 부근에서 게르만인 드루이드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참나무 숭배자인 드루이드에게, 참나무가 특별히 신성한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납득시키려고 보니페이스는 그 곳에 서 있던 큰 참나무를 한 그루 베어 쓰러뜨렸다. 참나무는 주위의 키가 작은 나무들을 단숨에 쓰러뜨리며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이때 이상하게도 어린 전나무만은 화를 피해 무사했다. 이것은 물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보니페이스는 재빨리 어린 전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기독교의 탄생과 똑같은 기적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이 나무를 아기 예수라고 부릅시다."라고 말했고, 그 후 전나무를 심게 되었다고 한다. 16세기에 들어서자 독일인은 크리스마스용으로 장식을 한 전나무를 집 안팎에 장식하게 되었다. 이것은 1561년 알자스 지방 아마슈바이어의 삼림 조례의 내용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크리스마스용으로 두 그루 이상의 전나무를 베지 말 것.'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전나무에 장식한 것은 색종이로 만든 장미꽃, 사과, 웨이퍼, 금가 루, 사탕이었다. 불을 켠 초를 나무에 장식하는 것을 생각해낸 사람은 16세기 종교개혁가로 잘 알려진 루터였다. 어느 추운 겨울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교를 생각하면서 걷고 있던 루터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 상록수 사이로 반짝이는 별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였다. 그 아룸다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는 거실에 나무를 세우고 그 가지에 불을 켠 초를 동여맸다고 한다. 1700년대 독일에서 크리스트바움(크리스마스 트리)은 크리스마스에 빠뜨려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이 관습은 독일에서 서 유럽 각지로 널리 퍼져 나갔는데,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시작한 것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이 독일인 알버트 왕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나서의 일이었다. 독일 중앙의 잭스고브르크 고타 공의 아들로 태어난 알버트 왕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을 하면서 성장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과 결혼한 그는 이 독일의 관습을 영국에서도 받아들이도록 여왕에게 요청했다. 미국에 크리스마스를 전해준 것은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해 온 독일인들이라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의 마추 참의 일기에 의하면 1821년 12월 20일에 신세계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다른 크리스마스의 축제 행사와 똑같이 미국에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뉴잉글랜드에 이주해 온 청교도 무리는 매우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그룹으로, 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성스러운 날이었다. 식민지의 제2대 총독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이교의 모방행위'를 중지시키기 위해서 참되지 못한 모든 행위를 하면 징벌할 것이라고 자신의 책에 쓰고 있다. '이교도의 관습'인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 트리, 그 밖에 '신성한 날'을 더럽히는 모든 불성실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올리버 크롬웰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1659년 매사추세츠 입법의회는 교회 예배를 제외한 12월 25일의 모든 행사를 위법으로 정하고 이를 어기는 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을 하는 것도 위법이었다. 이 엄숙한 크리스마스는 19세기,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청교도적인 엄격함을 흔들어놓을 때가지 계속된다. 1856년, 시인 롱펠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뉴잉글랜드의 크리스마스는 지금이 과도기인 같다. 청교도적 분위기는 여전히 밝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부정하고 있지만, 현실의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점점 더 밝고 즐거워져 간다.'그해 크롬웰의 생각을 끝까지 따르던 매사추세츠 주도 마침내 크리스마스를 법정 휴일로 정했다. 재미있는 것은 추수감사절을 국가의 명절로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 1800년대의 여성지 <구디즈 레이디스 북>이 크리스마스에서도 큰 역할을 해냈다는 점이다. 이 잡지는 즐겁고 익살스러운 그림과 함께 집을 장식하는 법, 크리스마스 과자와 음식을 만드는 법,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법 등을 가득 실어 몇 만에 이르는 주부에게 예수의 탄생일은 신성할 뿐만 아니라 모두가 즐기는 축제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심어주었다. <편집부>

<성탄절 명상 2>

사랑의 세계

초대 교회 신자들은 지하묘지(카타곰베)에서 만날 때 다음과 같은 예화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한 총각이 처녀를 미칠 듯이 사랑하였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그는 밤늦게 연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처녀에게 날 좀 방안에 들여보내 달라고 청했다. 처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가 대답하였다. "나요"(It is I) 그러자 방 안에서 처녀가 대답하였다. "이 방은 너무 좁아요. 한 사람 밖에 들어올 수가 없답니다. 가세요!"그는 슬픔을 잊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그는 처녀가 왜 자기를 거절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 처녀도 자기를 사랑하는 게 분명한데도. 몇년을 떠돌아 다니다가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어느 날 밤 늦게 그는 다시 처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하고 안에서 처녀가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당신입니다."(It is you)그러자 문이 열리고 연인이 뛰쳐나와 그를 껴안았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천국은 이 우주에서 가장 좁은 곳이다. 그 곳에는 다만 한 분만이 있을 수 있다. 그 분과 하나가 된 사람들만이 그 곳에 들어갈 수가 있다. 세익스피어는 <불사조와 거북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수(數)가 암살 당했다." 사랑은 복수(複數)와 공존(共存)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영혼과 마음이 하나이다. 아내와 남편은 하나이다.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도 하나이시다. 마찬가지로 신앙심 깊은 영혼과 그리스도 또한 하나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와 <나>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노래했다."왕비는 60이요, 후궁은 80이되, 나의 비둘기 나의 순결한 여인은 하나 뿐이로다."(아가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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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호(1996.1)

차 례 --------------------

▒ 말씀의 샘 <일어나 걸어라-2>

▒ 병동 일지 <작은 기쁨-13>

▒ 건강 상식 <생활의 리듬-16>

▒ 사랑의 힘 <호세의 발-20>

▒ 정월의 시 <복있는 사람은-22>

▒ 광야의 소리 <전문가와 아마츄어의 차이-26>

▒ 삶의 지혜 <정직이 최상의 정책-28>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 1

<오물을 뒤집어 쓰시고도-31>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 2

<알퐁스 도테의 불로장생주-34>

▒ 문화 엿보기<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 4-38>

▒ 예술 한 토막<애국가는 하나님의 선물-44>

▒ 애플 퍼즐 <46>

제9호 정월호

만든 사람들: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1996년 일출을 바라보며

<말씀의 샘>

일어나 걸어라!

"(요5:1) 그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요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5: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요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5: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삶의 질고(疾苦)를 지고 괴로워하며 영적 무기력(靈的 無氣力)의 늪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영혼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38년 된 병자처럼 행여나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줄까 고대하며 오늘도 지친 몸을 베데스다(자비의 집,불쌍한 사람을 돕는 집,house of mercy) 연못가에 누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본문 6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서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고 하는 못(pool)의 주변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양문은 예루살렘의 여러 개의 성문 중에 동북편에 위치한 문으로 양의 시장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양문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이 양문 근처에서 양을 사가지고 끌고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스데반 문이라고도 불리웁니다(느3:1,3,12:39). 이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는데 못의 길이가 17미터가 되는 아주 큰 못입니다. 지금도 가면 연못 옆에 기념 예배당을 세워놓은 베데스다 연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못에 세상의 별별 환자들이 다 모여 왔습니다. 결국은 난치병으로 인생의 종말을 보는 듯한 비참한 광경이 그곳에 전개되어 있습니다.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 등과 같은 무기력한 병자들, 아무런 힘도 없었고 인생의 소망도 없었으며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갖가지 참을 수 없는 질병과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소위 "자비의 집" 또는 "은혜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베데스다는 오늘날 '교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 내의 어떤 사람들은 삶을 유지할 만한 여력도 없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비젼도 갖지 못한 채 삶의 길에서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실패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은혜의 집'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비참한 병자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있는 한 모든 인간은 38년 된 병자와 같이 영적(靈的)으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병자는 육적으로 자신의 몸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심한 불구자인 동시에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조차도 없었던 영적 중상자였습니다. 환경에 얽매여 절망가운데서 불평밖에 나올 것이 없었던 그는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된 인간의 실상(본문 14절,엡2:1)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적(外的)으로는 허우대가 좋고 화려함과 온갖 치장 속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듯한 인간들의 모습을 오늘날 도처에서 볼 수 있지만 이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적으로 얼마나 무기력하며 죄의 껍질로 얼마나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만이 비참하고 슬픈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영적으로 죽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죽음에 이르는 병은 키에르케골(S.Kierkegaard)이 말한 것처럼 심령이 날로 부패해 가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전적 무능력으로 인해 아득한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병자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사 초자연적인 권능의 말씀,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을 주심으로써 희망과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38년 동안 병든 자나, 사도행전 3:1-10절에 나오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주어진 말씀은 공히 "일어나 걸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마치 이들과 같이 모두 걷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1.지성(知性)을 가지고 그것을 자랑하며 그 지성으로 자신은 직립(直立) 인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은 만능(萬能)이 아닙니다(Kant). 하나님을 떠난 지성은 무기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성은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참된 그리고 힘있는 지성이 있습니다. 잘못되어 가는 세상의 역사를 바로 잡는 지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것입니다.

2.감성(感性)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이들은 시(詩)를 읊고, 애가(哀歌)를 부르며 예술을 이끌어 가는 무리들로 자신들이야말로 스스로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열 두번도 더 변하는 것이 인정(人情)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은 속이고 배반하고 미워하고 토라지기가 일쑤입니다.

3.어떤 사람들은 의지(意志)를 자랑합니다. 물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의지에 비하여 강철 의지가 있습니다. 또 오뚜기같은 의지도 있고, 젊은 독수리같은 의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작심삼일(作心三日)입니다. 그 의지는 강철도 못되고, 무쇠도 못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의지를 신화화(神話化)하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걸어라!"

인생의 생명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생명은 오직 예수에게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생명은 이 땅의 지성인에게 있지 않습니다.

민족의 생명은 이 땅의 예술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민족의 생명은 이 땅의 집념과 의지를 지닌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민족의 생명은 이 땅의 경제인,금과 은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수만이 이 땅의 지성인을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예수만이 이 땅의 예술과 경제, 그리고 정치를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일어나 걸어라!"는 예수님의 말씀만이 사회와 정치, 경제와 종교를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 (복음성가 183장)

사막을 파면 오아시스가 생깁니다. 또 가시밭을 열면 신작로가 생깁니다. 똑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를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진정한 구국사상(救國思想)과 애국 정신이 생깁니다.

예수를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수 십년된 고질병과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이 땅에 수 십년된 고질병과 앉은뱅이같은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됩니다. 오늘날 악이 없는 언어가 없습니다. 또 부정이 섞이지 않은 교육, 정치, 경제, 사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만신창이입니다. 한 마디로 창기와 같은 문명입니다. 그야말로 슬픈 정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애1:1) 하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통분을 되씹게 하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실로 앉은뱅이 민족, 38년 된 병자(病者)의 민족을 통탄합니다. 오! 앉은뱅이 민족아!, 오! 38년 된 병자같은 민족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예수님은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유대인의 의무로 되어 있는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 등이 있습니다. 이 절기들에는 예루살렘 주위 약 32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모든 성인 남자 유대인들은 법적으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요한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이 큰 절기들을 지키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민족의 관습과 풍습을 무시하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믿고 난 다음에 자기 민족도 없고 조상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팽개쳐버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상들이 섬기던 제사를 지내야 된다거나 혹은 잘못된 길을 가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민족을 더욱 사랑해야 되고 예수를 믿기 때문에 친척들에게 좋은 습관을 보여줘야 되고 예수 믿는 신자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더욱 소중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민족과 나라가 사는 바른 길을 깨닫게 되고, 진정으로 민족과 나라가 사는 절기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1.이 땅에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있습니다. 영적(靈的) 소경들입니다.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그래서 벌거벗은 수치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계3:14-22). 이들에게 예수님은 권고하십니다. "내게서(예수에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의 안약을 사서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보시기를 축원합니다.이 땅에 성령의 불을 던져 이 민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보게 합시다.

2.이 땅에 '절뚝발이' 같이 바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른 행위를 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르게 걷지 못하고 자꾸만 옆으로 걷습니다. 게와 같이 스스로 바로 걷지도 못하면서 남들더러 바로 걸으라고 말합니다. 바르게 사는 법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바로 걸을 수 있습니다.

3.이 땅에 '혈기마른 자들이' 있습니다. 혈기마른 사람은 한 마디로 무능한 사람을 말합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능력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4.이 땅에 '38년 된 병자'들이 있습니다. 이 병자는 자신도, 타인도, 그 누구도 인생의 소망이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중에 가장 약한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하여 관심을 나타내시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유대의 지도자들이나 돈 많고 권세 많은 사람이 아니고 그 숱한 병자 가운데서도 가장 불가능하고 비참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병자와 같은 심정으로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의인이 아니라 병든자요 영적으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친구없는 자의 친구가 되셨고 아무런 도움도 가지지 못한 사람의 조력자(助力者)가 되셨습니다.예수께서는 동(動)하는 물을 기다리는 것을 쓸데없는 미신이라고 이론을 전개하여 이 사람을 성가시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소망은 그를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그렇게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사람을 예수님은 가능한 존재로 변화시키십니다. 예수께서 먼저 찾으십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은혜에 대한 간절한 갈망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너희가 참으로 변화되기를 원하는가?"라고 질문하십니다. 만일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현재 상태를 만족해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변화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는 소원이 절대 필요합니다. 소원은 신앙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신앙의 진정한 소원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소망을 삼아야지 호흡이 끊어질 인생을 의지하고 거기에다 소망을 두면 모두가 다 헛수고요 거두는 것은 허무 그 자체입니다(시편146:3,5). 오늘 우리는 소원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욕심으로 쓰려고,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함입니다(약4:2).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원은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예수뿐입니다. 야곱과 같은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사모하는 라헬을 아내로 삼기 위해서 장인될 사람의 요청에 따라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되 7년을 하루같이 하였습니다. 장가를 들기 위해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원은 얼마나 간절해야 하겠습니까?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는 주님의 물음에 간절한 소원으로 자신과 나라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참으로 네가 변화되기를 원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자신과 이 나라 민족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원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 "일어나 걸어라!"는 말씀에 38년 된 병자처럼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에 따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역사(役事)가 일어납니다.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너와 네 민족이 낫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일어나 걸어라!" <이동희목사>

<명언>

자녀를 교육시킬 때 과학을 바탕으로하여 가르치면 유익하다. 그러나 성경으로 가르치면 죽음을 정복하는 행복한 자가 된다. -- 페스탈로찌---

<병동일지>

89년초 추운 겨울에 전기시험에 떨어져 낙심되고 상심한 마음으로 찾아간 학교.당시 상황에서는 임시방편적인 선택으로만 느껴지던 간호학과의 선택은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였음을 이제서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유년시절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병원신세를 자주 졌으나 병원이라는 조직체에 대해 문외한이였으며 간호사에 대한 호기심조차 없던 나에게 학과 공부는 이상스러우리 만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갔다. 점차 흥미를 갖게 되면서 어쩌면 무심코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생활하며 보내야 하고 학교를 졸업할 때는 결코 빈손이 아니어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른 새벽 두꺼운 간호학 교과서를 들고 열차로 통학해야 하는 어려움과 피곤함 속에서도 해부학·생리학·약리학 등의 공부는 그 모든 수고로움이 가치 있는 것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에 창조하신 인간의 생리적 구조와 원리, 그 상호작용과 반응들은 너무나 오묘한 질서 속에 이루어져 있음을 절감하였고 또한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바쁘게 지나온 일 학년 한해가 끝나갈 무렵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어깨 통증이 나를 엄습해 왔다. 종국에는 팔을 들어올리기조차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왼쪽 겨드랑이에 덩어리 같은 것이 만져졌다. 울산의 몇몇 병원을 차례로 찾아가 보았으나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여 부산대학 병원으로 찾아갔다. 세 자매중 장녀인 나는 그 당시 부모님께 큰 근심이 되었었다. 부산대학 병원에서 겨드랑이를 절개, 혹을 제거한 후에 약을 조제 받기는 하였지만 왼쪽 어깨의 활동부자유는 계속되었다. 진단 결과 왼쪽 어깨의 통증과 부자유로움은 원인불명으로 결론이 났다. 3개월 투약을 지시 받았으나 지속적인 기도속에 가정을 이끌어 주셨던 어머님의 권유로 투약은 1개월 정도에서 중지하고 하나님께 대한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께 의지하게 되었다. 주님 뜻을 거역하고 욕망대로 살아 온 날이 없었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오랜 신앙생활이 은연중에 습관이 되어 버렸고 믿음은 신생아와 같은 상태인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의학을 믿고 치료할지 기도와 간구로 회복해야 할지를 망설이던 중에 무엇보다도 큰 힘과 용기가 되어 준 것은 어머님의 끊임없는 기도에 있음을 그 후에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회개와 간구로 다시 새로워진 나의 신앙생활 속에 육체적인 고통은 자취를 감추었고 나의 고통은 신앙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아버지를 주님께 좀 더 다가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비하고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요셉에게 노예생활을 겪게 하셨던 것처럼…… "할렐루야" 깨끗이 나음을 받은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년간 타지에서의 실습과정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취직을 하게 되고 순탄한 길을 걸어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병동근무 3년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들은 많은 환자들. 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족중 한 사람을 위해 병원비와 병수발로 한 가정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고 많은 자식들이 있음에도 의지할 사람 없어 텅빈 병실에 갇혀 지낸 노인분들도 있었고 이미 결론이 난 자신의 미래를 느끼면서도 삶을 지속하기 위해 애걸하듯 의사에게 매달리던 환자들도 있었다.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먼저 선택되어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 아래서 생활하는 나와 주위 모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게 된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의 기쁨과 소망의 원천이 되신 예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고 영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주님 주신 사명이고 또 나의 작은 기쁨이 될 것이다. (울산 해성병원 이현섭간호사)

<건강상식>

생 활 의 리 듬

인생의 계획이나 연초 계획도 건강이 뒷받침되지 아니할 때에는 다 허사가 된다. 건강의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생활 속에 있다. 자기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알고 지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할일임을 명심하고 건강 365일을 위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규칙적인 생활과 적응력

우리 몸은 외부의 자극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불규칙한 생활로 자극이 누적되면 인체는 적응 능력을 상실하여 고장을 일으킴으로써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킨다.따라서 온도 변화 등 외부의 조그마한 자극도 이기지 못하고 질병에 걸리기 쉽다. 건강하다는 것은 신체의 면역 기능이 강하다는 말과도 통한다. 평소의 규칙적인 생활로 매사에 무리하지 않으면 몸 속에서 면역체 형성이 빠르고 활동이 원활해진다.

2. 정신 위생

복잡하고 경쟁적인 현대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는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의 하나이다. 외래 환자의 절반 이상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스트레스와 연관되어 있다.스트레스는 자율 신경과 내분비 계통에 영향을 끼쳐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혈압이 오른다, 가슴이 아프다는 등 각종 육체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또한 스트레스는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거나 병세를 악화시켜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적절한 스트레스의 해소는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다.전문의들은 3Y를 피할 것을 권고한다. 근심걱정(worry), 조급함(hurry), 성냄(angry)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정기적인 건강 체크

자기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40대 이후에는 더욱 그러하다.중년기에는 누구나 한 번쯤 종합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종합 검진은 값이 비싸 누구나 하기는 어려우므로 1년에 한 번씩 흉부 X선 검사, 혈당 검사, 혈압 체크, 여성은 자궁암 검사 등 몇 가지만 골라 검사를 받을 수 있다.흉부 X선 검사는 결핵 및 간의 이상 유무를, 혈당 검사는 당뇨병, 혈중, 간염 등을 체크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나 가족 중에 당뇨병, 고혈압 환자가 있으면 미리 검사를 받아 둘 필요가 있다. 아무 원인 없이 피곤하거나 체중이 줄 때에는 당뇨병을, 머리가 아프거나 어찔할 때에는 고혈압이 아닌가 유의해 두는 것이 좋다. 별다른 원인 없이 입맛이 떨어지거나 체중이 줄고 몸에 이상을 느끼면 악성 종양이 아닌지 사전에 한번 검사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종 성인병은 치료보다는 <예방>이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4. 기호품

담배와 과음의 해독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문의들은 담배는 백해 무익하기 때문에 꼭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담배가 호흡기에 나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며, 이 밖에도 위산 분비를 증가시키고 궤양 증세의 호전을 방해하는 등 위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혈관 수축과 혈류를 저해하여 고혈압과 심장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커피는 중추 신경 흥분제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위장에 나쁘고, 특히 심장병 환자에게 해롭다. 하루에 2-3잔이 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커피는 여성 미용에 좋지 않으며, 많이 마시게 되면 피부가 거칠어진다.가능하면 설탕을 넣지 않는 녹차나 옥수수차 등을 마시는 것이 좋다.

5. 운동의 계속

운동은 각자의 체질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1주일에 네 번 이상은 해야 한다. 이따금 운동을 격렬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운동을 매일같이 일과처럼 해야 건강 증진에 효과적이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약한 사람은 걷기, 제자리 뛰기 등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 하는 것이 좋다.비만은 모든 병의 원인이 되므로 표준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 유지에 필수적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표준 체중은 165cm 이상인 경우 키에서 100을 빼고 0.9를 곱한 값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계산된 체중의 10%를 가감한 범위 안에 들면 정상 체중이라 할 수 있다. 신장이 170cm 되는 사람의 경우 표준 체중이 63kg이지만, 56kg에서 70kg 범위에 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각자 나름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출발한 이 한해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방해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김준평교수의 '장수와 식생활' 중에서 발췌) -정리 장옥순-

<장수비결 10가지>

1.소식다치(小食多齒):적게 먹고, 많이 씹는다.

2.소육다채(小肉多菜):고기를 적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는다.

3.소염다초(小鹽多醋):염분을 적게 먹고, 신 것을 많이 먹는다.

4.소주다과(小酒多果):술을 적게 마시고, 과일을 많이 먹는다.

5.소차다보(小車多步):차는 조금 타고, 많이 걷는다.

6.소의 다욕(小衣多浴):옷을 적게 입고, 목욕을 자주 한다.

7.소언다행(小言多行):말을 적게 하고, 많이 움직인다.

8.소욕다시(小欲多施):욕심을 적게, 많이 베푼다.

9.소분다소(小憤多笑):성을 적게 내고, 많이 웃는다.

10.소번다면(小煩多眠):번뇌는 적게 하고, 많이 잔다.

<사랑의 힘>

호세의 밭

겨울날, 캘리포니아의 한 부랑아 수용소인 마린카운티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걸인, 부랑아들로 북적거렸다. 간이침대와 담요가 턱없이 부족하여 흑인, 라틴 아메리카인, 백인들이 서로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자원봉사자인 로드니는 난감하기만 했다. 몇몇 부랑인들은 다른 사람의 담요를 빼앗기까지 했고 한 흑인여성은 자신에게 담요가 돌아오지 않자 인종차별이라고 큰소리를 지르기도 했다.이런 혼란 중에 마지막 남은 담요 한 장은 라틴 아메리카인인 호세라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호세는 담요를 수용소 한가운데에 펼치더니 금새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디선가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호세의 발냄새였다. 악취가 온 수용소 안에 가득 차오르자 부랑아들이 거세게 항의 하기 시작했다. 로드니는 호세를 깨워서 목욕탕으로 데려가 발을 씻기려 했지만 91kg이 넘는 거구의 호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냄새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호세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하자 같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폭발할 것 같은 노한 표정으로 주위를 노려보았다. 실내는 금새 험악해져 싸움이라도 한 판 벌어질 분위기였다.그때 로드니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따뜻한 물을 담은 세숫대야와 비누, 수건을 챙겨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호세의 발앞에 무릎을 꿇고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호세의 발을 대야에 담그고 씻기기 시작했다. 발바닥, 발목, 발등, 발가락까지 로드니는 아주 정성스럽게 발을 닦았다. 어느새 로드니 주위로 부랑아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로드니는 난폭한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손가락이 떨리기 까지 했다. 얼마 후 로드니가 수건으로 호세의 발을 닦아주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침묵 속에서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운 손길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수용소에는 더 이상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호세의 머리맡에는 부랑아들 중 한명이 가져다 놓은 새양말이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편집부>

<정월의 시>

복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1편>

<시를 읽는 마음1>

참된 복은 무엇보다도 먼저 심령(心靈) 가운데 기쁨(즐거움)으로 찾아든다. 참된 복은 영적인 순결함 없이 다만 물질로만 만족하는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관과는 전혀 다르다. 참된 복은 인간의 잔재주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경건의 생활로 맺어지는 것이다. 참된 복은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기복적인 신앙과는 다르다. 기복적인 신앙인들은 그 자신의 영적인 경건생활과는 상관없이 의식적인 종교생활만을 통해서 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에 열매가 맺힘같이 필연적인 결과요, 자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참된 복은 심령의 즐거움에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는 것이다. 참된 복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곳에 영원히 거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의인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을 때 인정을 받고 이곳에 서게 되는 것이다.

<시를 읽는 마음2>

밤 사이에 한 도둑이 어떤 집의 차를 훔쳐갔다. 차가 애초부터 없었으면 몰라도 늘 차와 함께 생활하며 사업을 하던 사람이 차를 잃어 버렸으니 그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했겠는가? 당장 사업에도 지장을 초래했고 일상생활이 마치 절름발이 같이 거북했다. 이렇게 되자 그는 도둑 맞은 차가 아까와 생각하면 할수록 속만 상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대문 앞에 그 잃어버렸던 차가 와 있지 아니한가? 참 세상에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있다니 하며 열심히 살펴보았으나 차는 예전 그대로였다. 게다가 앞 좌석 위엔 도둑의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요지는 "죄송합니다. 선생님! 양심이 찔려서 차를 다시 돌려 드립니다. 여기 미안한 맘으로 극장표 5장을 동봉하오니 선생님 가족이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뜻으로 극장엘 가셔서 마음을 푸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잃었던 차와 함께 극장표를 받고 보니 그 도둑에 대한 미움은 가시고 오히려 감격스럽기까지 하고 그 도둑이 고맙기까지 하였다. 요즘 같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이런 선량한 도둑님이 있다니 하며 그는 도둑에 대해 양심있는 도둑님이니 문화적인 도둑님이라고 까지 추켜주었다. 그리고 시중 개봉관의 극장표를 보자 아마 본시 선량한 사람이 한 때 유혹에 잘못 빠져 그랬을 것이라며 도둑을 용서하고 모처럼 온 가족이 극장 구경을 갔다. 그들은 도둑님 덕분에 문화생활까지 해 본다며 모두들 좋아했다. "이 몇 년만의 전 가족 극장행이었던가? 이 모두 문화적인 도둑님 덕분이지 뭐. 하하하" 그들은 웃으며 돌아왔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가? 대문을 열자 온 집안이 엉망이었다. 집을 다 털어 간 것이다. 돈푼께나 나가는 것들은 전부 싣고 떠난 것이다. "이런 천하에 나쁜 도둑놈 같으니...." 그들은 도둑을 사정없이 욕할 수 있는 대로 욕했다. 한 때는 도둑이 고맙고 선량하고 뭐 가족의 분위기까지 조성해 준다고 좋아하더니 결국 도둑의 고단수에 놀아난 것이다. 몇 푼의 돈이면 온 가족이 극장 구경을 갈텐데 자기 돈으로 못가고 도둑 덕분에 가더니만 크게 당한 것이다. 바로 그 도둑은 집 식구들을 다 내 보내고 아주 여유있게 몽땅 털어 간 것이다. 세상엔 이렇게 도둑의 편지에 감격하고 넘어가는 어리석은 얼간이들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광야의 소리>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

"올해 만큼은......!"새로운 해를 시작할때 누구나 다 각기 남다른 각오를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친구관계에서 등등 모든면에서 올해만큼은 꼭 성공을 거두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게 마음먹는데로 되지 않는 법. 계획과 실천은 언제나 멀게만 느껴진다.어떻게 한해를 꾸려나갈 것인가!어떤 책의 귀퉁이에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차이는 5분간이다."라는 타이틀의 메모가 눈에 띄어 소개한다.

전문가는

목표에 관한 것을 꼭 5분 정도 더 읽으며,

배우자와의 문제를 5분 정도 더 신중하게

이야기 해보고,

어려움에 부딪친 자녀와 5분 정도

더 자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5분 더 구한다.

당신은 아마츄어인가?

아니면 전문가인가?

당신은 즐거이 그 5분을 할애하는가?

삶의 진리를 항상 작은 것의 실천에서 부터 시작이 된다고 한다. 한해의 처음에 각자 세워지는 그 멋진 전문가다운 정신을 가지고 한해를 멋지게 꾸려나가 보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20-21) (한은성전도사)

<유머>

암탉과 돼지가 교회에 이르러서 써 붙힌 설교제목을 읽게 되었다. 무슨 방법으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을까? 암탉은 즉석에서 가난한 자에게 베이컨과 계란을 먹이자고 제안했다. 돼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이컨과 계란을 먹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야. 너는 계란을 낳으면 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돼"

<삶의 지혜>

정직이 최상의 정책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이전인 24세 때에 일리노이주의 뉴우 살렘이라는 도시에서 우체국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직하기로 이름난 사람으로 매우 성실하게 우체국장의 직임을 다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렇게 우체국장으로 근무한지 2년쯤 지난 후에 그는 정부로부터 전임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오는 우체국장과의 인수 인계를 위하여 정부에서 관리가 파견되었는데, 이 관리는 모든 서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새로 부임해 오는 우체국장에게 잔고 넘겨 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사람이었다. 워싱톤에서 파견된 관리는 장시간에 걸쳐 서류 감사를 실시하고 난 후에 링컨에게 말했다. "링컨 국장, 서류상으로는 잔고가 17달러입니다. 그러니 후임 국장에게 17달러만 넘겨 주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정부 관리의 말을 듣고난 링컨은 금고를 열어 그 안에 있는 모든 돈을 꺼내어 세어 보지도 않고 후임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이를 본 정부 관리는, "아니, 돈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그냥 건네주면 어떻합니까?"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 말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내 소유가 아닌 것에는 결코 손을 댄 적이 없소이다. 그러니 저 돈은 분명히 17달러일 것이요." 링컨의 대답을 듣고 난 정부 관리와 후임 우체국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링컨이 금고에서 내놓은 돈 다발을 헤아려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것은 정말 링컨의 말대로 1센트도 틀림없는 17달러였던 것이다."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 확금자 불견인(攫金者 不見人)"이라는 옛말이 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말로 명예와 이욕(利慾)에 미혹된 사람은 도리(道理)도 저버린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없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정직한 국민들이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시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 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우리의 기도문>

이 민족의 국민성이 정직하고 선량하여 하나님의 의(義)를 행하게 하소서.<편집부>

<깨끗한 삶, 개끗한 사회1>

오물을 뒤집어 쓰시고도 이영운목사 교육학박사. 기독교대한 성결교회 총회본부 교육국 간사

지난 세밑에는 더럽고 추한 사건들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온통 더러워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새해를 맞아 이제부터는 삶의 현장에서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 봄으로 성결한 사회를 소망해 본다. 우리 주변에서 성결한 삶을 사는 사람을 찾아서 그 본을 보려고 하면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첫째는 성결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기준으로 그런 사람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어려움이다. 둘째는 우리의 경험과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 정말 말없이, 이름없이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성결인은 우리의 눈에 띄지도 않고, 찾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목사로서 이 글을 쓸 때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설교조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선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성결한 삶의 높은 수준은 이명직목사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명직목사님의 삶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있겠으나, 성결한 삶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서울신학대학에 재학중에 선배님들로부터 들은 이명직목사님의 성결성에 대한 일화인데, 글로 소개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조사해 보았자만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나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서 소개한다. 예나 지금이나, 기숙사생활의 무료함과 갑갑함을 달래려고 여러 가지 재미나고, 추억거리가 될만한 일화들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 신학교 기숙사생활이다. 이명직목사님께서 신학교에서 사역하고 계실 때, 우리의 선배들깨서는 성결을 강조하시고, 근엄하시고 성결하게 보이시는 이명직목사님의 성결성을 시험하고픈 마음이 있었단다. 선배님들은 이목사님이 성결한 분인지 아니면 성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 어떻게 이명직목사님의 성결성을 시험할까 의논하다가, 불의의 습격을하여 그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그 분의 성결성의 수준을 확인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 후에 이명직목사님이 말로만 외치는 성결인인지 아니면 삶 그 자체가 성결된 성결인인지를 판단하기로 했다. 선배님들은 이명직목사님께서 도서관을 나오셔서 숙소로 내려가시는 이목사님을 향해서 3층에서 오물을 붓기로 계획을 세우고, 이목사님께서 지나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도서관을 나서시는 이목사님 위에서 이목사님을 향해 오물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모두 숨을 죽이고, 숨어서 이목사님의 반응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목사님의 반응은 선배님들의 상상을 초월해서, 위도 올려보시지 않으시고, 뒤를 돌아다 보시지 않으시고 너털웃음으로 "허허, 장난이 심하구만!"하시며, 오물묻은 어깨와 등을 툭툭 터시고 가시던 길을 계속 가시더란다. 우리의 추측으로나, 선배님들의 추측으로는 아무리 수양이 잘 되고 성결된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는 최소한도의 반응은 조건 반사적으로 "누구냐?"라고 한 번쯤은 소리지르실만 한데, 그리고 준엄하게 꾸짖으시며, "그러면 안되느니라!"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상당한 정도로 수양이 잘 되었고, 성결된 인격과 성결한 삶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상상을 초월해서 보여주신 그 성결의 성숙함과 인격에 모두들 감복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선배님들의 이명직목사님에 대한 존경은 배로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그 분의 성결성이나, 인격을 시험하고자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명직목사님의 일화는 우리의 삶의 잠재의식 속에서 조차 성결이 의식화 되어 있어야 하는 수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깨끗한 삶, 개끗한 사회2>

새해에 읽어보는 단편, 알퐁스 도테의 <불로장생주>

프레몽트르 수도원은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았던 수도원이었지만 수도원의 뾰쪽탑이 허물어져가고 있었고 수도원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유리창은 깨지고 문틀들도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지경에서 신부들은 종을 살 돈이 없이 기도시간을 알리는데 은행나무로 딱가리를 쳐서 알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 수도원은 <불로장생주>라는 술로 떼돈을 벌어 들이게 됩니다. 불로장생주란 고셰라는 수도사가 여러 가지 약초를 끓이고 증류해서 만든 훌륭한 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셰라는 수도사는 위인이 바보같아서 수도원의 젖소 두 마리를 먹이는 소지기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열렬한 신앙인이었고 모든 규율을 지키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천성이 착한 그는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수도원을 위해 크게 공헌하고자 어렸을 때, 자기를 길러준 아주머니가 주조할 때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기억하여 6개월의 고생 끝에 신비의 술, 불로장생주를 제조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술이 날개 돋친 듯 팔리자 프레몽트르 수도원은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모든 성문이 새로 단장되고 건물이 보수되고 신부들도 비싼 옷으로 바꾸었습니다. 수도사 고셰는 점점 신부들의 신임을 받게 되고 낡은 예배당 안에 차린 주조장에서 오직 불로장생주 제조에 전념하게 됩니다. 30명의 수도사들은 날마다 산과 들로 약초를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고셰는 그 빛나는 공적에 의해 어느덧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미사가 진행될 때 두건을 비뚤어지게 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자기 좌석도 못찾을 정도를 취한 고셰가 성당에 뛰어들어 난데없이 괴상한 노래를 불러댑니다. "끌어내라. 귀신들렸구나! " 당황한 신부들은 소리칩니다. 그는 손수 만든 술을 시음하다가 이젠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후부터 고셰는 성당에 나오지 않고 주조장 안에서 혼자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고민하던 고셰는 원장을 찾아가 술제조는 그만두고 전처럼 젖소를 먹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장은 자비로운 성 어거스틴이 죄를 용서해줄테니 안심하고 술만 만들라고 하며, 재정담당 신부는 이렇게 부자가 되어가는데 우리를 망쳐놓은 셈이냐고 순진한 고셰를 욱박지릅니다. 불로장생주는 미친 듯이 팔려 나갔습니다. 신부나 수도사 전체가 술병을 포장하고 상표를 붙이고 짐을 운반하느라고 미사를 거를 때마저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미사가 끝나면 사제는 "우리 수도원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고 있는 가련한 고셰 신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를 위해 기도했으나 그 시간에 술제조하는 낡은 예배당 안에서는 어김없이 고셰 신부의 술주정하는 노래와 이따금 고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부들은 그때마다 이렇게 염려스럽게 말했습니다. "이를 어쩌나! 교구의 신도들이 알면 큰일인데." 우리는 여기서 수도원이 본래의 의도와 목적에서 탈선하여 부의 축적에 혈안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저주받을 타락입니다. 기업이 그 도덕성과 기업윤리를 그 화려한 간판 밑에 묻어버리고 사리사욕 추구에 혈안이 되고 권력가과 자본가들이 엄청난 재산을 도피시키는 것은 타락을 넘어 마성(魔性)을 드러내는 주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거머쥔 권력 밑에서 한 순박한 인간이 퍼렇게 멍들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종교라는 권력의 메카니즘에 의해 부름받은 수도사가 부를 해산(解産)하는 기계로 화하고 결국은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위한 종교이며, 누구를 위한 권력인데 귀한 영혼이 주정꾼으로 변신되어가는가 말입니다. 다음으로 그러한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너는 수도원을 위하는 일을 하므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달래면서 그래도 민심이 두려워 "교구 신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일이야." 하면서 이 비밀은 알려져서는 안된다고 서로 뻔뻔스러운 얼굴들로 부끄러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은 없는 법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날 것이고 숨기운 것이 알려지지 않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당리당략을 떠나 깨끗한 삶과 깨끗한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언 22:1) <편집부>

<문화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 문화(4)

김문택 서울음대 졸 전 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작곡,편곡자

이번에는 대중음악과 마약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 보자. 매번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뉴스, 그것은 바로 마약과 관련된 사건들일 것이다. 또한 매번은 아니지만 종종 등장하는 단골손님은 다름아닌 일부 연예인들이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연예인들과 마약은 과연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마약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그들의 말을 빌어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연예인들의 마약관련 이유를 두 가지만 들어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들은 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최고의 창작활동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창작이란 것은 과연 그들(마약 복용자)이 말하는 자유에서 최고의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일 것이다. 환각상태에서의 창작이 환각 그 당시에는 자신이나 같이 환각에 빠진 사람들의 판단으로는 최고의 것으로 순간적인 지각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과 환각에 함께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느낌, 아니 그들 자신이 환각에서 벗어난 후 그들 자신의 작품을 제 정신으로 느끼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각상태에서의 창작 혹은 행위 등등 이러한 것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순수한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이다. 결국 자신의 감각과 자신의 표현언어가 아닌 것이다. 환각상태(마약류 뿐만 아니라 술취함도 포함)에서의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자신"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또 다른 자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간적인 쾌락과 같은 어둠 속의 미소와 강도, 자살, 살인... 등등 험악한 범죄의 얼굴과 공포, 실망, 폐쇄... 등의 일그러진 좌절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이러하지만 그 속에는 발톱을 감추고 있는 실제 세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을 조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정신, 자기의 판단이 아닌 자신도 인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게 되어 일을 저지른다? 어디에서 많이 보아온 수법같지 않은가! 그렇다! 배후에는 역시 우리가 우려했던 것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게한 후 결국 죽음의 길로, 그것도 영원한 죽음의 길동무를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분명히 "둘째 사망"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영혼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단지 눈에 보이지 않고 현재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의 육신과 그 생활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며 우리의 많은 이야기 거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마약과 환각상태와 또한 이와 결부된 대중음악의 결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실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인기 가수가 약물에 의해 주검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 아직 진행중인 사건이므로 다루지않고 외국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 제니스 조플린-"록 음악의 여왕", "최고의 록 가수"라고 불리던 사람으로 헤로인(마약)과용으로 죽음

# 브리안 존스-롤링스톤의 일원으로 환각 상태에서 자기집 수영장에서 익사

# 지미 헨드릭스-술에 취한 채 수면제를 먹고 자다가 자신이 토한 것에 질식하여 죽음

# 록 맥커난-그레이트 풀 데드의 일원,만성적 알콜 중독으로 죽음

# 마크보란-"T-Rex"의 리드키타 연주자, 작곡자. 이들은 Black magic(흑마술)에 의한 것을 사용하였는데 이상한 자동차 사고로 죽음

# 엘비스 프레슬리-과도한 마약 중독과 식욕으로 죽음

# 케이스 문-"The Who"의 일원,자살

# 시드 비시우스-"Sex Pistols"의 일원, 애인을 살해한 뒤 이어서 자신은 헤로인으로 죽음

# 죤 보햄-"레스 제플린"의 일원, 40잔의 보드카를 마시고 죽음

# 본 코스트-"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부른 AC/DC 일원, 밤에 술을 마시고 자다 자신이 토한 것에 의하여 질식사

# 죤 레논-비틀즈의 일원, 그들 그룹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던 그는 한 팬에 의하여 살해당함

# 페터 판돈-"프리텐더"의 일원으로 헤로인 주사를 팔에 꽂은 채 목욕탕 욕조에서 죽음

# 마빈 게이-아버지와 싸우고 난 뒤 스스로 고의적인 총상으로 죽음

# 요기홀튼-드럼 연주자, 뉴욕의 어느 호텔 17층에서 투신 자살

# 로이브케넌-세계 최고의 블르스 록 키타리스트의 한 사람, 알콜 중독치료 요양소에서 목을 메어 자살.

이외에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고 엄청난 일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일련의 것들을 그냥보아 넘겨서는 않될 것이다. 현 시대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와 사건들의 홍수 속에 있음을 어린아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예를 들어 보이는 것은 현대 사람들이 한 두 명 정도의 사고로는 눈도 끔쩍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많은 숫자의 예를 열거한 것이다. 우리의 감각이 무디어져 간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무디어져 가는 우리의 감각이 사탄이 활동하기에 더욱 더 편한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지않은가 싶다. 에이! 이 정도야 뭐-, 겨우? 이러한 말들은 마침내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에 사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에 대해 더 이상 다른 설명을 첨가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사탄이 조종하는 음악으로 그들이 처음에는 고속열차를 탄 것과 같이 인기정상을 향하여 치닫지만 정상을 맛본 후에는 자기가 타고 왔던 고속열차를 타고 이제는 반대로 깊은 수렁을 향하여 한없이 치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위와같은 추하고 더러웁고 기가 막힌 곳까지 말이다.그리고 이것은 예를 다른 나라로 들었을 뿐 우리나라가 결코 안전지대나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기 연예인들의 마약 복용에 대한 일부 청소년들의 매우 주관적이며 편견적인 생각이 얼마전 TV를 통해 인터뷰되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인기정상의 연예인이 그것(마약)을 하기 때문에 내가 한 번 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멋있다""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왜 그렇게 말을해요?""괜찮아 내가 좋아하니까"..... 물론 방송국에서 이런 대답만을 편집했는지는 모르겠지만(다른 내용도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한마디로 허공의 꿈, 아집(我執), 무지(無知)의 결정체였던 인터뷰 내용이었다. 방송사들 또한 요즘의 청소년들이 방송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올바른 방송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고 유익함을 주는 프로는 점점 사라지고 오락 위주의 진정한 바보상자로서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유익함과 꿈 등 등을 이야기하면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냐고 바라보는 사회.... 물론 연예인이란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인 사회..... 뭔가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둘째로 그들이 마약을 하는 이유는 공연전의 불안함과 초조, 그리고 공연 후의 공허함 때문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다. 세상일의 결국은 공허함이며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인간의 구멍난 욕심을 막아주지 못한다. 그들은(아마 우리들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조와 불안 가운데서, 때로는 인생을 바쳐서 말이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우리 인간들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며 사람의 결국도 칠,팔십 인생이라는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하지만 항상 소흘하게 지나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것이다. 주변 사람의 여론에도, 사회의 변화에도, 기분이 좋던 나쁘던, 세월이 흘러 예전이건 지금이건 간에 한결같음, 이것을 우리는 찾으려 하고 또 인간은 노력한다. 그러나 그 영원함이란 바로 한 분, 곧 우리를, 그리고 천지만물을 관념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드신 하나님! 그 분만이 영원한 분이요, "영원함"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크고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멘.

<예술 한 토막>

애국가는 하나님의 선물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안익태씨는 세계 각국을 떠돌면서 한국의 예술을 심어 왔지만, 그가 바르셀로나의 하늘 아래서 60년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항상 가슴에 품고 있던 비원(悲願)은 조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국 환상곡>, <강산의 논개>, <흰 백합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우리 <애국가>의 작곡자로서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어느 날,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교회에서 태극기를 걸어 놓고 <올드랭 사인>의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교포들을 보고,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우리의 애국가를 작곡해야겠다." 고 굳게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미국에서 전절(前節)을 작곡하였고, 후렴은 고심 끝에 1935년 부다페스트 음악학교 재학중에 완성하였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귀중한 애국가는 미국 하와이에 있는 '대한 국민회'와 중국 중경(重慶)에 있던 대한 민국 임시 정부에 보내졌다. 그 후 1950년, 그는 뉴욕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6.25 한국 전쟁 뉴스를 보고, 비로소 그가 작곡한 애국가가 국가(國歌)로 채택되어 우리 국민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광경을 본 그는, 자신이 지후하기로 되어 있던 뉴욕 필하모니의 레퍼토리를 우리 애국가가 들어 있는 <한국 환상곡>으로 바꿀 것을 고집하여, 마침내 감격적인 <한국 환상곡>의 연주를 하였던 것이다. "애국가는 내가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따름입니다. 작곡가란 단지 하나님의 메신저일 뿐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1808년, 하이든이 작곡한 유명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天地創造)가 연주되었다. 그 연주회장에는 하이든도 참석했다. 연주가 모두 끝난 후 사회자는 이 곡을 작곡한 하이든 선생이 이 자리에 참석하였다고 소개하였다. 모든 청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든에게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 때에 하이든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깊은 신앙이 그로 하여금 대작을 작곡하게 한 영감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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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호(1996.2)

차 례 --------------------

▒ 말씀의 샘<거듭나야 한다-2>

▒ 병동 일지 <하나님의 구원역사-11>

▒ 건강 상식 <찹쌀-14>

▒ 쉼터 <하나님이 남긴 것-16>

▒ 사랑의 힘 <남자 심청-18>

▒ 이월의 시 <주여,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21>

▒ 광야의 소리 <뇌물-23>

▒ 삶의 지혜 <도서관에서 세계가 보인다-26>

▒ 하하 호호 잉글리시 <용기와 두뇌-31>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1<아니 이럴수가!-33>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2 <청렴 결백한 명상-38>

▒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5-40>

▒ 예술 한 토막 <브라이트 엔젤-47>

▒ 독자의 편지1,2,3 <51>

▒ 애플 퍼즐<56>

제 10호 이월호

만든 사람들 : 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 : 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 : 봄을 기다리며

<말씀의 샘>

거듭나야만 한다

"(요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국의 초대 교회 시절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유명한 김익두 목사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김익두는 장안에 난폭하기로 소문난 깡패였습니다. 그가 나타나는 곳에는 늘 시비와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뱀을 피하듯 슬슬 피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김익두에게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완악했던 사울이 하루 아침에 주님의 은혜로 사도 바울로 변모한 것과 같이 어느 날 우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 후 김익두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를 눈물로써 회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김익두의 이러한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김익두만 나타나면 모두 피해버렸습니다. 김익두는 자신의 변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과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을 간구하던 중 마을에 부고장(訃告狀)을 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그 흉악한 김익두가 죽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쫙 퍼졌고 사람들은 이를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표지가 까만 책 하나를 들고서...., 그 때서야 사람들은 김익두가 변화된 것을 알아챘습니다. 늘 찡그리고 다녔던 그의 표정은 온화한 미소를 띤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입만 열면 튀어 나왔던 욕설은 다정다감한 음성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런 모습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이 김익두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김익두가 잘 다니는 골목에 몰래 숨어서 김익두가 지나가길 기다렸습니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익두가 나타나자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구정물통을 그에게 뒤집어 씌었습니다. 김익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피고 있던 그에게 물을 털면서 김익두는 말했습니다. "옛날의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기뻐하시오. 만일 그가 살았다면 당신은 성하지 못했을 것이요. 하지만 지금의 김익두는 옛날과는 다른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오."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가 요청되고 있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소위 "국제화(Glovalization)"로 변화되지않으면 국제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변화되고 사회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만이 발전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변화를 무서워하거나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이웃과 사회에 공헌을 할 수도 없습니다. 가치와 의미있는 인생은 반드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성경에, "보라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등 수 많은 곳에서 새로와져야 하며, 새로 낳아야 하며, 새로운 인간성을 입어야 한다는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은 변화의 본질을 나타내주는 것으로서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본문5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사람은 한 마디로 무가치한 인생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 '영생', '구원' 등은 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곧 영생(永生)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의 원어, "겐네데 아노덴(gennethe anothen)"은 "위로부터 출생한다(born from above)."는 뜻입니다. 즉 생명의 근원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생명의 영(靈)'이 불어 넣어짐으로(창2:7) "생령(生靈)"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영" 즉 성령을 받아야 생명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며 생명이신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 예수의 삶을 사는 참 믿음의 소유자가 진정한 의미의 위로 부터 나온 생명, 영생을 '지금 여기서' 누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자신을 믿음으로, 즉 그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영혼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명을 소유하게 됨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타락하여 생명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듭나는 방법'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본문5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은 일반적으로 '세례'를 말합니다. 이 물에 의한 출생은 단순한 자연적 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깨끗하고 순결케 하는 말씀으로 말미암은 출생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이 문제를 두고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은 말씀으로 된 것."(벧전1:23) 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15:3,엡5:26,약1:18).또한 이렇게 말씀으로 거듭나게 역사(役事)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성령)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과 말씀의 창조 사역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 질서가 '거듭나야 한다'는 새 창조 속에서도 아주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죄인들이 영적 죽음의 어두움 가운데 있었고("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둘째, 성령이 사람의 양심과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며("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전해지고("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 넷째로, 그 결과 빛이 있었던 것처럼 죄인들이 어두움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놀라운 빛 속으로 들어갔습니다("빛이 있었고"). 이러한 거듭나는 과정을 역사(役事)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나라와 민족의 생명은 경제나 정치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사상과 제도를 가지고 부강한 나라일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나라는 영적 생명이 없는 죄인들의 나라일 뿐 입니다. 예수없는 나라 민족은 죽은 민족이요 죽은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부요하지 않은 경제는 아무리 많아도 가난한 경제일 뿐 입니다. 예수 진리가 없는 정치, 제도는 아무리 개선해볼지라도 변화의 생명력이 없습니다. 예수 진리가 없는 사랑은 거짓에 불과한 것이어서 변화의 능력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생명력있는 변화를 원하십니까? 예수 믿으시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역사(役事)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 나라와 민족의 진정한 변화, 생명력있는 변화는 어떤 정권이나, 제도 개혁이나, 국제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지닌 "성도", 예수믿는 성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라의 생명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한 사람의 의인, 곧 한 사람의 성도가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대학 교수였으며 전도 여행까지 한 쟁쟁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기쁨도 없고 확신도 없는 미지근한 신앙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런던의 올더스 게이트(Aldersgate) 거리에 있는 한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마침 그 교회 지도자는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 서문에는 로마서의 중심 사상인 인간은 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서 새 사람이 될 수 있고 구원함에 이를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웨슬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으나 피부로 느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 날 그 작은 집회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로 느껴 감동이 되고 가슴이 뜨거워 오는 성령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웨슬레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활기가 붙고 용기가 나고 확신이 생겨 부패한 영국과 유럽 사회의 변혁에 나섰던 것이며 신앙운동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와 성공을 보여준 첫 인물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나라, 민족의 진정한 변화의 역사는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의 거듭나는 생활에 달려 있습니다. 존 뉴톤(John Newton)은 깡패대장으로 200명 정도의 부하까지 거느리고 있었으며 동시에 알콜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노예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한번은 런던에 정박 중 시내 한 작은 감리교회에서 경영하는 전도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본다는 것 보다는 한참 취한 김에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장난삼아 들어가 본 것이었습니다.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뉴톤은 예배가 진행되는 중 특히 어느 젊은 설교자가 열심히 설교하는 것을 들으며 차차 그 얼굴은 변하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도도하던 그의 고개는 깊숙히 숙여지고 드디어는 그토록 억세고 돈으로 세상을 살듯이 고개가 높던 뉴톤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날 그가 들은 설교는 단순히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탕자의 이야기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자기의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기를 결심하는 중생(重生),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날의 체험을 기억하여 후에 그는 유명한 찬송가 작가가 되어 많은 찬송을 작사하는 중 우리가 가진 찬송가 405장도 짓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예수를 진실로 자신의 삶 속에 믿으시고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는 생활을 통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참된 생명과 광명의 생명력있는 변화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병동일지>

하나님의 구원역사

사계절의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고 섭리하셨던 아름다운 체험들을 생각나게 하시어 찬양토록 하시는 것 같다. 동강병원 일반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무렵 92년도 가장 아름다운 늦가을이었다. 아마도 10월 중순 어느 날 이었던 것 같다. 부산에 있는 개인 병원에서 이송되어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로 입원하게 된 환자 김용락씨와 만남이 이루어진 날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초췌한 얼굴과 창백한 안색 그리고 복부 중앙 부위에는 수술로 인한 봉합 자국과 한쪽 가슴에는 Tube를 달고 있었고 수술부위에서는 악취가 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놓여진 상황이 어려운데도 우리 의료진들에게 미소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줄 만큼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경위로 입원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환자의 보호자인 그의 형은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 상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여 마주 오는 차와 충돌하여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선량하고 겸손한 김용락씨는 의료진들의 어떠한 치료와 간호에도 신뢰감을 나타내며 적응해 나갔었다. 그러나 수술후 워낙 회복이 느린데다가 위장계와 호흡기계의 정상기능이 불가능하므로 영양공급도 충분히 안되고 호흡기능 장애까지 합병증으로 와서 점점 더 쇠약해지고 악화되어 인공호흡기계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전 치료와 간호까지는 김용락씨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였으나 인공호흡기계를 단 후로는 짜증스러워 하고 귀찮아하고 몹시 불안해 했었다. 이런 김용락씨의 괴로워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조용한 시간을 마련해서 대화를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초봄 어느 날 야간 근무를 위해 주간 근무자와 인계중 김용락씨가 온종일 히스테리컬하게 반응을 했으며 좀처럼 의료진들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오늘은 기필코 얘기를 해 보리라…… 인계후 환자들을 둘러본 후 김용락씨한테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그는 죽음이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아느냐고 물었을때 학창시절에 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었다고 했다. 그러면 왜 지금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평화를 달라고 간구하라고 한 후 목사님을 초빙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겠느냐고 물으니 쑥스러워하면서 고개를 끄떡끄떡 하는 것이었다. 아침 6시가 되었을 때 내가 다니는 교회 부목사님께 전화를 해서 어려운 사정에 놓여있는 환자가 있으니 방문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목사님께서는 흔쾌히 승낙하시고 오셔서 김용락씨와 함께 찬송과 기도로 예배를 드렸다. 그 날 이후 일주일이 지난 야간근무 시간에 병실에 들어서니 김용락씨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즉시 병원 영안실로 달려가서 그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고, 감사하면서 영안실을 나왔다. 가끔 생각나는 내 생애의 추억들 속에서 김용락씨는 내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며 나의 간호생활에 언제나 함께 동행하시고 섭리하시고 은혜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해성병원 간호사 문 영 숙>

<건강상식>

찹쌀

찹쌀은 멥쌀에 비하여 교착성이 강하나 영양학적 성분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인삼의 화학적 성분은 별것이 아니면서도 그 효능은 신비스런 것처럼, 찹쌀도 그 효험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있어 여기서는 주로 그 약성을 들어 보기로 한다.

(1) 소화가 잘 된다. 흔히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고 죽을 쑤어 먹는데, 죽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이 찰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된다.

(2) 젖이 잘 안 나오는 산모가 찰밥을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

(3) 설사가 심할 때 찹쌀로 죽을 쑤어 먹으면 설사가 멎는다.

(4) 변비가 생겼을 때는 찹쌀에 콩을 섞어 콩이 푹 익을 때까지 잘 끓여서 먹으면 통변이 된다.

(5) 찹쌀과 다시마를 볶아서 빻아 가루를 만들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한 숟가락씩 물과 가루를 5:1 의 비율로 타서 마시면 몸에 힘이 생긴다.

(6)병을 앓은 다음 회복기에 찰떡을 계속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회복이 빨라진다.

(7) 목이 쉬었을 때 닭의 내장을 빼내고 찹쌀을 채워 삶아서 그 국물을 마시면 목이 트인다.

(8) 종기가 났을 때 찹쌀로 지은 밥에 소금을 넣고 으깨어 떡을 만들어 붙이면 낫는다.

(9) 여성들의 대하증에는 찹쌀과 후추를 반반으로 섞어 가루로 만든 후 식초로 반죽하여 조금씩 달여 마시면 낫는다.

(10)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을 때는 곶감을 넣어 지은 찰밥을 짓찧어 두고 계속 먹으면 낫는다.

이와 같은 방법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이므로 비과학적이다 싶어 현대인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혹 약을 복용해도 효과가 없거나, 병원에 다녀봐도 신통치가 않은 경우에는 한 번 시도해 보시라. 화학합성 치료제와는 달리 이 같은 민간처방은 번거롭고 귀찮은 것을 빼면 손해볼 건 없다. 화학합성치료제는 대개 지속적으로 쓰다 보면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김창무 편저의 '죽을병이 아니면 다 고친다' 중에서- <편집부>

<쉼터>

하나님이 남긴 것

구약성서 창세기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여자인 이브(하와)는 인류 최초의 남자인 아담의 갈비뼈를 한 대 뽑아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어느 날 로마 황제가 한 랍비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이것을 문제삼고, 이렇게 물었다."하나님은 도둑이오. 남자가 잠을 자고 있을 때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갈비뼈를 훔쳐갔단 말이오."그러자 그 랍비는 아무 말이 없는데 랍비의 딸이 곁에 있다가 황제에게 말했다. "폐하, 저에게 폐하의 부하 한 사람만 빌려 주십시오." 황제가 물었다."왜 그러느냐?" 딸이 대답했다. "어젯밤에 집에 도둑이 들어서 빈 금고를 훔쳐 갔습니다. 그런데 도둑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는 몰라도 금그릇을 하나 놓아두고 갔지요. 저는 도둑이 왜 대단찮은 것을 훔쳐가고나서 귀한 금그릇을 두고 갔는지를 꼭 알고 싶습니다." "그런 도둑이라면 내게도 들러 주었으면 좋겠구만."그러자 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아담에게 일어났던 그 사건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서 갈비뼈 하나를 훔치셨지만 그 대신 이 세상에 여자라는 금그릇을 남기신 것입니다."황제는 딸의 말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탈무드>

<사랑의 힘>

남자 심청

재미교포 청년 새뮤엘 루이스 최(27). 일명 「샘」. 그는 4년간 젊음을 바쳐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소생시킨 현대판 「남자 심청」으로 우리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에서 학업 도중 낯선 조국으로 귀국, 그리고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4년간 간호......죽음과 고독 속에서 꺼져가는 아버지의 생명을 살려낸 치열하고도 감동적인 그의 간병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생명과 가족에 대한 존귀함을 가르쳐준 샘의 아버지를 향한 치사랑. 마침내 아버지는 의식의 눈을 뜨고 점차 기억을 회복해 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쓰러진 때는 91년 10월18일.고국의 한 교회에서 기도중 뇌속의 혈관이 터졌다. 병명은 다중 동맥류 파열증. 의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수술을 하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대구의 한 병원에서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수술을 하기로했다. 하루 밤낮이 걸린 대수술. 그러나 결과는 식물인간. 기약 없는 병구환을 하러 샘은 한국으로 건너왔다. 가족들의 이민생활도 원점으로 돌아왔다.수술이 끝났어도 아버지는 미이라에 가까웠다. 어떤 움직임도 없는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는 간병일지에 그렇게 썼다. 또 10분마다 아버지의 혈압과 맥박, 기타 육체적 징후들을 기록했다. 그 기록들을 도표화시켜 병실 벽에 붙여놓고 병세의 추이를 정리했다. 장례준비는 미리 해놓았다. 아버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고 있었다. 순간순간이 영원에 가까운 시간들이 빠르게 흘렀다. 샘은 미국 시카코대 4학년이었으나 학업의 포기는 젊은이에게 어쩌면 미래의 포기와 다름이 없었다. 그도 물론 박사과정을 마친뒤 좋은 직장과 예쁜 아내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것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아버지의 변을 받고 기저귀를 갈아채웠다. 아버지가 욕창에 걸릴까봐 2시간에 한번씩 돌아눕혔다. 상태가 악화될 때는 항문에 손을 집어넣어 변과 가스를 뺐다. 한밤중에 두 세 번씩 일어나 입을 통해 분비물을 빼내는 「석션」을 해드렸다. 아버지와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일부러 잠을 적게 잤고 음식도 조금만 먹었다. 샘의 혈압은 90/60으로 내려갔고 몸무게는 16Kg이나 빠졌다. 간병 76일째. 크리스마스. 기적이 일어난다는 그 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른 떡갈나무처럼 누워만 있었다.간병 91일째 아버지 뇌에서 꼬마등불 하나가 켜졌다. 「으응」, 천지창조와 비견될 만한 소리였다. 161일째는 아버지 목에서 음식튜브를 뺐다. 191일째 의식을 회복한 아버지가 의식적으로 음식 섭취를 거부했다. 세 숟가락의 죽을 먹이는 데 45분이 걸렸다. 6개월을 각오한 간병이 1년이 지나고 또 한해가 다가왔다.그는 아버지를 돌보는 자신의 의식 상태를 관찰하면서 어느덧 생명철학자가 되 있음을 발견했다. 492일째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리지않았다. 수술, 거듭되는 수술.... 618일째 「긴병에 효자 없다」는 한국속담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완쾌없이 병원에서 퇴원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병원 간병은 거기서 끝이 났지만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퇴원후에도 지속되었고 그는 4년 동안 아버지를 지켰다. 그가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라면 그는 4년간 잠을 잔 샘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이 성공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게 날개였다. 그는 지금 새로운 차원의 수평선을 날고있다. -경향신문 96.1.16일자에서 발췌요약- <편집부>

<이월의 시>

주여,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마음의 평화를 주시사 물결처럼 요동하는

나의 가슴을 잔잔하게 하소서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시사

성급하지 아니하고 천천히 걷게 하소서

매일매일의 복잡한 생활 속에서도

높은 산을 바라보며 침묵을 배우게 하소서

내 기억 속에 아직 살아있는 아름다운 노래로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하소서

휴식은 우리를 새롭게 소생시키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서두르지 않기 위하여 짧은 순간이나마

휴식을 취할 줄 아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한 송이 꽃을 감상하기 위하여

옛 친구와 정담을 나누기 위하여

새 친구를 사귀기 위하여

집을 잃고 헤매는 강아지를

돌봐주기 위하여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한 마리의 거미를

관찰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어린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 위하여

혹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하여

촌음을 활용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인생'이라고 불리는 달리기 시합에서는

빠른 자가 항상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빠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

높은 탑과 같이 치솟은 큰 떡갈나무를 바라 보면서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잘 자라났기때문에

이처럼 크고 튼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소서

<오린 엘 크레인>

<광야의 소리>

뇌물

우리는 거짓말중에서 '하얀 거짓말'은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하여 자주 사용한다. 이 뇌물이라는 것도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어디에서나 만연해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이 뇌물이란 문제는 전세계적인 문제이며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의 모든 영역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근간 몇 달 동안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뇌물)사건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뇌물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표출이자 인간의 탐욕에 근거를 둔 죄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해 진행할 때 모압왕 발락의 땅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를 두려워한 발락은 발람이라는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다. 결국 발람은 불의한자의 편에 서게 되었으며 부끄럽게도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을 받고 말았다.(민22:5-11) 또한 예수님의 시체를 지키던 로마 군인들도 뇌물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시체를 종교지도자들로 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도둑질하여 갔다(마28:13)"라고 거짓말을 부탁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베드로가 사마리아성에서 엄청난 성령의 역사로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병에서 고침 받자 이를 탐한 마술쟁이 시몬이 돈으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라(행 8:19)"고 했다. 이처럼 성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존재해온 것과 뇌물이 사용된 목적이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다. 뇌물이라는 사회악이 존재하려면 필요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성경에서 그 조건을 찾아보면 먼저 뇌물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된다. 발람은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시몬은 신기한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 뇌물을 사용했다. 이것은 이기적 욕심에서 시작된 사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뇌물 문제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욕심을 통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눅9:23)고 하신 것은 이런 윤리적인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진리를 수호하고 법을 준수하려는 사람에게 뇌물은 있을 수 없다. 빈 무덤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했다면 종교지도자들이 뇌물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를 왜곡하거나 법을 무시하고 싶을 때 뇌물을 사용하게 된다. 또 뇌물의 필요조건은 황금만능주의 사회풍토일 것이다. 돈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서 뇌물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뇌물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탐욕의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보아야 한다. 탐욕은 곧 우상(골3:5)이라고 했던 사도바울의 말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이기적인 욕심이 커가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이루려고 한다. 법은 점점 더 많아지지만 법을 지키면 손해가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으며 돈은 만능의 신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뇌물문제가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잘못된 관행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며 그래서 개인으로 하여금 공정한 절차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자기가 속한 처소에서 이 일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정윤길. 감리교신학대학원 재학-

<삶의 지혜>

내가 자라난 마을은 아주 작고 안전한 곳이어서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을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혼자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음대로 이곳 저곳을 탐험할 수 있었던 나는 목재 야적장에 가서 내가 지하실에서 하려고 계획 중인 목공예 작업에 쓸 나무토막을 찾기도 하고, 전화 회사에 가서 교환원들이 일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으며, 또 2학년이 되기 전 여름에는 사무용품점에 가서 모조 악어가죽 책가방에 눈독을 들이기도 했다. 초록색에 빨강색 장식을 한 그 가방은 너무 멋져서 나는 갖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그 가방이 3달러 98센트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그 해 여름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미 자전거를 탈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아이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야 했다. 어느 덥고 조용한 오후, 나는 큰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한 번도 눈 여겨 본적이 없는 어느 상점 앞에 발길을 멈췄다. 창문을 통해 커다란 쿠션을 댄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들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마치 식당의 손님들처럼 주문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선반마다 내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이까지 책이 꽂혀 있었다. 수백 권이었을까? 수천 권이었을까? 책상 앞에 앉은 여자가 "도와줄까요?"하고 내게 물었다. 여기가 무슨 상점이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이 곳은 상점이 아니라 도서관이라고 대답했다. 파는 것은 없지만 뭐든지 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서관 열람증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 여자는 내게 열람증을 갖고 싶냐고 물었다. '갖고 싶냐고? 그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 여자가 조그만 오렌지색 카드에 내 이름과 번호 1221을 적어 넣었다. 그 여자는 만년필로 글씨를 썼는데 잉크가 마를 때까지의 그 한없이 길게 느껴진 시간 동안 내 마음은 놀라움과 두려움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도서관이라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공짜로 사탕과자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무슨 장애물이 있겠지. 아마 돈이 없어도 책을 빌려갈 수는 있지만 책을 반환할 때 돈을 내야 할지도 몰라. 나는 감히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사서가 아동부를 가리켰다. 나는 카드의 잉크가 마르는데 걸렸던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동안 대충 훑어보고 나서 책을 한 권 빌려 갖고 그 여자가 나에게 이 놀라운 특전을 베풀어 준 데 대해 마음을 바꾸기 전에 얼른 나와 버렸다. 놀라운 일은 더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도 성인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서가 나에게 책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소설류는 저자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고, 논픽션 작품은 듀이 10진 분류법(도서관 학자 듀이가 창시해 세계에 보급되고 있는 도서분류법)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도서관을 발견한 후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하루 두 번씩 찾아가서 매번 책 한 권씩을 빌려 왔는데, 마침내 사서가 한 사람이 한 번에 여러 권씩 빌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집에 책가방이 있으면 참 편리하겠다고 얘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여름이 끝날 무렵에 부모님이 굴복하셨다. 또 한 가지 정복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전거였다. 여러 권의 책을 자전거에 달린 바구니에 담아 운반하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난 직후에 나는 자전거를 배웠다. 그 후 몇 년동안 나는 탐정소설, 전기, 역사책, 잡동사니 도서 등을 닥치는 대로 게걸스럽게 읽었다. 나는 또 동화책 몇 권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미운 오리 새끼」에는 나도 언젠가는 백조처럼 우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어른이라고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라는 내 짐작을 확인해 주었다. 그 조그만 오렌지색 카드는 세계로 가는 나의 통행권이었다. 이것이 있어서 나는 내가 살던 작은 도시에서는 알 수 없었던 무수한 사람과 사상에 접할 수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은 내가 전기에서 만난 최초의 흑인이었는데 그 전기는 또한 나를 편견이라는 끔찍한 사실에서 눈뜨도록 해 주었다. 사방 200마일(320km)이내에 이렇다할 미술관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가기까지 내가 본 그림이라고는 이 도서관의 미술책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경탄할 만한 도서관의 도서대여제도를 통해 나는 유태교와 세포 생물학 등 내 호기심을 사로잡은 온갖 분야를 다룬 서적들을 산더미처럼 공급받았다. 나는 도서관에 가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가 다닌 대학 도서관의 육중한 문을 열 때마다 외경심에 휩싸이곤 했다. 그 곳은 신성한 장소였다. 그 곳에는 한 지붕밑에 수백만 권의 책 즉, 무한한 지혜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요즘 몇 개의 통행권, 지역 공공 도서관 열람증, 희귀도서 열람증, 세계 최대 대학 도서관 중 하나의 열람증 등을 지니고 다닌다. 도서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경탄의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내가 도서관의 마이크로 필름 판독기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어린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한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에게 생일이 언제인가 묻고 나서 그 날짜의 「뉴욕타임즈」지 필름을 찾아주곤 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태어난 날의 신문을 읽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모른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듀이와 그의 10진 분류법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나는 그 아이들이 책가방에 책을 가득 채우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나는 그 애들의 첫 번째 통행증이 나의 경우처럼 그 애들을 여러 세계로 데려다 주기를 바란다. -패트리카 오토드 작- <편집부>

<유 머>

■ 배신자

"아빠, 정치에서 말하는 배신자란 어떤 사람이야?"

"배신자란 우리 당을 버리고 떠나 저편 당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지."

"그럼 저편 당을 버리고 우리 당으로 넘어오는 사람은 뭐죠?"

"그건 전향자라는 거지."

<하하호호 잉글리쉬>

Brave and Brain

Susan looked at Ronald doubtfully after the proposal.

"The man I marry," she said, "must be both brave and brainy."

"Well," he declared, "I think I can lay just claim to being both."

"I admit you are brave," she responded, "for you saved my life when our boat upset the other day; but that wasn't brainy, was it?"

"It certainly was," he retorted, "I upset the boat on purpose."

용기와 두뇌

결혼 제의를 받고 난 수전이 미심쩍다는 듯 로널드를 쳐다보았다.

"나와 결혼할 남자는 용기도 있고 머리도 좋아야 해요."

"그렇다면 "하고 로널드가 말했다. "나야말로 그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는데."

"당신이 용감하다는 것은 인정해요. 그건 요전날 보트가 뒤집혔을 때 내 생명을 구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머리가 좋은 것과는 관계가 없잖아요. 그렇죠?"하고 수전이 말했다. 그러자 로널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모르는 소리,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구. 난 그 보트를 일부러 뒤집었거든."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 1>

아니 이럴 수가!-교통 문화와 성결한 삶 -이영운목사. 교육학박사-

우리가 성도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승리의 삶, 성결의 삶, 깨끗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실제 생활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면서, 본인이 의도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우리의 삶이 굴절되기도 하고, 더럽혀지기도 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깨끗한 성도의 삶이 더럽혀지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이것은 아니올시다"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즈음 사회가 성결한 삶, 깨끗한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깨끗한 삶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지난 글과는 달리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성도들의 깨끗한 삶을 가르치는 그릇된 모습들을 살펴본다. 특히 사회 속에 팽배해진 그릇된 운전 문화의 모습, 바람직하지 않는 크리스천의 교통 문화와 그 생활을 살펴보고 싶다. 현재 한국 교회는 오늘의 선진 국가들이 몇 년 전에 혹은 몇십 년 전에 겪었던 교통 문화의 과정을 거쳐 가고 있다. 특히 일본이 좁은 국토 속에서 차량의 폭발적인 증가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스럽고 혼잡스러운 교통 문화를 얼마 전에 겪었었다. 그래서 한국도 일본에 정착된 선진국의 교통 문화가 5년 안에는 정착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보면서 그 일에 크리스천 운전자들, 크리스천 교통 인구가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선진 국가들도 우리 나라처럼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접어들면서, 또 자가용 시대에 접어들면서, 폭발적인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많은 문제를 겪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오늘의 선진국의 정리되고 안정된 교통 문화를 이끌어 가는데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오늘의 선진국에 이르렀다. 그들이 겪어 온 것처럼, 오늘의 우리는 밀려드는 자동차의 행렬 속에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을 교통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 출퇴근시 벌어지는 교통지옥과 거기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은 크리스천들이 결코 비켜 갈 수는 없다. 특히 주일날은 더욱 심하다. 평일에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집안에 모셔 두었던 자가용들을 몰고 나와서 ,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찾아 다니느라고, 여름에는 휴가로 명절에는 고향으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몰려다니느라고 모든 고속도로와 간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모든 도시는 차량의 물결로 홍역을 치른다. 그 속에서 거룩한 주일을 지내야 하는 크리스천들과 자신들의 교회를 찾아 가야 하는 성도들의 교통 문화는 대강 짐작이 간다. 특히 요즘은 가까운 동네 교회보다는 어려서부터 다니던 모교회를 찾아 가느라, 주일마다 신자의 이동 인구도 대단하다. 교회가 클 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선 벌어져서는 않되는 "아니 이럴 수가"의 일들이 벌어진다. 먼저 서울 신촌에 있는 모 교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상황을 소개한다. 의정부 지역에 살고 있는 집사님 한 가정이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왔다가 늦어져서 택시를 타고 신촌에 있는 교회를 가려고 택시를 잡았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이 갑자기 자기들이 잡은 택시를 얼른 먼저 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다음 택시를 잡아 탄 그 집사님은 화가 나서 앞에 가는 택시를 쫓아가도록 부탁했는데, 쫓아가는 방향이 자기가 가야 할 신촌 방향과 같더라는 것입니다. 차는 막히지만, 의정부에서 송추로, 송추로에서 구파발쪽으로, 구파발에서 연희동으로, 연희동에서 신촌로타리 쪽으로 가는데 앞서가는 택시도 자기네 교회로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사네 가족은 택시비를 드리고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기도하러 올라가시는 분이 바로 자기네 택시를 먼저 타고 간 분으로 교회 장로님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집사님의 그 때 심정은, 그 주일날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독자가 상상하시기 바란다. 필자가 유학 생활을 지내던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미국 목사님의 "아니 이럴 수가"도 소개한다. 시카고 시내에 있는 어느 미국 교회에서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게 된 목사님이 교통지옥의 러시아워에 교회를 찾아가야 할 입장이 되었다. 예배 시간은 늦어지고 목사님은 어떻게 할 지를 몰라서 애태우다가, 실례를 무릅쓰고, 지그재그 운전을 해 가며, 클락숀을 울려 가며, 난폭한 운전과 양보 없는 운전, 끼어들기 운전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겨우 예배 시간을 맞출 수는 있었는데, 도중에 끼어들기를 하며 옆에 사람과 인상을 써 가며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끼어들기를 해서 기분이 상했던 그 교회 신자가 교회에 늦게 도착해서 예배를 드리려는데, 강대 상의 설교자가 아까 기분을 상하게 했던 그 난폭한 운전자더라는 사실에 아연 질색하며 그런 목사의 설교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나가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통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도의 운전 태도와 교통 문화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 나의 운전 태도는 과속, 끼여들기, 전혀 양보하지 않는 태도,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건널목을 건너는 행위, 질서를 무시한 운전이나 보행-등등은 다른 신자의 눈에 "아니 이럴 수가" "아니 목사님이!" "아니 장로님이!" "아니 권사님이!" "아니 집사님이!" "아니 크리스천이!"의 물음으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아니 이럴 수가!"의 무언의 외침은 없는가?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 2>

청렴 결백한 명상(名相) (황희.黃喜.1363∼1452 조선 초기 문신)

조선조 초기의 명상(名相)인 황희(黃喜)는 세종 때 영의정이 되었는데, 공사의 구별이 엄격하여 관원에서 추호도 국가의 재산을 소모하지 못하게 하였고, 공평 무사하여 청빈하게 지냈다. 조선조 역대 명신 중 가장 청백한 신하였다. 장수(長水) 사람으로 시호는 익성공(翼成公)이다. 황희의 맏아들은 일찍이 벼슬이 참의에 이르러 집을 크게 새로 짓고 많은 친구들과 고관 대작을 초청하여 주연을 베풀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황희는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식도 들지 않은 채 돌아가 버렸다. "선비가 청렴하여 비가 새는 집에서 정사를 돌보아도 나라가 잘 될지 의문스러운데, 거처가 이다지도 호화해서야 어찌 뇌물이 오가지 않을 수 있겠냐. 나는 이런 집에서는 잠시도 머물러 있기가 송구스럽다." 청렴 결백한 황희의 한탄이었다. 황희의 둘째 아들은 주색에 빠져 가사를 돌보지 않았다. 황희는 여러 번 아들을 훈계하였으나, 아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황희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문밖으로 나가 아들을 맞이하며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주색에 빠져 부친의 말을 중히 여기지 않던 아들이었으나, 갑자기 달라진 부친의 태도에 놀란 아들은, "아버님, 어이된 일입니까? 의관 속대까지 하시고 저를 맞아 주시다니 대체 어찌된 일이십니까?" 하고 당황해 했다. 그러자 황희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그대가 어찌 내 집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한 집안 사람이 아닌 나그네가 집을 찾으매, 이를 맞는 주인이 제대로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예의에 합당하다 이를 수 있겠는가." 이에 황희의 둘째 아들은 크게 깨달아 새사람이 될 것을 맹세했다 한다. <편집부>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 문화 5

김문택 서울 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요즈음의 대중 음악, 특히 젊은 층에 인기 있는 대중 음악을 듣고 있자면 그 가사를 직접 글씨로 보지 않는 한 좀처럼 가사의 내용을 알아듣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같은 민족, 같은 나라, 같은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어의 음절과 단어의 구조 그리고 발음을 변형시키거나 파괴하여 처음 그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은 전혀 가사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초반에는 그저 가사가 빠진 음악만을 듣고 감상하게 된다.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보면 나중에 가사의 내용이 파악될 때 쯤이면 곡의 의미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따라 하며 흥얼거리게 된다. 또한 현대인의 사고방식의 하나인 복잡하고 심각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저 순간을 즐기는 습성- 이러한 특징이 대중 음악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사와 영화와 극의 내용을 잘 살펴보지 않고 그저 순간적인 부분의 돌출들을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특성을 사탄은 그냥 보아 넘길리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러한 현대인의 결점을 이용해 우리의 어느 부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인 것이다. 즉, 우리가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고하지만 절대로 간과 할 수 없는 잠재의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재의식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일까? 록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불분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소리를 크게 높여도 알아들을 수 없고 일반인들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도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은 일반 테이프가 아닌 릴테이프에 녹음하여 릴테이프 녹음기를 거꾸로 돌리면 그제야 그것의 실체(사탄의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차폐 효과(Backward Masking), 역행 차폐라고 하는데 이것은 메시지를 거꾸로 녹음하여 정상적으로 주행시키는 방법으로 일반적 방법으로는 절대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사탄적 방법이다.14-15세기경 사탄 숭배자들은 '어둠의 미사'를 행하였는데 이것은 촛대를 거꾸로 뒤집어 태우고 옷을 뒤집어 입고 성구를 뒤로부터 거꾸로 읽었다고 한다. 19세기 말기에 흑마술과 신비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에드워드 크로울리(Edward Crowley)'는 그의 저서 '마법'이라는 책에서 거꾸로 말하고 거꾸로 쓰는 것에 대해 가르침으로서 사탄의 계략이 차폐 효과란 방법으로 대중 음악에 침투하여 우리의 영혼을 타락시키게 되었다. 예전에는 비밀리에 차폐 효과를 숨겨서 녹음을 하고 앨범을 냈지만 요즘에는 가끔 공개적으로 이 앨범은 차폐 효과를 사용하여 작업한 앨범이라고 공개적으로 앨범에 표기하기도 한다. 그 만큼 사탄의 계략이 치밀하게 벌여지고 있는 것이다.그러면 여기서 많이 알려진 곡들중 차폐 효과로 만들어진 것과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Stairway to Heaven>- "들어라.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탄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나의 사랑하는 사탄, 다른 어떤 이도 길을 만들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피할 길이 없다. 그는 나의 사랑스런 사탄이다. 그 길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 힘은 사탄에서 온다.

*비틀즈(Beatles)의 <혁명 번호9' Revolution Number 9>-"죽은 자여 나를 흥분시켜 다오"

*ELO의 <Fire on high>- "시간은 거꾸로 돌릴 수 없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거꾸로 돌려라 거꾸로 돌려라"/ <엘도라도' Eldorado>-"심술 많은 예수여, 지옥으로 가라."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빗잇' Beat it>- "나는 내안에 있는 존재가 사탄이라고 믿는다."

*퀸(Queen)의 <또 다른 사람이 죽어 간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마리화나를 피울 결심을 하세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탑스' Tops>-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악마가 말했다."

*에이시 디시(AC/DC)의 <단숨에 사랑을 나눠요' Love At First Feel>- "우리가 악마를 섬긴다. 즐겨라 죄인들이여."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곡들이 차폐 효과를 사용해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수 많은 록음악들이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차폐효과가 귀로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귀에서 들었던 예들과 같은 내용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탄은 그 음흉한 발톱을 숨기는 것이다. 록음악 공연장에서 흥분의 광란이 일어날 때 "나타스", "도그시 나타스"를 유도하고 또 외친다. 이것을 풀어 거꾸로 해보면 다음과 같다. NATAS(나타스)--SATAN(사탄), DOGSINATAS(도그시 나타스)--SATAN IS GOD(사탄은 나의 신)참으로 충격적이고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내용의 메시지가 사람들의 무의식으로 스며들어 결국은 의식화 되어 버리는 과정, 이것은 참으로 경계하고 긴장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 한 회사가 극장의 관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의식의 영향에 관한 실험으로써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아주 짧은 메시지에 대한 반응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화는 1초당 24프레임, 즉 1초에 24장의 필름이 돌아간다. 24장 중에서 1장씩 콜라와 팝콘을 번갈아 가며 삽입하였다. 즉 24분의 1초로 상영하였다. 사람들은 무엇이 지나갔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시간인 것이었으며 극히 자연스러운 보통 영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이 있던 날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극장 매점에서 보통 때보다 몇 배의 콜라와 팝콘을 사간 것이었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을 통해 의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 졌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무의식은 그것을 접수하고 의식적인 행동 표출로 이어 지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 곡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곡의 모든 가사 내용을 이해하고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사 내용보다는 곡, 멜로디, 리듬을 즐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콜라와 팝콘을 찾는 관객들과 같이 음악을 통해 사탄을 찾게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중 음악에 차폐효과를 이용한 곡이 있다고 아직 조사된 것은 없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미 폭력적인 가사내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터질 것 같은 내마음... 미치게 만들었어... 모두 죽여야지..." 이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게다가 기독교적 입장은 아니었지만 공연윤리 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도 이제 폐지된다고 한다. 빈약했지만 그나마 있었던 거름종이도 몇몇 목소리 큰사람들에 의하여 거두어 지게 되는 것이다. 많은 대중 음악 곡들이 악한 내용의 가사와 차폐효과를 이용해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고 이 세상음악은 엄청난 양으로 매일매일 제작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방법은 하나, 하나님 앞에서 세상음악을 과감히 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이 시간이후 각자 자기의 책상 앞에 있는 세상의 모든 테잎, CD등 모든 것을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뜻대로 잘 안되고 세상 음악에 대해 미련이 드는 사람은 한 번 더 생각 해보기 바란다. 나도 모르게 내가 타락해 가고 죽어 간다는 것을......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어떻게?기도로!

<예술 한 토막>

브라이트 엔젤

목적의식 없이 우연히 접하게 되는 영화가 뜻하지 않은 감흥으로 다가올 때면 엄청난 제작비와 주위의 소란스런 감상 평을 듣고 찾은 영화보다 그 영상이나 음악, 배우들의 표정 하나에 까지 호기심을 동반하게 된다. 한편에선 제작 의도와 그 수고로움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들곤 한다. 마이클 엘즈의 브라이트 엔젤도 그런 영화의 하나이다. 미국 동서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의 눈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개인의 좁은 세계에서 점차 큰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돌발적 사건으로 압축시켜 보여주고 있다. 18세의 주인공 죠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생활에 있어 새내기. 그에게는 가족과 세상에 대해 명확한 신념보다는 막연한 짐작과 예상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밤 호숫가에서 아버지와의 오리 사냥으로 부터 이 영화는 시작된다. 철도원인 아버지는 청둥오리를 사냥하여 암시장에 내다 파는 불법자이고 어머니는 정부와 둘이서 가족을 버리고 나가버린다. 망연자실한 그는 친구인 클로드가 자신의 아버지 심부름으로 어떤 젊은 여자를 데려다 주는 일에 동참을 한다. 젊은 여자 루씨는 연료 트럭을 훔치다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자신의 오빠를 찾으러 와이오밍주의 카스퍼에 가게 되고 죠지는 집을 나간 자신의 어머니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카스퍼에 있는 이모 집을 찾아가게 된다. 죠지,클로드, 루씨 세 사람은 카스퍼를 향해 가는 도중 낚시도 하며 여유를 찾으려 한다. 빠르게 지나는 창밖 풍경, 석유를 캐는 유정 묘사, 그리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 그 속에서 죠지와 루씨가 친숙해지게 되자 클로드와 루씨가 말다툼을 하게 되고 결국 그 여행에서 클로드는 제외된다. 카스퍼에 도착한 죠지와 루씨는 중소도시의 무료함과 비인간적임을 느끼며 바(Bar)를 찾아 들어간다. 한쪽 귀퉁이에서 벌어지는 권투 시합을 보며 빈정거리는 루씨 때문에 결국 죠지는 권투 시합에서 상대인 인디언 남자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모텔에서 루씨는 병역 기피자인 아버지가 집안에 숨겨 둔 돈을 가출할 때 가지고 나왔다고 고백을 하고 다음날 둘은 루씨의 오빠에게 면회를 간다. 거기서 그들은 출소를 위해 밥이라는 사나이가 증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밥을 찾아간다. 밥의 집에서 밥과 니나, 아트부부를 보게 되고 밥에게 6천달러에 도시를 떠난 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죠지와 루씨는 버스터미널 짐 보관함에 돈을 넣고 만약을 위해 다른 열쇠를 마련한다. 모텔에 돌아온 그들에게 니나와 아트 부부가 찾아와 죠지와 루씨를 차에 태워 나간다. 아트는 밥이 자신의 아내와 도망하려 했기 때문에 밥을 죽였다며 밥의 시체를 유정에 버리고 죠지, 루씨를 유정의 기둥에 묶는다. 그 도중에 루씨가 아트의 총에 머리를 맞게 되고 그들은 돈이 들어 있지 않은 보관함의 열쇠를 가지고 달아나게 된다. 이튿날 순찰차가 다가왔을 때 이미 루씨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죠지는 간단한 조사 후에 풀려난다. 그때 어떤 남자가 죠지에게 다가오며 유정의 막노동 자리를 소개하자 죠지는 주급 8백달러를 받기로 하고 그 남자의 트럭 뒷자리에 올라타 떠나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브라이트 엔젤은 흥분되고 과장된 헐리우드식 영화는 아니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면서 존재와 세계의 비밀에 눈뜨는 과정을 거쳐야 할 청년의 위치에서 이끌어 가되 그의 눈으로 그려 감에 있어서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관점을 버렸다. 법을 어기며 밀렵을 하는 아버지, 가족을 버린 어머니, 가출한 여자 가운데서 죠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그의 행동은 그의 선택은 더이상 따뜻한 가정과 고향 일수가 없는 것이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맡겨 버리는 일 밖에는……자신의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고 뿌리내리지 못하는 죠지는 "다시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더 이상 안식처로서의 가정을 추억할 수 없게 되버린 오늘의 현실을 우리는 죠지의 가정이라는 대변된 가정의 해체를 통하여 깨닫고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마약과 본드를 흡입하고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 연예인의 죽음을 이유로 자신의 生을 포기하는 학생, 학교 내의 폭력 등으로 얼룩진 오늘날의 우리 사회 청소년의 모습에서 우리는 청년들의 정체성 확립과 그들 스스로의 자립 능력을 비난하고 심판하기 이전에 가정과 사회가 그 기초석이 되어 주었는지를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비디오 테이프 '브라이트 엔젤'을 보고- -청년부 이혜섭-

<독자의 편지1>

이동희 목사님께

제가 이곳에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게 되어 무척 긴장이 되고 또한 기쁩니다.이곳으로 편지를 보내게 된 이유는 "숲속의 사과나무"라는 책을 무료로 준다기에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무료라고 해서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라는 책을 연무대 교회라는 곳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안의 내용이 너무나 좋았고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숲속의 사과나무" 7월호를 읽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 문화'라는 제목의 Rock에 대한 비판과 충고 등을 나열해 놓은 점 등이 정말 저를 긴장하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또한 다른 모든 제목의 내용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저에게 보내 주신다면 군 생활을 해 나가는데 정말 크나큰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얼마 안되는 5주간의 교육이지만 그 동안에 이 책이 저에게 만약 온다면 저는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동희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그럼 이만 적겠습니다. 95. 12. 31 부산에서 - 이병 황 호 영-

PS.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요-謹賀新年-

<독자의 편지2>

목사님께

새해를 맞이하여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난해도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저희 풍산 신우회에서는 평강교회에서 발간하는 "숲속의 사과나무"를 읽고 그 내용이 너무도 유익하여 전도지로뿐만 아니라 회원님들이 지속적으로 30-40권의 책을 매달 구독하기를 원하고 있읍니다. 오는 주일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통하여 자세한 방법을 듣고 싶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96. 1. 9 -장 봉 원 드림-

<독자의 편지3>

이동희 목사님 귀하

성직을 감당하시며 희생을 보내 주신 평강교회와 목사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를 읽고 소감을 드리면 매월 받아 볼 수 있다고 쓰여 있기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울산과 인천하면 멀게만 생각되나 먼저 꼭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요즈음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열정이 강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멀리서 날아온 사과나무의 열매를 나눠주시기를 더욱 바라는지도 모릅니다. "숲속의 사과나무"를 읽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속적인 교회들이나 신앙인 들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내용으로는 모르는 신앙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 주셔서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말씀의 샘에서 이동희목사님의 '본받아야 할 신학 사상'을 읽으면서 계속 받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각 페이지마다 알찬 신앙 상식 또한 많이 안다는 지식 문화 시대에 잃어버린 진주를 찾아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움을 갖게 되었습니다.앞으로도 "숲속의 사과나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교회로 성숙되실 것으로 믿으면서 제 작은 손이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위하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 영 문 올림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2동 583-4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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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1996.3)

차 례 --------------------

▒ 말씀의 샘 <십자가의 길 -2>

▒ 병동 일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12>

▒ 건강 상식 <렘(REM) 수면 -13>

▒ 쉼터 <아버지의 공책 -16>

▒ 사랑의 힘 <구국의 별 유관순 -18>

▒ 삼월의 시 <3월 1일의 하늘 -22>

▒ 광야의 소리 <코메디 많이 배웠습니다 -24>

▒ 삶의 지혜 <직업을 올바로 선택하는 법 -26>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1<으아! 맛있다! 정말? -29>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2 <새 바지 헌 바지 -34>

▒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6 -36>

▒ 예술 한 토막 <쇼생크의 탈출 -41>

▒ 독자의 편지1,2,3 <45>

▒ 애플 퍼즐<47>

십자가의 길

"(요19:17)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 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요19: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19:20)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요19: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요19: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요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19:24)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셍케비치(Sienkiewicz)의 노벨상 수상작인 <쿠오바디스>는 너무나 유명한 초기 기독교의 야사(野史)입니다. 로마에서 전도하던 사도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여 압비아 가도(Appian Way)를 정신없이 도망하다가 공중에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환상에 놀라 발길을 멈춘 것입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길을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놀라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나는 배역하는 로마의 시민을 위해 두 번째 십자가에 달리려 간다마는 너는 어디로 가느냐?(Quo Vadis)"라고 반문하셨다고 합니다. 여기 주목할 것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는 베드로에게 주께서 "너는 어디로 가느냐?" 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말은 "주여 이 세상을 어디로 이끄시렵니까?, 또는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는 말이 됩니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상태이며 믿음은 어떠냐는 물음이 되겠습니다.우리들은 세상이 가는 길에 관심이 크고 심하면 주님에게까지 원망할 때가 있지만 나 자신의 가는 길은 살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을 먼저 살피고 나의 가는 길을 바로 정할 때 우리는 세상의 가는 길도 바로 볼 수 있고 또 주님의 뜻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바로 이해하게 될 때 세상의 가는 길을 바로 이해하며, 세상과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할 때 자신의 십자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슬픔의 길)은 지금의 엑시 호모 교회(Ecce Homo Church, 요 19:5, 빌라도 법정 자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 옛 도시의 좁고 꼬불 꼬불한 길을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말합니다. 성지순례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소는 바로 이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로사입니다. 십자가형에 의한 죽음만큼 무서운 죽음은 없습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도 소름끼치는 사형"(키케로)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본래 페르샤의 사형제도인데 칼타고인들이 이어 받았고, 이것을 다시 로마인들이 칼타고인들로부터 배워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은 로마 본국 이외의 영토에서만 사용되었고 그것도 노예에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의 경우 반역죄에 해당되는 사람만이 사형을 당하지만 십자가 상에서 사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형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죄가 선고되면 재판관의 "십자가 형으로 한다."는 언도와 함께 다음과 같은 명령이 집행관에게 내려집니다. "옷을 벗겨라, 그리고 채찍질하라!"(Summove, lictor, despolia, verbera=Remove him, lictor, strip him, and scourage him) 채찍질은 가장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가죽 채찍이 아니었습니다. 그 채찍의 긴 가죽끈에는 뾰족한 뼈조각과 날카로운 납조각 등이 촘촘히 박혀 있어 옷이 벗겨진 채로 그 등허리를 후려치게 되면 의식을 잃고 실신하거나 헛소리를 내며 미친 사람처럼되기도 합니다. 심하면 그 채찍에 그만 까무라쳐 거의 초죽음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채찍에 맞고 나면 즉시 끌려 나와 4명의 로마 군인 가운데서 자신의 십자가를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때때로 죄인은 일어나서 걸어가게 하기 위하여 채찍질을 받고 뭉둥이로 몰림을 당하여 비틀거리면서 십자가의 형장까지 걸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메고 가는 죄인 앞에서는 한 사람의 관리가 그가 사형을 받아야 할 죄상(罪狀)을 기록한 죄패(罪牌)를 들고 행진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상을 보고 그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십자가형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죄상을 기록한 것을 죄인보다 앞세워 긴거리를 가게함으로 그 죄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와서 그에 대한 유리한 증언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그 죄인에게 유리한 증언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십자가 행진은 즉시 중지되고 소송을 재심(再審)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를 높이 세우게 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못이 뚫고 지나간 손과 발의 신경과 힘줄에 체중이 언쳐있으므로 극히 미미한 움직임만 있어도 온 몸이 전률하며 고통은 극에 달하여 가장 부자연스런 모습으로 매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점점 더 극심해지게 됩니다. 그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길은 전혀 없습니다. 그 못박힌 자리에는 염증이 점점 심해지고 종국에는 살이 썩어 문들어지고 맙니다. 이러한 상태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면 피가 역류(逆流)하여 혈관을 압축하게 되고 특히 머리에 피가 팽창하게 되어 그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고통에 더 한층 고통을 주는 것은 탈진상태(脫盡狀態)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범죄인은 기아와 갈증과 볕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인하여 완전히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법에 따르면 시체는 해가 지면 내려서 묻어버려야만 했습니다. 로마법에서는 죄인의 시체는 매장하지 아니하고 독수리와 까마귀, 그리고 들개들이 처치하는 대로 방치해 두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첫째 순종의 길(2절)이며, 둘째 사명의 길(5절)입니다. 첫째, 십자가의 길, 십자가를 지는 생활은 죽기까지 순종하는 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생자(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가는 그 길이 바로 독생자를 죽이는 십자가의 길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순종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순종의 길을 걸어가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란 영광된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로사도 순종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主)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배고파도 올라가야 하는 길, 골고다의 좁은 길, 죽더라도 올라가야 하는 길, 그러나 이 길만이 생명과 영광, 영생복락의 길이기에, 아니 이 나라 민족을 살리는 길이기에 우리는 이 길을 가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만이 이 나라 민족의 병든 것과 상한 것, 반목과 분쟁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둘째, 십자가의 길은 사명의 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로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나의 사명이다."고 하는 확고부동한 신앙의 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은 실로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으시는 길이었습니다. 고전 7:22의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 를 사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자는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서" 사명을 주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사명자들은 부르심을 받는 체험 즉, 소명체험을 통해 사명의식(使命意識)을 갖게 되었고 강렬한 사명감으로 힘차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부르심을 받은 120명 모두에게 한꺼번에 부어주시는 사명체험이었습니다. 이 사명체험을 통해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체험(聖靈體驗)은 사명 감당의 기본 조건입니다. 베드로는 목자로서 사명을 받기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번씩이나 받았습니다. 이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사명 감당의 필수요건(必須要件)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으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 사명을 완전한 사랑과 순종인 십자가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써붙인 죄장서(罪章書)가 히브리어와 라틴어, 그리고 헬라어로 쓰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3대 언어는 당시 3대 위대한 민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헬라는 조형의 미와 사상의 미를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법과 탁월한 정치를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종교와 참된 신이신 하나님의 예배를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의 극치는 바로 예수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 안에는 그 위에 다시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최고의 사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진선미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탐구하고 획득하려고 추구해왔던 모든 것은 예수 안에서 그 극치를 찾아 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삶의 최고 진선미를 이루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시므로 여러분의 삶이 가장 진실되고 선하며 아름다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 밑에 있는 도박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살폈듯이 죄인은 4명의 군인들이 호송하여 형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죄수 처형 임무를 띠고 있는 이들 군인들은 죄인이 입고 있는 의복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통상적으로 다섯 가지 의복을 입었습니다. 신과 터번, 띠, 속옷, 겉옷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4명이고 의복은 다섯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비를 뽑아 취했던 것입니다. 제각기 자기가 뽑은 것을 취한 후에 속옷만이 남았습니다. 그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통채로 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네 조각으로 자르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그것을 취하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제비를 뽑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군인들은 십자가 밑에서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이렇게 까지 나타내 보이는 정경은 없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가 고통 가운데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십자가 밑에서 군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닌듯이 즐겁게 주사위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극은 그리스도에 대한 세상의 적대심이 아닙니다. 그 비극은 이 세상의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 것도 아닌듯이 취급하고 있는 무관심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인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미워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인류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께는 무관심하고 남은 옷가지 몇 벌에, 세상 썩어질 것, 물질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히덕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져야 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관심, 무감각한 인생들에게는 결국 자아 상실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각종 경제 지표가 나타내는 경제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삶의 질은 눈에 보이는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 즉 사랑과 공의, 정직과 성실, 근면 등이 더욱 편만한 사회에 있는 것입니다.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앗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 Francesco of Assisi, 1182-1226)가 어떤 시골로 여행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시골 처녀가 우물에서 물을 긷고는 물 위에 나무 조각을 띄워 메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상히 여긴 성자는 그 이유를 물으니 물 위에 나무 조각을 띄워두어야 물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때 프란체스코는 크게 깨닫게 되어 그 후 설교할 때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마음에도 십자가를 얹어 두면 동요(動搖)가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풍랑은 너무 심하고 우리의 마음은 너무 약하여, 늘 흔들리고 늘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십자가가 건재할 때 마음의 동요는 진정되고 고요한 펑안을 느끼에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도취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마음에 건재할 때 마음의 안정이 있고, 우리가 십자가에 도취될 때 우리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출15: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 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출15: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출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출15: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

마라의 물이 써서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였던 것처럼 이 세상은 쓴물로 가득합니다. 이 쓴물을 마시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마라의 쓴물에 한 나무가 던져지므로 그 물이 달아졌으며, 그 단물을 마시므로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라의 쓴물에 던져진 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던져지는 곳에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역사(役事)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던져지는 곳에 사람들에게 내린 질병, 영혼과 정신의 모든 질병까지도 치료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던져지는 곳에 세상의 많은 풍랑이 잔잔해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를 집시다. 자신과 가정, 그리고 나라 민족의 십자가를 집시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일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만이 세상의 풍랑을 잔잔케 하고, 세상의 쓴물을 달게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

새바지와 헌바지

옛날에 하남의 정현이라는 곳에 복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바지가 더럽고 헤지자 옷감을 끊어다 주며 아내에게 새 바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바지의 치수를 재던 아내가 물었다. "어떤 모양으로 지어 드릴까요?" 복씨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헌바지와 똑같이 해 주시오" 아내는 복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었다. 그래서 바지를 만든 다음 헌바지의 모양을 본따서 구멍도 몇개 뚫고 기름자국도 만들어 쭈글쭈글하고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공을 들여 바지가 완성되었다. 아내는 바지를 남편에게 갖다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맘에 드세요?, 헌바지와 똑같지요?" 이 이야기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한비자의 {외저설좌상}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비자는 복씨 아내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비유로 들어 '선왕을 본받고 요순에게로 돌아가라'는 당시의 사상적 경향을 풍자하였습니다. 바지가 맞지 않거나 헤지면 새바지로 바꿔야 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새바지는 몸에 잘 맞으면 되는 것이지 헌바지와 똑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비자가 보기엔 그당시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은 역사가 발전하는데도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새 시대에 새바지를 억지로 낡은 바지와 같이 만들려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였던 것입니다. 옛 선왕들의 일을 교훈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다시 실천할 수는 없는 것이며 설사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새포도주는 새가죽부대에……'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 시대에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위해 세상에 오셨으니 세상 쾌락과 부패속에 머물기보다 새 옷감으로 깨끗한 새마음의 새생명의 옷을 입는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울산대 4년 이향섭>

3월 1일의 하늘

박 두 진

유관순 누나로 하여 처음 나는

3월 하늘에 뜨거운 피무늬가 어려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대지에 뜨거운 살과 피가 젖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조국

우리들의 겨레는 우리들의 겨레

우리들의 자유는 우리들의 자유이어야함을 알았다.

아, 만세,만세,만세,만세! 유관순 누나로하여 처음 나는

우리들의 가슴깊이 피터져 솟아나는

비로소 끓어오르는 민족의 외침의 용솟음을 알았다.

우리들의 억눌림, 우리들의 비겁을

피로써 뚫고 일어서는

절규하는 깃발의 뜨거운 몸짓을 알았다.

유관순 누나는 저 오를레앙 잔다르크의 살아서의 영예

죽어서의 신비도 곁들이지 않은

수수하고 다정한 우리들의 누나,

희옷입은 소녀의 불멸의 순수

아,그 생명혼의 고갱이의 아릅다운 불길의

영웅도 신도 공주두 아니었던

그대로의 우리 마음 그대로의 우리 핏줄

일체의 불의와 일체의 악을 치는

민족애의 순수절정 조국애의 꽃넋이다.

아, 유관순,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언제나 3월 이면 언제나 만세때면

잦아 있는 우리 피에 용솟음을 일으키는

유관순 우리 누난 보고 싶은 우리 누나

그 뜨거운 불의 마음 내 마음에 받고 싶고

내 뜨거운 맘 그 맘 속에 주고 싶은

유관순 누나로 하여 우리는 처음

저 아득한 3월의 고운 하늘

푸름 속에 펄럭이는 피깃발의 외침을 알았다.

<사랑의 힘>

전 덕기 1875-1914 서울출생 감리교 목사

겨례사랑이 하나님사랑, 나라사랑이 하나님사랑임을 몸으로 살다 간 목사 전덕기는 나라의 운명이 급박하던 때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 7살 때 고아가 된 그는 가난한 삼촌집에서 자랐다. 17살 때 상동교회의 선교사 스크랜튼(W.B.Scranton)과의 만남으로 그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4년 후 세례를 받고 스크랜튼과 함께 남대문을 중심으로 열심히 전도하였다. 상동교회 속장으로 있으면서 엡워드청년회를 조직하여 교회, 시사회, 청년운동등으로 발전시켰다.독립협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교회안에 공옥학교를 설립하여 불우청소년들을 가르치면서 민족혼을 불러 깨웠다. 청년회의 정치활동을 우려한 스크랜튼의 강요로 엡워드회가 해산당하자 오히려 우국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청년학원이설립되면서 양기탁, 주시경, 이승만 이갑, 이동휘, 이회영, 이시영,등이 모여들어 소위 "상동파"라는 민족운동의 구심세력이 형성되었다. 청년학원은 "을사 보호조약 무효 상소운동"을 전개하였고 "헤이그밀사파견" "심민회"의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1907년 목사안수 후 스크랜트에 이어 상동교회의 "섬기는 목자"로서 외롭고,가난하고 병든자의 곁에 언제나 함께 있었다. 그의 애국활동이상으로 목회도 눈부신 바 있어 공덕, 세검정, 청파 북장, 사촌, 녹번헌 등지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YMCA창설, 교육과 목회 등 특히 교육을 통해 양성된 인재들은 전국에서 두곽을 나타내었다.합방 후 일제는 한국지도자들을 꺽기 위해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검거하였다. 이때 전덕기목사도 체포되어 갖은 악형을 받다가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자 풀려났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한채 상동교회 사택에서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절명하였다. 그의 39세의 짧은 나라 사랑과 이웃사랑은 나이보다 더 긴 세월로 이 땅을 적시고 있다.

<건강상식>

렘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면 상쾌하다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 어빙이 지은 <스케치 북>에는 '립 반 윙클' 이야기가 나온다. 립이라는 순박한 남자가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많은 요정을 피해 정신없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는 피곤해져서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서 쉬다가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떠 보니 밝은 해가 내려다보는 아침이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와 마을에 돌아오니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하룻밤이락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20년 동안이나 잤던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라고만 하지 말고 잠깐 생각해 보자. '사람은 일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예순 살까지 산다고 하면, 그 가운데 20년은 자는 데 쓴다는 말이 된다. 립이 잤던 시간과 신통하게도 맞아떨어진다. 사람은 왜 자야만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피곤하기 때문에 잔다'는 것이다. 확실히 푹 자고나면 지친 뇌와 신경이 회복된다. 할 일이 쌓여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 5분이나 10분 정도만 졸아도 놀라우리만큼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오로지 잠만이 피곤한 뇌를 회복시켜 준다. 어떻게 해야 좀 더 효과적으로 잘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평소 생활,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좀 더 충실하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계가 있다.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잤는데 깨어나 보면 머리가 멍하고 도무지 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일어난 뒤에도 한동안 멍한 상태가 이어지곤 한다. 반대로,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도 머리가 맑아 이익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아침 일찍부터 일을 잘 할 수 있어 하루의 성과가 좋다. 잘 잤는데도 머리가 멍하다, 제대로 못 잤는데 머리가 맑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뇌파를 비교해 보면, 앞의 경우는 비(非)렘(NON-REM)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며, 뒤의 경우는 렘(REM) 수면 상태에서 깨어났음을 알 수 있다. REM은 Repid Eye Movement의 줄임말로, 자고 있을 때 눈알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뇌에는 꽤 얕은 잠이지만, 몸에는 가장 깊은 잠이다. 렘 수면 상태일 때 사람은 꿈을 꾼다. 비렘 수면은 말 그대로 눈알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수면 상태이다. 렘 수면은 한 번에 약 20분 가량 계속되며, 8시간을 자는 사람인 경우에 잠들어서 깨어날 때까지 이 수면 상태를 네다섯 번 겪는다고 한다. 모두 합하면 하룻밤에 대개 2시간 정도다. 수면은 이 렘 수면을 포함해서 90분 주기로 되풀이 된다. 단계별로 나누면, 우선 막 잠들었을 때가 첫번째 단계로 깜?감빡 졸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코를 골기 시작하며, 세번째 단계와 네번째 단계에서는 가장 깊은 잠을 잔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를 지나면 선잠으로 바뀌어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것이 렘 수면이다.

20분 정도로 렘 수면이 끝나고 다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단계로 나아가며 같은 주기를 되풀이 한다. 한창 자라는 어린이에게 잠에 취하거나 몽유병, 야경증 따위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대개 깊은 잠인 비렘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도 비렘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멍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제 당신은 다음날 아침을 위해 자명종 시계바늘을 고정 시킬 때, 과연 몇 시에다 시계바늘을 고정시켜야 가장 상쾌한 하루를 맞을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리이 시즈오의 '아침이 즐거운 건강수면법' 중에서 발췌 -정리 장옥순-)

<광야의 소리>

코메디 많이 배웠습니다.

"코메디 많이 배웠습니다."어느 코메디언 출신 의원이 정계와 결별하면서 마지막 한 말이다. 이 코메디언의 촌평이 지난 국회의 행적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하다. 그것은 웃다 못해 울어야 했으며, 울다 못해 웃어야 했다. 코메디언의 언행이 돌아서면 변하듯이 정치인의 그것도 매 마찬가지여서 국회라는 TV박스에서 코메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잠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지금 전국은 15대 총선 분위기로 하루가 다르게 달아오르고 있다.『민주』란 말을 공천자들은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을 통해 잘살펴 보면 역시 정치적 코메디언 요소가 다분하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각 당은 『인기인』을 영입하여 표몰이에 열중하는 것을 보노라면 정당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의 21세기』아니라 당장의 한표에 연연하는 정치 코메디언들 같다. 코메디는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정치 코메디언의 해악'은 그 피해 영역이 넓고 깊어서 치명적인 사회 악이다."(잠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이제 15대 국회는 21세기 진입을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는 국회다. 계속적으로 위정자들이 정치 코메디 수준에 머문다면 정치불신을 더욱 증폭 시킬 뿐만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시97:11)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잠2: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2:9)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정치'는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한 가장 연륜깊은 행위이지만 정말 '삶의 행위'로서의 정치란 사랑과 진실이 행동윤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삶의 행위로서의 정치에 생명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가 부합된 권위가 주어져서 '한국의 21세기'를 활짝 열어주는 추진력이 될 것이다."(사33:15)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정직히 말하는자,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사33: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쉼터>

아버지의 공책

풀턴은 열아홉 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풀턴은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던 아버지의 일을 자주 도와드리곤 했다. 아버지가 쓴 글을 타이프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료 정리, 청소까지 도맡아 하였다. 그렇게 자주 아버지의 서재를 들락거리다 보니 어디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가부터 아버지의 개인노트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곤했다. 유일하게 밤시간만큼은 풀턴이 서재에 들어가지 못하는 때였다. 풀턴은 가끔 새벽까지 환히 밝혀져있는 서재를 보며 도대체 아버지가 무얼 하고 계시는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풀턴은 아버지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풀턴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아버지는 이 책상에 앉아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풀턴은 책상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서랍 깊숙한 곳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책 한 권이 둘어있었다. 이상하게도 풀튼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첫장을 열었을 때 아버지가 즐겨 쓰던 초록색 잉크가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애쓰 참고 다음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 그리고 친숙한 이웃과 친구들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다음장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풀턴은 그 공책을 건네받은 어머니는 공책을 한 장 한 장 열어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네 아버지의 기도 노트란다. 매일 밤 한 사람씩 이름을 짚어가며 조용히 기도를 올리셨단다."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풀턴이 낯선 이름들을 가리키며 물었다."그런데 이 분들은 누구죠?""그들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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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호(1996. 4)

차 례 --------------------

▒ 말씀의 샘 <예수의 부활>

▒ 쉼터 <사랑의 매아리>

▒ 사랑의 힘 <백만장자의 고아소년사랑>

▒ 사월의 시 <부활송1-황금찬>

▒ 광야의 소리 <살기위한 절규>

▒ 삶의 지혜 <꿈을 지켜라>

▒ 하하 호호 잉글리시 <궁금증>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1 <뒷골목 이야기>

▒ 병동 일지 <사랑의 계절>

▒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2 <당신에게기회를주실때…>

▒ 건강 상식 <不 >

▒ 문화 엿보기<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7>

▒ 예술 한 토막 <조그마한 거인>

▒ 빛과 소금 <모스크바에서 온 편지1>

▒ 독자의 편지1.2< >

▒ 애플 퍼즐 < >

▒' 숲 속의 사과나무' 보급일지

▒ 편집후기

만든 사람들 : 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 : 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 :

<말씀의 샘>

예수의 부활

"(요20: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타임(Time)지의 기사(1962.11)에 의하면 4월은 자살이 가장 많은 달입니다. 그 이유는 만물이 싱싱하게 소생하는 생명에 비해 자기의 인생은 너무도 허무하다고 느끼는 탓 때문이라는것입니다. 따라서 시인 엘리옷(T.S.Eliot)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신앙인들에게는 꽃망울이 열리는 달이고, 생명이 움돋는 부활의 달입니다. 눈이 죽어버린 소경이 눈을 뜨고, 귀가 죽어버린 귀머거리가 듣고, 사지(四肢)가 죽어버린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기적(奇蹟)의 달입니다. 심장이 몽땅 죽어버린 '나사로'(요11:43) 인생들이 무덤을 열고 생명의 나팔을 불면서 부활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생명에는 살았으나 죽은 생명이 있고, 죽었으나 산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살기 위해서 온 생명이 있고 죽기 위해서 온 생명도 있습니다.그런데 그리스도의 생명은 살기 위해서 오신 생명이 아니라 실존(인간)을 위하여 죽으러 오신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무덤이 그를 가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원수를 이김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성경에서 바울은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실로 그에게는 무덤이 없습니다. 비석도 없습니다. 다만 천사의 입으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고 비문(碑文)이 한번 낭독되었을 뿐입니다. 부활! 부활! 무덤을 파헤친 생명! 생명! 그리고 이 감격! 이 기쁨!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어느 가슴에다 심을 것인가? 이 땅에 메말라버린 지식인의 사상 속에 부활의 생명을 심으소서! 이 땅에 비틀어진 정치인의 양심 속에 부활의 생명을 심으소서! 이 땅에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버린 도덕과 윤리 가운데 부활의 생명을 심으소서! 이 땅에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교육계에 부활의 생명을 심으소서! 이 땅에 천민 자본주의로 곰팡이 냄새나는 기업인들에게 부활의 생명을 심으소서!. 이 민족의 가슴마다 죽음의 무덤을 파헤친 부활의 생명을 주옵소서! 우리 나라의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긴 월남 이상재(李商在,1850-1927) 장로님에게 한 번은 일본 신문 기자가 질문하기를 "간디는 평소에 100세를 산다고 하였고 누구는 몇 세를 산다고 하였는데, 선생님은 몇 년이나 사실 작정이십니까?" 하였습니다. 이상재 장로님은 그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영원히 살지, 죽기는 왜 죽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로 정치가로 외교관으로 교육가로 그리고 교회 봉사자로 다양한 일생을 보내신 월남 이상재 선생님의 생의 비결은 이와같은 "부활의 신앙"이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부활의 생명을 확실히 바라볼 때 현세를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재 시인 괴테는 "너 아무리 성공의 정상에 서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죽고 다시 산다는 진리를 알기까지는 처량한 나그네"라 하였고,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4,19,20)고 했습니다.부활 사건은 그리스도의 지상 활동(地上活動)을 총 결산해주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신(神)의 계시 사역(使役)의 정점이 되는 동시에 인류 역사와 존재의 결정적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중요한 부활 사건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믿음이 없이는 바른 신앙생활을 영위(營爲)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유태계 미국인 작가 아이색 씽어(I.B.Singer)의 작품 중 '바보 김펠'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펠은 부모를 일찍 여윈 채 고아로 자라났습니다. 워낙 천성이 착한 데다가 사람들의 말에 잘 속아넘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 김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결혼 적령기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사생아까지 있으며 성격이 포악한 창녀 엘카에게 장가들게 하였습니다. 그는 그녀가 행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혼을 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결혼한 지 4달만에 부인 엘카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김펠은 고민했습니다. 그도 아이는 10달만에 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곧 그는 아내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세상에 의심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어.' 따라서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갓 태어난 자기의 아기를 위해 그리고 아내를 위해 황소처럼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누워자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멍텅구리 노릇도 이젠 그만해야지, 평생 동안 남에게 당하면서만 살 순 없어.'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은 순결하며 따라서 김펠이 헛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아내의 말을 또다시 믿기로 작정했습니다.이 후 김펠은 20년 간을 그런 식으로 살면서 네 딸과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물론 그들 모두는 그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으로 갑자기 죽게 됩니다.그런데 상(喪)이 끝나는 날 밤, 꿈에 악마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너를 속이는데 너는 언제까지 그들을 믿을 작정이냐? 그들은 거짓으로 뒤범벅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바보처럼 그들을 믿지 말고 너도 그들을 속이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꿈에서 깨어난 김펠은 악마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 괴로워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난 모든 사람들을 믿어 주었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바보'라는 별명뿐이었어. 이제 나의 믿음을 배반한 그들에게 복수를 해야 해." 그는 20여년 동안 빵 가게를 운영해 왔는데 정직과 성실로 일해 왔으므로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빵을 즐겨 먹어 왔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밀가루 반죽에 오줌을 한 통 부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빵을 구울 준비를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온몸을 검게 그을린 아내 엘카가 나타나 매우 슬픈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바보같은 사람...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려하다니! 몇 사람이 거짓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거짓된 것은 아니야.제발 믿음을 저버리지마.난 지금 다른 이들을 속이고 의심한 죄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단 말야." 그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습니다. "아차 했으면 난 영원한 삶을 잃을뻔 했어. 믿음이란 가장 중요한 거야. 작은 일 하나부터 의심하다 보면 나중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될거야.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할지도 몰라.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그 모든 것을 믿어야 해."여러분은 김펠이 정말 바보로 여겨집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본문의 의심많은 '도마'보다 바보 김펠의 단순한 믿음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본문27-2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보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바램들은 불신자 뿐만 아니라 신자들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한 번 보여 준다면 교회 나가겠다고 하고,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한 번 나타나 주신다면 더욱 더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분명히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했습니다.이 말씀은 현대의 우상이 되어 버린 과학만능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조차도 실험실에서 분해하려고 드는 경향에 대해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 사건 기록은 보고도 믿지 못한 자와 보지 않고도 믿었던 자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주는 현대의 과학주의적 신앙관에 일침을 가하는 좋은 실례(實例)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해방을 받은 출애굽 1세대들만큼 하나님의 이적(異蹟)을 체험한 세대가 없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무수히 겪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지열(地熱)을 식혀주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혹독한 추위와 짙은 어둠을 물리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인 이동식 여행과 사막의 열악한 기후로 농사를 짓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여년 간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게다가 수시로 반석의 물을 끌어내어 식수로 공급하시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기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당대의 막강한 권세자인 '바로' 왕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홍해의 이적도 친히 목격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이들 중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던 사람은 과연 몇 명이었습니까?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을 보고도 믿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보지 못하고 믿었던 대표적인 기생 '라합'을 우리 믿음의 귀감(龜鑑)으로 삼읍시다. '라합'은 가나안 여인으로서 당시의 잡다한 혼합 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세속화의 첨병으로서 부초처럼 살던 여인이었습니다. 라합은 믿음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부적합한 조건과 환경 가운데 살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처럼 하나님의 이적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라합의 믿음은 보지 않고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소문만으로 믿음을 가진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마1장). 도마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간 예수님의 무수한 행적을 보았으면서도 드러낸 불신앙의 태도를 경고 삼고, 보지 못하고도 믿음을 가진 라합의 영광된 결말을 믿음의 사표(師表)로 삼아 예수 부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영광된 첫째 부활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위대한 진리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진리가 허위(虛僞)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인간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진리를 제거하고, 말살하고,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진리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임을 궁극적으로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선이 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선이시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 선을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선이 궁극적으로는 악에 대해 승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단번에 완전히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생명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도 죽음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과 함께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한계를 깨뜨렸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하나의 한계일 수 있으나 하나님에게는 한계가 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창조의 하나님은 죽은 예수를 살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삶에 의해 삼키어졌습니다. 죽음의 독침 곧 죄의 세력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결정적으로, 단 한번에 극복되었습니다.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영원한 삶의 세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넷째, 예수님의 부활은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싸움은 결국 인간의 미움과 하나님의 사랑 사이의 싸움이었습니다. 인간은 그 사랑을 취하여 십자가 위에서 그것을 영원히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모든 미움 보다 강하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미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위대한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면 인생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가 인간과 세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사건이라면, 부활은 새로운 삶의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예수가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받은 사건이라면, 부활은 심판을 받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그 외형(外形)에 있어서 하나님의 분노의 사건이라면, 부활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자기 낮추심과 수난의 사건이라면, 부활은 하나님의 자기 높이심과 영광의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예수의 역사적 존재를 나타낸다면, 부활은 모든 역사적 제한성을 벗어난 예수의 영원하고 현재적인 존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만일회적(萬一回的,ein fur allemal)사건이라면, 부활은 이 사건의 영원하고 현재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J.Moltman).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이전에 있었던 제한된 인간의 삶으로 되돌아가서 이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제한되지 않은 하나님의 새로운 삶으로의 부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삶은 "한 새로운 몸의 새로운 삶", "하나의 질적으로 새로운 삶, 죽음을 더 이상 알지 못하며,그러므로 이 사멸할 삶의 연장일 수 없는 삶"인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삶이 아니라, 새롭고 다른 삶인 것입니다."(J.Moltman).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과 생활로 믿으시고 "새로운 삶으로의 생명"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으로 통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인생은 그 날이 풀입니다. 그 영화는 들의 꽃입니다. "(시103: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러나 세상에는 죽을 생명이 있고, 죽어서 영원히 살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으시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생명을 '지금 여기서'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세 시대에 어떤 수도사가 성지 순례를 갔습니다. 갈보리 산 근처에 돌아다니던 중에 뜻밖에 이 수도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쓰셨던 가시 면류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가시 면류관은 보기에도 험상스러운 가시로 되었고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볼품은 없지마는 주님께서 쓰셨던 가시 면류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지극한 보배로 여겨져 그 면류관을 고이 자기 나라까지 가져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있는 수도원 예배당의 강대상 위에다 놓았다고 합니다.그런데 얼마 후 부활절 아침을 맞아 수도사들이 일찍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 예배당 문을 열었더니 온 예배당이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 있더랍니다. 이게 웬 일이냐고 사방을 둘러 보니 그 험상스러운 면류관의 가시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많이 피었더랍니다. 물론 얘기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뜻이 있습니다.

부활 생명을 의미합니다.

승리를 의미합니다.

향기를 의미합니다.

기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이에게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새로운 능력이 생깁니다.

향기가 나는 생활로 변합니다.

기쁨이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승리와 향기과 기쁨을 얻었습니까? 이 기쁜 주님의 부활의 날에 충심으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영접해서,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생활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승리의 생활, 향기를 뿜는 생활, 기쁨이 충만한 생활로 변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쉼터>

사랑의 메아리

어린아이인 형과 동생이 싸웠다. 그걸 보고 어머니가 형을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분을 참지 못한 어린 형이 뒷동산에 올라가 나팔 손을 만들어 앞산을 바라보고 외쳤습니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

그러자 아파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

어린아이는 놀란 나머지 황급히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산 너머에서 누군가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나에게 소리치는 아이가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아들에게 일렀다.

"애야, 다시 뒷동산에 올라가서 이번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봐라."

동산에 올라간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자 산 너머에서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의 힘>

백만장자의 「고아소년 사랑」

생명의 은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네팔의 고아 소년을 양자로 삼았으나 이민법에 저촉되 추방위기에 처하자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여온 영국인 백만장자의 인간애가 우리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휴먼드라마의 주인공은 18세기 고성(古城)과 1백50만파운드(약18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리처드모리(41). 그는 5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최근 이민 심판소에서 승리한 뒤 내무부의 최종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야기는 12년전인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리가 네팔로 등반을 갔다가 사고로 폐를 다쳐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구조요청을 받은 바수 카드카라는 네팔경찰관이 3일간 산속을 뒤진 끝에 그를 발견, 생명을 구해주게 된다. 모리는 보답으로 상당액의 돈을 주려고 했으나 카드카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자신이 세상을 뜰 경우 유일한 혈육인 제이(당시7세)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세월이 흘러 90년 카드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리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네팔로가서 수소문 끝에 집을 떠나 탄광에서 일하고 있는 제이를 찾게 된다. 모리는 네팔주재 영국대사관측과 상의, 제이의 나이를 보호자 없이 혼자 출국할 수 있는 성인나이(18세)로 허위 기재한 뒤 3개월간의 관광비자를 받아 영국으로 데려왔다.부인과 사별한 뒤 자식이 없는 모리는 제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차츰 부성애를 느끼게 되자 아예 제이를 양자로 삼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비자기한이 만료되 제이가 이민 당국으로부터 불법체류자로 간주되 추방명령을 받자 모리는 소송을 제기 「아들을 강제로 추방할 경우 아버지인 나도 고국을 버리고 네팔로 가 아들과 함께 살겠다.」며 강경하게 버텼다. 이와 함께 모리는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가정교사를 들여 영어와 음악 미술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는 등 제이를 영국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쏟았다. 이 결과 제이는 지금 완벽한 영국청년으로 자라 양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3월8일자 심수아 발췌)

<4월의 시>

부활송1

당신은 다시 오셨습니다

그 날 밤의 하늘은

한 송이 꽃으로 피고

동, 서, 남, 북,

당신이 오시는 길엔

비둘기 떼가 구름같이

날고 있었습니다.

바위는 굴러 제 자리에 없고

석관의 뚜껑은 열려져 비었는데

누가 뿌리는 가루 가루 꽃가루

무덤 속에 가득한

광명과 향기

그것은 오늘 내 마음에 차는

승리의 기쁨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여인은 머리를 풀어

발 밑에 깔고

슬펐던 사람들은 웃음으로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처음 있는 일.

주여 당신은

다시 한번 오십시오

일구구육 년의 이 땅에

당신이 오시면

사람이 살고

당신이 오시면

공포는 가고

당신이 오시면

하늘이 오고.

-황금찬-

<광야의 소리>

살기위한 절규

지구 온난화 + 오존층 파괴 + 산성비 +…그리고 각종 화학 물질의 급속한 증가= 지구 피폐화

지금 세계는 심각한 환경공해와 그에 따른 국제 분쟁의 조짐 그리고 인간성 상실 등의 긴박한 사정이 전개되고 있다. 실로 환경오염의 극복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막중한 과제이며 현대 문명과 인류의 흥망성쇠가 걸린 현안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다양한 생태계에 좋은 자연 조건을 지니고 있어서 금수강산이라 불리워왔다. 그러나 금수강산도 지구의 피폐에 예외없이 참여(?)하고 있다. 대기오염은 유해가스의 기준치를 넘은지 오래고, 산과 들도 산업폐기물과 쓰레기로 뒤덮였고, 민족의 젖줄인 한강, 낙동강 등은 이미 BOD 표준수치를 넘어서 식수로서는 부적당하다고 판단되었다. 더불어서 동식물 600여종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몸에 이롭다거나 관상가치가 높다하여 마구포획 또는 마구채취하여서 이며, 또한 경제 개발을 위한 공관조성, 택지조성등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수 가진자들의 레져를 위한 골프장이나 스키장, 콘도미니엄 등 건설을 위해 자연을 무참히 파괴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공중도덕 부재에 따른 범죄성 공해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또한 게걸스러운 과소비 형태는 대량 생산을 유도하기 때문에 다시 대량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물질을 생산하고 이를 간단히 쓰고 버림으로써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반사회적 기업들은 누구나 함께 사용하여야 할 환경자원을 사유물처럼 이용하여 전국토를 오염시키고 있다.이제 국토의 자원은 지하자원의 매장량만이 아니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그리고 건강한 토양이 기본적인 자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주위의 공해는 위험수준이다. 이제 자연보존을 해야한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살기위한 절규"로 수용되어야한다. 이제 4월은 식목일이 있는 만큼 우리의 산하는 우리 것이고, 또한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임을 새삼 깨우쳐야 하겠다."(창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창1:24)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창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감리교 신학대학원 정윤길)

<삶의 지혜>

꿈을 지켜라

나에게는 산 시드로에 말 목장을 가진 몬티 로버트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모험 프로그램으로 소년들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서 그의 말을 내가 사용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내가 마지막으로 그곳에 방문했을 때 그는 내게 다음의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왜 내가 잭에게 내 말을 사용하게 했는지 말해주고 싶네. 마굿간, 경마장, 농장, 목장을 떠돌아 다니면서 말을 조련하는 사람의 아들이 있었네.그 소년의 학교생활은 계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지. 그 애가 고등학교 상급생이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은 그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종이에 적에 내라고 했다네. 그 날 밤에 그 앤 훗날 말 목장을 가지는 꿈을 7장의 종이에 적었다네. 아주 세세하게 자신의 꿈에 대해 적고, 심지어는 건물 배치도, 마굿간과 트랙이 그려질 200에이커의 목장의 그림을 그렸지. 그리고 200에이커의 목장의 도면위에 사방 4,000피트의 넓은 집의 평면도를 그려 놨다네. 그 애가 마음을 다해 그 계획을 작성한 그 다음날 선생님께 제출했다네. 이틀 후에 계획서를 돌려 받았는데, 첫 장에 "방과후 면담바람"이라는 글과 함께 빨간펜으로 크게 낙제라고 쓰여져 있었네. 꿈을 가진 그 소년은 방과 후에 선생님께 가서 "왜 제가 낙제점수를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지. 선생님은 "이건 자네와 같은 어린사람이 가지기엔 실현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이지. 자넨 돈이 없고 떠돌이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말목장을 경영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 땅이 있어야하고, 진짜 목장을 위해 필요한 자재를 사야 하고, 그 후엔 자네가 지불할 돈이 많아져서 감당할 수 없을 거야. 네가 그 꿈을 실현할 방법이 없어. 그러니 좀더 현실적인 꿈을 다시 적어 온다면, 네 점수를 생각해 보지"라고 말하더군. 그 소년은 집에 가서 오랫동안 고심하고 아버지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했지. 그러자 아버지는 "네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난 이것은 네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결정이라고 생각 한단다."라고 말해주셨지."마침내 일주일 동안 생각한 끝에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전번의 것과 똑같은 것을 제출하고 이렇게 적었지. "선생님은 제게 낙제점수를 주셨지만 전 제 꿈을 이룰 겁니다."몬티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200에이커의 한가운데 지은 사방 4,000피트의 집에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벽난로 위의 액자에 종이를 끼워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가장 좋은 것은 두 해 전에 그때의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30명의 아이들을 데려온 것입니다. 선생님이 떠날 때, 제게 이렇게 말했죠. "몬티야 네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구나. 내가 네 담임선생이었을 때, 난 아이들의 꿈을 빼앗는 도둑이었다. 그 세월 동안 난 많은 아이들의 꿈을 망쳤지. 다행이 너는 네 꿈을 포기 하지 않은 마음을 가졌었지.'라고 했다네."어느 누가 당신의 꿈을 빼앗을 수 있게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꿈을 지키십시오.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입니다.Chicken Soup for the Soul 中에서 -잭 캔필드- (김정희 번역 - 울산대 영문과 졸업)

<하하호호 잉글리쉬>

Curiosity

A millionaire, asked the reason for his success, said; "I never hesitate to give full credit to my wife."

"And how did she help?"

"Frankly," said the millionaire, "I was curious to see if there was any income she couldn't live beyond."

? ? 궁금증

성공하게 된 이유를 질문 받은 어떤 백만장자가 말했다. "난 서슴없이 그것을 전적으로 아내 덕이라고 해야겠소."

"아니, 사모님이 어떻게 도우셨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오."

하고 백만장자가 털어놓았다.

"난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벌어다 주어야 아내가 그만 질려 버릴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 뿐이오."

<깨끗한 삶, 끼끗한 사회1>

뒷골목 이야기! 이영운 목사, 교육학 박사

-- 당신 집 앞은 깨끗한가요? --

첫째이야기

한자에서 나온 말로서 보통 든든한 반석의 의미로 해석한다. 옛날에는 후암동이 괜찮은 동네였다고 한다. 적산가옥들이 있었고, 당대의 잘사는 사람들이 살았고, 남산기슭에 있기 때문에 공기도 좋고 산책하기에도 좋고, 또 남산의 약수를 떠다 마실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아직도 주거지역으로는 좋은 지역이다.그러나 이렇게 좋은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깨끗한 사회, 깨끗한 거리, 깨끗한 골목이 아니라, 지저분한 쓰레기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상태로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후암동 뿐만이 아니겠지만 본인이 살고 있는 후암동은 좀 더 지저분한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인이 살고 있는 후암교회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골목을 이리저리 지나가게 되는데, 정말로 후지고 암울한 동네같은 기분을 거의 매일 느끼며 걸어간다. 왜 이렇게 골목이 지저분한 것인가? 골목을 따라 잡다한 가게들이 줄을 이어 있고, 조그마한 가내공업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골목길을 청소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주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다투는 것을 본 적은 있으나, 골목을 청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왜 그렇게 담배꽁초는 길에다 버리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대문을 열고 나와서, 가래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대문을 닫고 들어가는 것도 목격했다. 자기 집은 깨끗해야 하고, 길거리와 골목은 더러워도 된다는 마음 가짐, 길거리는 더러워도 자기 집만 깨끗하면,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무엇일까? 아무리 넓게 이해하려 해도 알 수 없는 현상이다.깨끗한 삶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내 주위의 더러운 부분부터 정리하고 청소하는 삶이 아닐까? 우리 교회가 있는 동네 골목은 우리 교회가 책임진다는 각오로 동네 골목길 청소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것은 한 두 가정부터 시작해도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고 생각한다.

둘째이야기

어느날 본인이 살고 있는 후암동의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스님이 골목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가게들을 따라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 믿는 집이 아닌 것 같은데 그 분들이 스님을 쫓아낼 명목으로 "우리 집은 교회 다닙니다!" 라고 하면서 스님의 시주요청을 문전박대하는 모습들이었다.

또 어떤 집은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며 "우리집은 교회 다녀요!" 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교회 다니는 것이 스님의 시주요청을 거절하는 도구로 전락했구나 하는 씁쓸한 기분이었다. 또 어떤 집은 담배를 입에 물어서 그런지 "저희는 천주교에 다닙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고, 그 스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런 모습들 속에서 옛날 중학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의 성함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몇가지 가르침을 기억한다. 그 때도 필자는 애숭이 기독교인으로 교회를 다니며 학생회를 다녔고, 교감이 충성스러운 불도인 (佛徒人)인 그 중학교에서 기독학생회를 조직했으나 별다른 활동하나 하지 못하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 세계사 선생님은 다른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중학교에 와서 자원봉사로 셰계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철에는 윗 저고리를 벗어야 할 정도로 더운 교실에서 그 분은 열심히 수업을 진행중이었고, 그 선생님은 더위를 견딜 수 없었는지 수업이 반 정도 지났을 무렵에, "윗 저고리를 벗어도 되겠죠?" 라며 학생들의 양해를 구하셨다. 당시 다른 선생님들의 습관으로는 더운 교실에 들어오시면 당연하게 윗 저고리를 벗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우리들이 매너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우리에게 두 가지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기독교인이었던 내게는 그 이야기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선생님 댁에 스님께서 시주 요청차 들렸는데, 쌀을 한바가지 퍼서 드리면서 그 스님께 말씀드리기를 "저희는 기독교인이지만, 언제든지 오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스님은 종종 시주가 잘 안되는 날이면, 기독교인 가정인줄 알고서도 오곤 한다는 일화였다.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었고, 종종 우리집에 돈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오면, 어떤 경우에는 거짓말이 분명한 줄 알면서도 도움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든 선생님이 되셨다. 종교가 다르다고 하여 도움에 대한 야박한 거절은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는 너무 똑똑한 세대에 살고 있어서 남에게 속아줄 수 없는 세대를 살고 있다.거짓말인줄 알면서도 속아줄 수 있는 여유는 없는 것일까? 목사님댁이라서 찾아왔노라며 시골에서 서울에 사업차 왔다가 일이 안되서 그러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고 찾아오는 "집사님(?)" 이라는 분들, 돌아가면 틀림없이 돈을 보내드리겠다(?)는 분들, 미국에서 필자가 아르바이트하던 곳에 찾아왔던 한국인 알콜종독자는 "피닉스에서 LA지역에 직업을 구하러 왔다가 못 구하고 피닉스로 돌아가는데 고속버스 값이라도 도와달라는 분들(?), 그리고 석달 후에 똑같은 소리로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는 여러 모양의 거짓말도 있고 참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을 외치는 기독교인으로서, 속이는 것인줄 알면서도 속아줄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랑의 사람이 아쉬운 시대이다.어디까지 속아줄 것인가?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르침, 속 옷을 달라하면 겉 옷까지 주고,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을 돌려대 줄 수 있는 여유와 강인함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세대를 살고 있다.이것이 원수의 이마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것이 아닐까?기독교인으로서 스님의 시주자루에 쌀을 퍼 줄 수 있는 여유,거짓말인줄 알면서도 속아 주면서 도와줄 수 있는 여유,깨끗하게 살기 위해서 매일같이 또 자주 손을 씻지만이렇게 자주 씻는 깨끗한 삶이 지나치면 결백증 환자가 될 수 있다.깨끗한 삶이란 더러운 줄 알면서 안아줄 수 있는 여유있는 삶이 진정으로 깨끗한 삶이다.바깥만 깨끗한 삶이 아니라, 속까지 깨끗한 삶이라 할 수 있다.

<병동일지>

사랑의 계절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진흙같은 이몸을 정금같이 하시네"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매섭게 불어오던 바람도 한점 꺾인것 같다. 그렇게도 세차게 불어오더니만…… 해는 내리쬐고 나무들과 화초들은 푸르게 본래 색깔을 찾고 언제 추웠냐는 듯 자기들의 모습 찾는 일에 열중들이다. 참 포근하고 따뜻하다. 창조주의 세심한 손길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날씨가 나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것 같다. 내 마음에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은 바로 아버지의 건강 때문이었다. 마음 한구석으로 그렇게도 미워했던 아버지. 없었으면 하는 마음.뇌혈관 기형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고 난 후 나의 마음은 더 할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없었더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증오심만 앞선다. 입원을 하고 여러가지 검사들과 가장 힘들었던 혈관조영술까지 무사히 마쳤다. 3차병원으로 옮겨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퇴원을 했다. 그때까지는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서울로 병원을 옮겼는데 무슨 영문인지 의사 선생님과의 기분문제로 수술은 커녕 진료만 받고 내려와야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던 아버지였는데 이런 모습을 본 뒤부터는 나의 마음의 담이 더욱 높아만 갔다. 이렇게 해서 한달이 흘러 갔다.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다. 난 이 계명에 위배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를 공경은 커녕 바라보기조차 싫어했던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어머니를 치신것이다. 그렇게도 차가운 내 마음에 다시 찬 바람이 불었다.안면신경마비.우리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혼자서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셔서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오신 어머니.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결국 1월 30일 수술실로 들어가셨고 2시간이면 끝날거라는 수술은 4시간 30분이나 지체되었다. 마음은 불안하고…… 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고 하신 하나님. 난 그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 품으로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아직 이곳에서 주님의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수술은 의사가 하지만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나의 두발은 이곳 저곳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하나님께로 향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의 두뺨을 적셨다. 그제서야 느꼈다. 부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다른 보호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건강에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고 내가 잘못 생각했던것까지 회개하게 되었다. 그후 순간순간 내 마음속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몇일 후 병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갔다. 남들보다 더 빨리 말이다. 언제나 기도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항상 함께 하시는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거의 회복되셨다. 더 감사드릴 제목이다. 나의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치유하시는 하나님! 어려운 일이 닥쳐야만 모든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우리를 하나님께선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이런 설교 말씀이 생각난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 머리위에 던져 놓아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신 염려해 주시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며 다시 감사드린다. 살아 있게 하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아버지에 대한 막힌 담을 헐게 하신 그리고 나와는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께!계절도 봄에 들어 섰고 나의 마음 또한 이젠 봄으로 접어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봄.(해성병원 이비인후과 김 윤 경)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2>

당신에게 기회를 주실때…

어느 날 양나라의 혜왕이 맹자에게 정중하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양혜왕은 중원(中原)의 제후 가운데 가장 먼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고 천하 통일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그의 청을 듣고 맹자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몽둥이로 때려 죽이는 것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 다를 바가 있습니까?" "죽인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칼로 찔러 사람을 죽게 하는 것과 정치를 바르게하지 못해 백성을 죽게 하는 것은 다를 바가 있습니까?" "그것 또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양혜왕의 대답을 듣고 난 후 맹자는 양혜왕의 그릇된 정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왕의 푸줏간에는 푸짐한 고기들이 많이 걸려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들이 매여 있는데, 백성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며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습니다. 살찐 짐승들이 왕의 마구간에 있는데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마치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짐승이 짐승을 잡아먹는 것조차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정치를 하는 것이 겨우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면 백성의 부모된 보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는 「맹자」의 「양혜왕」 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는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찾아 다니면서 도덕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전국 시대의 유력한 제후들인 양혜왕, 제선왕, 등문공 등을 찾아가 왕도 정치를 역설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한 인물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의 모세입니다. 모세도 부패한 애굽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를 예언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애굽의 왕 바로에게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교만하게 행하여 '열가지 재앙'이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맹자는 앞의 이야기처럼 그 특유의 언변으로 제후들을 설복시키지만, 제후들은 설복만 당할 뿐 정작 왕도 정치를 실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웃나라의 침공으로부터 자기 나라를 지키고, 부국 강병(富國 强兵)을 통해 천하를 통일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맹자의 왕도 정치는 말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후들이 부국 강병을 위해 옳바른 왕도 정치를 해야함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면 「출애굽기 7∼12장」에서의 바로왕같이 큰 진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언제, 어디서, 또 누구를 통해서든지 이루신다는 것을 알고, 지금 내게, 혹은 당신에게 기회를 주실 때 놓치지 않고 주의 뜻대로 행하는 지혜를 구하여서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청년회 이향섭)

<건강상식>

스트레스(Stress)를 극복하는 길

스트레스가 당신에게 문제가 된적이 있습니까?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기진맥진해지며 광포해지기도 하며, 괴로와 하며 조급해지기도 하여 안정되지 못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겪게 됩니다. 어느 한 여자 교인이 자신의 교회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월요일 하루 종일 목사님에게 전화드렸는데도 통화를 못했습니다."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월요일은 비번일(非番日,day-off)이라 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마귀는 결코 비번일이 없는데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다시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비번일을 가지지 않는다면 저는 마귀와 아주 같은 것이지요." 현대병이니 문화병이 하는 소위 신경성 질환이 스트레스에 의해 발병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식입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은 쉬지않고 달리는 자동차가 기관 과열로 고장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스트레스 관련 신체질환은 심장혈관계, 위장계, 호흡기계, 비뇨생식기계, 내분비계, 신경계, 피부계 등 신체 모든 부분에 걸쳐 나타난다."고 합니다.(연대의대 이홍식교수)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다음과 같은 사람은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이고 그 반대 성향의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첫째,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약합니다. 둘째, 경쟁심과 책임감이 강하고 융통성이 적고 부지런한 사람이 얼핏 스트레스에 강한 것 같으나 실은 약합니다.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사람,그래서 경쟁에 앞서가지는 못하지만 이런 사람은 웬만한 스트레스는 잘 견딥니다. 셋째, 완벽주의자, 즉 100%달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래서 밤낮 안달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약합니다.이런 사람은 강박신경증에 잘 걸립니다.넷째,요구수준이 너무 높은 사람,욕심이 너무 많아 일을 해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사람을 사귀어도 자기만 위하라고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다섯째, 외곬 인생을 사는 사람, 즉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은 융통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살을 꿈꾸거나 자포자기를 잘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입니다. 여섯째, 자학을 잘 하는 사람으로 무슨 일이든 자기가 잘못한 것으로 인식하여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마음의 고통이 심하여 우울증에 잘 걸립니다. 일곱째, 공격적인 사람으로 불만과 적개심에 항상 차 있어 공격의 대상을 찾아 헤메는 사람, 그래서 화를 잘 내고 싸움도 잘 거는 사람, 이런 사람은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여덟째,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스트레스가 없어도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 가도 적은 스트레스에 부딪쳐도 깨지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여러 종류의 신경증에 잘 걸립니다."(한양대 의대 김광일 교수) 그 스테레스의 원인은 사회가 복잡해지질수록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해, 물가, 전쟁..... 등 어느 것 하나 스트레스 아닌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것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입니다. 성령은 스트레스를 풀어주시는데 성령받은 사람이 왜 스트레스를 줍니까? 교만하고 회개가 없어 성령의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교만과 그들의 회개치않는 생활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셨을 때 그들은 스트레스받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회개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겸손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다른 사람의 육신의 병을 고쳐주기도 잘하는데 곧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받은 사람이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는 데는 무능하지는 않습니까? 교회에 나오면 스트레스가 풀어져야 하는데 교회에 나오면 스트레스가 생기고 쌓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스트레스가 풀어져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생기고 쌓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를 잘못드리니까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인(Cain)은 제사를 잘못드렸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겨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성도와 교제를하면 스트레스가 풀어져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생기고 쌓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하므로 섬기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어져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생기고 쌓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목사가 여선교회에 무엇 하나 시켜려하면 시키기 전에 벌써 스트레스부터 쌓이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감사하기는 커녕 말이 많고 따지고 원망 불평부터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아내는 안믿는 남편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남편에게 스트레스가 생기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세상 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지않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스트레스가 없는 곳입니다.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곳은 지옥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 갇힐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수없는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로 인하여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찬송하며 기뻐하는 생활로 그에게 스트레스가 쌓일 수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처리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행복의 문제이고 신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고독, 배신, 가정, 육체와정신적 고통, 직업과 사회생활 등 많은 상처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감정생활에 대하여 이런 좋은 충고를 하였습니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감정에 붙들려 있는 시간이 길수록 상처는 더 깊어지므로 해가 지기전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 버리라는 뜻은 감정에 사로잡히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의미입니다. 1886년 10월 10일 카나다에서 한 노인의 외로운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죠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이었습니다. 스크리븐은 영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카나다에 와서 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아름다운 여성과 약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위하여 오던 약혼녀가 배의 침몰로 사망한 것입니다. 스크리븐은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직업까지 중단할 정도로 3개월을 실망 속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회에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는 사랑하는 약혼녀를 호수에서 잃었으나 하나님은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잃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음으로써 인류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스크리븐은 맑은 샘이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작은 고통과 자신의 감정을 수습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날 밤 그는 시를 한 편썼는데 오늘날까지 애창곡이 되어 있는 "죄짐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찬송가 487장)입니다. 이 찬송의 2절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시험 걱정 모든 괴롬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지진의 피해는 지진 자체보다도 지진 뒤에 생기는 인간들의 패닉(panic)증세라고 합니다. 지진 자체도 무섭지만 큰 지진 뒤에 사람들은 방황과 공포와 허탈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이 당하는 상처와 고통도 사실은 그 자체보다도 그것으로부터 받는 인간의 패닉 증세가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라고 초청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속에서 상처는 후유증을 많이 내지 않고 아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려운 일,외로움과 아픔을 주는 인생의 사건들을 한꺼번에 떼어서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생애 전체,인류의 역사를 넓게 보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이고 그렇게 할 때 모든 것을 결과적으로 묶어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어느 설교자는 시편 23편을 설교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is)....." 라는 구절에서 "is"라는 동사의 현재 시제(時制)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지금까지 목자이시고(is), 앞으로도 항상 목자이시다(is)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묵상할 때 스트레스가 지속되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당신이 조용하며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때 스트레스가 사라지게 됩니다. 잠시 시편 23편에서 눈을 떼고 22, 24편을 봅시다. 시편 22편에서 우리는 자신의 양을 위해 죽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로부터 멸시조롱을 받습니다. 그들은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군인들이 그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습니다.시편 23편에서, 자신의 양을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4편에서, 양의 위하여 영광 가운에 오시는 선한 목자를 볼 수 있습니다.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예수께서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절대적으로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시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24:5)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우리의 미래가 확실합니다.

"(시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시24: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주께서 당신을 위해 이길 수 없는,이기지 못할 전쟁이 있습니까? 이전에 당신을 괴롭혔던 것을 주께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까? 주의 군대보다 더 강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의 고민을 뒤로 물리고 당신의 위대하신 목자에게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경청하십시오.그 말씀들을 믿으십시오. 마음에 말씀을 두시고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스트레스가 밀랍처럼 녹아져 내릴 것입니다. <이동희목사>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 문화7

김 문 택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그 동안 우리는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들 중 세상 록음악의 실체와 그 폐해를 살펴 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 가야 할 것은 대중문화란 것이 모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고 그 문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특별히 현대의 대중문화는 영적, 육적으로 타락의 길잡이가 되어온 것이 분명하다. 세상의 음악문화와, TV, 영화 등의 비디오 문화, 정신문화 등등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무심코 넘어가는 사탄의 타락전략에 앞장서는 문화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동안 사탄의 전략이 서서히 드러나고 발각됨으로서 사탄의 전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잘 먹혀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탄의 전략중 하나인 록음악을 이용한 타락과 사탄의 메시지 전달은 그 내용이 분명함으로 인해 조금만 주의해서 살펴보면 사탄의 음흉한 흉계가 곧 드러나게 된다. 또한 록음악을 체질적으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 수 있는 것이다. 그후 이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탄은 또 다른 계략을 꾸며 현대 사람들 몰래 슬그머니 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다. 이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은 현대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다원주의로 치닫는 현대의 조류를 이용해 등장한 "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즉, 탈 근대주의, 탈 현대주의를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 및 확산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란, 서구 사회를 지탱해온 유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 사상을 배척하고 '모든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 는 동양종교와 동양의 신비주의를 혼합하여 기독교에 역행하는 모든 요소를 수용하는 반 기독교적 운동인 것이다. 또한 이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 은 궁극적으로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통합하여 결국에는 종교단일화까지 꾀하여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이다.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 은 단지 하나의 '운동' 혹은 '켐페인' 정도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시대의 조류나 유행이 아닌 창세 이후로부터 계속된 사탄의 치밀한 음모중 하나인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미 '뉴 에이지'의 확산이 무섭게 이루어 지고 있다. '뉴 에이지 음악', '뉴 에이지 영화', '뉴 에이지 문학'... 등등 거의 모든 부분에 "뉴 에이지 운동 (New Age Movement)"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구석구석을 들추어 보기 전에 그들의 정체를 살펴보자. "뉴 에이지" 는 분명한 종교이다. 그러나 "뉴 에이지"는 종교의 형태를 띄고 있기 보다는 문화의 형태로 위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기 위한 사탄 최후의 작전인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용했던 내용들이 그 후 현재까지 시간이 흘러 오면서 각 시대마다 숨어서 옷을 바꿔 입고 예전의 유혹 그대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사탄이 많은 변장을 바꿔가며 유혹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 놓고 있다. "뉴 에이지"의 4가지 핵심 교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범신론, 둘째-윤회론, 셋째-상대론, 넷째-밀교주의로서,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으로,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 이라는 개념이다. '신이라는 존재는 모든 것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신이며, 우리가 신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뉴 에이지"의 범신론은 창세기 3장 5절의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라는 뱀의 유혹의 거짓말에 근거한 것으로 사탄의 음흉한 계략과 뉴 에이지의 정체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윤회론'은 마찬가지로 창세기 3장 4절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뱀의 거짓말에 기초하여 "뉴 에이지"의 내세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 난다'라는 윤회, 환생사상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영생과, 불사, 신비술과 심령과학, 강신술, 인지학 등의 수 많은 악마주의와 사탄숭배 등의 기초가 되어지고 있다. 셋째로 창세기 3장 5절의 '너희가 선악을 알리라'라는 뱀의 유혹에 기초한 "상대론"으로서 상황윤리 즉 도덕의 기준이 자신이 되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윤리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감정대로 행하는 것이 옳다, 악은 환상이다....' 결국 그들은 도덕이란 개념자체가 없어지고 기존의 질서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혼란을 일으킨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대명사와도 같이 언급되는 "개성"이란 것이 없다. 개성이 나쁜 것이 아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충분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개성이란 것을 사탄은 또 다시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개성에 관한 개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TV광고 내용중,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말 "난 나야!" "나 이렇게 할꺼야! 왜냐고? 그냥!" "…"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개성의 극치라 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내 감정대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절대적인 것을 부정함으로서 '뉴 에이지'에 영향을 받은 말과 감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단도직입(單刀直入) 적으로 말해 '뉴 에이지'인 것이다. 그들이 알고 사용했건 모르고 사용했건 말이다. 넷째는 창세기 3장 5절의 뱀의 유혹의 거짓말중 '너희 눈이 밝아 지리라'에 기초한 "밀교주의"로서 완전한 지식과 문명을 이룩할 수 있으며 인간 내부의 잠재력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인간 자신이 빛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신비술, 별점, 명상(TM), 마약 등으로 연결된다. 이번 호에서는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의 실체중 기본 교리에 대해 살펴 보았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탄의 "뉴 에이지 운동"을 통한 음모와 대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예술 한 토막>

위대한 작곡가 1.- 조그만 거인

슈베르트! 그의 음악은 참으로 편안하다. 그는 복잡함과 추상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아름답고 완벽한 서정미로 그의 음악은 몇 번을 들어도, 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래서 그의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그가 죽은 후에도 반세기가 걸려야만 했다. 슈베르트는 1797년 1월에 빈의 조그만 시골 마을 리히덴탈에서 태어났다. 교사 일을 보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첫 결혼한 아내 사이에서 14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가운데 5명만이 살아 남았는데 슈베르트가 네째였다.그의 어머니가 55세로 장티푸스 때문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곧 재혼을 했다. 새 부인이 또 5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 계모는 전실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했다.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질을 소중히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처럼 교직자로서 견실한 일생을 보내기를 바랬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데다가 자식이 많은 초등교육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그래서 1808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왕실교회의 소년가수 시험에 합격하여 국립신학교라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일반교육과 일류 교사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다. 특히 살리에가 그의 음악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작곡 외에도 그밖의 것을 가르쳤다. 슈베르트는 작곡에만 열의를 보였고 아버지는 이런 모습을 못마땅 해 했다. 학교를 마치고 1814년 아버지 학교의 조수로 일했으나 작곡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국 직업을 그만두고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그는 훌륭한 음악만큼이나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한 명의 후원자도 갖지 않았으며 가난을 문제삼거나 하지 않고 외관에 무관심한 수수한 사람이었고 키가 작고 말솜씨가 서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활기를 돋구어 주는 인품으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수줍어하고 겸손한 그였으나 착하고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매력 때문에 그를 중심으로 그룹이 생겼다. "슈베르티아네"(슈베르트의 밤) 모임은 연주와 춤, 문학을 얘기했다. 슈베르트는 너무나 궁핍해 피아노의 임대료 때문에 애를 먹는 일이 자주 있었다. 난방 없는 추위 속에서의 작곡은 그를 날로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에 그는 허무와 고독을 노래한 〈겨울 나그네〉를 발표한다.1828년 몸이 쇠약하고 갈 곳이 없는 그를 동생이 자기 집으로 데려 왔으나 티푸스균이 든 음료수를 마시고 11월 19일 생을 마친다. 전하는 말에 당시의 그는 잠자는 사람이었다고 한다.그가 남긴 재산은 헌 양복 세 벌과 낡은 침구, 악보의 원고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과 우정이라는 큰 재산을 남겼다. 그의 생애와 작품을 가리켜 "그는 조그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인이었다."라고 친구들은 말한다.'위대한 작곡가1'로 선정한 것을 잘 알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을 접하면서 느꼈던 편안함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많은 작곡가들 중에서도 슈베르트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생애가 잔잔한 파문을 주는 작품들 만큼이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나 할까?교향곡 제8번 B단조 "미완성"을 들으면 곳곳에 배어있을 봄을 찾아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위대한 음악가와 에피소드 중에서 이혜섭 발췌)

<빛과 소금>

모스크바에서 온 편지

모스크바의 겨울 한 복판에 서 있습니다. 하늘은 온통 희뿌연 칙칙함으로 가려있고 유럽특유의 날씨가 가느다란 눈발과 매서운 눈보라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얀 눈속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는 낭만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 저희들은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이 마냥 그립답니다. 벌써 여름이 기다려지는 긴 겨울의 모스크바는 5월이나 되어야 그런 날을 기대할 수 있을런지.러시아에 대한 아무런 상식도 없이 1년 내내 겨울로만 생각하고 1993년 5월 14일 세 자녀와 함께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모스크바의 첫 발을 내린 공항은 어둡고 칙칙하고 공포 분위기와는 달리 시내로 들어오는 그 넓은 평야, 숲 그리고 노랗게 피어서 온통 모스크바 시내를 덮고 있었던 5월의 민들레를 지금도 잊지 못하기에 5월이 기다려지나 봅니다. 암담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했던 무모했던 그 시절이 어느덧 2년 9개월 뒤안으로 물러났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힘이 아니었음을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모험의 댓가는 축복이라는 것을 확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동행하시는 주님을 확실히 믿기에 지금의 모험속에서 살 수 있음을 시인합니다. 오묘하신 손길, 분, 초마다 보살펴 주셨던 지금까지의 이대로 주님 품에 갈 때까지 생각해도 감격할 것 뿐입니다. 이 감격 때문에 창문을 열어 놓고 쏟아져 들어오는 눈발을 맞으며 조용히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불러 봅니다.

"주님 사랑해요."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순간에도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며 그것을 실천했을 때만이 축복과 함께 예비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숲 속의 사과나무" 앞으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간증이란 체험한 자에게는 소중하지만 듣는 자들에게는 이솝이야기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소박한 이야기를 적어 보냅니다. 1996년 1월 10일 서울행 비행기를 타려는 순간 한국인 학생의 짐을 45kg 들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어느 유학생이 비자 기간이 지나서 벌금 $150을 물어야 된다고 저에게 꿔 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 학생을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내가 가진 $150 중에 $100을 꾸어 주었습니다. 내가 가진 전부가 서울에서 교통비로 쓰려고 가지고 가는 도중이었기에 언제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에 모스크바에 와서 전해 주면 안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순간 어찌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돈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학생이 양심이 있으면 돌려주겠지 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는데 수속밟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40분쯤 지나서 그 분이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되어서 돈이 필요없게 되었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 학생의 신분도 묻지 않고 탑승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선교사 파송문제로 지치고 힘들고 한 시간들, 마땅히 기거할 처소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을 출발하기로 된 날짜에 짐을 준비해 보니 150kg 정도 되는 짐이었습니다. 부탁받은 짐과 양말 300켤레를 이곳 소년원에 갖다 주기 위해 지원받은 물건, 여자 교도소에 수감중인 살인자들의 기술(미용) 교육용 재료등 다 운반할 수 없으리만치 많은 짐을 싣고 김포공항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혹시 아는 사람이나 모스크바 출장가는 사람이라도 만나길 기도하면서 공항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놀랐습니다. 주님의 예비하신 그 손길 때문에…, 떠나 올 때 그 유학생이 맨 먼저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짐이 많다고 했더니 자기는 이미 짐을 부치고 다른 친구분들을 소개해 주어서 무사히 그 분의 댁으로 짐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내가 그 분에게 돈을 꿔 주지 않고 계산적이었다면 지금 그 분의 신세를 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 분께 끝까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방속에 들은 미용가위 35개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신고품목이기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빼앗길 염려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미리 아신 주님께서 예비하신 분은 러시아에 근무하시는 한국 대사관의 외교관이었습니다. 그 분은 손님을 맞기 위해 짐 찾는 곳까지 들어오셨기에 부탁드렸더니 기꺼이 무사하게 가위를 집에까지 갖다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걱정하시는 전도사님이나 짐이 많다고 염려하는 나의 생각은 주님의 섬세한 배려로 무사히 모스크바에까지 도착해서 지금은 시차를 이기고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전해드립니다. 이 일로 인하여 깨닫는 것은 어느 한 순간도 소홀해서는 안되며 항상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속에 회개할 일 한 가지를 고백할까 합니다. 이곳에서 여자 교도소 기술교육을 약속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막상 서울에 가서 준비해야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길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미용재료 준비를 포기할까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유는 자동차가 없다는 핑계로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때 얼마나 회개시키시는지 그 뒷날 바로 미용재료를 준비하였더니 마음의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선교국에서 어느 성도가 자동차가 얼마하느냐고 묻고 지금은 기도중인가 봅니다. 아직 연락이 없으시기 때문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4월에서 10월까지만 해가 길기 때문에 교도소에 갈 수 있답니다. 속히 자동차가 한 대 허락되어서 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들에게 복음과 함께 기술교육을 시켜서 범죄를 줄이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있으니 꼭 기도해 주십시오. 차가 있다하더라도 2시간씩 직접 운전해서 가야하는 곳이기에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수 없는 주님의 사명이기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실천하고 싶습니다. 온 성도가 기도해주시면 속히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그리고 이번에 총신대학에 등록해서 입학했기 때문에 그 공부도 해야합니다. 그럼 교회의 평안과 발전을 기도드립니다.(모스코바에서 이 후 덕 선교사)

<독자의 편지1>

이동희 목사님께

작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귀중한 책을 만들어 주신 평강교회와 이동희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공주에 살고 있는 한 고등학생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귀중한 책을 접하게 되어 계속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보내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한 학생으로서 요즘 세상은 우리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펴져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대중 음악의 위험성을 느끼게 하고 대중음악 속에 나타나는 사탄의 역사를 자각하여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소중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저에게 보내주신다면 저의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목사님이 되시기를 위해 항상 기도드리겠습니다. 96.1.26 (충남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337-1번지 조성민 올림)

<독자의 편지2>

할렐루야

지금도 나의 작은 입을 통하여 전하여지는 복음의 음성이 아직도 주를 영접하지 못한 이들의 가슴에 하나 둘 씩 작은 밀알이 되어 주 안에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글을 올립니다.목사님 주님 안에서 안녕하세요 악한 일과, 육체의 일, 죽음의 일에 익숙하던 지난 날의 아픔 모두를 십자가 뒤에 두고 꿀과 같은 생명의 말씀을 쁹던 중 목사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로마서 강해설교)과 '빛과 생명', '사랑의 향유'를 통하여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더구나 우둔하고 부족한 죄인들을 기억하시고 크신 사랑으로 인도하여 이곳에서(기독교사방) 마음대로 찬양과 기도,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 은혜를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저희 믿음의 형제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목사님 '숲 속의 사과나무'를 열 부정도 보내주시면 서로가 돌려 보면서 믿음과 신앙에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저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을 믿고 확신합니다. 목사님, 이곳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메섹교회가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가운데서 매주 바뀌는 목자의 음성을 통하여 저희들은 살아왔습니다. 목사님, 저희들은 우매하고 미련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모든 죄악을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 많이하여 주십시오. 두 번 다시 죄의 종이 되지 않기를 특별히 기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목사님과 평강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진정 이 나라에 필요한 사역자가 되시고 평강교회에 성령의 불길이 영원토록 함께하여 구름같이 많이 모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은혜의 메시지를 기다리겠습니다. 목사님 늘 주안에서 강건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살롬 96.3.9

(경북 청송군 진보면 진보우체국 사서함 2호 647번지 박진환)

<편집후기>

♠. 본시 우매한 필치 때문에 문서 선교가 두렵고 멀게만 느껴졌지만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기도와 성원에 용기를 얻어 시작한 것이 벌써 '숲 속의 사과나무'가 돌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많은 전화와 편지등으로 편집부에 고마움을 표시한 독자들 덕분으로, 그리고 독자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작은 생명의 전도지를 통하여 변화된 삶의 모습을 바라 볼 때마다, 하나님께 나의 작은 수고를 더욱 감사 할 수있었다.(길)

'숲 속의 사과나무' 의 발전을 기원하면서.....

♥. '숲 속의 사과나무' 편집에 참여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미숙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동참하게 하심으로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게하시고 굳은 마음이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열리게 하시고자 하심이 아니었나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여러분께서도 가슴 두근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세요. (향섭)

◐. 먼저 '숲 속의 사과나무' 가 한 돌이 되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바쁜 생활속에서도 '숲 속의 사과나무' 를 편집하기 위해 모였을 때 내 삶의 목표와 의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작지만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드는 이 전도책자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만약 내일 주님이 오신다 해도 오늘 우리는 이 '사과나무' 심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거나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숲 속의 사과 나무' 회이팅! (아)

♡. 먼저 '숲 속의 사과나무'라는 전도책자를 만드는 일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숲 속의 사과나무'의 첫 돌이 되기 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리고, '숲 속의 사과나무'를 읽고 많은 격려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회를 거듭 할 때마다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기뻤고, 생활 가운데 주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 같아서 좋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봄으로 해서 주님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숲 속의 사과나무'가 되길 바랍니다. (규)

♧. 보잘 것 없는 나를 '숲 속의 사과나무'에 참여하게 하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숲속에 사과씨앗이 심겨진 후 일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씨앗이 어서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줄수 있기를… (희)

<앞표지 설명>

이 그림은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않은길(The Road Not Taken)을 생각게 하는 군요. 오늘은 "숲 속의 사과나무"를 읽으며 운명의 길을 걸어보면 어떨까요?

……

멀고 먼 훗날 어딘가에서

한숨지며 오늘 일을 말하고 있으리라.

숲속에서 두 길이 갈라졌는데

인적이 덜한 길을 택했었기에

오늘의 이 운명이 정해졌다고

뒷면표지 B

백로와 고속도로

여름을 나기 위해 이 땅을 다시 찾아온 백로가 친구를 데리고 고속도로가 보이는 소나무 위에 앉았다. 줄지어서 마구 마구 달리는 자동차들. 처음 온 백로가 물었다.

"저 길은 뭐야?" 친구 백로가 물었다.

"고속도로라고 해.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었대."

친구 백로한테 새로 온 백로가 또 물었다.

"저렇게 급히 달리다가는 부딪치기도 할 텐데?"

"그렇지. 죽기도 해."

"저 길을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걸 정도로 바빠?"

"아니, 놀러 다니는 사람도 있어."

"놀러 다니는 사람은 천천히 가야지. 가는 동안 구경도 해야 되는 것 아니야?"

"그렇지. 그러나 저 길에서는 죽어라고 달려야 된대."

"바쁘지 않아도?"

"응, 앞사람이 달리고 뒷사람이 쫓아오니까 달려야 한대."

"그러다가 죽기도 한단 말아야?"

"그렇다니까."

"알다가도 모를 게 인간들이야."

두 마리의 백로는 훌훌 하늘 높이 날아갔다. 천천히….

하나님의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이와 같다고 느끼지 않으세요? 하나님을 만나 삶의 의미와 여유를 찾아 보세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는 분명해지거든요. 숲 속의 사과나무는 당신과 하나님의 만남을 도와드겠습니다.

A면 표지 설명

강대성씨

(41세.남.공주 명주원 정신지체1급 뇌성마비 복합장애)

늘 웃는 것이 인사인 대성이는 그림 그리기가 취미인 예술가(?)다. 신체기능이 거의 마비되어 기능이 살아있는 발가락에 붓만 끼워주면 하얀 스케치북 위에 대성이가 꿈꾸는 세상이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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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호(1996. 5)

차 례 --------------------

▒ 말씀의 샘 <성서적 아버지상(像)-3>

▒ 쉼터 <신의 가게-14>

▒ 사랑의 힘 <모피코트-15>

▒ 오월의 시 <귀가-17>

▒ 광야의 소리 <세계 제1위-19>

▒ 삶의 지혜 <세상을 변화시키자-21>

▒ 병동일지 <새롭게 하소서-23>

▒ 깨끗한 삶,깨끗한 사회1

<깨끗한 가정, 아름다운가정-26>

▒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2 <배움의 자세-34>

▒ 건강 상식 <비행청소년과 잘못된 식사-37>

▒ 문화 엿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문화8-40>

▒ 예술 한 토막 <지상에 하나뿐인 가족-44>

▒ 빛과 소금 <모스코바에서 온편지2-47>

▒ 독자의 편지 <1.2.3.4.5-51>

▒ 애플 퍼즐 <58>

▒ 편집후기<61>

만든 사람들 : 평강교회 젊은이들

만든 곳 : 평강교회 숲속의 사과나무 아래

만든 때 : 가정의 달을 앞두고

"이 책을 다 보신 후

이웃에게 전해 주시면 기쁨이 두 배!"

<말씀의 샘>

성서적 아버지상(像)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1차 사회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인간 사회의 중심이자 기본 단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신앙의 성패가 전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따라서 한 가정의 신앙 성공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이나 엄마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바깥 사교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콜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 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 반란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다시는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형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결국 1933년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로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 많은 인류가 이 아이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같은 1889년에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습니다. 1944년 6월 6일, 이들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 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의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에릭 프롬에 의하면, 성장과정에서 자녀의 정서에 어머니가 끼치는 영향과 아버지가 끼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따뜻함, 도와주고 감싸주는 마음, 동정심, 이해심, 정서적 안정 등 부드러운 면을 심어주는 반면에 아버지는 성취욕구, 지식, 긍지, 단련, 선악의 분별, 권위 등 강한 면을 심어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남자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미국의 거장 사회학자 콜먼(James Coleman)은 "가장 강력한 교육기관은 정부의 손에 있지 않으며, 교육의 성패는 학교보다 가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건강한 가정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안정된 반석위에서 인간화와 전인교육을 무리없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적절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육자인 부모가 자식들에게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좋은 교육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주위에서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 농사"라고 한탄을 늘어놓는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도무지 요즘 아이들은 X세대니 뭐니 하면서 부모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가슴아프게 노래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은 닮고 싶은 아버지상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상실은 남자아이들의 정서에 열등의식과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결국 남자아이들에게 필요한 강한 측면의 정서는 이상하게 왜곡된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형성됨으로써 남자아이들의 인격과 정서발달에 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아버지들이 자녀들의 진정한 필요를 외면한채 아버지의 역할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떠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아버지 자신입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영향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기 때문에 사실 자녀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과 권한은 어떤 의미에서 어머니보다 더 크며, 그 책임 또한 더욱 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집은 있지만 가정이 없고,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미아 아닌 미아가 되어 실종된 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찾기까지는 기나긴 방황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위기를 맞은 이 시대에 모든 삶의 표준이 되는 성경에 돌아가 바람직한 아버지 상(像)을 살펴 봅시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使役) 속에서는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고 선지자 사무엘을 제자양육까지 시키면서 살았지만 정작 자기 자녀들은 올바로 양육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엘리는 요즘의 현대 부모들처럼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면서 자녀들이 그릇 행할 때에도 징계하지않고 오로지 자녀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합당한 징계가 필요함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죄를 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부모가 자녀들이 지은 죄를 징계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제물을 가볍게 여기면서 의도적으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더니, 더 나아가서는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삼상2:12-22) 그러나 엘리는 범죄한 아들들을 합당하게 징계하는 대신에 단지 가벼운 책망만으로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삼상2: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아이들을 문제아로 키우는 12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십시오.

2. 나쁜 단어를 배워서 쓰기 시작하면 고쳐주는 대신 웃어 주십시오.

3. 영적인 교육은 전혀 하지 마십시오.

4. "안돼" 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5. 어질러 놓으면 따라다니면서 사랑으로 치워 주십시오.

6. 아무 책이나 상관없이 읽고 싶은대로 읽게 하십시오.

7. 아이들 앞에서 부부가 자주 싸우십시오.

8. 용돈을 달라는 대로 주십시오.

9.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게 하십시오.

10. 언제나 아이 편을 드십시오.

11. 언제나 큰 문제를 일으키면 "쟤는 어릴 때부터 저 모양이었기 때문에 별 수 없어"라고 한탄만 하면서 포기하십시오.

12. 인생은 어차피 한스럽게 살 수 밖에 없으니 그런 식으로 계속 살라고 가르치십시오.

우리 나라 주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여성의 95.8%가 '매를 때려 가르친다.'였고 불과 4.2%만이 '어떤 일이 있어도 매를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여성동아 94.12월호,pp 608-611) 가능한대로 매를 들지않고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1. 본인이 매를 맞는 이유를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2. 체벌을 가할 때는 그 분위기가 엄숙하고 가급적 아버지가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별히 초등학교에서 남자 선생님이 여자 아이를, 여자 선생님이 남자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체벌이 심한 경우 이성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6세 이하의 아동에 대한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때는 선악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막무가내로 떼를 쓸 경우에는 떼를 무시하거나 받아주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부득이 체벌할 때도 1년에 1-2회를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4. 중학생 이상일 경우에는 매를 맞을 것인지 본인에게 묻고 매를 스스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매를 때린 후에는 마음의 앙금을 청산하는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때 장황한 설교가 아닌 간단한 표현이 좋습니다.

5. 매를 드는 대신에 꾸지람을 할 때도 유의해야 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잘못을 따지는 '설교형', 너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니 대책이 없구나 하는 '사방포위형', 과거의 잘못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급형', 행동을 나무라면서 공부 문제까지 비난하는 '복합형', 누구누구는 잘하는 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 하는 '비교형', 이런 짓을 하다니 참 똑똑하구나 하는 '냉소형', 네가 착한 짓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식의 '무능예언형', 한번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는 '강압형' 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꾸지람은 해당 사유에 대한 질책에 국한해야 하며,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 이유에 대한 변명을 듣고 '위엄있고 짤막하게 처분을 내릴수록 효과적입니다.

아이를 정말 이해하는 만점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항상 입시철이되면 청소년문제가 증가합니다. 이럴 때 아이의 문제를 일일이 함께 상의하고 걱정해주고 안내해 줘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불안해하는 학생과 자상한 대화를 나누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왜 공부가 안되는가? 기분은 어떤가?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 상급학교는 어디를 지망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런저런 방침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해주는 부모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모는 90점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이런 부모의 자상한 배려와 관심을 오히려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 요새 힘들지? " 혹은 " 너 요새 불안하겠구나!"하는 한 마디를 던지면서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어보는 부모는 100점짜리입니다. 그밖에는 아무 말이 필요없습니다. 아이는 그저 빙긋이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고충을 이해해준다고 느끼고 마음을 가다듬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더러는 이런 때 이러니 저러니 자기 고충을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그냥 귀담아 들어주면 됩니다. 말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들어주는 그 자체가 훌륭한 치료인 셈입니다.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부모 밑에서는 입시에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다음 기회에 자신있게 도전하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아이들이 입시에 성공하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지혜와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마음을 가다듬지 못합니다. 부모가 대범할 때 아이는 차분히 공부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 아이를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부모보다 "축 늘어진 아이의 고달픈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알려진 삼손은 경건한 아버지 마노아 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마노아는 자녀교육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였습니다.

"(삿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마노아는 나실인이었던 아들 삼손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버지가 훈계한 대로 바르게 자라지 않고 점차적으로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다가 마침내는 머리까지 깍이고 두 눈이 뽑히어 연자멧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아버지 마노아는 어릴 때부터 아들인 삼손을 하나님 말씀대로 길렀지만 아버지에게서 독립을 하면서부터 삼손은 죄의 길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녀교육이 경건한 아버지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녀는 아버지와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삼손이 다시 힘을 얻은 후에는 그 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한 것을 보면서 어릴 때 받은 경건한 아버지의 영향은 결코 헛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세번째,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있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한 절차에 의해 규정된 제사를 합당한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드리는 가정이었습니다.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은 엘가나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엘가나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절기 준수 명령(출23:14-17)에 순종하여 함께 실로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는 엘가나의 온 가정이 하나님 말씀을 중히 여겼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가면 따라가고 말씀이 멈추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는 순종의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함께 신앙 생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중 어떤 한 사람이나 일부분만의 믿음이 전 가족의 구원을 약속받을 수 있게 하거나 전 가족의 신앙 생활을 대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온 식구가 믿음이 하나 되어 서로 아끼고 돌아보며, 주 안에서 사랑으로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하는 가정이 진정 모범적이며 복된 가정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일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여호와의 전, 곧 성전에 바치는데 남편과 아내가 뜻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하나님과 약속(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가정이었습니다.(삼상 1:23-28) 그러므로 그의 아들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라게 되었고, 그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성전 생활 속에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찌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익숙하게 배우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아버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아버지야말로 이 시대에 추구하고 따라야 할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상인 것입니다. 성경 중심적인 아버지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자신과 남을 이해하며 인정해주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게 되며,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진리의 터 위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중심의 아버지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이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모하며 모든 일을 하나님과 상의하는 자, 둘째 삶의 목적과 보람을 알고 있는 자, 셋째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 넷째 물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자, 다섯째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결정하는 자, 여섯째 자제할 줄 아는 자, 일곱째 스스로의 약점을 알아 겸손하고 약점을 피해 일할 줄 아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삶의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먼저 자녀들이 신앙을 가지도록 교육해야만 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자녀들에게 신앙을 넣어 주기 위해서는 말씀을 강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의 본을 보이라고 아버지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아버지들도 자녀들이 어릴 때에 말씀과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다져주어야만 합니다. (이동희 목사)

<쉼 터>

신의 가게

한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다름아닌 신(神)이었다.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여인이 묻자 신은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라고 대답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여인은 한참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다.여인이 말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행복과 지혜, 그리고 두려움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세요."신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부인,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이 가게에서는 열매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사랑의 힘>

모피코트

지난 겨울, 모처럼 아빠께서는 엄마에게 큰 선물을 하셨다. '유행처럼 남들 다 입는 옷이니 당신도 한 번 입어보구려'라는 말과 함께 화사해 보이는 모피코트를 사 주신 것이다. 올 겨울은 따뜻하게 지내겠다면서 좋아하시는 엄마는 거진 입을 다물줄 모르셨다. 모피코트를 입은 엄마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실감나기에 충분할 정도로 우아해 보이셨다. 평소 사치나 허영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엄마는 당신 돈으로 옷을 사시는 일이 거의 드물다. 가끔씩 큰 맘 먹고 지갑을 여시는 아빠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 외엔 줄줄이 딸려 있는 세 딸들 옷 사주느라 정작 엄마의 옷은 구경만 하다가 그치곤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부터인지 그 고운 모피코트를 몇 번 입으시곤 장농속에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이렇다. 일요일이면 우리집은 온 식구가 교회에 나가는데 그날엔 가까이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우리집에 들렀다가 함께 가시곤 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할머니의 낡은 녹색 코트에 비해 빛깔좋고 고급스러워보이는 엄마의 모피옷이 너무나 미안해서 못입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제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먼저 돌아오신 할머니와 엄마가 안방에서 무언가 하고 계셨다. 슬쩍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엄마의 모피코트를 입으신 할머니께서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돌아보시며 연신 싱글벙글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옆에는 엄마가 환한 얼굴로 할머니께 모피옷 관리법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고 계셨다. 거울앞에서 멋내기에 바쁘시던 할머니가 나를 보시더니 물으셨다. "주연아, 어떠니? 할머니 멋있니?"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럼요, 할머니 멋있어요. 꼭 귀부인 같아 보여요." 할머니께서는 내 대답에 만족하신 듯 크게 웃으셨다. 그날 저녁, 우리 세 딸들은 이래저래 식구들 생각하는 고운 맘 때문에 좋은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하는 우리 엄마에게 나중에 각각 한 벌씩 꼭 더 좋은 옷을 입혀드리기로 약속했다. 엄마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 나는 그 모피코트가 아깝지 않냐고 엄마께 살짝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주연아, 주는 기쁨도 이렇게나 좋은 것이란다."<"좋은생각" 4월호에서 심수아 발췌 >

<오월의 시>

귀가(歸家) 김소엽

노을 가득 등짐지고

돌아오는 가장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주부

식탁위에

노을 빛 사랑 풀어놓은

부부는 아름답거니

아이들 웃음

투명한 햇빛으로

유리잔에 넘치고

새들의 지저귐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거니

우리들 함께 살아있음에

감격하거니

살아서 함께 누리는 이 땅의 모든 것을

감사하노니

사랑하며 살기도 모자라는 세월

살과 뼈로 사랑하리라

어스름 찾아와

본향집 찾아갈 날도 머지않아

노을밟고 돌아와

우리도 언젠가

한 줌 노을빛 사랑 풀어놓고

영원한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을

<시작 묵상>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스승의 날이 다 들어 있고, 특별히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해놓고,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여러 가지 강연, 세미나 등의 행사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태어 났고 또 짝을 만나서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그 무엇으로도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소중한 부부의 사랑이 금 가는데서부터 가정이 파괴되고 청소년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는 다시금 사회문제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세워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부부간에는 가장 참된 이웃,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뼈중의 뼈 살중의 살로 사랑하는 데서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진정 풀과 같은 인생들이 잠시 잠깐 만남인데,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라는 세월이며,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라는 세상이 아닌가!!

<광야의 소리>

세계 제1위

우리 민족은 일찍이 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단일민족' 또는 '백의민족'이란 말을 민족의 대명사처럼 사용하여왔다. 그것은 민족주의의 차원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 즉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한 애틋한 애국정신의 발로였다. 그러나 지난달 현장탐방이라는 학과목 때문에 여러 종류의 아동복지회 가운데 '홀트 복지회'를 방문하고 많은 생각을 다시 하게되었다. '홀트 복지회'는 미아, 고아들을 보호하고, 장애아동들을 교육하며 입양 대상 아동들을 모아 국내외적으로 입양시켜주는 아동복지기관이다. 한 사회를 이상적으로 볼 때 이런 복지기관은 적을수록 좋은 사회, 건강한 사회가 되겠지만 아직도 우리의 현실을 바라볼 때 더 많이 있어야만 하는 아픈 현실이다. 더구나 20세기를 마감하는 즈음 한국의 시대변화에 따른 기현상(?)가운데 한가지는 '고아 수출 세계 제1위'라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홀트 복지회'는 지난 82년 수용인원이 수십명에 불과하던 것이 현재에는 약 32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때문에 그 시설과 재원이 부족하여 복지시설의 원활한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많은 아동이 입양대상이 되고 있는가? 여러가지 원인중에 압도적인 원인은 미혼모로 인한 아동이 약 53%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대의 성문화를 논하자면 또 한번 세계에 코리아(Korea)를 외칠 수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년간 1백50만명의 낙태문제 때문인데 이 문제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현실적인 입양실태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국내입양이 국외입양에 비해 수적으로 현격히 저조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이라는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고아 수출 세계 제1위'라는 오명을 써야하는가! 외국으로 입양된 우리의 피붙이들이 낯선 토양과 문화에 과연 얼마나 잘 적응하고 생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외국으로 입양된 자녀들의 탈선에 대한 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지난 겨울 미국으로 입양된 한 소녀가 그 가정 문화에 잘 적응치 못하여 자살한 사건은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또한 국내 입양 부모들의 여러 입양 동기 중 "대(代)를 잇기위해서"라고 대답한 부모가 약26%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모들은 입양사실을 아이에게 거의 은폐하게 된다. 이제 한 생명의 존엄성을 내 자녀같이 내 생명같이 생각해야 할 때다. 민족의 정체성(혼)은 나의 가계를 잇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볼 때 한민족의 정신세계에 면면히 흐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정윤길, 감리교 신학 대학원 재학)

<삶의 지혜>

세상을 변화시키자(?)

많은 사람들이 좀더 나은 생활, 세상을 바라면서 살아간다. 주변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세상이 변하길 기대하면서 살기 보다는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서 변화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뭔가가 달라보일 것이다. 세상이 당신의 변화를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많은 변화를 바라기 보다는 작은 자신의 변화를 일으키길 바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은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김정희)

<병동 일지>

새롭게 하소서

♪♪주님 한 분 밖에는 아는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살기 싫어요∼♪♩ 이 찬양처럼 난 행복하다. 주님을 믿음으로 얻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조건뿐만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채워져 있는 것들이 나를 만족하게 한다. 물론 보통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여길지 모르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4월 5일이면 만 7개월이 되는 우리 아가 가영이…… 가영이의 까르르 웃는 얼굴을 볼때면 이 행복은 최상을 이룬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못난이, 바보, 고집장이, 교만덩어리인 나를 너무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해 3월 13일을 통해 알았다. 교통사고란 것, 남들한테는 많이도 일어나지만 난 한 번도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이 문명의 이기에 난 꼼짝없이 당했다. 지금에 생각해 보면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을…… 간사하고 교만한 내 영혼의 구원의 길은 포크레인이라는 중장비를 출동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하나님 심정을 난 잘 알고 있다. 비몽사몽간에 겪은 고통의 골짜기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골짜기에서 발견한 생명의 꽃이 그 고통을 망각하기에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몹시 상한 육신에 주님은 아주 깨끗하고 영롱한 영혼의 부활을 안겨주셨다. 병상에서도 이상스럽게 맘속엔 잔잔히 흐르는 평강이 항상 자리했다. 몇날 며칠의 병원 생활에서도 짜증스럽거나 의기소침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퇴원후 외래물리치료중에도 내 얼굴엔 항상 기쁨이 떠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저 기쁘고 행복했다. 특별히 주위의 환경들이 나를 행복하게 할만한 것도 없었는데 난 그저 좋았다. 행복한 바보처럼.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나를 우울과 절망을 가장한 기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나 주님의 사랑에 푹 빠졌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나태해진 신앙의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된다. 말씀을 듣고 오는 날에는 기숙사 침대에서 스탠드를 밝히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 주안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이 가슴 시리도록 행복해서 서투른 그렇지만 진실한 시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마치 첫 사랑. 애틋한 첫 사랑의 기억처럼 그렇게 난 온몸으로 주님의 사랑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이 질그릇에도 보화가 담겨져 있음을 감사하며 기뻐했던 날들이었다. 내 의지. 내 생각. 내 감정. 나의 모든 것이 오직 주님께 붙잡힌 바된 그때부터 난 주님의 사랑이었고 주님은 나의 사랑이었다. 중한 몸 되어 누웠던 몸을 주님은 일년을 기약으로 차츰 일으키시고, 걷게 하시고, 뛰게도 하시고 등산까지 하게 하셨다. 다시 일을 하게 하시고 드디어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도 하셨다. 뒤돌아 보면 놀라운 일이다. 주의 하는 일이 오묘하고 놀랍지 않은 것이 있을까. '못난 나에게서 순간순간 기적을 일으키신 주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하고, 가영이 아빠를 주심도 감사하고, 가영이를 보내주심도 감사하고, 믿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하고, 친정에도 복음을 심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결과적으로 91년 3월 13일이 있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인공신장실에 근무하게 하신 것 또한 감사할 조건이다. 신장기능의 상실로 한 방울의 소변도 배출하지 못하는 그래서 인공적인 방법으로 노폐물을 제거해야 하는 우리 환자들과 같이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린다. 이들을 보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었어야 했던 나를 향한 주님의, 주님을 향한 나의 첫사랑의 그때를 기억하게 하시고 이들의 절망과 체념속에서 신앙의 소망을 가지게 하심도 감사한다. 단 한가지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이들에게 해야 할 사명을 확실히 구체적으로 깨달아 알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나의 아픔과 절망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위로하던 주님의 아들, 딸처럼 저도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은 더욱 새롭게 하시고 주께서 허락하신 일터에서 주의 사랑의 씨앗을 뿌리게 하소서…….' (해성병원 인공신장실 곽순이)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 1>

깨끗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서, 교회에는 5월을 가정의 달로, 또 국가에서도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고 있다.5월에 접어들면서 효도에 대한 글들을 많이 보게 된다. 성경에서도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까지에 보면,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분명히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함으로 효도할 것을 가르친다.분명히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는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이고, 깨끗한 가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인 에베소서 6장 4절은 아름다운 가정에서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효도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태도도 언급하고 있다.자녀들은 위로 부모님을 사랑해야 하고, 부모는 아래로 자녀를 구체적으로 사랑할 것을 가르쳐 준다. 이 말씀은 오늘날 부모에 대한 효도만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녀들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특히 우리 아버지들의 태도를 지적한다.이 글의 독자층이 아무래도 어린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글보다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함에 있어서, 특히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으로 뽑아 본다.한국에 와서 많이 보는 볼상스러운 일들 가운데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자녀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의미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할 때, 전혀 생각 없이 자녀들을 대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로 살펴보자.첫째가 자녀들에게 대한 꾸지람을 할 경우의 용어들이다. 자기집 자녀를 나무라는데, 집 밖으로 흘러나오는 용어들을 보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많다. 도대체 자기 자녀에게 하는 말인지, 훈련인지, 꾸지람인지, 가정교육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분간이 안될 때가 많다.특히 부모가 술이라도 마신 날이거나, 부부간에 싸움을 한 날이면, 더욱 심해짐을 본다. "이 우라질 놈아! 나가 되질 놈아!... " 도저히 여기에 실을 수 없는 험한 말과 욕들이 거침없이 나오게 되는 것을 듣게 된다. 제일 흔한 욕으로는, "이 망할 놈아!"이다. 이런 용어는 교육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고, 꾸지람도 아니고, 저주이다. 자기 자식이 "나가서 망하라"는 말은 저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욕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물으면, "주제넘게, 남의 집안 일에 끼어든다"고 되려 욕만 들을 뿐이다. 자녀들의 실수를 꾸짖어야 할 경우에도 교육적인 입장에서, 아이를 노엽게 하지 않고, 부모를 존경하도록 하면서, 기쁨으로 부모의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욕은 빼고, 자녀가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를 주거나, 이번 실수를 살펴서 다음에는 조심하라고 할 수도 있고, 다른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 부모님에 대한 자녀의 존경을 이끌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실수와 실패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집을 보고 있으라고 부탁하고 나들이한 사이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거나, 벽에다 잔뜩 낙서를 해 놓았으면, "오늘은 실컷 놀았구나, 이제는 청소하자"고 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양육이나 훈련이 가능하고, 그림을 잔뜩 그려 놓았으면, "앞으로 훌륭한 화가가 되겠네, 그런데 그림은 방바닥이나 벽에 그리는 것이 아니고, 도화지에 그려야지!"라고 하며, 방향 제시와 격려와 훈련이 함께 이루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부모는 생각해서 자녀들을 꾸짖고, 훈련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주는 흔한 모습은, 부모님들이 어린이들 앞에서 사용하는 타인에 대한 호칭 문제와 선생님들에 대한 태도이다. 부모님들은 생각 없이 자녀들 앞에서 학교의 선생님이나 교회의 선생님들을 "아무개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님"자는 빼고, 아무개선생, 아무개집사, 아무개장로라고 부르는 경우를 보게된다. 부모님도 부치지 않는 "님"자를 자녀들이 부르겠는가? 4월 둘째 주간에 서울판 동아일보 신문에 보면, 초등학교의 선생님들과 학부형간에 오고가는 촌지에 대한 글이 실렸다. 한국 전체 교사들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 글에 의하며,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 선생님들이 특히 1학년 1학기에 촌지를 은근히 강요하고, 심한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현금이나 물건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고 한다. 그리고 학부형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촌지를 드리는데, 나만 안 주면, 우리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그렇게 촌지주는 학부형을 욕했던 젊은 엄마들까지도 촌지대열에 참여한다는 기사였다. 촌지를 준 학부형들이 자녀들 앞에서 "너네 선생이 뭐라고 하던?"이라고 물어보면, "우리 선생"이라고 맞받아 대답하는 사회, 부모님들이 선생님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와 언어에서 자녀들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키울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촌지는 미국에서도 망신으로 나타난다. 필자가 시카고에 있을 때, 필자의 자녀가 다니던, 시카고 한인타운에 있는, 히바드(Hibbard) 초등학교에서의 일이다. 그 학교에는 한국어린이가 많아서, 한국인 교사를 이중언어교사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갖 이민 온 학부형이 미국인 선생님에게 촌지로 미화 100불을 전했다가, 그 미국인 교사가 교장에게 보고하고, 끝내는 전체 한국인 학생과 학부형이 학교에 불려가는 큰 소동이 벌어졌었다. 그 후로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학교제도와 선생님께 감사표시하는 방법 등이 시카고 한인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었다. 자녀가 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기 원한다면-좋은 성적만을 원하지 않고-부모님은 집에서부터 선생님에 대한 호칭과 태도가 바뀌어야한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교회학교 선생님이 어리다고 해도 자녀들 앞에서는 늘 "선생님"이라고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흔히 보게 되는 볼상스러운 일들 중에서, 셋째가 부모님들의 술담배에 대한 태도이다. 제일 한심스러운 것이 자녀들에게 술심부름, 담배심부름 시키는 부모들이다. 최근에 학생들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설치된 담배 자판기를 철거시킨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어린이들과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담배 자판기가 상당히 많이 있다. 또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술심부름, 담배심부름을 전혀 생각 없이 시키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되니 자녀들도 자기 술담배를 사면서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술담배를 사가는 거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술담배심부름 안시키기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할 판이다. 왜 부모님들은 생각없이 자녀들에게 술담배심부름을 시키는 것일까? 필자는 부모님들이 생각없이 심부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더우기 자녀들-아주 어린아이들을 차에 태워 가면서, 창문도 닫은 상태에서 차안에 연기가 가득하도록 담배를 피우고 가는 아버지들이 많다. 담배 피워 암이라도 걸리려면 혼자나 걸리지 사랑한다는 자녀들에게 담배 연기를 마시도록 하는 건 무슨 처사인가? 독자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는 집안에서, 차안에서 어린이가 있는데도 생각 없이 담배피우는 부모님은 없습니까? 술담배는 부모님들 자신들에게도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에게는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다.우리는 자녀를 사랑한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자녀를 생각한다. 자녀에게 치명적인데도 자녀를 생각한다고 하면서-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러 일들을 생각 없이-사랑없이 행할 것인가?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은 사랑이고 사랑은 사람이다. 역으로 말하면 사람은 사랑이고 사랑은 생각이다. 이것은 파스칼이 말한 "사람은 생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갈대가 되어야 한다.그래서 필자는 교회에서는 사회단체에서 실시하는 교사 훈련이나 청소년 임원 훈련을 하면서, 교사 훈련이나 임원단 훈련보다 부모훈련이 더 시급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부모님들은 좀 더 생각하는 부모님이 -사랑한다고 하면-되어야 한다.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필자가 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면서 겪은 경험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먼저 지난달 우리가 겪었던 선거전이나, 한국 정치에서는 가정 문제가 정치로 이슈화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선거전부터 가정 문제가 선거공약으로 거론되고, 또 가정생활이 부도덕하거나 불성실한 것이 예선전부터 점검되어 아예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따로 가정따로의 이중체계가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깨끗한 사람이 정치에서도 깨끗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미국을 가리켜서, 어린이 천국, 동물 천국, 노인 천국, 장애인 천국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약한 자를 위한 사회제도에 법치 제도,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 습관이 잘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 중에서도 가정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어린이와 여자에 대한 문제이다.한국에서는 아직도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 등이 엄하게 다스려지지 않지만, 가정 파괴범이라 할 수 있는 성폭행 등에 대해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하게 다루고 있다. 여자들이 가정에서 폭행을 당했을 경우에는 여자들이 가서 상담받고 쉴 수 있는 "안식처(shelter)"라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는 학대받는 여자들이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고 필요하면 법적인 도움까지 제공한다.또 어린이들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잘 되어 있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식으로 양육하거나 훈련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을 집에 놔두고 일을 나간다거나, 어린아이들만을 차안에 두고 가게에 들어가서 장을 보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아이들이 아동보호소에 보내지고, 한국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찾아오기 위해서, 변호사까지 동원하는 경우를 필자의 주변에서 자주 보았다. 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어린이 학대를 감시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사는 아이가 가정에서 맞은 흔적이라도 있거나, 맞은 상처가 있으면, 경찰에 고발하고, 병원에서도 단순한 사고라 할지라도 가정에서 학대받은 결과로 일어난 사고인지 아닌지, 아동을 유도해 알아내서 보고한다.물론 이 모든 제도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필요는 없으나, 배울 점이 많다는 것과 깨끗한 가정을 지켜 나가겠다는 그들의 의지와 자세는 우리가 배워야 한다.깨끗한 가정은 부모님의 깨끗한 언어에서, 깨끗한 인간관계에서, 깨끗한 자녀 교육 관계에서, 깨끗한 생활 태도에서 이루어진다.(이영운목사, 교육학 박사)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 2>

배움의 자세

토벌을 위해 출발할 때는 봄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풍경이 전혀 달라져 도무지 길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당황해 하는데, 그 중에 지혜로운 관중과 습붕이 함께 있었다. 관중이,"이럴 때는 늙은 말에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처방을 내려 시험삼아 늙은 말을 풀어 주고, 모두 그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그러나 곧이어 산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먹을 물이 없어서 모두 목이 말라 허덕이게 되었다. 이때 습붕이,"원래 개미는 겨울에는 산의 남쪽에서 살고, 여름에는 산의 북쪽에서 사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미집 아래를 여덟 자만 파면 거기에 반드시 물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번 산기슭 남쪽으로 돌아가, 개미집을 찾아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의했다. 모두 이에 따라 개미집을 찾아 파 보았더니 과연 물을 구할 수가 있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중국 제(薺)나라의 환공(桓公; 재위 BC 685∼BC 643 중국 춘추시대 군주)이 고죽국(孤竹國)을 토벌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비자(韓非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관중이나 습붕 같은 지혜로운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말이나 개미를 스승으로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지헤를 스승으로 받들 줄을 모르니,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자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배울만하다고 생각되면, 상대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설사 사람이 아닌 미물에게라도 배울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이야기입니다.첫째, 우리는 여기에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명령, 곧 가르침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합니다(출애굽기 16∼17장). 이 가르침은 관중과 습붕이 말이나 개미같은 하찮은 미물에게서도 지혜를 얻은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둘째로 학생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며,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가르침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등 현대의 우리들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우매함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은 관중과 습붕이 자기가 배울만하다면 상대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문제삼지 않은 것처럼 모든이에게서 학술적 지식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있는 겸손한 배움의 자세를 갖기만 하면 되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이제 스승의 날(5.15)을 맞이하여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선생님·부모님 혹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돌아보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깨끗한 삶,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갑시다. (이 향섭)

<건강상식>

비행청소년과 잘못된 식사

요즘 비행청소년과 학원폭력 문제로 학교, 가정, 사회모두가 적잖게 고심하고 있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듯이 비행청소년과 학원문제의 원인도 다양하게 분석되어지고 있다. 그중 한 가지의 원인을 들자면, 잘못된 식사습관이다. 식사와 인격 형성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 내 폭력이나 가정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소년 소녀의 식생활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채소를 거의 안 먹고 육류를 좋아하며, 극단적인 편식, 스낵 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 가공 식품, 청량음료수의 과잉섭취가 그것이다. 또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패스트푸드점에 자주 드나들거나 편의점에 가서 군것질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같은 식사를 계속 하노라면 칼로리는 충분히 채울지 몰라도 심신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 특히 걱정스러운 것이 비타민 B군의 부족이다. 과잉 섭취한 칼로리를 연소시키기 위해서는 비타민 B군이 필요한데, 음식에서 이것들을 섭취하지 못할 경우에는 체내의 간장, 비장(지라), 심장같은 스트레스와 매우 관련이 많은 장기에 비축되어 있는 비타민 B군이 빼앗겨 버린다. 그 결과로 남에게서 조금만 욕을 얻어먹거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서 꾸중을 조금만 들어도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폭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에는 현미보다 3배나 많은 비타민 B1이 들어 있다. 따라서 돼지고기만 많이 먹으면 비타민 B1이 모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육식을 많이 하면 뇌 속의 세균은 대장균 같은 나쁜 세균에게 짓눌려 버리고, 식품속에 들어 있던 비타민 B1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다.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현미나 콩류, 채소류를 많이 그리고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장내를 청소하기 위하여 비피더스균이 함유되어 있는 요구르트나 염분이 적게 든 김치나 깍두기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 비타민만이 아니라 미네랄도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것만 먹어서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같은 식사를 오래 할수록 몸안의 소량 미네랄의 균형이 깨진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우리의 밥상을 보면 색깔이나 맛을 위주로 너무 익히고 튀기고 굽고 졸이는 말랑말랑한 음식만 찾다보니 우리 몸의 장기들이 나약해져 버렸다. 태초에 사람들이 채소를 먹고 열매를 따먹고 살던 시대에는 질병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된장국과 김치 깍두기 대신에 가공된 식품, 스프나 햄버거나 콜라, 크림 등을 소년 소녀들이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조차 성인병의 증세를 띤 경우가 너무 많이 눈에 뜨인다. 음식이 바뀌면 체질이 바뀌고, 체질이 바뀌면 인성이 바뀐다. 청소년의 인간성이 자꾸만 난폭해지는 것을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만 몰아 붙여선 안 된다. 그러기에 앞서 잘못 길들여진 식사습관을 바로 잡아 주어야겠다. 가정의 달 오월을 맞아 내 자녀들의 식사습관은 어떠한지 한 번쯤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체크해 봄이 현명하지 않을까?-- <우석>의 '비타민 C의 충격' 참고 ---

<문화 엿 보기>

우리를 병들게 하는 세속 문화 8

김 문 택

서울음대 졸

전)두란노 경배와 찬양 전임사역자

찬양 작곡, 편곡자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 복잡하고 온갖 공해에 찌든 현대인들이 얼핏 듣다보면 생소하지만 생소하지 않은 이 단어가 어느새 우리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잘 느끼지 못하게, 마치 가랑비에 옷젖는 식으로 우리들의 곁에 가까이 아니, 우리 속에 자리잡고 주객(主客)을 자리바꿈하려 하고 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오다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시는 분들을 위해 "뉴 에이지 운동"의 실체에 관해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뉴 에이지 운동"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 사상을 배척하고 '모든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는 동양 종교와 동방의 신비주의를 혼합하여 기독교에 역행하는 모든 요소를 수용하는 반 기독교적 운동인 것이다. 현대가 복잡해지며 세분화되면서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항상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틈을 이용해 사탄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하며, 반기독교적인 의식 뿐만이 아니라 환각을 갖게 하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그 전략 중 첫째는 음악이다. 음악은 사람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각기 다르며 그동안 세상의 음악이 전기, 전자악기의 발달로 시끄러운 '록 음악(Rock Music)'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록 음악'에 실증을 느낀 사람들, 혹은 그것을 싫어하는 현대인들 틈새로 '록 음악'과는 반대되는 새로운 음악형태인 조용하고 복잡하지 않고 가만히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용하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이 문제란 것인가? 지금까지 이 코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세상 음악속에 숨어있는 사탄의 음모와 그 폐해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줄 안다. "가사내용의 문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려는 차폐효과(Backword Masking 가사를 거꾸로 녹음하여 녹음기를 주행하는 상태에서는 가사의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제작하는 기법), 음색과 템포, 소리의 크기, 조명..."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음모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불순한 음모를 사탄은 음악의 형태를 변화시켜 즉, 조용하고 시끄럽지 않게 만들어 그 음악속에 그대로 집어 넣어 다시 포장하여 현대인 앞에 내어 놓고 있다. 이것이 뉴 에이지 음악(New Age Music)인데 뉴 에이지 음악의 특징은 대부분의 것이 조용하고, 명상적이며 부드럽고 감미롭다는 것이다. 뉴 에이지 음악이 사용하는 음악의 장르는 다양한데 째즈풍, 발라드록풍, 클레식풍... 등 여러 가지 장르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복잡하고 쉴새없이 경쟁하며 긴장하는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도구가 되는데 사탄은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하루종일 긴장속에서 지내던 사람이 긴장을 풀고 뉴 에이지 음악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정신적 상황뿐 아니라 영적인 상태까지 공격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더 위험한 것은 '뉴 에이지 음악'은 단순히 조용하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으로 유인한 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의지를 놓게 만든 후 무아의 지경으로 자동으로 명상을 유도하게 되는데 이 명상이란 것이 말이 좋아 명상이지 결국은 하나님 없는 명상으로 유도하여 내가 바로 신이라고 착각하는 영적인 환각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 이러한 명상의 효과(?)내지 벌어질 일들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뉴 에이지 음악'을 들었을 때 처음 얼마간은 평안한 마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하고 변함없는 평안함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어 낸 평안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평안한 마음은 공허하게 되고 무기력증과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뉴 에이지 음악에 의해 무를대로 물러진 사람들은 사탄에게는 참으로 손쉽고 좋은 먹이감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뉴 에이지 음악은 단지 그 음악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드는 작곡자, 편곡자, 연주자들이 뉴 에이지의 핵심 교리(지난 호에서 언급한 범신론, 윤회론, 상대론, 밀교주의)와 뉴 에이지의 기본노선-1) 'All is one(모두가 하나)' 2) 'We are all one(우리 모두가 하나)' 3) 'All is God(모든 것이 신)' 4) 'We are all God(우리가 모두 신)'-의 사상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뉴 에이지 사상"을 감염시키는 전염자로서 또한 도구로서의 심각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불손하고 사탄적인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음악이 지금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으며 그것들에 의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젖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해야 할 정도로 뉴 에이지의 손길이 우리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해서 뉴 에이지의 정체에 대해 파헤쳐 보자.

<예술 한 토막>

지상에 하나뿐인 가족

프랑소와즈 말레 조리스의 자전적 가족 소설 {지상에 하나뿐인 가족}은 스쳐 가는 삶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지혜와 깨달음, 잔잔한 재미들을 작가 자신과 가족들의 진솔한 얘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나'는 작가며, 또한 화가인 남편의 아내이자 네 아이의 엄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다 그리고 가끔 스쳐 가는 사람들, 이를테면 집에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 일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삶에 대해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는 특별하다. 특히 아이들과의 대화 시간인 '시적(詩的) 저녁'은 끊임없는 아이들의 질문, 놀랍고 우스운 상상력과 재치들을 주고받는 시간이다. 오늘의 우리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에 새로운 반성을 일으키고 도전과 용기를 줄 것이다. 여기 간단히 그녀의 가족을 소개한다. 남편인 작크는 수도꼭지를 한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바자회에 가지만 아내와의 저녁 식사비로 수도꼭지 값의 열 배도 아깝지 않게 낭비(?)하는 집안의 넉넉한 가장이다. 장남인 다니엘은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작문 숙제에,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내 부모님의 결혼'이라고 써냈던 어른스러운 젊은이다.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이며 속수무책인 젊은 부모와 함께 지낸 첫 아이로 각자의 문제는 스스로 해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차남인 뱅상은 평소에 거리에 붙은 스타킹 선전의 엉덩이 큰 모델을 보아도 관심도 없는 아이이지만 현학적이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다. 큰딸 알베르토는 자기 생각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자의식이 강한 소녀이지만 열정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하다. 끝없는 질문에 대답을 찾느라 고심하는 엄마에게 "엄마가 설명하기에는 복잡하지?"라고 이해해 버리는 당찬 열 한 살 소녀다.막내딸 폴린느. 모든 일에 참견하지만 곧 잊어버리고, 성교육을 설명하려고 꽃과 나비 이야기를 하려는 엄마에게 되려 자신이 시골 농장에서 송아지가 생기는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아이이다. 어른들을 화해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가정부 아줌마와 카페에서 대화가 될 정도로 조숙한 아홉 살짜리 꼬마 숙녀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엄마는 쏟아지는 광고 홍수 속에서 아이들을 격리시켜 키우는 것은 장래 사회에 적응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대 문명을 마구 비판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찾도록 유도하는 어머니이다. 어지러진 집안이 자신의 삶의 빛을 바래게 하지만 그래도 가정을 잘 꾸리는 것은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주부다. 이주일 마다 열리는 '시적(詩的) 저녁'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초 하나로 대화의 장을 여는 지혜를 발휘하는 어머니다. 또한 외출 한 후에 돌아왔다가 자신의 집 화장실을 공공 화장실처럼 당당하게 사용하고 나와 "부인,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남자를 보아도 자신의 잃어버린 웃음을 찾게 해준 천사라고 생각하는 여유가 있는 가정주부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들의 가정이 언제부터인가 질서와 예의가 무너져 버렸다. 아무도 그것을 다시 찾아 줄 수는 없다. 우리 각자의 반성과 새로운 시도 이외에는…… 여기는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어머니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프랑스의 평범하지만 지금은 평범하지 않게 되어 버린 가정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회를 이루는 작은 사회인 가정을 세워 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혜섭)

어머니의 사랑

한 청년이 사랑에 빠졌다. 그런데 상대가 된 처녀는 아름답기는 해도 아주 표독스럽고 잔인한 취미가 있는 여자였다. 처녀는 청년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그 증거로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사랑에 눈이 먼 청년은 망설이긴 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서 심장을 빼앗았다. 그는 심장을 가지고 자기가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달려가다가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심장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굴러가면서 어머니의 심장은 말했다. "얘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느냐?"

<빛과 소금>

모스코바에서 온 편지

러시아 속담에 3월이 되면 '바지 일곱 개를 입어라'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꽃샘 추위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며칠동안 화창하게 쏟아지던 태양은 마치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러시아에서는 이대로 곧바로 여름이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3월 31일부터 시작되는 눈보라와 추위는 이 속담을 말해 주듯 다시 두꺼운 옷과 모자와 장갑까지 끼어야 하는 추위로 며칠을 계속 보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이 나라 특유의 전통적 무늬와 형태를 가진 인형이 있습니다. 통나무로 판 큰 인형 속에 작은 인형이 15개정도 까지 들어가 있는 마치 양파껍질을 연상하면 되는 듯한 것입니다. 러시아식 이름은 '마르료쉬까'라고 합니다. 러시아에 오시면 누구나 사 가지고 가는 전통 공예품입니다. 그런데 이 인형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을 가리켜서 마르료쉬까 라고 합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아마도 날씨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도 살아도 정이 안가는 나라지만 떠나보면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러시아를 하루 동안 본다면 일주일 얘기거리가 있고, 일주일을 본다면 한달 얘기거리가 있고, 한달을 본다면 1년 얘기거리가 있고, 1년을 산다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나라이기도 하답니다. 윤리와 도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에 와서 겪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떠나고 싶어 하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곳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곤 한답니다. 즉 어느새 정이 들었다는 얘깁니다. 이러한 나라에 들어 온지도 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월만 허송했다는 반성과 함께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는 불충한 일이고 나를 믿고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 죄송할 뿐 내가 해 놓은 일이 없는 상태에서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특히 감기로 한 달 이상 아무 활동도 할 수 없으니 더욱 죄송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년의 세월 속에서 일일이 간섭하시고 챙기시고 주관하셨던 생활이었습니다. 깊은 우물 속에 나혼자 놓아두고 위만 쳐다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두려워 말고 당신만 믿으라고 강요하시는 세월이었습니다. 때로는 두렵고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나를 위한 사랑의 섭리였음을 고백하면서 감사와 함께 찬양을 드립니다.

정직과 성실로 식물을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

삭게오가 고백했던 4배를 갚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우편의 강도까지도 그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하나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터져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있었기에 어떠한 환경도 어떠한 일에도 일체의 원망이나 거짓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15년의 연단 끝에 얻어지는 보석과 같은 형통의 삶으로 이어지는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고백합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고 연약하고 힘이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이지만, 이 모습 이대로 이름 없는 봉사 속에 참된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됨을 감사하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봉사하여 내 손에 주어진 미용의 달란트로 인해 어려운 이곳 사람들에게 무료로 봉사하며, 잠시나마 기쁨을 줄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것만을 이들이 알아주고 또한 이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를 배울 수 있고 주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달아서 내가 믿는 주님을 이들이 믿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면, 몇 시간씩 서서 봉사하는 피로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기대 하면서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렵니다.내것이라고 움켜쥐는 삶이 복된 삶이 아니고 손을 펴서 나누는 삶이 복된 삶이기에 실천하면서 살게 해달라고 많은 분들의 기도를 요청합니다.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복음송의 가사처럼 지금은 욕심 많고 나눔이 적다해도 언젠가는 실천하여 나의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끝까지 기도하렵니다.보잘것 없는 여자이기에 큰 일은 할 수 없지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고자 오늘도 노력합니다. 많은 분들의 비난도 멸시도 낮아지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 분들을 위해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선교사가 돈버는 일 한다는 비난의 말들을 들으면서 감사 할 수 있는 것은 내 손으로 노력해서 적은 것이지만 보람있게 쓰임 받을 때의 그 기쁨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길이기에 비난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드립니다.그리스도 일꾼의 지체 중에서 가장 낮은 자리의 봉사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사명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섭리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즐겁답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언제나 봐도 즐겁게 보인다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내 속에 철이 안 들어서 그런다고 답변하지만 내 속에는 평안을 주시는 주님이 계신 것을 그분들은 아신 답니다. (이후덕 선교사)

<독자의 편지1>

-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목사님께-

그렇게 추웠던 겨울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자연스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