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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자의 마음---

anii33.gif  보시고자 하는 제목을 누르시면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차   례

1.모든 믿는 자의 본이되라(1장)
2.예수 앞에 우리가 무엇이냐?(2장)
3.목자의 마음(3장)
4.항상 주와 함께(4장)
5.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뜻(5장)

   1.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라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 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데살로가전서 1:1-10)
 
요즈음 남자들이 수다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수다스런 남자들의 토크쇼인 <이홍렬쇼>의 "유부클럽"을 보면 유부남 4명이 모여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등 예전 남자들이라면 쉽게 꺼내기 어려운 민망스럽고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모조리 들춰내 수다를 떠는 모습이 여성들의 수다 수준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TV에서 환영받고 사랑받는 남성 수다쟁이들 가운데 그 대표는 <순풍산부인과>의 박영규라고 합니다. 그는 식탁에서든 침대위에서든 쉴새없이 아내와 떠드는 것이 그의 취미입니다. 이들 '수다맨'에게서 남성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즈음 TV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브라운관을 주름잡던 남성중심적인 인물보다는 좀더 여성들의 구미에 맞는 남성, 여성들의 심리에 가까운 남성, 최소한 여성들의 대화를 이해해 줄 것 같은 남성들을 앞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TV광고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가수 조성모가 두 손을 모아 쥔 수줍은 여고생 자세로 재킷사진을 찍은 광고가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상은 한마디로 '수다맨'이라고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결과는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과묵한 남편과 사는 여성이 경험으로 쓴 <수다 떠는 남자가 좋은 7가지 이유>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경상도 남자'와 십년쯤 살다보면 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알게 된다. 회자되는 농담 중에 경상도 남자가 집에 와서 한다는 세 마디가 있지 않은가. "아는 자나?" "밥 도." "자자." 정말이다. 실제로 그런 남자와 살아봐서 아는데, 그건 농담이 아니고 사실 생활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두 마디 정도 더하는 날도 있다. "관리비 냈나?"와 "피곤하다."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별 수 없는 일이지만 결혼을 앞두고 남자가 말을 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묵언을 맹세한 수도승이 아닌 다음에야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고통 또한 예사롭게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수다스러운 남자가 좋다. 첫 번째 이유, 함께 영화 보기가 즐겁다. 슬픈 멜로영화를 보고 나와서 "꼭 여자가 죽어야만 했을까?" 눈물을 찍어 가며 동의를 구하는데, "감독 맘이지, 뭐." '그래 감독 마음이지. 여자가 죽건 남자가 죽건, 혹은 둘 다 살건 감독 마음이다. 그러면 영화는 왜 보니?' 감동은 천리만리 날아가고 쇠심줄 신경을 가진 남자에 대한 짜증만 남는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과묵한 남자랑 영화 보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수다스러운 남자와는 얘기가 다르다. 다른 상황까지 설정해 맘껏 떠들어 대며 수편의 영화를 찍어댈 수가 있으니까. 두 번째 이유, 밥 먹기도 즐겁다. 식탁에서의 화기애애한 대화는 건강에도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밥 먹을 때 마치 제상을 앞둔 사람들 같다. 사실 내 남편도 그렇다. 적막 속에서 밥을 먹다가 고요히 일어나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반면 수다스러운 나는 애 얘기나 친구, 혹은 그날 있었던 일들을 주절거린다. 그것도 일이년이지. 혼자 쇼하는 것 같아서 싫다. 역시 수다 잘 떠는 남자와 밥 먹어야 밥맛도 좋다. 세 번째 이유, 산책하기도 좋다. 정말 두말할 것도 없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청춘 남녀라면 모를까, 산책이랍시고 아무리 꽃길을 걸으면 뭐해? 속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라일락인지 철쭉인지 초월한 표정을 띠고 담배나 물고 있는 남자랑 무슨 산책? 친구 중에 서울에 살다가 일산으로 이사간 이가 있다. 이 친구는 서울과 달리 일산에는 공원도 많고 공기도 맑으니 매일 저녁 산책을 해야겠다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사한 뒤 산책은 잘 하냐고 물었더니 웬걸, 집에서 TV나 보고 있는 게 나을걸 괜히 산책 나섰다가 대판 싸우고 들어 온 게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투덜대는 것이다. 역시 산책도 아무랑 하는 게 아니다. 네 번째 이유, 수다스러운 남자와 하는 여행은 즐겁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함께 나누어야 제 맛이다. 뭘 봐도 감흥이 없는 사람과 어디를 가야 즐거울까? 뭘 입고 가면 뽐날까? 가서 뭘 먹으면 행복할까? 종알거리는 남자와의 여행은 출발 전부터 기쁨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결혼 십주년 기념으로 벼르고 별러 외국 여행을 갔다온 한 친구의 푸념을 빌려보면 다음과 같다. "둘만 있으니까 할말도 하나 없고. 심심해서 혼났어." .....》
'수다'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쓸데없이 말 수가 많음'을 뜻합니다. 수다스럽다는 말이 많고 수선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교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말이 많으면 쓰나.' '말 많은 남자는 가벼운 남자.'  등 수다에 대한 부정적으로 사용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멋진 남자는 과묵한 남자였습니다. 말이 적은 남자는 의리있고 믿음직한 남자의 상징으로도 통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과묵한 남자를 본보기로 삼아온 30∼40대 말수 적었던 중년의 남자들도 예전과 달리 수다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학자 김혜련 박사(42·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연구원)는 "수다에는 쓸데없는 지껄임이라는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풍부한 감정교류란 긍정적인 면도 있다."면서 "남성들이 수다스러워지고 있는 것은 부정·긍정적 차원을 떠나 양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서울시립대 이병혁 교수는 "남성들이 수다를 즐기는 속도와 가부장적 질서가 해체되는 속도가 비례할 것"이라면서 수다스러움을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해체와 연관시켜 설명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말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으니라."(잠언10:19)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야고보서 3:2-6)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태복음5:3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말에 있어 진실하며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맞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수다스러워지고 있는 것이 부정·긍정적 차원을 떠나 양성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현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해도 본 받을 만한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인기나 재미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삶을 세 가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이었습니다. 본받을 만한 이들의 생활은 각처에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소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엄청난 박해와 그 박해를 더욱 힘들게 하는 사이비 종말론의 유혹이 있었지만 믿음을 지키며 서로 기쁨을 나누며 지속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므로 이들이 아름답고 향기나는 신앙생활로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로 교회 규모나 시설 등 교세 확장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더욱 더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신앙생활의 첩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지난 날 섬겼던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데서 시작됩니다. 믿음의 역사란 이제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로 결심을 했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지난날의 모든 생활을 회개하고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결코 산 믿음이 될 수 없고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을 가졌노라면서 '주여, 주여'를 부르짖는다고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이 있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불법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결국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인생은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게 될 때 그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1-27)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아니한 믿음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고통스러워한다고 예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며 주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역사를 고백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백부장의 이같은 믿음을 이스라엘 백성 중 아무에게서도 만나보지 못했노라 칭찬하시며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한 마디가 떨어지자 그 시각으로 백부장의 하인은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5-13)
백부장처럼 예수의 말씀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여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역사를 생활속에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배에 타고 있었지만 배가 풍랑을 만나 위태로워지자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며 예수 믿는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면서 믿음이 적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태복음 8:23-27)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인생의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어떠한 풍랑과 격랑을 만난다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믿고 하늘의 평강이 여러분 마음에 충만하시므로 믿음의 역사를 보여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두 번째 생활은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사랑의 수고란 사랑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나가 교회 성도들은 험악한 박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데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는 신앙생활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데는 쓰고 남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희생할 때 사랑의 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없는 자를 구제하는데 먹고 남는 것으로 하지 말고 하루 세끼 먹을 것 두끼만 먹고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소외되고 갇힌 자를 위로하는데 남는 시간에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희생하므로 하라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데 시간과 물질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돌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 내어 주는 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에 보면 "고통이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희생과 수고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가올 십자가의 쓴 잔을 눈 앞에 놓고 고민하고 슬퍼하셨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신 주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형장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리고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고 아낌없이 쏟아 부어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5-8)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한 것은 누구나 사랑할 만한 의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하기 힘든 죄인들을 위해, 다시 말해 사랑할 가치가 없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다는데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수고를 그대로 실천에 옮겨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성령의 기쁨으로 사랑의 수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시골 농가에 농부 딸이 드레스에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그 집에 하루 밤 묵게 된 길손이 이를 보고 물었습니다. "얘야, 그 끝없이 계속되는 힘든 수놓는 일에 싫증나고 피곤치도 않니?" 그러자 농부의 딸은 "아니요, 이것은 내가 장차 입을 드레스인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여러분을 신랑되시는 예수의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십니까? 기쁨과 소망으로 사랑의 수고를 하나님과 이웃에게 베푸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수고에는 언제나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이 있기 때문에 그 수고하는 일에 힘든 것보다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세 번째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세상에서 복된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입니다. 세상이나 인생은 안개와 같은 것이며 그 호흡이 끊어지면 결국 흙으로 돌아가 소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46:1-5)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소망을 둔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진정한 소망은 예수의 재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인류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동안 여러 가지 인간의 기술과 지식과 힘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늙고 병들고 아프거나 쇠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있는 자 없는 자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의사도 약사도 은행도 노조도 필요 없고 바보 온달이나 평강공주가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참으로 예수의 재림은 인류 최대의 소망이며 그만큼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에게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주의 재림을 깨끗함으로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재림을 맞이한다해도 깨끗지 못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무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린도 후서 7:1)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합니다."(데살로니가 전서 3:13)
알렉산더 대왕이 출정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구들에게 그의 전 소유를 분배하였습니다. 그 때 누군가 "그러면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안 가지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대왕은 말하기를 "오, 나는 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을 소망하며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 깊어 가는 역사의 밤은 이미 밤이 아니고 새벽을 향한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

벽이 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좋았더라고 할 수 있도록 소망의 인내를 가지시고 깨끗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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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 앞에 우리가 무엇이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가전서 2:13-20)
 
어느 부모가 여러 자녀들을 두었는데 장남은 국내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기업에 취직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재벌총수의 신망을 한 몸에 얻어 계열 증권회사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업구조조정의 압력을 받은 모기업에 자금을 동원하라는 총수의 요청에 불법 증권거래조작을 통해 무려 10조원의 자금을 조성하여 불법으로 내부자거래를 하다가 쇠고랑을 찼습니다. 그러나 그는 막강한 대기업 자문변호사들의 활약으로 곧 풀려나 총수의 두터운 신임으로 다시 회장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의사로 재벌의 딸과 결혼하여 국내 유수한 병원의 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료보험수가를 몇배 이상 부당청구하여 엄청난 폭리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약품업체로부터 수백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챙기고 국세청으로부터 수백억원의 탈세의혹을 받았지만 학연 지연 등을 동원해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녀는 뚜쟁이를 잘 만나 검사한테 시집갔는데 남편이 줄을 잘 선 덕택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밍크 모피나 호피 코트 등을 손쉽게 얻어 입고 고관들 부인들의 상류층 모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둘째 딸은 이태리 유학 후 모 대학 음악 교수를 재직중인데 불법 과외 등으로 한달에 수천만원을 챙기다가 음대 부정입학에 연루돼 구속되어 재판중에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인 장남, 병원장인 차남, 검사를 남편으로 둔 장녀, 음악대학 교수인 차녀 등 이들을 아들 딸로 둔 부모는 과연 자녀들에 대한 바람직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까? 과연 이들 자녀들은 부모의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과연 이들 자녀들은 부모의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혹시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런 분의 가치관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부모도 있습니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벌이도 변변치않아 자식들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장녀는 중학교 졸업후 방직공장에 취직해 산업체 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 사회복지과를 나와 버려진 아이들을 무상으로 돌보는 SOS마을에서 처녀 엄마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일찌감치 소방 공무원에 뜻을 두고 공부하여 119구조대로 활약하다가 지난 홍수 때 급류에 떠내려가는 사람 구하다가 의식불명이 되어 식물인간으로 몇 달을 고생하다가 장기를 기증하고 세 살박이 아들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군인이 되어 전방 지휘관으로 근무중 DMZ 민통선 지뢰제거 작업하던 부하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하급지휘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구조에 앞장서다 그만 두 다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셋째 아들은 대학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고가의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 대신에 불우한 고학생들을 가르치는 야학 강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 자녀들을 둔 부모는 자녀들을 잘못 가르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부모의 영광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까? 앞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된 자녀들을 둔 부모와 비교할 때 어느 부모가 영광과 자랑스런 자녀들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앞서 언급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된 자녀들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자랑스러워할만 인물들이 못되고 오히려 우리 사회에 가치관을 왜곡시키며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어둠의 자식들입니다. 반면에 후자의 자녀들은 언론이나 사회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은 아니나 눈앞에 보이는 이익보다는 병들고 소외되며 그늘진 곳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므로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빛의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영광과 기쁨과 자랑스러운 면류관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은 예수 앞에 무엇이 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재벌, 검사, 의사 등 사회 지도층이 된다 해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는 일이 눈에 띄지 않으며 작아 보여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인생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과 자랑스런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은 예수 앞에 기쁨과 영광, 그리고 자랑의 면류관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어떠한 고난과 핍박, 훼방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교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쏟아 부은 사도 바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과 같은 동족이면서도 바울의 복음 전도를 적극 방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지독한 고집과 배타성을 지니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고 끈질지게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핍박하고 훼방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여러번에 걸쳐 바울을 살해하고자 했었습니다. 이 모든 결과로 유대인들은 자기의 죄를 항상 채웠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16절) 이렇게 유대인들의 극심한 핍박과 훼방 공작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과 교회를 유모처럼 사랑하고 돌보는 바울의 전하는 복음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들여 믿음에 굳게 설 뿐만 아니라 온갖 고난을 헤치고 믿음과 사랑에 승리하여 교회를 거룩하게 보존했습니다. 참으로 예수 앞과 사도 바울 앞에 그들은 기쁨과 영광과 자랑의 면류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로 믿고 확신하며 유대인들의 어떠한 핍박과 박해 가운데서도 쉬지 아니하고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방해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각종 비난과 중상모략, 즉 교회 성도들에게 아첨한다든가 돈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는 탐심의 탈을 썼다든가 자신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전한다든가 하는 비방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신은 오직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할 뿐이며 이에 대해 하나님이 증거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무모한 비방을 일축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했는가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증인이며 이를 또한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고 말함으로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교회에 아첨하거나 하지 아니하고 오직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심없이 복음을 전파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탐심의 탈을 썼다는 비방으로 복음 전파가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접 천막 제조 및 수선하는 일에 밤낮으로 일하므로 물질에 대해 투명함을 보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기 위해 복음전한다는 비방에 대해서는 자신이 오직 "유순한 유모처럼 사랑과 온갖 희생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양육했지만 자기가 양육한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께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만을 소망했던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19,20절)
예수 앞에 기쁨과 영광과 자랑의 면류관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그 어떤 누구에게도 아첨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공허한 환상이나 인간의 욕망에 편승해서 인간의 열정이나 욕망을 채워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상에서 출세 성공 부귀영화 등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 예수의 복음은 죄를 잉태케 하는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여 인간의 부패성을 극복하게 해주며, 세상의 헛된 허영과 환상으로부터 해방시켜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처럼 살게 하는, 다시 말해 예수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므로 이웃을 구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복음 전파가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돈을 목적으로 복음 전파하고자 하는 생각, 다시 말해 복음 전파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 예수를 믿되 자신의 축복을 목적으로 신앙생활하고자 마음과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 이외 그 어떤 영광도 헛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헛된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갈 5:26)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과 자랑이 되는 삶은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그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복음,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없이 부활의 영광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십자가의 희생으로 받은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모든 사람에 대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 사랑의 빚진 자로 그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형제를 사랑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실천한 사랑이 곧 십자가 예수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그 예수의 사랑에 잡힌바 되어 복음 전파에 그 어떤 고난과 핍박,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아니하고 한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십자가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은 복음 전파로 나타나야만 참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안델센의 동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어머니가 병든 아들을 간호하고 있는데 한 노파가 찾아와 먹을 것을 구걸했습니다. 잠시 아이를 두고 부엌에 가서 음식을 가지고 나와 보니 노파는 온데 간데 없고 강보에 싸인 아픈 아들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 호수에 빠졌습니다. 이 때 호수의 요정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들을 찾고 있지요. 제게 당신의 맑은 두 눈을 주면 이 호수를 건너게 해줄게요." 어머니는 기꺼이 두 눈을 주고 호수를 건넜습니다. 이번에는 계곡을 건너다 그만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계곡 밑에 있던 가시나무가 제의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사랑으로 뜨겁다면서요. 내게 당신의 가슴을 주세요. 그러면 계곡에서 내보내 드릴께요." 이 어머니는 가시나무를 꼭 껴안아 따뜻한 체온으로 녹여 주었습니다. 가시나무는 그 어머니의 뜨거운 체온으로 물이 오르고 새순이 돋아나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시나무를 꼭 껴안은 어머니는 그만 그 많은 가시에 찔려 가슴은 갈래갈래 찢겨 싸늘하게 식어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다시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묘지에 들어섰습니다. 묘지를 지키는 요정이 말했습니다. "당신의 싱싱한 젊음을 저에게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아들을 찾아드릴께요." 이 어머니는 흔쾌히 자신의 젊음과 요정의 늙음을 바꾸었습니다. 마침내 어머니는 아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보기 흉한 노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을 찾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무엇이든 요구되는 모든 것을 다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과 같은 우리를 찾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그 십자가 하나님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복음전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며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 그리고 자랑이 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시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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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목자의 마음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가전서 3:1-13)
 
예수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은 예수의 마음입니다. 이 예수의 마음을 목자의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선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삯군 목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께서는 양을 건지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는 참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어떻게 살든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울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이 도시에는 100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정신과 문화 수준이 형편없이 낮고 대부분 미신에 젖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치와 허영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을 경시하거나 멸시하는 마음으로는 그 사회를 발전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수준이 어떠하든, 자기 취향에 맞든 안맞든, 자신에게 적대적이든 아니든 다 똑같은 사람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일하지 않는 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그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더 나아가 예수를 믿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의 마음을 가진 예수의 제자가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보다 먼저 이웃을 좋아하는 마음, 더 나아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이웃들이 어떠한 사람이든, 어떻게 살고 있든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이웃들임을 알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미국 역사에 특이한 인물로 로버트 리(Robert Lee)라는 장군이 있습니다. 그는 남군의 사령관이었지만 북군(北軍)과 남군(南軍)이 모두 좋아했고 남부 사람과 북부 사람에게 모두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역사가인 로퍼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리 장군의 편지, 일기, 연설, 성명서, 기타 작은 노트까지 면밀히 조사했는데 그는 북군이나 북부 사람을 향하여 적(敵)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워하기를 거부한 사람입니다. 이점이 미국인들이 오늘날까지 그를 존경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지 "회개하라 지옥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원수된 세상 죄인들을 한번도 원수로 여기거나 원수로 보시지 않고 불쌍히 여기시며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부일 외국어 고등학생 참사 사건 당일, 행동이 느려 앞차를 놓치고 맨 뒷차를 타는 바람에 화를 면한 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일어과 1학년 이상경 학생인데 평소 행동이 느린 버릇이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늘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행동이 느리다고 핀잔을 주었던 학생의 어머니 강경숙 집사는 "평소 느리다고 많은 구박을 주었는데 느린 것이 복이 되었다."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꿈은 커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을 하겠다며 교회 학생회에서 늘 신앙생활에 열심이던 유준영 학생은 이번 참변으로 하나님 나라로 떠났습니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늘 밝고 가스펠송 부르기를 좋아했다고 어머니 신현주 집사는 말하며 "우리 준영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길 원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준영이를 데려가신 모양이다."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살거나 죽거나 모두가 다 복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모두에게 생명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행동이 느린 학생이나 행동이 빠른 학생이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를 다 같이 사랑하십니다. 어쩌면 환난과 재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더욱 더 사랑하시는 줄 모릅니다. 본 데살로니가 3장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기뻐하며 더욱 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 대해 예수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는 편지입니다. 목자의 심정을 가진 바울은 환난과 박해를 믿음과 사랑으로 잘 이겨낸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더욱 더 간절히 보고싶었으며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하루 가운데 밤은 만물이 성장하는 때라고 합니다. 가을이 되면 화분에 화초를 심곤 하는데 선택한 종자의 구근들로부터 꽃이 피어나게 하려면 우선 2,3주 동안 캄캄한 어둠 속에 단단히 묻어 두어서 뿌리를 강하게 내리도록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밝은 데로 옮겨 놓으면 이 구근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신앙적인 성장도 역시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언제나 이 어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팔자가 이게 뭔가?" 하면서 어둠에 묻혀있지 말고 "이 어둠을 이기고 나면 어떠한 빛이 비추일까?" "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질병의 어둠, 감옥살이의 어둠, 실패의 어둠, 억울함의 어둠, 가난의 어둠, 핍박과 박해의 어둠 속에서도 이 어둠을 이기고 나면 어떠한 빛이 비추일까를 소망하면서 그 마음이 어둠보다는 빛 가운데 있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질병과 감옥 생활, 그리고 핍박의 어둠 속에서도 항상 기뻐했습니다. 빛이 되시는 예수께서 항상 그와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치료받지 못한 질병으로 인해 몸이 약해져 있음에도 그 약함을 자랑하고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었고 그 겸손함으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머물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을 통로로 하여 풍성한 신앙적 성장을 이루려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과 병고, 환난과 재난, 그리고 핍박 등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장케 하시는 섭리를 깨닫지 못하여 대부분 기뻐하고 감사하기보다는 원망 불평을 일삼고 하나님을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신앙이 더욱 더 성숙되지 못하고 그만 빈번히 주저앉고 맙니다. 나비가 되기 위해 누에고치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구멍을 약간 내주었더니 쉽게 나온 나비는 정작 날지 못하고 땅에 날개를 대고 파들파들 떨고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나비도 어느 정도 고통의 어둠 속에서 애쓰는 수고를 해야만 떳떳하게 태양 아래를 날아다닐 특권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어둠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믿음의 인내로 더욱 더 성숙되어 목자되시는 예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은 박해와 환난이라는 어둠의 고통 중에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믿음과 사랑을 지켜 생활하므로 더욱 더 성숙해졌기 때문에 더욱 더 애착이 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이라는 한 바리새인 집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집 주인 시몬은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면서 예수의 인격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 여인은 분명 그 동네에서 창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죄인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동네 누구나 이 여자에 대해 처음부터 죄인이라는 부르는데 이의가 없었습니다. <주홍글씨>라는 책에서 간음한 여인에 대해 간음한 죄인임을 상징하는 "A"(Adult의 두문자 A)라는 표지판을 가슴에 붙이고 다니게 했던 것처럼 그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드린 여인에 대해 각자의 마음 속에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았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으로 딱지를 붙이고 보는 것은 곧 남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죄인이라고 부르거나 마음에 딱지를 붙이고 사람을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로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누구이라도 미워할 수 없고 사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마음에 딱지를 붙이고 보는 것은 자기를 성별하는 교만에 불과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에 대해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바로 자기를 다른 사람과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는 깨끗하고 의로우며 다른 사람은 더러운 죄인이라고 스스로를 성별하며 교만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무릇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 사랑할만하지 못한 사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즉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한 두 번의 실수나 범죄를 보고 "저 사람은 저런 인간이다."하고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도 저 사람같은 환경이었다면 저 사람 못지않은 실수와 죄를 범했을 것입니다."며 자기 자신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죄를 보기보다는 그 마음속에 예수께 대한 사랑이 보다 많음을 보셨습니다. 그 여인이 살아온 지난날에 지은 숱한 죄보다 지금 그 여인의 마음에 담긴 주님께 대한 넘치는 사랑을 보신 것입니다. 그 넘치는 사랑이 지난날의 모든 죄를 덮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 여인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토록 그 동네에서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므로 그 여인은 죄인이라는 딱지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에 기록된 그 내용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 (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누가복음 7:36-50)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범죄를 밝혀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실수나 범죄로부터 그들이 벗어나 새로워질 수 있도록 더욱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마음, 즉 목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처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옛날에 한 소녀 하인이 교회 신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너는 기독교인으로 한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어 내게 주어지는 일은 중요하거나 큰 일이 아닐지라도 그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성실히 감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조간 신문을 가져다 출생란을 읽고 그 날에 출생한 전체의 아기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결혼란을 읽고 결혼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망 통지란을 읽고 그리고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주기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멀리 나가 복음을 전하지 못할지라도 바울처럼 선교하시는 선교사들과 온 나라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의사나 간호사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처럼 행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우리가 다 가서 사랑을 베풀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곧 기도인 것입니다.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인류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다. 세계는 지금도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중보 기도로 보존되고 있음을 믿으시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기도하는 생활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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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항상 주와 함께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 전서 4:9-19)

1. 우리는 영화, 만화(애니메이션), 비디오, 인터넷 등을 매체로 한 각종 음란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N세대로 불리는 청소년층은 '인터넷 없이는 못산다', '친구보다 인터넷이 더 낫다'고 외치며 TV를 보는 시간보다 인터넷 방송이나 컴퓨터게임을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청소년 5명 중 2명 꼴로 인터넷방송과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만큼 심각한 컴퓨터 중독, 즉 문화적 중독증에 걸렸다고 한국 청소년 상담원은 보고서를 냈습니다. 청소년들은 그 유형에 따라 게임중독, 채팅중독, 음란물중독에 빠져있고 잠을 못자거나 밥 생각을 잃어버릴 정도의 중증환자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더구나 신매체로 등장한 인터넷 성인방송은 음란성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어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되고 있으며 이 채널을 진행하는 인터넷 자키(IJ)들은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데 거침이 없고 이들 중에는 아르바이트 여대생들도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음란물들을 부모 몰래 경험한 청소년들이 75%나 된다고 합니다. 이같은 게임 중독, 채팅 중독, 음란물 섹스 중독 등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독증은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얼마 전 미국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은 무려 2,500억불로, 이는 우리 나라 국가 예산의 4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가 음란해져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 모두가 다 그런 중독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컴퓨터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부정적 측면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방면으로 사회를 더욱 더 밝게 하는 청소년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지난 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서울 국제 컴퓨터 문화축제' 의 최고 화제는 중학생 벤처1호인 다드림 커뮤니케이션(www.GoodDNS.com) 부스였는데 주인공들은 앳된 얼굴의 10대 사장인 표철민군(16.서울 윤중중 3) 등 모두가 이른바 '파란 피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도메인 등록 사이트를 운영하여 지난 2분기에 무려 7천만원 매출을 올렸고 연말까지는 4억원을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표철민군은 이미 지난 4월 독도 도메인(www.tokdo.co.kr)을 '독도사랑회'에 무상으로 기증하면서 화제가 됐던 인물로 낮에는 여느 중3들과 다를 바 없이 오후 8시까지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다만 오후 8시부터 '사업가 표철민'의 생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표군은 어릴 때, 기독교 기업 정신으로 기업경영에 본을 보인 유일한(柳一韓) 박사의 책을 읽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컴퓨터를 이용해도 자신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를 여러 가지로 어지럽히며 타락케 무리들도 있는 것입니다. 소위 정보화 사회로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의 가치를 부인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4:3-6)

벌써부터 우리 나라에도 간통죄를 법 조항에서 삭제하자는 의견들이 분분하고 있습니다. 설사 세상 법이 간통을 죄로 여기기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 있는 법으로 간통, 음란을 죄악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다 음란해져 간다 해도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거룩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러 교회에 들어오지 않고 교회 밖에서 매일 매일 생활하는 여러분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만이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인도하고자 하는 참되고 살아있는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경건의 모양만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으로 나타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입니다."(데살로니가 전서 4:7)

2. 다음으로 사회를 혼란시키며 가정을 파괴하는 무리들이 사이비 종말론자들입니다. 사이비 종말론 무리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미혹케 하여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팽개치게 하거나 가정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학업도 중단시켜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탄으로 몰고 갑니다. 이러한 사이비 종말론에 오염된 교회들은 결국 복음을 흐리게 만들어 복음 전파의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까지 합니다.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 지역에도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대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잘못된 종말론에 사로잡혀 생활에 균형을 상실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오늘 본문의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최근 최대의 사이비 종말론 피해사건으로 기록되는 <천존회>사건을 통해 바울 당시의 그릇된 종말론 폐해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천존회> 교주 모행룡은 85년 천마산에서 계시를 받았다며 종말론을 무기로 신도들을 현혹, 1천5백억원대 대출사기 행각을 벌여 심각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양산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주 모씨는 천마산에서 최고신인 '상계천존'을 만나 천서 2권을 받고 12년간의 입신육도(立身六道) 과정을 거쳐 '천존'이 됐다며 자신을 신격화하며 자기 아내 역시 '천모'라 하여 주저없이 신격화했습니다. 이들은 세기말 풍조에 편승해 노스트라다무서 예언서와 격암유록 등을 짜집기해 종말론 이론을 만들어 93년초 전세계의 기(氣)가 소멸한다는 1차 종말론을 주장해 헌금을 끌어 모은 뒤 흔한 수법대로 종말론을 연기, 2000년 음력 1월15일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하며 대출사기를 벌여왔던 것입니다. 종말이 임박했으니 각종 은행에 대출을 받아 헌금하고 갚지 않아도 된다며 서로 맞보증을 세워 대출사기행각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들 교주 부부는 특히 신용대출이 용이한 화이트 칼라층, 중앙부처의 고위공무원을 비롯하여 고급장교, 의사, 교사, 경찰, 변호사, 법무사, 회계사, 은행원, 지방지 기자 등을 목표로 삼아 사기행각을 벌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 피해를 본 신도들은 교주가 7천가지 의술을 하사받았다는 기(氣)수련, 기(氣)치료 수법에 현혹되거나 종말론을 지속적으로 주입받아 정신적 파탄에 이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주 록가수 M(46)씨는 후두암으로 투병중 입국해 기치료를 받았으나 암세포가척추까지 전이돼 본국으로 돌아간 뒤 두달만에 숨졌습니다. 그러나 교주 모씨는 외국가수를 2주만에 완치시켰다는 허위기사를 배포하며 신격화에 이용했습니다. 서울 영등포의 B(37)씨는 아내에게 ‘종말이 곧 올테니 애를 낳지 말라’며 낙태를 시킨 뒤 자신도 기치료에 연연하다 숨지고 말았습니다. 핵심 신도 1500명 중 상당수는 자녀들의 학업을 중단시킨 채 천존회 신자로 일하게 했고 장모씨 등 미혼 여신도 3명은 천존회 간부를 신랑으로 기재한 가짜 청첩장으로 결혼자금을 대출받아 헌금했습니다.사법시험전 천존회에 입문한 강동범 변호사(43.구속)는 천존회 법률고문으로 21억원 상당의 대출사기에 가담했으며 교주가 구속되자 변호를 맡아 검찰수사를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종말이 1년 연기됐다는 옥중계시를 신도들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사이비 종말론에 현혹된 이들중 대부분이 실직, 이혼, 가출, 구속, 자살기도 등 가정적.사회적 파탄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반면 교주 모씨 부부는 수십차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고가의류 구입에 3억여원을 탕진하는 등 호화.사치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의류업자 박모씨는 교주 부인(52)을 위해 4년간 모피코트 등 3억6000만원 상당의 고급옷을 제공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모씨는 사기 대출금 100여억원으로 10여개 계열사를 가진 <FM그룹>을 설립해 아들을 그룹 부회장에 앉혀 후계체계까지 갖추었으며, 강원도 홍천에 자신들을 신격화하기 위해 <대라천궁>을 설립하는데 150억원을 소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사이비 종말론은 세상 종말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상 종말은 예수의 재림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재림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지 못하면 사이비 종말론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바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예수의 재림에 관한 교리를 잘못 이해하는 가운데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재림만을 기다리며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더 나아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보다 더 강하게 권면합니다. 종말을 핑계삼아 일손을 던져 버리고 무위도식하거나 재산을 팔아 교주에 바치거나 학업을 중단시키고 대출사기행각을 벌이는 행위는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형벌과 심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19)"

하나님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인정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땀흘리지 아니하고 돈 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땀흘리지 아니한 돈은 부정한 것이며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건전한 종말론은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생활입니다.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기 위해 일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혜서라 불리우는 전도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전도서 3:22)

프랑스 철학자 마르셀이 어느 날 파리의 정거장에 서서 표받는 사람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박봉일 것이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며 한평생 거기에 서서 통근 열차를 타는 수십만장의 기차표에 날마다 작은 구멍을 뚫어주고 있는 일이 얼마나 지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사람은 가끔 웃으며 휘파람을 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자가 그에게 접근했습니다. "표받는 일이 몹시 지루하죠?" 그러나 역무원은 명랑한 음성이 대답했습니다. "천만예요. 오늘도 저 사람들이 프랑스를 위하여 힘차게 일할 것이 아닙니까? 내가 하루의 현관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멋집니까?"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남이 보기에 귀하든 천하든 그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즐겁게 일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33년의 생애 중 30년을 마을의 노동자로 보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멍에를 가장 잘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이 멍에를 사려고 그의 목방으로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만일 예수께서 나사렛 목방에서의 일을 잘 하시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그에게 맡겨 주셨을 리가 없습니다.

로버트 로렌스는 후세에 성자의 칭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무슨 굉장한 직업에 종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수도원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쓴 기도서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에서 "접시는 닦는 것이 나의 기도이며 부엌 바닥을 닦는 것이 나의 찬송이다."고 했습니다. 로렌스는 자기가 일하는 부엌을 하나님의 나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30세까지 자기 육신의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아버지의 천직을 맡아 하면서 그 일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과정으로 여기고 목방에서 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천한 노동자로서 일을 하셨습니다. 노동자 예수는 일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5:14-30) 어떤 사람이 멀리 타국에 가기 전에 종들을 불러 각기 재능에 따라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또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다른 또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열심히 장사해서 금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바로 가서 열심히 장사해서 두 달란트를 남겼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 때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아 그냥 땅에 묻어 둔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것이니라...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무슨 일을 했느냐는 것보다 그 일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특별한 일들을 할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기 보다 작고 평이한 일일지라도 그 일을 특별히 성실하게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시는 분이 아니라 심은대로 거두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기 그 재능에 따라 크고 작은 일들을 맡겨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일들이 크든 작든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임을 깨닫고 그 일을 소중히 여기며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긴 일들에 대해 회계, 다시 말해 심판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종들은 자기를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맡긴 일에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아니한 악하고 게으른 종에 해당됩니다. 주인이 종을 위해 자기 소유를 맡긴 것이 아니라 주인 자신을 위해 자기 소유를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해 주님 다시 오실 때 칭찬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회계하는 세상 심판날, 곧 예수의 재림(세상 종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예수 자신도 그 날을 모르신다고 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서 지금 여기 계신 것처럼 항상 주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4:42-51)

주께서 언제 재림하느냐는 여러분의 알 바가 아니며 알 수도 없습니다. 지금 주와 함께 하는 거룩한 생활로 언제 예수께서 다시 오실지라도 착하고 충성되며 지혜롭다는 칭찬받으며 천국의 즐거움에 참예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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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 항상 기뻐하라 !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18) 범사에 감사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1-24)

기독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지구 종말이나 예수 재림의 때와 시기를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한 마디로 사기꾼들이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론 사기꾼들이 흔히 써먹는 것이 "처처에 기근과 지진 등이 일어나는" 사례들과 "난리와 난리의 소문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며 이는 재난의 시작이지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1-14) 예수님은 종말에 대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시므로 세계 복음화를 확실한 종말의 시점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인류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인류 구원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디모데 전서 2:4)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를 위해" 힘썼던 바울이 "형제들아, 종말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노라"고 했던 것입니다. "주의 날"로 표명되는 세상 종말은 "세상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밤에 도적같이, 홀연히 이르게 될 것인데 그 누구도 결단코 이를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살전 5:4) 여러분이 사는 세상은 성경에서 "어두움"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세상)에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지 아니하는 모습을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요 1:5)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으로 도적같이 임하는 주의 날, 세상 종말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의 날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예수를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은 빛이 되시는 예수와 함께 하기 때문에 빛에 속한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하므로 그 마음에 빛이 없는 사람은 어두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의 자식이라 부릅니다. 다섯 살 난 아이가 할아버지가 주신 10만원권 수표를 거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0만원권 수표를 거절한 이유는 자기의 저금통이 가득 차 있어서 그 수표를 넣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보니 손자의 저금통에는 10원짜리 동전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실상 10만원권 수표 한 장은 10원짜리 동전 1만개에 해당되는 엄청난 돈인데도 10원짜리 동전으로 채워진 저금통이 10만원권 수표를 거절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도 사실 이 어린아이와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를 거절한 베들레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마음에 가득 차서 감춰진 보화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금은보화, 지식과 명예, 권세 등이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는 10원짜리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에 세상의 모든 것으로 다 채운다 해도 만족과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오직 예수만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는 참된 기쁨과 빛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 믿고 마음에 빛되신 예수를 영접하시므로 빛의 아들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 종말의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이 신령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빛의 아들이 되는 것이 신령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세상 종말의 때와 시기를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과 사기에 불과한 것이며, 빛이 되시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안에 사는 것이 세상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을 극복하는 지혜와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낮에 속한 빛의 아들들은 예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내가 죄사함 받았음을 확실히 믿고,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희생하시기까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살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는 말씀을 기억하여 눈에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참되고 부끄럽지 않을 산 소망이 되는 예수의 재림과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결혼한지 4개월만에 6.25전쟁이 터져 남편은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아버지를 본적도 없는 뱃속에 든 아이 하나 낳아 기르며 수절과부로 50여년 동안을 지내왔던 74세된 이산 가족 할머니는 오직 남편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에게 어느 신문 기자가 북에 있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면서 여러 자녀들을 두고 있는데도 만나고 싶으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래도 남편을 만나 한번 함께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의 50여년에 걸친 그토록 애절한 소망도 흐르는 세월 속에 어찌할 수 없는 부질없는 소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여 영원히 함께 사는 부활의 산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살든 죽든)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살전 5:10) 이제 예수 재림에 대한 바른 믿음과 사랑 소망으로 그간 실추되었던 교회 덕을 바로 세우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에 연루된 몇몇 교인들로 인해 교회가 사회와 이웃들에게 덕이 되지 못하므로 손상된 교회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며 권면하는 교회 사역자들을 바로 알고 그들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아 서로 사랑 안에서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종말론에 부화뇌동하여 가정이나 교회에서 규모없이 사는 사람들을 바로 권고하고 경계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미혹당하지 않도록 재림에 대한 바른 소망으로 위로하며 견고한 믿음 위에 살도록 붙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종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지라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되시며 빛이 되시는 예수 안에서 거하시므로 그 날이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의 재림을 바로 준비하는 성도의 삶은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도적같이 임하는 주의 날을 예비하는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위, 성공 등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하기 보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성도가 빛의 아들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시뿐이지만 예수 믿어 얻는 구원의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는 기쁨들은 잠시 있다가 모두 떠나거나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은 항상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영원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쁨의 근원을 하나님에게서 찾았고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고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시편 84:10)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지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도록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빛을 잃게 되고 믿음에서 떨어지며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힘을 잃게 되며 교만해져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게 되고 맙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게 되어 결국 범죄하게 되므로 신앙생활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천사가 와서 수종들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귀신들이 들락거리게 됩니다. 기도하는 것은 영혼의 호흡과 같은 것이어서 기도하기를 쉬게 되면 영혼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 쉽사리 신앙이 회복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사탄은 이미 패배했지만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하기를 쉬는 사람은 이미 사탄에게 패배한 사람입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방법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랍비가 회당에서 기도를 마친 뒤 한 유대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기도하는가? 그것은 신자로서 명예스럽지 못하네. 나는 왜 기도하는데 자네보다 두 배나 시간이 걸리는가?" 그 유대인이 대답했습니다. "랍비님, 누가 당신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저를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랍비님은 많은 금과 은과 좋은 집과 네 필의 말과 마차와 그리고 은행에 많은 돈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이 이것들을 지켜 주십사고 기도할 때 이 모든 것을 다 아뢰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러나 저를 보십시오. 제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단지 잔소리 심한 아내와 여덟 명의 아이들, 그리고 벼룩에 물린 염소가 전부입니다. 제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단지 '아내, 아이들, 염소!'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세상에 부요한 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으나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는 하나님의 뜻과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숨넘어가는 기도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쉬지 아니하고 드리고 기도야말로 세상에 빛이 되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은 쉬지 아니하고 기도하되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빛에 거하는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가 죠지 마테존 목사는 시각 장애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자식이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나 마테존 목사는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받은 가시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였음을 용서하소서. 수백 번 장미 때문에 감사하였으나 가시의 은혜를 잊었나이다. 십자가의 가시를 거쳐 하늘에 올라가신 주님, 나는 나의 가시를 통하여 하늘에 올라갈 수 있음을 잊었나이다. 나에게 주신 눈물이 무지개가 됨을 깨달아 감사하옵나이다. 나에게 주신 아픔이 하늘 가는 길이 됨을 깨달아 감사하옵나이다. 장미밭에 살지 않고 가시밭에 살게 됨을 감사하옵나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모두가 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내게 있고 없고, 높고 낮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건강하고 병약하고에 따라 감사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때로 없고 낮고 실패하고 병약한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기준으로 볼 때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해서 감사하는 것은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빛이 되는 것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감사할만한 것들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앞이 깜깜해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을 믿고 소망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빛의 아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남이 더 잘되는 것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이 빛의 아들입니다. 내 일은 잘 안되어도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빛의 아들입니다. 역경이나 환난 중에 감사하는 사람이 빛의 아들입니다.
주의 날이 언제 임할지라도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고 흠이 없이 설 수 있기 위해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빛의 아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생활입니다.<2000년 8월 6일. 이동희 목사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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